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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 느낌

신배승 시인

부흐고비 2021. 5. 6. 09:01


/ 신배승

 

순대속같은
세상살이를 핑계로
퇴근길이면
술집으로 향한다
우리는 늘 하나라고
건배를 하면서도

등 기댈 벽조차 없다는 생각으로

나는 술잔에 떠 있는
한 개 섬이다

술취해 돌아오는
내 그림자

그대 또한
한 개 섬이다

 

 

 

기침 / 신배승
돌아누워도 돌아누워도 찾아오는/ 환장할 기침은 언제나 끝이 나려는지/ 밥그릇의 천길 낭떠러지 속으로/ 비굴한 내 한몸 던져버린 오늘/ 삶은 언제나 가시박힌 손톱의 아픔이라고/ 아무리 다짐을 놓고 놓아봐도/ 별자리마저 제집을 찾아가는 새벽녘까지/ 나의 마른 기침은 멈출 줄을 모른다//
* 장사익의 노래: 기침

나 무엇이 될까하니 / 신배승
나 무엇이 될까하니/ 그리운 그대 꿈속까지 찾아가/ 사랑하는 그대 귀 씻어주는/ 빛 고은 솔바람 소리// 나 무엇이 될까하니/ 그리운 그대 꿈속까지 찾아가/ 사랑하는 그대 손 씻어주는/ 맑은 물소리//
* 장사익의 노래: 나 무엇이 될까하니

빈 들녘에서 / 신배승
아무 것도 수확하지 못한 이 가을은/ 얼마나 짧을 것이냐/ 깊은 강은 더 큰 물고기를 키우고/ 높은 산은 더 깊은 메아리를 품는다/ 풀숲 사이를 오고가는 풀벌레들의 발자욱마다에/ 반짝이는 이슬방울을 달아두고/ 하루해를 우렁이가 지나간 길속에 묻어 넘기는 것처럼/ 발등에 쌓인 가을걷이를 잊고 사는 우리// 아무 것도 수확하지 못한 이 빈 들녘에 와서야/ 나는 고개를 숙인다//

오리 / 신배승
오리의 양식은 고여 있는 물 속에/ 발을 빠뜨린 뜬구름이다/ 그렇다/ 오리는 뜬구름만 먹고살다 보니/ 평생을 두고 바로 걷지 못하고/ 뒤뚱거리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뜬구름보다 더한 추악과 허황을/ 날름날름 집어 삼키고도/ 뒤뚱거리는 놈 한 놈 보이지 않는/ 인간의 거리에/ 오늘 나는 마른 나뭇가지로 서 있다//

살구나무 / 신배승
정월 대보름 밤이면,/ 나는 그것이 무슨 뜻인지/ 영 몰랐어요/ 아, 얼마나 여러 번/ 나의 거짓 동정을/ 버렸던가요/ 정월 대보름 밤이면,/ 집 안 살구나무 부끄러운 곳에/ 성욕을걸어 놓으시고는/ 자꾸 나를 보고 웃으시던/ 할머니/ 나는 그것이 무슨 뜻인지/ 참말 몰랐어요//

땅벌 / 신배승
건드리지마/ 조심해야돼/ 저 놈은 한이 많은 놈이야/ 한이 많은 놈은 조심해야 돼/ 한 번 옮겨 심으면/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리고 마는/ 조선소나무 밑동에 집을 짓고/ 이빨을 갈고 있어/ 일단 마음을 먹으면/ 끝까지 쫓아가/ 기어코 쏘아대는 놈이야/ 한 번 쏘면 자신의/ 목숨이 끝나버리는 줄 알면서도/ 쏘아야 할 놈은/ 반드시 쏘고야 마는 저 놈은/ 분명 목숨의 무게를/ 잘 아는 놈이야/ 건드리지마/ 저 놈만 조심해야돼//

금강 / 신배승
손에 쥔 것이 없어서/ 잃어버릴 것 하나 없었던/ 형님의 농가달력 쩍쩍 갈라지던 여름날/ 강가의 산과 나무들이 다정한 모습으로/ 물 속으로 뛰어들어 함께 흐르는/ 그, 그 ... 그것을 보아/ 하늘을 적시고도 남아 갈라진 논배미를 다 메우고/ 마침내 형님의 이마 위로 흐르는/ 저, 아니.... 저 강물을 보아라/ 사실과 숫자만을 믿고 사는 우리들/ 새들이 미루나무 가지의/ 높은 곳으로만 높은 곳으로만/ 날아오르는 동안, 그래/ 물때 미끄러운 돌멩이를 보며/ 헛발길로 넘어지고 넘어지며 살아온/ 우리의 젊은 시절 삶의 강가/ 물새알의 노른자위가 껍질을/ 깨치고 세상에 나올 것만 믿으며/ 피 더운 손으로 강물을 향하여 돌멩이를 던지면/ 팽팽하게 살아나는 하늘은/ 자, 보아라 물방울의 마지막 눈동자 속으로/ 마구 뛰어들고 있다//

새로운 세상을 위하여 -영가를 위하여 1 / 신배승
햇살이 뜨거운 날은/ 아빠의 그림자 속으로 숨거라/ 비가 오는 날은/ 엄마의 치마폭으로 숨거라/ 바람이 부는 날이면/ 흔들리는 어린 잎새에 네가 왔음을 알고/ 비가 내리는 날이면/ 옷깃을 타고 흐르는 빗방울로/ 네가 있음을 느끼리니/ 사랑하는 아들아,/ 너를 가슴속에 꽝꽝 못질하여 묻고 돌아온/ 다음날 새벽 너를 적시는/ 우너수같은 봄비가 내린다/ 그리움의 언덕을 오르고 올라보면/ 그곳에는 늘 한숨 같은 바람이 흐르고/ 나는 그 바람에 눈시울이 붉어진다/ 그러나/ 사랑하는 아들아/ 눈물은 가슴 아픈 추억일 뿐/ 하여 사랑하는 아들아/ 더 이상 이 세상을 추억하지 말거라/ 더 이상 이 세상을 뒤돌아보지 말거라/ 이제 새로운 세상에서 새로운 이름으로/ 너의 새로운 세상을 일구거라/ 새로운 세상을 일구거라//

골목길 돌아서며 / 신배승
歲月農場 주인 金氏는 허브라는 것을 키우고 있는데 말이죠, 허브밭을 지날 때는 지나치게 조심하지 말라는 주인답지 않은 말을 하더라구요. 나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영 알 도리가 없더라구요. 알고 보니 글쎄 허브의 뼈마디 부러지는 비명소리나 世上 아픔을 삭인 허브의 핏방울, 그것들이 허브향이란 것을 세월농장 주인 김씨는 그렇게 설명하는 것이었지요.// 하여 차마 더 이상 허브향에 나의 코를 내맡길 수 없더라구요. 나는 살아오면서 얼마나 많은 悲鳴과 핏방울로 세상을 적시고 香氣를 뿜어내며 살아왔는지, 歲月農場 골목길을 돌아서는데 참말로 울컥 눈물이 치솟더라구요.//

손 / 신배승
어린 딸아이의 손을 씻어주다가/ 나의 손은 그 동안 얼마나 많은/ 세상 욕심만을 쥐며 살아왔던가/ 말없이 붉히는 얼굴을/ 철없는 딸아이가 빤히 쳐다봅니다./ 부끄러워진 나는/ 슬그머니 나의 손만 씻어댑니다./ 속내를 아는지 모르는지/ 딸아이는 빨리 제 손도 씻어달라고/ 졸라댑니다./ 딸아이가 스스로 제 손을 씻을 때에는/ 나와 같은 생각을 하지 않기를 빌며/ 나는 딸아이의 손도 씻어줍니다.//

쇠똥구리를 보면서 / 신배승
언젠가/ 어쩔수 없이/ 꼭 헤어져야만 하는 일이 생긴다면/ 사랑하는 사람이여,/ 끝까지 그대를 꼬옥 끌어안고 구르는/ 나는 한 마리 쇠똥구리가 되고 싶다.//

운동화 / 신배승
새벽 별을 머리에 이고 집을 떠나시는 어머님의 장보기 길을 항상 나의 어린 눈물이 어머님의 발목을 강물로 막아 보지만 늘 나에게는 패배하는 싸움일 뿐./ 싸움이 늘 패배인 것을 조금씩 깨닫게 되면서 어린 나는 어머님의 시장가시는 길에 운동화 한 켤레의 희망을 걸고 양보하는 법을 배웠지./ 운동화를 사다주시겠다는 희망의 장날은 왜 그렇게 길고도 지루한 하루였을까. 오랜 기다림을 서산마루에 걸린 해를 위안 삼아 시장 길목을 바라다보는 나의 눈에는 초롱초롱한 희망이 반짝이다가도 어머님께서 돌아오셔서 하시는 말씀은 나를 눈물나게 하였다.// --- 오늘은 운동화 장꾼이 다 죽어서 아무도 나오지 않았더라.// 그렇게 어린 시절은 운동화 한 켤레로 눈물에 젖어 저물고 나는 다음 장날을 기다리는 희망을 배우게 되었다.//

키질 / 신배승
할머님 제삿날이 돌아오면 어머님은 체를 걷어 뒷곁으로 치마꼬리를 감추신다. 어린 나의 마음을 헤아리신 어머님은 빙그레 웃음으로만 대답하신다. 할머님 오시는 길에 등불을 밝히고 서성이는 어머님의 발이 자꾸 체구멍에 빠진다.//

톱니바퀴 / 신배승
그리움이 지나치면/ 상처받기 쉽다./ 동쪽의 하늘에서 부활하는/ 황금의 새여/ 우리는 각자의 이름을/ 모두 버리지 못한 채/ 수천 수만 년을 하나로 맞물려/ 삶의 긴 그림자를 끌고 가야만 하는/ 내 몸 하나 크나 큰 짐인 줄/ 이제는 안다.//

풀꽃 / 신배승
예리한 낫/ 풀꽃의 律法을 만들고/ 모든 풀들의 핏덩이로/ 뚝뚝 떨어지는/ 夕陽./ 뿌리를 의심하는 바람은/ 한자리에 서지 못하는데/ 느닷없는 반디불만/ 빛의 행동을/ 천천히 시작하고 있다.//

짝사랑 그대 / 신배승
당신 가슴 속/ 출렁이는 수수밭에서/ 곧게 서고자 고집하지만/ 끝내는 작은 몸을 뒤뚱이는/ 발 시린 달빛이다/ 나는//

잠 못 이루는 별 / 신배승
시름 깊은 어둠 속/ 홀로 잠들지 못하고/ 추억의 텃밭을 서성이는/ 어린 별 하나가/ 세상에 남겨 놓은/ 끈끈한 인연을 근심한다./ 그러나 어린 별아,/ 이제 곧 새벽이 오리니/ 편히 잠들라/ 편히 잠들라//

꽃의 비밀 / 신배승
地上의 모든 꽃들은/ 허리를 바르게 펴고 난 뒤/ 世上의 한가운데로만/ 꽃씨를 떨구는구나.//

헌구두 / 신배승
졸린 그림자를 데리고/ 집을 나서는 출근길이/ 오늘은 문득 섬뜩하다./ 내가 잠시 머무는/ 그 어느 곳에서라도/ 나를 기다리는 헌 구두./ 나의 삶을 말해주는/ 헤벌어진 저 주둥아리./ 남보다 더 먼저 더 많이 먹으려는/ 구린내까지 풍기는/ 이 세상의 주둥아리에/ 발을 담그기가 싫어/ 오늘은 맨발로 출근하다.//

하동포구에서 / 신배승
바다에 빠진 달/ 강물에 빠진 달/ 깊은 밤 잠들지 못하고/ 세상 모든 달빛이란 달빛이/ 모두 모여서는/ 서로가 하나로 뒹굴면서/ 밤꽃을 연신 피우고/ 밤꽃을 연신 떨구고//

형님 2 / 신배승
땅 속 깊이 땀방울을 묻는/ 형님의 나라에서는/ 남자가 일하지 않는 죄를 지으면/ 남자의 온몸에 대꼬챙이 같은 가시가 돋아나서/ 사람들은 그 남자의 몸통을 보고서야/ 죄 지은 사람임을 알아맞히는,/ 그래서 죄는 숨길 수 없는/ 아주 무서운 세상이란다.// 땅 속 깊이 땀방울을 묻는/ 형님의 나라에서는/ 여자가 일하지 않는 죄를 지으면/ 여자의 手足이 하나씩 썩어 문드러져/ 사람들은 그 여자의 몸통을 보고서야/ 비로소 죄 지은 여자임을 알아보는/ 그런 세상이란다.// 자, 사람들아/ 슬프게도/ 오늘은/ 온몸에 가시가 돋아나는/ 내가 보인다./ 하나하나 수족이 썩어 가는/ 당신이 보인다.//

액자를 걸면서 / 신배승
살아가는 동안/ 살아 있는 글을 쓰라며/ 雨倉 선생이 써준/ "活文濟世"/ 詩가 세상을 구원하리라는/ 믿음조차도 희미해진,/ 나 하나도 구원하지 못하는 詩를/ 지금까지 쓰고 있는/ 부끄러운 마음의 壁에/ 꽝꽝 못질하여/ 액자를 걸어 둔다.//

江에 대하여 / 신배승
내 사랑 당신은 참으로 매정하군요/ 기다리는 줄을 잘도 알면서/ 잠시도 머물러 주지 않는군요// 내 사랑 당신은 참으로 매정하군요/ 잊었다 생각이 들면/ 어느덧 내 옆에 누워 있군요//

무당집 광목깃발 아래에 눕다 / 신배승
내 작은 書齋 건너에 우뚝 서있는/ 무당집 광목깃발/ 온 몸을 비틀고 흔들어/ 제 모습을 돋보이고자/ 무진장 애쓰는 모습인데/ 결국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분명 광목깃발은 잘 모르는 일이지만/ 광목깃발이 아니라 무당집이다/ 한번도 제대로 열리지 않았던/ 세상살이의 낡은 문 앞에서/ 무엇을 위하여/ 사소한 모습을 드러내고자/ 나는 四肢가 쑤시게/ 온 몸을 비틀고 흔들어 댔는지/ 낡은 일기장을 펼쳐 놓고는/ 얼굴이 붉다//

연서(戀書) / 신배승
오늘은/ 하늘이 참 맑군요./ 歲月의 물소리를/ 늘 그대와/ 함께 듣고 싶습니다.//

수족관 / 신배승
어린 아들녀석이/ 가끔씩 넋을 놓고 살피던/ 아빠 사무실 수족관 속/ 비단잉어들./ 병들지 않은 물고기는/ 모두 죽고/ 이제는 병이 깊은 녀석들만/ 활개를 친다./ 빈 입을 벌름벌름할 때마다/ 쏟아져 나오는/ 세상 돌아가는 오, 무서워라/ 너의 거침없는 말들이여./ 말하지 않는 금기를 어긴 물고기는/ 모두 죽고/ 이제는 말없는 물고기만/ 그즐 세상에서 몸을 사리고 있다.//

고장난 분수 / 신배승
나는 고장이 났다./ 그러므로 나는 죽었다./ 더 이상 물을 뿜어 올릴 수도 없고/ 더 이상 멋진 무지개를 틀 수도/ 옴짝달싹 움직일 수도 없다./ 나는 고장이 났다./ 그러므로 나는 죽었다./ 당신의 따뜻한 사랑이/ 내 심장을 다독여/ 다시 살아나게 할 때까지는//

 



신배승申培勝 시인
1963년 충남 금산 남일면 출생, 목원대학교 불어불문학과 졸업. 시문학 작품공모, 문예한국 신인상, 문학세계 신인문학상을 통해 문단 활동 시작. 1995년 ‘금강상류’로 신인상. 좌도시 동인, 한국문인협회, 충남문인협회, 민족작가회의 대전.충남지회 회원 시집 <그대 또한 한 개 섬이다>

목원문학상 수상

 

 

 

일흔 가객 장사익 “김치맛 같은 노래 드셔보세유”

마흔다섯에 노래를 시작한 그를 일약 스타덤에 올려놓은 ‘찔레꽃’(1995)부터 김춘수 시인의 ‘서풍부(西風賦)’의 구절을 따와 만든 8집 ‘꽃인 듯 눈물인 듯’(2014)까지 모두 시에 빚진 작품이

news.jo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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