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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변태 / 고경서(경숙)

부흐고비 2021. 4. 13. 15:33

아무래도 제목에 반한 듯싶다. 연극 포스터에는 상반신을 노출 시킨 여자가 당신의 속내를 안다는 듯 노려보고 있다. 분화구처럼 움푹 파인 가슴에 ‘변태’라는 글자가 추파를 던지며 말초적인 본능을 자극하는 것도 같다. 성인극이라는 선정적인 문구가 성적 호기심을 부추겼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욕망은 점차 거세되면서 감정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소극장에 조명이 켜지면서 무대는 막이 오른다. 서가에 책들이 꽂혀 있고, 한 가운데 책상과 의자가 놓여있다. 이곳은 주인공인 민효석이 운영하는 도서 대여점이다. 도시의 변두리에 문화를 꽃피우고자 가게를 열었으나 월세조차 내지 못한 채 궁핍하게 살아간다. 밥벌이도 못 하는 무명시인으로서 자긍심만은 대단하다. 이웃에 사는 정육점 사장인 오동탁에게 시를 가르친다.

한소영은 민효석의 아내다. 비정규직 글짓기 교사로 남편 대신 생계를 떠맡고 있다. 언젠가는 문단에 유명한 시인으로 우뚝 서기를 열망하며 뒷바라지를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경제적으로 무능한 남편에게 불신과 불만을 토로한다. 시인을 집어치우고, 노동이라도 하라고 바가지를 긁지만 이 일마저도 해내지 못하자 부부의 갈등은 깊어진다.

이들의 불화를 야기하는 인물은 오동탁이다. 활달한 성격의 소유자로 돈밖에 모르는 장사꾼이다. 애인에게 시집을 선물하기 위해 시를 배우면서 스승을 물심양면으로 도와준다. 어느 날, 그가 쓴 시가 유명한 잡지사로부터 호평을 받으면서 화려하게 등단을 한다. 출판사의 지원까지 얻어 시집을 발간하고, 그 시집 또한 베스트셀러가 되어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이러한 출세 과정을 곁에서 지켜본 부부는 허탈과 자괴감에 빠진다.

이 연극은 빈곤으로 몰락하는 한 시인의 고통과 좌절을 그려내고 있다. 소재가 문학인만큼 흡입력이 강하고, 감정이입이 빠르다. 그런데 몰입할수록 몇 가지 질문을 의도적으로 던진다는 뉘앙스를 받는다. 확답은커녕 질문에서 맴돌았으나 부당하고 왜곡된 사실을 제시하면서 관객들로 하여금 숨겨진 진의를 요구하는 것 같아서다.

시란 무엇인가? 시의 언어로 체감하는 세상 풍경이다. 사물이나 현상이 가지는 구태의연하고 상투적인 의식을 새롭고 참신한 시각으로 표현하는 예술 장르다.

시인은 왜 시를 쓰는가? 삶의 근원을 탐구하고, 불화 속에서 화해를 모색해 결핍이나 상처를 위무하고 치유함으로써 삶의 진실을 작품에 녹아낸다. 따라서 시적 대상을 향한 시선도 다를 수밖에 없다. 민효석은 피고 지는 꽃 하나에도 우주를 노래한다. 사상과 감성, 감각을 동원한 상상력으로 예술의 심미성을 확보한다. 반면에 오동탁은 평범한 일상을 내용으로 한다. 등단작인 <고기를 썰며>도 정육점에서 경험한 일을 그대로 나열한 것이다. 이는 독자와의 교감이 쉽고, 재미와 쾌락을 맛볼 수 있다는 점에서 차이를 드러낸다.

연극은 이쯤에서 어떤 시가 ‘좋은 시’인가의 정의를 묻는다. 그 사람이 아니라면 쓸 수 없는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하고, 깊은 사유로 형상화 시킨 이미지의 다양한 변주로 역동성을 가지는 시가 ‘좋은 시’라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문학성을 겸비하더라도 독자로부터 반응이 없거나 외면당하기도 한다. 오동탁처럼 자본의 힘으로 판매 부수를 올린 베스트셀러가 우월하다는 인식이 만연해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예술마저도 자본 논리로 평정되는 것에 선뜻 동의하거나 반박에 나서지 못하는 양가적 감정 때문에 자유로울 수 없었던 것이다. ‘어려운 예술은 있어도 재미있는 예술은 없다’는 대사가 현시대를 살아가는 작가들의 쓸쓸한 내면풍경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예술은 인생의 전유물이 아닌 선택이다. 작가의 영혼을 담는 집이 작품이다. 시 한 편을 창작하는 데 있어 숱한 밤을 세워 가며 소모한 시간과 고뇌와 열정 등 작가의 정신적인 산물이 물질적인 가치로 환산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따라서 정당한 값어치로 책정되는가에 대해서는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작가의 예술혼마저도 대중적 인지도에 따라 등급이 매겨지고, 차별화되는 현실이지 않는가. 독자를 설득하고 감응케 해 보편적 공감대를 형성한 책값이 한 끼 밥도 되지 못할 때는 더욱 그러하다. 작가가 정신적인 것보다 물질적인 것에 곤란을 겪으면 영혼은 피폐해진다.

문학이 생계용으로 되자면 작품을 팔아 허기진 배를 채울 수 있어야 한다. 글을 써서 명성을 얻고, 돈을 버는 문인들이 있는 반면 어렵고 힘들게 살아가는 작가도 많다. 민효석이 가게를 폐업하고, 도서를 처분하는 과정에서 한소영은 ‘책 1kg이 고작 100원’이라고 노골적으로 비난한다. 이에 ‘책 속에는 작가의 영혼이 담겨있다’고 절규하는 민효석에게 ‘네 시집은 네가 싼 똥’ 일뿐이라고 모멸감으로 맞선다. 작가정신이 배변을 닦는 휴지로 전락한 것이다. ‘배부르게 할 수는 없지만 영혼의 무게를 달아줄 유일한 양식’이라는 시인의 항변은 비장하면서도 자기연민으로 읽혀져 사뭇 혼란스러웠다. 이러한 가운데 세 명의 캐릭터는 변태의 과정을 겪는다. 누에가 캄캄한 고치 속에 애벌레로 틀어박혔다가 탈피하듯이 걷잡을 수 없는 혼돈 속에서 내면의 자아는 껍질을 깨고, 허물을 벗어던지며 우화를 꿈꾼다. 민효석은 세상에 대한 울분과 자조로 포르노영상에 빠져들어 이혼을 당한다. 한소영은 입고 있던 블라우스를 찢으며 오동탁이 인수한 자신의 가게를 북 카페로 만들어 문학회를 운영한다. 돈과 타협하며 파격적인 변신을 꾀한다. 욕망이 분출한 자리에는 상처가 분화구로 남는다. 오동탁 역시 베스트셀러 작가로서 새로운 삶을 살아간다. 이들은 ‘존재할 것인가 사라질 것인가?’라는 다소 과격한 발언으로 행위를 정당화시킨다. 이 같은 상황에서 ‘당신의 실존은 변태의 흔적일 뿐!’이라며 자신의 정체성을 회복하고자 한다.

인생은 한 편의 연극이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무대인 세상에서 주인공으로 발탁되어 준비된 각본도 리허설도 없이 맡겨진 배역을 연기해낸다. 더러 커튼콜을 받거나 헌책방의 책처럼 내팽개쳐질 수도 있지만 어떤 경우에도 빛과 희망으로 구원하는 존재들이 예술가들이 아닌가. 그러므로 변태變態는 작가의 끊임없는 도전이자 왕성한 생명력의 은유라고나 할까. 이 공연이 끝나면 욕망이라는 껍질을 벗겨 변신을 꿈꾸던 배우들은 무대 뒤로 사라질 것이다. 그러고 보니 연극을 관람하는 동안 삶과 예술이 일치하지 않고 어긋날 때 절망과 분노를 느끼면서도 동조하고 수긍할 수밖에 없었기에 곤혹스러웠던 것이다.

암전 속에서 부화한 노랑나비 한 쌍이 나풀거리며 망막 속으로 날아든다. 연극이라기보다 난해한 시 한편을 감상한 기분이다. 나는 심기가 불편한 관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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