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시詩 느낌

울라브 하우게 시인

부흐고비 2021. 5. 11. 22:11

노시인이 시를 쓰네 / 울라브 하우게

 

노시인이 시를 쓰네

행복하도다 행복하도다 샴페인 병처럼

그의 내부에서 봄(春)이

기포들을 밀어 올리니

병마개가 곧 솟아오르리.

 

 

어린나무의 눈을 털어주다 / 울라브 하우게
눈이 내린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춤추며 내리는 눈송이에/ 서투른 창이라도 겨눌 것인가/ 아니면 어린 나무를 감싸안고/ 내가 눈을 맞을 것인가​/ 저녁정원을/ 막대를 들고 다닌다/ 도우려고./ 그저/ 막대로 두드려주거나/ 가지 끝을 당겨준다./ 사과나무가 휘어졌다가 돌아와 설 때는/ 온몸에 눈을 맞는다​/ 얼마나 당당한가 어린 나무들은/ 바람 아니면/ 어디에도 굽힌 적이 없다ㅡ/ 바람과의 어울림도/ 짜릿한 놀이일 뿐이다/ 열매를 맺어본 나무들은/ 한 아름 눈을 안고 있다/ 안고 있다는 생각도 없이//

내게 진실의 전부를 주지 마세요 / 울라브 하우게
내게 진실의 전부를 주지 마세요/ 나의 갈증에 바다를 주지 마세요/ 빛을 청할 때 하늘을 주지 마세요/ 다만 빛 한 조각, 이슬 한 모금, 티끌 하나를./ 목욕 마친 새에 매달린 물방울같이./ 바람에 묻어가는 소금 한 알같이.//

베르톨트 브레히트 / 울라브 하우게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복잡한 사람이었다./ 희곡작가이자 배우이자 시인이었으니./ 그런데 그의 시는 너무 쉬워서/ 현관에 놓인 나막신처럼/ 바로 신으면 되었지.//

이제 내 마음이 말을 그친다 / 울라브 하우게
이제 내 마음이 말을 그친다/ 파도도 그치고/ 독수리들이 다시 날아간다/ 발톱이 피로 물든 채//

한 겨울, 눈 / 울라브 하우게
한 겨울, 눈/ 새에게 빵을 나눠준다/ 조용하니 잠이 깨지 않는다//

나는 시 세편을 갖고 있네 / 울라브 하우게
나는 시를 세 편 갖고 있네/ 그가 말했다./ 시를 셀 수 있는가?/ 에밀리*는 시를 써서/ 트렁크에 던져 넣었지, 그녀가/ 시를 세었을 리 없지/ 또 다른 티백 종이에/ 시를 썼지./ 그게 옳아 좋은 시는/ 차향이 나야 해/ 아니면 숲의 땅이나/ 갓 자른 나무 냄새가//
* 에밀리 디킨슨 : 미국의 여류시인

그대의 길 / 울라브 하우게
그대가 갈 길을 표시해 놓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저 미지의 세계에/ 멀리 떨어진 곳에// ​이것은 그대의 길/ 오직 그대만이/ 그 길을 갈 것이고/ 되돌아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리고 그대 또한/ 그대가 걸어온 길을 표시해놓지 않는다/ 황량한 언덕 위 그대가 걸어온 길을/ 바람이 지워버린다//

카페트 / 울라브 하우게
보딜, 나를 위해 카페트를 하나 짜주오/ 꿈과 소망으로 짜주오/ 바람으로 짜주오/ 그럼 난, 베두인처럼,/ 기도할 때 그것을 펼치고/ 잠잘 때 나를 감쌀거요./ 그리고 매일 아침마다 부르는 소리/ “밥상 다 차려놨어요!”// 추위를 막는 망토로,/ 나의 보트를 위한 돛으로/ 그것을 짜주오// 어느날 난 그 카페트에 앉아/ 항해하게 될거요/ 또 다른 세계 속으로//

* 보딜(보딜 카펠렌Bodil Cappelen)은 스물두 살 연하의 부인

​푸른 사과 / 울라브 하우게
여름은 추웠고 비가 많았다/ 사과가 푸르고 시다/ 그래도 사과를 따고 고른다/ 상자에 담아 저장한다/ 푸른 사과가/ 없는 사과보다 낫다/ 이곳은 북위 61도이다//

고양이 / 울라브 하우게
여기 오면/ 농장 마당에/ 고양이가 앉아 있을 것이다./ 녀석과 잠깐 얘기를 나눠라. 이곳에서/ 돌아가는 사정을 아는 건 그 녀석이니.//


산 위에서 소리치며 서 있지 말게나 / 울라브 하우게
산 위에서 소리치며 서 있지 말게나/ 물론 자네가 하는 말은 다 옳지/ 너무 옳아서 바보들과 연장들 속에서도 메아리치지/ 그 산속으로 들어가서/ 자네의 대장간을 만들어 보게나/ 자네의 풀뭇간을 거기에 짓고/ 자네의 쇳덩이를 달구어 보게나/ 망치질을 하면서 노래를 불러보게/ 우린 자네의 소리를 들을걸세/ 자네의 소리를 잘 듣고말고/ 우리는 자네가 거기서 뭘하는지 알지//

한국 / 울라브 하우게
나란히 누워 있다. 적이든 아군이든/ 갈빗대 사이엔 풀이 돋고, 눈구멍으로는/ 빛나는 양귀비, 얼굴 찌푸린 녹슨 무기들.// 이제 그들은 평화를 얻었다. 어디에 경계선이 그어질지/ 더 이상 줄다리기 하지 않는다., 옳은 쪽이 이기든 그른 쪽이 이기든./ 각자의 경계를 두고 싸우던 시절의 이빨을 넘나들며/ 죽음의 비밀이 배회한다.// 한국의 흙에서 나온 인골들이여, 협상 테이블 너머/ 그림자처럼 숨죽인 그대들을 본다,/ 계획된 행위 끝에 그대 형제인 죽임이 퇴적물로 쌓이는 그곳.// 죽음은 말이 없고, 그저 정치가의 싸늘한 의식에 담긴/ 희미한 찌푸림일 뿐. 그대의 평결은/ 날인 찍히고 서명되어- 서류철로 던져진다//

그것은 꿈 / 울라브 하우게
우리가 품고 있는 꿈/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나는/ 그 꿈은 반드시 이루어지지/ 시간이 열리고/ 마음이 열리고/ 문들이 열리고/ 산들이 열리고/ 샘들이 터지고/ 우리의 꿈이 열리지/ 그리고 어느날 아침/ 우리는 미끄러지듯 들어갈 거야/ 알지 못했던 작은 항구로//

당신의 정원을 보여주세요 / 울라브 하우게
우리 만남을 위해 오실 때/ 경비견을 데려오지 마세요/ 굳은 주먹도 가졍지 마세요/ 그리고 나의 호밀들을 밟지 말아주세요/ 다만 대낮에/ 당신의 정원을 보여주세요//

창가의 큰 사과나무를 벴다 / 울라브 하우게
창가의 큰 사과나무를 벴다/ 무엇보다, 전망을 가렸으므로,/ 여름이면 거실은 따분했다./ 게다가 도매상들은/ 더 이상 그런 종류의 사과를 원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뭐라 하셨을지/ 생각해 보았다. 아버진/ 그 사과나무를 아끼셨다./ 그래도 난 그걸 베어버렸다./ 한결 밝아졌다./ 피오르드를 내려다볼 수 있었고/ 이웃들이 뭘 하는지 더 잘 지켜볼 수 있었다./ 집은 이제 전망이/ 툭 트이고/ 자신을 더 많이 드러내 보였다./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사과나무가 그립다./ 모든 게 예전 같지 않다. 나무는 좋은 쉼터였고/ 좋은 그늘이었고, 가지 사이로 태양이/ 탁자를 훔쳐보았고, 밤이면 자주 누워/ 가볍게 흔들리는 잎사귀에 귀를 기울였다./ 게다가 그 사과들-/ 봄이면 상큼한 맛이 비할 데 없었다./ 둥치를 볼 적마다 마음이 아프다. 물러지면/ 패어 장작으로 만들어야겠다.//

이파리움막과 눈집 / 울라브 하우게
대단할 것도 없다/ 이 시들은, 그저/ 되는대로/ 단어 몇 개를 쌓았을 뿐,/ 그럼에도/ 나는 생각한다,/ 이것들을 짓는 게/ 좋았다고, 그런 다음이면/ 잠깐 동안/ 집을 가진 것 같다고,/ 어릴 적/ 지었던/ 이파리움막을 기억한다,/ 들어앉아/ 빗소리를 듣고 홀로 황야에 있는 기분으로/ 콧등에/ 머리에 떨어지는 물방울을 느끼건 움막-/ 아니면 크리스마스 대의 눈집을,/ 쪼그려 들어가/ 자루로 구멍을 막아놓던 눈집.//

만남 / 울라브 하우게
그들을 만났다- 인사를/ 해야 할지 망설이며./ 다음 순간 그녀가 말을 건넸고/ 한두 걸음 그의 곁을 따라 걸었다./ 어둠이 내리고 나면/ 모든 사람을 알아볼 순 없는 법./ 그녀는 아직 젊었고/ 눈동자 속의 빛도/ 여전히 까맸다.// 말들은 떨어져 내렸다,/ 열린 바다를 가운데 두고/ 각자의 뱃전에서 던지는/ 낚시 추처럼.// 나중에서야 그는/ 그것들이 엉켜버린 걸 알아차렸다./ 바다 깊이/ 변덕스런 해초 숲과/ 난데없이 갈라진 틈 위로/ 해류들이 다투는 지점 어디께.// 그녀는 어찌나 조심스러웠던지!/ 재빨리 끊어버렸다.// 하지만 그에겐 끊어진 줄 끝과/ 그녀의 낚싯바늘이 있었다,/ 구명밧줄이/ 던져진 줄은/ 알지 못했어도.//

비 오는 날 늙은 참나무 아래 멈춰서다 / 훌라브 하우게
​오직 비 때문에/ 길가/ 늙은 참나무 아래/ 멈춰선 건 아닙니다, 넓은 모자/ 아래 있으면 안심이 되죠/ 나무와 나의 오랜 우정으로 거기에/ 조용히 서 있던 거지요 나뭇잎에 떨어지는/ 비를 들으며 날이 어찌 될지/ 내다보며/ 기다리며 이해하며,/ 이 세계도 늙었다고 나무와 나는 생각해요/ 함께 나이 들어가는 거죠/ 오늘 나는 비를 좀 맞았죠/ 잎들이 우수수 졌거든요/ 공기에서 세월 냄새가 나네요/ 내 머리카락에서도.//

어둠에서 빛나는 공간 / 울라브 하우게
오 성스런 별들이여/ 차갑게/ 어둠에서 빛나는 공간들을/ 펼치는구나/ 그리고 차가운 빛을.// 너의 하나의 위대한 경험도/ 어둠에서 빛나는 공간들을/ 펼친다/ 그곳에/ 빛의 씨를 보관한다// 가까이 오지 마라/ 결코 지나치게 가까이./ 모든 존재 사이에는/ 어둠에서 빛나는 공간이 있으니/ 시간이 다할 때까지.//

자동차로도 비행기로도 아니지요 / 올라브 하우게
자동차로 아니지요,/ 비행기로 아니지요 --/ 건초 나르는 썰매나/ 낡은 달구지/ -- 또는 심지어 엘리야의 불마차로도 아니지요!// 당신은 결코 바쇼보다 더 멀리 이를 수 없어요./ 그는 걸어서 거기 도달했지요.//

추운 날 / 올라브 하우게
얼어붙은 바위 절벽 뒤에서/ 쏜 햇살이 새어나온다./ 수은주는/ 살금살금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고 --/ 따스한/ 공간은/ 조그맣게/ 옴츠러든다./ 장작을 밀어넣고,/ 나는 시를 짧게 쓰려고 한다.//

큰집은 춥다 / 울라브 하우게
큰 집은 춥다./ 가을에 그걸 알았다./ 첫 눈송이들이 떨어지기 시작하고/ 서리 아래 땅이 굳어가는 때./ 그러자 적막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내 외로움이./ 지붕은 삐걱대는 소리로 가득하고/ 언 숲의 도끼 소리 날카롭게 짖는다.// 나의 숲은/ 외로움의 숲 속에 있는 숲,/ 나의 산은/ 외로움의 산 속에 있는 산,/ 그리고 낮은/ 외로움의 밤 속에 있는 한 점 반짝임./ 한참 만에 마주치는 사람과 짐승,/ 소나무 바늘과 잔가지를 갖고 어둔 그늘을 어슬렁거리다/ 서리 위로 발자국을 남기는 그들은,/ 외로움의 꿈속에 그림자 진 흐린 빛.//

 



울라브 하우게(Olav H. Hauge, 1908~1994)

노르웨이 울빅(Ulvik)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살았다. 원예학교에서 공부한 후 정원사로 평생 일했다.

어릴 때 두 명의 형과 한 명의 누이를 차례로 잃었다. 5년 새에 세 명의 형제와 이별하는 아픔을 겪었다. 또 정신병원에 여러 번 입원하기도 했다. 병원에서 그는 수많은 책을 읽었고 독학으로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를 익혀 시를 번역하기도 했다. 그의 시는 20여 언어로 번역되었다. 그의 문학은 장소성에 뿌리를 두면서도 시공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우주적 스케일과 인간의 실존을 투시할 줄 아는 직관을 그 특징으로 한다. 1927년, 『귤라 티덴드』 신문에 시를 발표한 뒤, 38세의 다소 늦은 나이에 첫 시집 『재 안의 불씨』(1946)를 펴냈다. 그는 일곱 권의 시집과 낭송시집, 번역시집, 서간집, 아동 도서를 출간했다. 15세부터 죽기 전까지 쓴 방대한 분량의 일기가 출간되기도 하였는데 이는 4천 페이지가 넘는 노르웨이 사상 최대 분량의 문학적 일기로 통한다. 1978년 22세에 처음 만난 부딜 카펠른과 70세의 나이에 결혼했다. 그리고 1994년, 나고 자란 울빅에서 자신의 의자 위에 앉아 생을 마감했다. 울라브 하우게는 노르웨이의 국민 시인이자, 20세기 노르웨이 문학의 눈부신 성과로 평가받고 있다. 고향에 하우게 센터가 있다.

'시詩 느낌'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강 시인  (0) 2021.05.13
김동리 시인  (0) 2021.05.12
조지훈 시인  (0) 2021.05.11
청춘 / 사무엘 울만  (0) 2021.05.10
나태주 시인  (0) 2021.05.10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