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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신(新)이웃 / 장미숙

부흐고비 2021. 4. 27. 14:29

문은 여전히 활짝 열려 있다. 집을 비워둔 사이에도 많은 이들이 다녀갔나 보다. 발자국은 한 줄로 나 있지 않고 흩어진 모양새다. 그들이 지나간 흔적에 훈기가 묻어있다. 어떤 이가 꽂아둔 꽃다발은 향기를 발하고, 벽에 붙여놓은 미소 기호는 연실 방싯거린다.

그들이 집을 방문한 사이 나는 다른 세상에 가 있었다. 감각으로 경험할 수 있는 현상세계(現象世界)다. 감각과 지각을 통해 존재의 가치를 느끼고 때로는 그 가치를 폐기하고 싶어지는 곳, 이를테면 감각적 인식 대상들과의 관계 속에 속해 있었다.

돌변하는 감정에 의해 수시로 표정이 변하는, 그러면서도 그 표정을 드러낼 수 없는 페르소나의 세계는 친밀하면서도 삭막하다. 뜨거우면서도 차갑다. 벗어나고 싶지만 더 깊이 들어가고 싶은 공간이기도 하다. 물리적이고 실질적인 삶이 이루어지는 곳에서의 인간관계는 오류의 함정을 품고 있다. 그들은 서로 이웃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권력이나 재물 등에 의해 사회적 지위가 형성되기 때문이다.

이런 관계도 이웃이라는 단어 속에서는 평등을 함의한다. 이웃은 수직이 아닌 수평이다. 상하로 나뉘던 관계도 이웃으로 들어오면 좌우로 형성된다. 상하는 내려다봄과 올려다봄이 존재하지만 좌우와 앞뒤는 시선의 높이가 같다. 방향만 바꾸면 같은 위치에서 같은 곳을 바라볼 수 있다.

이웃의 개념은 시대에 따라 변해왔다. 예전 자연 촌락을 단위로 하던 마을에서는 이웃과의 결속력이 강했다. 공동체적인 생활이 유지되었기 때문이다. 지리적 인접성에 의해 맺어진 친밀한 관계였다. ‘너’와 ‘나’라는 분리보다 ‘우리’라는 묶음이 더 자연스러웠다. 이웃 간에는 담이 낮았다. 담을 통해 먹을거리와 덕담이 오가고, 웃음소리와 울음소리가 넘나들었다. 높은 담은 차단을 목적으로 하기에 관계가 깨어지기 쉬웠다.

삶이 도시화되면서 담은 이제 견고한 철문으로 바뀌었다. 이웃은 대다수의 사람에게 의미 그 자체만으로 존재하는 단어가 되었다. 구체적인 것에서 추상적인 것으로 변했다. 그건 자의적이라기보다 환경에 의한 간접적인 영향이 강하다. 첨단의 자본주의가 가져온 현대사회의 모습이다.

그 이웃이 새롭게 탄생했다. 현실에서 잃어버린 인정을 찾아 사람들은 실체가 없지만, 엄연히 존재하는 세계로 모여들었다. 인터넷이라는 가상의 땅에 집을 짓기 시작했다. 실제 거주하는 집의 안팎이 다르듯 가상의 집도 다르다. 각자의 취향과 가치관에 따라 모양을 연출한다. 자신의 기호에 맞춰 대문을 만들고 문패를 건다. 가상공간의 역할은 전문성을 강조하는 게 특징이다. 실제 공간에서의 삶은 복합적이지만 인터넷에서는 독창적이다. 독창성은 범위를 넓히는 수단이기도 하다.

가상공간에서는 시간의 틀에 짜인 제약이 없다. 이웃은 시공간을 초월한다. 전통적인 이웃의 근접성을 뛰어넘는다. 인터넷에 지어진 집은 마을을 이루고 이웃을 만들어가며 소통하고 공감한다. 이웃의 확장은 새로운 이웃으로 이어지고 낯섦에서 점점 낯익음으로 바뀌어간다. 인터넷 공간에 집을 지은 이후 내게도 많은 이웃이 생겼다.

현실의 이웃은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다.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낯익은 얼굴들이지만 낯섦에 갇혀 있다. 눈을 마주치려 하지 않는 이들을 빤히 바라보는 건 금기다. 타자에 대한 경계가 만든 암묵적인 약속이다. 그것도 잠깐, 현관문을 닫으면 현실의 이웃은 벽 속으로 사라진다. 벽을 통해 들려오는 소리만이 그들의 존재를 상기하게 한다.

문 하나로 단절된 공간에서 새로운 세상을 만난다. 가상공간의 집은 담이 없다. 대문마저 열어놓으니 이웃들이 수시로 드나든다. 왔다 간다고 부르는 이도 있고, 살며시 발자국만 찍고 가는 이도 있다.

그들이 내 집에 드나들 듯 나도 이웃을 방문한다. 길은 얽혀있지만 복잡하지 않다. 길을 찾는 핵심은 키워드다. 집들은 주제별로 촘촘히 마을을 이룬다. 원색의 화려한 집이 있는가 하면 수수하고 소박한 집도 있다. 전문성에 따라 색채도 다르다. 요리, 여행, 독서, 예술, 취미, 일상 등 다채로운 이웃들은 개성이 강하다. 신(新)이웃에서는 거리보다 동질감이나 공감이 중요하다.

시대가 변해도 변하지 않는 건 분명 있다. 현실에서나 가상공간에서나 진정성과 따뜻함은 통한다. 공감을 넘으면 소통의 단계에 이르고 가상의 벽을 넘어 현실로 착지한다. 얼마 전, 그런 이웃을 만났다. 온라인을 뚫고 현실의 세상에서 마주한 이웃은 마치 오래 알고 지낸 사이처럼 편했다.

나는 오늘도 엘리베이터 안에서 이웃과 마주쳤다. 몇 층에 사는지와 얼굴만 알뿐, 알 수 없는 이웃은 눈길을 돌렸다. 어색한 침묵은 엘리베이터 속도보다 길었다. 고개를 숙이는 정도의 인사는 경계의 거리를 좁히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그가 내리자 나는 편안해졌다. 냉랭한 공기만이 가득 차 있는 복도를 지나 현관문을 닫으니 나는 다시 혼자다. 차가운 다른 문들도 나처럼 차단에 익숙하다.

현실의 문을 지나 가상으로 존재하는 사각의 문 앞에 앉는다. 대문을 활짝 열어놓은 어느 이웃에 들어가 마루에 걸터앉는다. 소소한 일상을 그려놓은 집에 사람 냄새가 가득하다. 누구의 시선도 받지 않고 집 안팎을 둘러본다. 타인에게 차림새를 스캔 당하거나 표정을 들킬 일 없으니 자연인에 가까워지는 시간이다. 첨단의 기계 속에서 오히려 원시의 상태로 돌아가는 아이러니, 그 속에 나와 우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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