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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입, 주름을 말하다 / 김인선

부흐고비 2021. 5. 10. 09:17

내 얼굴에는 생각하는 괄호 하나가 산다. 말하는 입의 가장자리에 앉아 말하지 않는 침묵의 힘을 담고 있다. 입술이라는 것이 말하는 날개라면 이는 입가에 어른거리는 민무늬 날갯짓이다. 팔랑팔랑 말의 언저리를 따라 다니지만 수많은 갈래의 인생을 일획으로 담은 웅숭깊은 무늬다.

언제부터 이 괄호가 시작되었는지는 모르겠다. 미세하게 찾아왔을 시작을 눈치채지 못했지만, 아마도 기슭이 편하다는 걸 알아가던 즈음이지 싶다. 어쩌면 처음부터 변방을 좋아해서 수척한 테를 일찍 만들어버렸는지도 모르겠다. 슬픔을 감미롭게 좋아한 반가사유상처럼 턱을 자주 괴었던 내 지난날들이 거기에 담겼으리라. 햇살과 바람에도 모습을 숨기지 않았던 무모함에 이제야 미안한 마음이 든다. 그 누구의 것도 아닌 얼굴이라는 가장 내 것에게 어리석게 굴었다. 이제와서야 기분이 서럽다.

그럼에도 나는 그것에게 결이라는 이름을 주려 한다. 마지막 알량한 자존심이겠지만 그 무엇보다 주름이라고 말하기엔 아직 잘 늙은 어른이 되지 못했음이다.

결은 처음부터 내 얼굴에 살던 것들과는 행보가 달랐다. 더부살이 한두 해 만에 주인자리를 꿰찰 만큼 몰염치한 점이 특히 그랬다. 틈새를 비집고 들어서면서도 어딘지 노련했고 늦깎이 특유의 깊이까지 갖추고 있었다. 하긴, 주인 없는 나대지에 누군가 깃발을 꽂았으니 정복감은 그만이었겠다. 게다가 그는 겁 없는 칼잡이가 아닌가. 베는 시늉도 없이 깊숙하게 일획을 가를 수 있는 이, 무주공산에 오직 형체도 없이 집을 지을 수 있는 존재란 오직 그 뿐일 것이다.

달빛 어슬렁거리는 달무리처럼 입가에서 파르라니 움직거리는 저 떨림. 세월을 낚는 강태공이 입 언저리에 옮겨 지은 여덟八자의 집이다. 왕성한 탐욕이 드나드는​ 숨의 입구를 호위하느라 언저리에 돋을새김한 생의 날카로운 지문이다. 아마도 분할한 얼굴의 데칼코마니를 완성하기 위해 코와 입 홀로들을 에워싼 인간사 애증의 쌍곡선일지도 모르겠다. 직수굿한 마음의 수행을 경거망동한 입이 그르칠까 노심초사 살피는 잘 단련된 무사일 것이다.

그럼에도 낙서는 아니다. 살아 꿈틀대는 가장 예민한 가장자리에 눙치듯 그려놓은 것으로 봐서 허술한 녀석은 필시 아닐 것이다. 강물처럼 굽은 곡선을 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안으로 깊이 그은 대범함이야말로 천하제일 환쟁이의 낙관이다. 일필휘지에 담은 한 줄 자필 이력서, 누가 이 생의 서슬에 움츠리지 않으랴.

궁리가 나이를 깊게 만들었을까. 어쩌지 못해 홀로 깊어진 밤처럼, 환한 것에서 돌아앉은 한 줄 그늘을 환영처럼 바라본다. 팔자소관 다루듯 주름 하나쯤이야 하다가도 이내 고약한 밑줄 하나에 신경을 모으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 누구보다 가슴 저미게 지금을 받아들여야만 한다는 서글픔과 오만한 젊음, 나이 듦에 무원칙이었던 내 안의 나… 후회스런 단어들이 일획에 집결됨을 느낀다. 앙리 베르그송은 우아함에 대하여 꺾어진 직선보다 곡선이라 하였고 곡선이야말로 삶이 어디로 향할지를 알고 있는 실체라 하였다. 꿈틀, 저 섬세한 주름이 어디로 갈 지를 알고 있는 단서라도 되는 양 뚫어지게 쳐다본다. 꿈틀, 받아들이기 힘든 저 발칙한 곡선!

봄이 깨어날 때 땅을 가르듯 내 갈라진 틈 사이로는 무엇이 돋을까. 가을바람 닿은 계곡이 빨갛게 물들듯, 산골짜기 삽상한 바람꽃으로 피어 볼까. 식물의 입맥에 살짝 인간미를 입히니, 식물 같던 나이 때보다 한결 원숙해진 모습이다. 외로이 오신 그 걸음을 이제는 사랑해야 할 시간, 결을 만져본다. 차가운 소름과 측은한 위로가 돋을새김처럼 만져진다. 웃음인 듯 울음인 듯 참 묘하게도 생겼다. 팽팽한 살결에 이는 아등바등한 보톡스보다 실컷 웃다 주름 한 줄 더 늘려버린 어리보기가 생각난다. 생각해보니 젊음으로 돌아가지 않고 늙음으로 나아가는 것이 그리 서럽지만은 않았다. 결은 그것 다 받아들인 내 안의 몸짓이었으니.

파르라니 싱그럽던 살결을 단호하게 묶어버린 만만찮은 이가 나를 바라보고 있다. 마치 괄호가 제 앞의 문장을 설명하듯 나를 헤석하는 것만 같다. 내 괄호는 의미로 이루어진 문장의 부연설명을 위해 구구절절 변명처럼 늘어나 있지만, 가벼워지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실팍하지만 뚜렷한 생의 무늬가 생각이 무르익은 나잇살 끝에야 모습을 드러내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달리던 인생이 매끈하게 빠져버린 가파른 생의 골짜기일지라도 세상의 모든 삶은 그만큼 치열했노라, 침묵으로 말하는 우아함이다.

곱게 흔들리던 꽃잎 지고 오늘도 바람 한 줄기 결을 남기며 지나간다. 지극히 먼 거리를 돌아도 결국엔 자연으로 돌아가는 인생의 신비로운 여로로 읽는다. 마을 동구에 미리 마중 나온 길가의 코스모스처럼 두 계절 사이에 흔들리며 피어나는 실팍한 꽃길이 내 얼굴에 났다. 그 길로 걸어 들어가는 것은 결코 나 혼자가 아닐 것이다. 어쩌면 길이 비좁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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