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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 느낌

이현주 시인

부흐고비 2021. 5. 6. 22:25

  우리는 서로 만나 무얼 버릴까

                               이현주 시인

 

  바다 그리워 깊은 바다 그리워

  남한강은 남(南)에서 흐르고

  북한강은 북(北)에서 흐르다가

  흐르다가 두물머리 너른 들에서

  남한강은 남을 버리고

  북한강은 북을 버리고

  아아, 두물머리 너른 들에서

  한강 되어 흐르는데

 

  아름다운 사람아, 사랑하는 사람아

  우리는 서로 만나 무얼 버릴까?

  설레이는 두물머리 깊은 들에서

  우리는 서로 만나 무얼 버릴까?

  바다 그리워 푸른 바다 그리워

  우리는 서로 만나 무얼 버릴까?

 

 

밥 먹는 자식에게 / 이현주
천천히 씹어서 공손히 삼켜라/ 봄에서 여름 지나 가을까지 그 여러 날들을/ 비바람 땡볕으로 익어온 쌀인데/ 그렇게 허겁지겁 먹어버리면/ 어느 틈에 고마운 마음이 들겠느냐/ 사람이 고마운 줄을 모르면 그게 사람이 아닌거여// 주님을 모시듯 밥을 먹어라/ 햇빛과 물과 바람, 농부까지 그 많은 생명/ 신령하게 깃들어 있는 밥인데/ 그렇게 남기고 버려 버리면/ 생명이신 주님을 버리는 것이니라/ 사람이 소중히 밥을 대하면 그게 예수 잘 믿는거여// 밥되신 예수처럼 밥되어 살거라/ 쌀 보리 밀 옥수수 물고기에 온 만물들은/ 자신을 제단위에 밥으로 드리는데/ 그렇게 사람들만 밥되지 않으면/ 어느 누가 생명 세상을 열겠느냐/ 사람은 생명의 밥을 먹고 밥이 되어 사는거여//

뿌리가 나무에게 ​/ 이현주
네가 어린 싹으로 터서 땅속 어둠을 뚫고/ 태양을 향해 마침내 위로 오를 때/ 나는 오직 아래로 / 아래로 눈 먼 손 뻗어 어둠 헤치며 내려만 갔다.// 네가 줄기로 솟아 봄날 푸른 잎을 낼 때/ 나는 여전히 아래로/ 더욱 아래로 막힌 어둠을 더듬었다.// 네가 드디어 꽃을 피우고/ 춤추는 나비 벌과 삶을 희롱할 때에도/ 나는 거대한 바위에 맞서 몸살을 하며/ 보이지 않는 눈으로 바늘 끝같은 틈을 찾아야 했다.// 어느날 네가 사나운 비바람 맞으며/ 가지가 찢어지고 뒤틀려 신음할 때/ 나는 너를 위하여 오직 안타까운 마음일 뿐이었으나/ 나는 믿었다./ 내가 이 어둠을 온몸으로 부둥켜 안고 있는 한/ 너는 쓰러지지 않으리라고// 모든 시련이 사라지고 가을이 되어/ 네가 탐스런 열매를 가지마다 맺을 때/ 나는 더 많은 물을 얻기 위하여/ 다시 아래로 내려가야만 했다./ 잎지고 열매 떨구고 네가 겨울의 휴식에 잠길 때에도/ 나는 흙에 묻혀 가쁘게 숨을 쉬었다./ 봄이 오면 너는 다시 영광을 누리려니와/ 나는 잊어도 좋다/. 어둠처럼 까맣게 잊어도 좋다.​//

새해 아침의 비나리 / 이현주
새해 새 날이 밝았습니다, 아버지/ 해마다 주시는 새 날이 온 땅에 밝았습니다// 올해에는 하늘을 기르게 해주십시오/ 우리 몸 속에 심어주신 하늘 싹 고이 길러/ 마침내 하늘만큼 자라나/ 사람이 곧 하늘임을 스스로 알게 해 주시고// 칼의 힘을 믿는 이들에게는/ 칼이 얼마나 덧없는 것인지 알게 해주시고/ 돈의 힘을 의지하는 이들에게는/ 돈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 알게 해주시고// 부끄러운 성공보다 오히려/ 떳떳한 실패를 거두게 하시고/ 유명한 사람이 되기 전에 먼저/ 참된 사람이 되게 하시고// 착한 일 하다가 지친 이들에게는/ 마르지 않는 샘을 가슴 깊이 파주시고/ 마음이 깨끗해서 슬픈 이들에게는/ 다함없이 흐르는 맑은 노래 들려주시고// 세상이 어둡다고 말하기 전에/ 작은 촛불, 촛불 하나 밝히게 하시고/ 솟아오른 봉우리를 부러워하기 전에/ 솟아오른 봉우리를 솟아오르게 하는/ 골짜기, 깊은 골짜기를 보게 하시고/ 밤하늘 별들을 우러르기 전에/ 총총한 별과 별 사이/ 가뭇없는 저 어둠, 어둠을 보게 하시고/ 아름다운 꽃 나비 벌 희롱하기 전에/ 뿌리에서 가지로 가지에서 잎으로/ 숨어 흐르는 수액을 보게 하시고// 쓰러지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대신에/ 길 떠나지 않는 것을 부끄러워하게 하시고// 올해에는 하늘을 품게 해주십시오/ 가슴마다 작은 가슴마다/ 우주만큼 큰 하늘을 품고/ 한 발 두 발 세 발/ 후회없는 날을 걸어가게 해주십시오// 새해 새 날이 밝았습니다, 아버지/ 아버지 하늘 싹 마침내 온누리 움텄습니다//

지금도 쓸쓸하냐 / 이현주
선생님, 오늘 종일토록 참 쓸쓸했습니다./ 알고 있다. 축하한다.// 축하한다고요? 무엇을 말입니까?/ 네가 하루종일 쓸쓸했다는 사실을.// 쓸쓸함도 너에게 온 손님이다./ 지극 정성으로 대접하여라.// 어떻게 하는 것이/ 쓸쓸함을 대접하는 겁니까?// 쓸쓸한 만큼 쓸쓸하되,/ 그것을 떨쳐버리거나 움켜잡으려고 하지 말아라.// 너에게 온 손님이니/ 때가 되면 떠날 것이다.//

 



이현주(李賢周) 시잉, 목사, 아동문학가, 번역문학가

호는 관옥(觀玉), 이오(二吾)
1944년 충주에서 아버지 이윤상과 어머니 윤태남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초중고를 마치고 1962년 서울 감리교신학교에 입학, 윤성범, 유동식, 변선환 교수에게 신학을 배우던 중 이른바 성직자들의 위선적인 행태에 실망하여 무단결석으로 제적 당한 김에 군軍에 들어갔다가 병을 얻어 ‘스피치 디피컬티’(말하기 어려움)라는 이유로 전역될 무렵 심한 절망감 속에서 그만 살고 싶다는 생각 끝자락에 “네 몸 네 것 아니다, 네 인생도 네 것 아니다, 네가 그것으로 걱정할 이유가 없다”는 말씀 한마디 듣고 제대하여 가족과 함께 상경, 감리교본부 기관지 편집실 임시직원으로 일하다가 1년 만에 해고당하고 광화문 뒷골목에서 “하늘도 사람 차별하십니까? 왜 누구는 불러 고기 잡는 어부로 만들고 누구는 이 모양 이 신세로 술 냄새 나는 뒷골목을 헤매게 두십니까? 이왕 사는 인생, 당신 일 하며 살고 싶습니다” 눈물 섞인 기도에 “네 입에서 그 말 나오기를 기다렸다, 함께 가자”는 말씀 듣고 퇴학당했던 신학교에 복학하여 1971년 졸업, 기독교서회, 크리스찬신문, 크리스찬 아카데미, 성서공회를 거쳐 울진 죽변교회에서 목사 안수 받고 목사가 목회에 골몰하다 보면 예수를 따돌리는 치명적인 잘못을 범할 수 있다는 교훈을 얻고 음성 조촌교회로 옮겨 거기서 부임 석 달 만에 신도를 섬기려 하지 않고 가르치려 했다는 꾸중과 함께 쫓겨나 서울 광화문 대한성공회에서 이천환 주교로부터 프란시스라는 이름으로 견진 받고 이재정, 이대용 신부 등과 어울리다가 기독교방송국 김진 성, 고희범 등과 건물 없고 예산 없는 공존교회를 시작하여 이리저리 다니며 예배하던 중 아내 아닌 여자와 스캔들을 일으켜 고생 끝에, 관옥觀玉이라는 이름을 주신, 원주 무위당 선생으로부터 “수습 잘하면 저지르지 않은 것보다 낫다”는 말씀 듣고 “하느님, 잘못은 제가 했습니다만 수습은 제가 못하겠습니다. 아버지가 수습해 주십시오” 기도가 응답받아 진창에서 빠져나오며 사랑은 사람이 할 수 있고 하지 않을 수 있는 그런 게 아니라는 교훈을 얻고 충주로 낙향, 그때부터 중간에 1년 철원 반석교회에서 일하다가 스승 변선환 목사를 출교시킨 장본인이 감독하는 교단에 몸담을 수 없다는 이유로 사직원을 내고 나온 것을 제외 하면 이제까지 계속되는 실업자 백수 신세로 목포, 공주, 삼척, 서울, 수원, 예산 등지를 떠돌다가 충주에서 40년 인생 동료 아내 정향丁香을 하늘로 먼저 돌려보내고 삼 년 만에 음악인 출신 효선酵嬋에게 결혼 당하여 전기도 전화도 없는 강원도 임계 해발 1,100고지에서 한 해 어간 신약성서와 창세기, 출애굽기, 욥기 등을 옮겨 베끼고 지금은 해발 20~30쯤 되는 전라도 순천順天에서 고을 이름이 본인에게서 이루어지기를 기다리며 “미천한 이 몸 거두어 제자로 삼으신 스승님 은혜 고마워 눈물만 흐르네, 나 비록 아둔하여도 스승님 모시고 가르침 받는 행복은 알고도 남겠네, 한 번에 한 걸음씩 걸어서 별까지 마지막 문을 나설 때 환하게 웃으리” 제가 만든 노래 흥얼거리며 순천 근교 작은 산언덕을 어슬렁거리고 있거니와 고맙게도 큰 업적 없고 그래서 세상에 별 미련 없음.


저서로 『알게 뭐야』『살구꽃 이야기』『날개 달린 아저씨』『아기도깨비와 오토 제국』『육촌 형』『의좋은 형제』『바보 온달』『콩알 하나에 무엇이 들었을까? 등의 동화책과 『사람의 길 예수의 길』『이아무개의 장자 산책』『대학 중용 읽기』『무위당 장일순의 노자 이야기』『길에서 주운 생각들』『이아무개 목사의 금강경 읽기』『이아무개 목사의 로마서 읽기』『이아무개의 마음공부』『예수의 죽음』『지금도 쓸쓸하냐』『기독교인이 읽는 금강경』『예수의 죽음』『이현주 목사의 꿈일기』『사랑 아닌 것이 없다』『공(空)』등이 있으며


역서로『바가바드기타』『행복하기란 얼마나 쉬운가』『우주 리듬을 타라』『배움의 도』『평범한 사람들을 위해 간디가 해설한 바가쁑드 기타』『사랑 안에서 길을 잃어라』『숨겨진 보물을 찾아서』『예언자들』『세기의 기도』,『아, 그렇군요』,『틱낫한 명상』,『한 송이 이름 없는 들꽃으로』,『사람의 길 예수의 길』,『나의 어머니 나의 교회여』등이 있다.

출처: yes24 ‘이현주 목사의 꿈 일기’ 저자소개에서

 

한국인의 소리, 장사익의 노래 인생(0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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