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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 시간보다 빨리 왔는데도 매장에 불이 환하다. 그녀는 물건을 정리하느라 분주하다. 프로모션으로 원자재·부자재가 많이 들어오는 날은 사장인 그녀가 더 일찍 출근한다. 영하 10도까지 내려간 데다 이른 아침이라 더 춥게 느껴진다. 난방은 돌아가지만 냉기를 차단하기에는 역부족이다. 매장이 따뜻해질 때까지 달달 떨 수밖에 없다. 그녀는 춥다며 몸서리를 쳤다. 빵집 아침은 무척 바쁘다. 서두르지 않으면 계속 쫓기기 십상이라 우린 빠르게 움직였다.

그녀는 집이 멀어 여섯 시 전에 나와야 한다. "요즘은 별과 함께 퇴근하고, 달과 함께 출근한다"며 웃었다. 30대인 그녀는 카페 일을 하다가 프랜차이즈 빵 가게를 인수한 지 5개월 되었다. 그사이 몸무게가 7㎏이나 빠졌다고 한다.

혼자는 아니고, 오빠와 공동 운영한다. 그들을 안 지 나도 5개월 되었다. 점주가 바뀌기 전부터 일했으니 내게는 두 번째 사장이다. 가게가 넘어갈 때 나는 직장을 잃었다. 새 점주가 기존 직원들을 쓰지 않겠다고 해서였다. 허탈한 마음으로 다른 일자리를 알아보는데 그들에게서 연락이 왔다. 내 경력 덕분이다. 내게 도움을 요청한 건 오픈 행사가 끝난 뒤였다. 본사 직원들이 철수하자 그들은 넋을 놓고 말았다. 막상 자신들이 하려니 앞이 캄캄했던 것이다. 그들은 경험자가 필요했고, 나는 가까운 일자리가 필요했다. 두 사람 다 생계가 걸린 가게다. 그들에게 가게는 밥줄이고 내게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가게가 어려우니 시급을 깎자고 했다. 나는 집이 가깝고, 정든 곳이고, 내가 잘 아는 일이고,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요구를 수락했다. 그들은 무척 힘들어했다. 빵집 사장은 우아하고 고상할 거로 생각했단다. 직장 다니는 것보다 나을 거라고 생각했단다. 하지만 오산이었다며 혀를 찼다.

그들은 온갖 잡다한 일에 지쳐갔고 본사 방침에 어리둥절해했다. 그들은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일했다. 아르바이트생을 더 이상 쓸 수 없어서다. 성실했으며 최선을 다했다. 밥 먹을 시간조차 없어 굶기 일쑤였다. 낮에는 빵으로 때우고 저녁 한 끼만 먹는 날도 허다했다. 그런데도 견뎌냈다. 젊음과 내 가게라는 책임감이 버티게 해준 힘이었다.

그런 그들에게 새로운 고민이 생겼다. 새해에 있을 시급 인상이다. 그들은 가게가 적자라고 했다. 사실 나는 매출에 대해선 모른다. 전보다 손님이 많아졌기에 나아졌으리라 짐작할 뿐이다.

그들은 본사에 불만이 컸다. 판매가에 비해 원가가 높아 마진이 형편없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일이 수월한 것도 아니고, 본사에서 요구하는 방침들을 따라가기도 벅차다고 했다. 본사 직원들의 간섭에 가맹 점주를 수직 관계로 생각하는 건 아닌가 의구심이 든다고도 했다. 계약이 아닌 종속 관계가 된 기분이라고 했다. 나도 얼마간 수긍이 갔다.

그들은 "여태껏 이렇게 열심히 일해 본 적이 없다"며 허탈해했다. "헤어날 수 없는 덫에 빠진 것 같다"는 그들에게 점주가 되어본 적 없는 나는 해줄 말이 없었다. 그 고민 속에는 시급 문제도 있을 것이다. 가게가 잘되길 바라지만 내 시급은 별개 문제이니 푸념을 들어주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가격 인상이다. 본사가 원자재 값을 내리지 않는 한 방법이 없다. 그러나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손님들과의 마찰을 피할 수 없다.

사실 빈한한 내 처지에 그들 걱정을 할 때가 아닌지 모른다. 하지만 딜레마에 빠진 그들을 보는 마음이 편치 않다. 이런 소상공인들을 위해 대기업이 배려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희망사항에 불과하다. 누구든 희생을 감수할 수밖에 없을 터이다. 추위가 맹위를 떨치는 요즘, 그들의 고민도 겨울밤처럼 깊어간다. 올겨울, 유난히 춥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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