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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은 그 말 자체보다는 더 긴 설명을 따로 필요로 한다. 거짓말은 하면 할수록 그럴듯한 말을 계속 동원하여 앞말을 덮지 않으면 바로 들통나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제가 한 말을 믿게 하려고 가짜 자료를 만들어서라도 설득해야 하니, 늘 거짓이 더 보태지기 마련이다. 문제는 이런 행위가 성공을 몇 차례 하게 되면 당사자는 그만 판단력을 잃고, 마치 자기가 하고 있는 거짓말이 참말처럼 느껴진다.

무슨 정치적인 사건이나 뇌물에 의한 내용을 들어보면 실로 가관이다. 이름이 꽤 알려진 사람도 기자들과 인터뷰를 하거나 재판정에 나가서까지 턱도 없는 거짓말을 해대고 있다. 내일 당장 탄로 날 일을 두고 오늘 태연히 오리발을 내밀고, 자신이 직접 관련된 사건도 전혀 모르는 일이라 시침을 뗀다. 자기를 과대 포장하여 세상에 내놓는 일이나 자신의 검은 욕망은 숨기고 선한 모습으로 남 앞에 나서는 일에 탁월한 능력을 보이는 사람들이 세상을 쥐락펴락하는 것 같다. 대중 앞에서 그럴듯하게 허풍을 치고 거짓말을 잘하는 사람이 이름도 얻고, 더 높은 자리에도 올라가는 이상한 세상이라는 말조차 나돌고 있지 않은가.

나는 이런 거짓말 잔치에 질려 아예 귀를 막고 살려 애써왔다. 그러나 때로는 뿌리도 없이 떠도는 거짓말에 솔깃해 하는 나 자신을 보고 깜짝 놀랄 때가 있다. 대체로 계획적인 거짓말은 아침 안개처럼 곳곳에 스며들어 사람의 정신을 마취시키는 작용을 한다. 아마 나 자신도 어느새 거짓말에 중독되어 많이 무감각해진 듯하다. 정신 차려야 한다고 나를 다그치지만, 거짓이 계속 공격해 오니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만일 국민들이 매일같이 반복되는 거짓말에 지쳐 포기하거나 힘을 가진 자의 거짓 앞에 눈치가 보여 억지 박수로 화답하게 되면 사태는 더욱 심각해질 것이다. 지금 SNS나 유튜브 등에서는 거짓말을 활용한 가짜 뉴스가 판을 치고 있다. 또 가짜인 줄 뻔히 알면서고 그 내용을 재미 삼아 사방으로 퍼 나르는 사람들이 줄을 잇는다. 순식간에 세상이 가짜로 도배되는 현장이다. 이렇게 되면 다음 단계는 가짜를 빌미로 삼은 사기가 나서게 된다. 금융이나 보현, 병원과 약품, 부동산과 각종 계약사기, 그리고 취직이나 교육사기까지 어느 곳 하나 성한 데가 없다. 사기의 성행으로 서로가 의심하게 되면 사회적 불신은 점점 골이 깊어져 갈 것이고, 일단 불신사회로 들어서면 개인이고 국가고 간에 믿고 소통할 수가 없어 서서히 바닥으로 내려앉을 수밖에 다른 길이 없다.

그런 까닭에 우리 모두는 어떤 상황이라도 거짓을 옹호해서는 안 된다는 사회적 합의를 이루어내야 한다. 거짓말을 즐기는 자들이 스스로 깨닫지 못하면 외부의 힘에 의해서라도 억제할 수 있는 사회 시스템이 작동해야 한다. 이런 합의가 사회질서로 자리 잡은 나라가 바로 선진국이다. 어떤 선출직 공직자가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거나 필요에 따라 적당히 시민들을 속인다면 절대로 다음 기회를 주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우리 유권자들은 서로의 이해관계에 얽혀서 오히려 그런 자를 적극 도와주기도 한다. 그래서 정치인은 선거철만 되면 무조건적인 제 편 만들기에 혈안이 된다. 그 결과 서민들의 사는 형편은 오래전이나 지금이나 매한가지로 고달프기만 하다.

또 거짓말이 참말보다 유용할 때가 있다는 주장도 있다. 상황 따라 어쩔 수 없는 거짓말은 해야 한다고 우기기도 한다. 여러 사람을 이롭게 하기 이하여 하는 소위 선의의 거짓말이 이에 해당된다고 주장하지만, 사실 그런 일은 없다. 돈이나 힘을 가진 자들이 좋아하는 소위 백색 거짓말은 그들의 편의에 의해 가식적 탈을 쓰고 적당히 활용되고 있을 뿐이다. 설령 선한 거짓말이라 해도 참말이 될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거짓말은 어디까지나 거짓말일 뿐이다. 실제로 존재하지도 않는 백색 거짓말을 계속하다 보면 스스로도 헤어날 수 없는 착각의 늪에 빠져 자신이 무얼 하고 있는지조차 모르는 중병에 걸리게 된다.

나는 이런 세상과 정면으로 부딪치는 게 너무 싫어서 고향으로 내려가 조용히 살기를 희망했다. 그래서 퇴직하면서 지난 40년간 몸담았던 산업계와는 미련 없이 인연을 끊어버렸다. 솔직히 내 입장으로 보면 긴 세월 동안 한곳에서 일해 왔으니 아쉬움도 컸고, 또 업계와 관련되어 있으면 다른 기회를 잡을 수도 있었겠지만, 지난날을 모두 내려놓고 완전히 다른 삶을 살고 싶었다. 그러나 집에 우환이 닥쳐 낙향에 실패하고 보니, 몸은 도시에 머물고 마음은 노을이 불게 타는 한적한 바닷가에 조가비처럼 달라붙어 있는 꼴이 되고 말았다.

1980년에 내가 처음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훗날 수필이 내게 경제적 도움이 될 거라거나 이름을 알려 명예를 얻겠다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았다. 일찍이 거짓이 판치는 세상에서 수필을 선택한 것은 내 삶을 바로 지키기 위한 나름의 몸부림이었고 내가 사람답게 살 수 있기를 진정 갈망한 까닭이다. 하여 당시 나는 옆도 돌아보지 않고 오직 글만 열심히 썼다. 지금도 초심으로 돌아가 그러고 있다. 나는 내가 특별하게 더 바라거나 달리 욕심내는 일도 없으니, 그저 일고, 생각하고, 산책하며, 글 쓰는 일이라도 계속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첮지신명께 떼를 쓰고 있는 중이다.

아마도 내 삶의 끝자락에 다다르면 지난날 내 이익을 마라고 뱉어냈던 거짓말의 결과가 어떤 모습으로 나에게 되돌아오는지를 똑똑히 알게 될 것이다. 언제나 거짓말은 돌고 돌다가 그 출발점을 되돌아오고 마는 원리를 알게 되면, 누구나 사는 게 조심스러워질 게다. 거짓말에는 반드시 종점이 있다.


 

김상립 수필가 :  

《문예한국》 등단 

수필집: 〈작은 목소리〉 〈자는 척하면 깨울 수 없다〉 〈눈 깜짝할 사이〉 〈못다 그린 그림〉 〈하얀 바다〉 〈나이 들어 보니〉 〈한국의 명수필(공저)〉 

대구문인협회, 대구수필가협회, 팔공문화예술협회 자문위원 

제6회 대구수필문학상, 문예한국작가상, 대구문협 작품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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