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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자유낙하 / 최아란

부흐고비 2021. 5. 10. 14:54

작년 초겨울이었나 봐요. 어느덧 은행 열매 냄새는 나지 않고 낙엽 밟는 소리가 청명한 아침이었습니다. 나뭇잎 몇 장 겨우 달린 가로수 아래에서 유치원 버스를 기다리는데, 딸아이가 난데없는 얘기를 꺼내는 겁니다.

"엄마는 자유가 좋아?"

분명 어떤 생각 끝에 한 말일 텐데 도무지 그 머릿속을 가늠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대답만큼은 분명하게 할 수 있었지요. 두 번도 생각할 것 없이요.

"그러엄. 좋아하지. 엄청 좋아해."

아이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자기도 그렇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 녀석, 자유가 뭔지는 아는 걸까요?

"자유는, 은행잎이 바람 때문에 떨어지지 않는 거야. 자기가 떨어지고 싶을 때 스스로 내려오는 거."

자연은 위대한 스승이고, 그 스승으로부터 깨달음을 얻는 건 어른들만이 아니었던 겁니다. 아직 인간계보다 자연계에 가까운 아이들은 자연이라는 원문을 번역해 우리를 되려 가르치고 있었어요. 자연의 속내나 우주의 비밀 같은 걸 통역해주고 있는 거죠. 고정관념이니 교양이니 하는 필터에 갇히지 않은 아이의 표현은 그야말로 간명하고 싱싱합니다. 자기가 아는 몇 십 개의 단어만을 가지고 일반 개념들을 직관적으로 서술해내요. 자칫 원색적일 수 있는 부분은 귀여운 목소리와 표정으로 보완이 되지요. 그렇게 아이를 통해 복잡한 사고의 실타래를 풀어가며 성장해가는 건, 우리 덩치 큰 학생들의 기회이자 행운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나의 작은 선생님은 저토록 멋지게 자유를 정의 내린 후 유치원 버스에 올랐습니다. 차가 조금만 더 늦었더라면 "근데, 엄마는 자유로워?"라는 질문을 받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천만다행이었습니다. 그 질문엔 아까만큼 빨리 답할 자신이 없었거든요.

사실 나는 무척 자유로운 처지입니다. 근태를 감시하는 상사도 없고, 점심 메뉴를 일괄적으로 정해버리는 부장님도, 구내식당도 없지요. 내 의지에 반하는 행위를 지시할 사람도 없고, 월급에 저당잡혀 신념을 저버릴 일도, 나만의 흐름을 방해할 스케줄도, 협업하느라 공동책임을 져야 할 팀원도 없어요.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일하고 싶을 때 일하고, 먹고 싶을 때 먹고 싶은 것을 먹고, 쉬고 싶을 때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어디서든 쉴 수 있지요.

하지만 자유는 타율에 대한 저항에만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아이 표현을 빌리자면 '비바람에 맞서는 것'도 전제되어야 하지만 '언제 어떤 방식으로 떨어질지 스스로 정하는 것'도 포함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후자를 미리 염두에 두어 계획해 둔 바가 없다면, 실컷 비바람을 이겨냈다 해도 그 자유는 절반에 지나지 않습니다. 어쩌면 시간이 갈수록 그 반마저 거추장스럽게 여겨질지 모릅니다. '아까 바람 불 때 그냥 날려갈 걸. 못 이긴 척 흐름에 묻어갈 걸~' 하면서 말입니다. 즉, 자유란 타의에 대한 항거가 끝난 자리에 자의적 통제와 책임감이 들어서는 리모델링 과정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빨래통이라는 새로운 상사를 모시게 되었습니다. 화장실 옆과 다용도실, 각각 세 칸의 빨래통이 가득 차오르면 나는 압박을 받게 됩니다. 날씨라는 동료가 도와주지 않으면 세탁기만 돌린다고 해결되지도 않아요. 나의 상사는 편도선이기도 합니다. 내 비염과 가족의 건강을 위해서 매일 청소하지 않으면 안 되거든요. 나는 언제고 잠들 수 있지만 내일의 노동과 컨디션을 위해 제시간이 자러 가야 하고, 무엇이든 먹을 수 있지만 음식물 쓰레기를 덜 버리고 지갑을 덜 꺼내기 위해 냉장고 안에 든 것부터 먹어야 합니다. 피곤해도 아이 앞에선 생기 넘치는 엄마가 되고, 간혹 견해가 다른 남편의 비위도 맞추곤 하지요. 한 번쯤 친정 부모님께 아이를 맡기고 혼자 밤마실이라도 해볼까 싶어도 괜히 안 하던 짓을 하여 어른들 근심을 살까 관두고 맙니다.

이런 형편이 언제나 불편하고 불쾌한가 하면 꼭 그렇지도 않아요. 나와 가족의 건강과 행복, 신념과 미래에 대한 자발적 선택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스스로를 규제하여 자유를 얻었습니다. 청소해라, 냉장고 정리해라, 양보해라 같은 잔소리를 듣지 않아도 되지요. 지시를 거부하고 능동적으로 일정과 방식을 정해 움직입니다. 끌려다니지 않으며 예측 가능하니 내심 기껍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자유로운 사람입니다. 언제고 아이가 다시 물어오면 자신 있게 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가을 열매와 겨울 단풍이 떨어진 자리엔 봄 새싹이 돋습니다. 씨앗이 자리 잡은 곳에 잎들이 내려와 여린 것을 숨겨주고 보듬고 격려할 겁니다. 다른 풀꽃, 다른 벌레 위로도 내려와 따뜻한 이불과 양분이 되어줄 테지요. 지난 계절 그 낙하들이 얼마나 면밀하게 통제되고 계획된 것인지 나는 알지 못합니다. 비바람을 이겨내며 스스로 떨어질 때와 장소를 정하고 후일을 도모하는, 자유로운 나무의 의지이자 자유로운 자연의 섭리를요.

오늘도 나는 아이의 잠언 한 구절을 얻어듣고자 거실을 닦아두고 빨래를 개어 넣고 간식을 마련해 기다리고 있습니다. 글 쓰는 사람에게 글감이 자라나는 텃밭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가물거리는 영감을 붙잡고자 숱하게 영화를 보고 책을 읽고 사람을 만나고 여행을 떠나지 않아도 되고, 때론 일부러 사고를 치지 않아도 되니 말입니다. 나에게는 이 아이와의 교류가 그 텃밭에서 자라는 싱싱한 방울토마토이자 무성한 푸성귀입니다. 평상시 다정하게 돌보다가 빨갛게 영그는 대로 똑똑 따서 종이에 옮기고, 실하게 솟는 것부터 뜯어 글로 차려내곤 하지요.

쏠쏠한 작황에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아이가 천진함을 잃고 상식 안에 갇히지 않도록, 그 또렷한 언어의 색이 학문의 그늘에 가려지지 않도록 더욱더 분방하게 길러야겠어요. 그러자면 엄마의 강압적 입김을 줄이고 아이 본연의 분별과 행동을 존중해주어야겠지요. 자유의 기쁨과 무게를 즐기는 아이는 지는 때를 정한 잎과 같이, 피는 때를 정한 꽃과 같이 얼마나 영롱하고 싱그러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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