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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당목 / 조미정

부흐고비 2021. 5. 11. 22:06

제2회 경북일보 문학대전 은상

늙수그레한 당목 하나가 먼 산마루를 바라보고 있다. 타종을 멈춘 지 오래되었나 보다. 발갛게 얼어있는 몸 위로 켜켜이 가라앉은 먼지가 아버지의 백발처럼 덥수룩하다. 이마를 쓸어 올리듯 당목을 어루만지다가 흠칫 놀란다. 나무의 결을 따라 딱딱하고 꺼칠꺼칠한 삶의 이력이 손가락 끝에 까맣게 묻어나온다.

종을 치는 막대기를 당목이라고 한다. 박달나무나 고래의 뼈로 만들어서 쇳소리가 날 만큼 단단하다.?종이 소리를 울리는 동안 당목은 수도 없이 제 몸을 부딪쳤다. 한번 타종할 때마다 되돌려 받은 충격이 일파만파 육신을 흔들어 놓았던 모양이다. 옹이 없이 매끈하던 몸은 여기저기 갈라지고 닳아서 굳은살이 박였다. 귀가 떨어져 나가도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다. 비천상을 조각한 종신처럼 화려한 문양을 지녔다면 그동안의 노고에 걸맞게 걸쩍지근한 대우를 받았을까. 보이지 않는 곳에서 헌신하다 뒷전으로 사라져도 그런 삶이 융숭하게 대접받지 못하다는 생각에 마음이 씁쓸해진다. 궂은일도 마다않고 묵묵히 해내던 아버지가 떠올라 가슴 한편이 느릿느릿 넘어가는 산 그림자로 흥건하게 물들어간다.

선득선득한 바람이 긴 소맷자락을 부여잡고 놓아주지 않던 늦가을의 오후였다. 노란 은행잎을 어깨에 붙인 아버지가 손수레 가득 연탄을 싣고 왔다. 가게 앞 작은 마당에 부려놓고 연탄장사를 겸하기 위해서였다. 다니던 회사가 부도난 후, 아버지는 목 좋은 길목에 가게를 마련해서 미곡상을 차렸다. 장사가 그런대로 되었지만 네 명이나 되는 자식들의 등록금을 마련하기에는 빠듯했었나 보다. 밤새 몸을 뒤척인 아버지가 이렇다하는 이바구도 없이 대여섯 정거장이나 떨어진 저탄장에 다니러간다고 했을 때 무슨 일인가 싶었다. 궁금증은 금방 풀렸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아버지가 적금을 들듯 차곡차곡 쟁여 넣고 있는 것은 스물 두 개의 구멍이 숭숭한 연탄이었다.

탄가루가 날리어 가게 앞이 지저분해질까봐 오며가며 나는 마당을 쓸었다. 골목에서부터 밟고 들어온 검은 발자국이며 낡은 손수레에 묻은 아버지의 땀방울까지 빡빡 문질러 닦았다. 하지만 검은 연탄이 산처럼 쌓인 마당은 아무리 비질을 자주 해도 금방 시꺼멓게 변한다. 아침에 말쑥하던 옷차림도 한나절이 지나기 전에 넝마처럼 되고 만다. 고된 노동의 흔적이 덕지덕지 묻은 탓이었다. 마당을 쓸면 쓸수록 연탄을 나르는 아버지가 구멍 난 양말처럼 창피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이웃 사람들은 요즘 보기 드물게 바지런하고 착하다고 나를 칭찬했다. 기실 그런 게 아니었다. 지워버리고 싶었던 것은 가게 앞 허름한 간판에 날려 쓴 '연탄'이라는 두 글자가 아니라 아버지였는지도 모른다, 어떻게 해서든 스스로 학비를 마련할 테니 그만 연탄장사를 접었으면 하고 몇 번이나 아버지를 설득했다. 하지만 한철만 하고 말겠다던 아버지의 연탄 배달은 수년이 지나도 계속되었다.

가난한 홀어머니 밑에서 갖은 고생을 한 아버지였다. 허드렛일에는 이골이 났다고 해도 이미 반백의 세월을 훌쩍 넘긴 연세가 아니었던가. 이만한 일은 고생이 아니라고 하면서도 내심 힘에 부쳤던 모양이다. 끙끙 앓는 신음 소리가 자주 문지방을 넘어왔다. 손마디는 뭉툭해지고 머리카락은 하얗게 새어 버렸다. 서울서 대학을 다니던 오빠와 동생은 방학이면 내려와 아버지 대신 연탄수레를 끌었다. 나는 쌀집 딸이란 소리가 듣기 싫었다. 거기다 연탄집이란 말까지 따라 붙었으니 친구들에게도 입을 꾹 닫고 일부러 먼 길을 돌아 뒷문으로 집을 드나들었다. 가끔 친구 집과 비교하면 술도 담배도 못하던 아버지는 속이 무척 끓었을 것이다.

아버지가 안쓰럽게 다가오기 시작한 것은 얼마 전의 일이다. 오랫동안 병석에 누웠던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로 아버지는 수시로 몸이 아파 병원을 들락거렸다. 그래도 평소 병원 문턱 한번 넘지 않을 정도로 건강하다고 여겼던 참이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다가 담석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다는 말을 나중에야 전해 듣고 가슴이 덜컥했다. 부랴부랴 들린 부엌에는 변변찮게 끼니를 해결했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냉장고는 비어있고 인스턴트식품 몇 개만이 널찍한 식탁 위에서 뒹굴었다. 무릎을 구부리고 방 안에 홀로 누워있는 아버지는 버려진 당목처럼 쓸쓸해보였다.

그제야 갈라지고 앙상해진 아버지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부쩍 야위어져서 옷이 훌렁훌렁 돌아가는 어깨는 생각보다 작고 쓸쓸했다. 아버지는 몸이 아니라 마음속에 돌덩이를 지고 계셨나 보다. 솔직히 귀찮았었다. 멀리 떨어져 사는 다른 형제들은 은근히 나를 믿었기 때문이지만 나는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점점 소홀히 했다. 반찬을 사서 먹으니 걱정마라는 말을 곧이곧대로 들으면 안 되었다. 알면서도 잠시 짊어진 짐이 무겁다고 휑하니 벗어버렸던 나는 무늬만 화려한 동종이었으리라.

종이 아름다운 이유는 겉모습이 아니라 종소리 때문이다. 종을 두드리면 안에서 부딪친 수만 가지 진동이 연꽃처럼 피어나며 깊은 울림을 만들어낸다. 높아졌다 낮아졌다 길게 맥놀이를 하여 들은 뒤에도 은은하게 가슴을 뒤흔든다. 나는 번지르르했지만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낸 적이 드물었다. 기껏 울리는 소리도 휑뎅그렁했다. 자신을 돌아보기보다 다른 형제들의 부족한 점을 들추어내며 툴툴거렸기 때문이었다. 자식 농사 잘 지었다는 동네 사람들 말 한마디에 어깨가 으쓱했던 아버지였다. 이런저런 사정을 내세우는 나에게 한 번쯤 섭섭한 소리를 했을 법도 한데 딸자식 걱정이 먼저였나 보다. 행여 짐을 지울까 아프다는 내색도 못했다.

텅 비어있는 속에서도 소리를 만들어내던 당목이 위대하게 느껴진다. 소리의 고랑이 깊을수록 당목은 더욱 바지런히 종을 두드린다. 제 몸이 부서져도 상관이 없다. 종이 더 멀리까지 크고 깊은 소리를 울릴 수 있도록 한 몸을 다 바쳤던 아버지는 그리스신화의 시시포스를 닮았다. 자식이란 바위를 끊임없이 산꼭대기로 굴러 올린다. 기껏 올려놓은 바위가 덧없이 굴러 떨어져도 묵묵히 다시 밀어 올린다. 고단하고 허망하다. 하지만 아무리 힘들어도 가파른 비탈을 몇 번이고 뚜벅뚜벅 걸어갔을 아버지를 생각하니 저절로 고개가 수그러진다.

나 또한 그맘때의 아버지 나이가 되고 보니 부모라는 이름이 가진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지 이제 알겠다. 왜 자식들은 육신이 삭아 내리는 세월이 흐른 뒤에야 당목이 품고 있는 숭고한 사랑의 의미를 깨닫게 되는 것일까. 우리네 인간사의 하고많은 삶은 알고 보면 모두가 내리사랑일지도 모르겠다. 그러기에 부모는 자식에게 모든 것을 내어주고 평생을 껍데기뿐인 몸으로 살아가도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일 게다. 아버지를 돌아보지 못했던 지난 삶이 후회스럽다. 늦게나마 마음에서 일렁이는 소리를 하나로 뭉쳐본다. 모난 소리는 모서리를 깎아 둥글게 하고, 부족한 소리는 크고 넒은 마음을 보탠다. 여태껏 무심했던 아버지의 마음을 한 뼘씩 들여다보기 시작하니 멀지 않아 부지깽이 같던 내 속에서도 은은한 울림을 만들어낼 것도 같다.

종루에 부딪치는 선들선들한 바람의 기척을 느꼈을까. 미동을 않던 당목이 나를 향해 돌아눕는다. 그 순간, 튀밥처럼 웃는 몸 우로 푸른 종소리가 쏟아지는 듯하다. 종소리를 따라 시선을 드니 먼 산 너머로 아버지가 훠이훠이 손 흔들며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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