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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탱자꽃 / 송명화

부흐고비 2021. 5. 20. 06:57

참 서러운 꽃이다. 얼마 만인가. 마음먹고 찾아 나선 것도 아닌데 우연히 만난 탱자나무덤불이 반가워 코끝이 시큰하였다. 조랑조랑 달린 꽃봉오리들이 안쓰러웠다. 푸른 기운이 도는 흰색을 보면 괜히 마음이 짠해지는데 눈물방울처럼 맺힌 하얀 꽃잎이 얇아서 더 서러웠다.

내가 다녔던 남해초등학교에는 탱자나무 울타리가 있었다. 나보다 두 배나 큰 키를 자랑하는 그 울타리가 얼마나 우람하였던지 소심한 나는 감히 다가갈 엄두를 못 내었다. 간혹 사내아이들이 개구멍을 들락거리기도 하고 가을에는 손가락으로 가시 줄기를 조심스레 벌려 노란 탱자를 따내기도 하였지만 나는 그런 즐거움을 느끼기는커녕 사나운 가시의 위용에 질려 멀찍이서 경계할 따름이었다. 겨울이 되면 탱자나무 줄기와 가시들이 여위고 비틀린 모습으로 공중을 향해 삿대질을 해대는 것만 같았으니. 어쩌다 생각 없이 눈길을 보내면 그것들이 내게 온갖 불평을 늘어놓는 것 같아 절로 마음이 신산해지고 멀리 있는 봄이 기다려지기도 하였다.

내가 탱자나무 곁으로 발걸음을 하는 때는 꽃이 필 때였다. 머리가 띵하도록 씁쓰레한 신맛에 진저리 치던 기억을 잊을 만하면 봄이 왔다. 죽은 듯 말라있던 가시 돋친 몸에 초록 물을 돌리고 희푸른 꽃망울이 몽알거리기 시작하였다. 창창한 가시 방진 속에서 목을 쭉 빼고 나름의 자리를 차지하려 애쓰는 작은 꽃봉오리들은 얼마나 위태로워 보였는지. 순수한 하얀색에 이끌려 부드러운 꽃잎을 살짝 건드려보기도 하였지만 걱정이 앞섰다. 벌이나 나비가 들락거리다 얇은 꽃잎을 다치게 하지나 않을까. 꽃잎이 방향을 제대로 잡지 못해 봉오리가 피다가 가시에 꽂히는 것은 아닐까. 어린 마음을 흔들었던 근심이 서러움의 정서가 되었나 보다.

그 서러운 꽃을 며칠 전 하늘에서 보았다. 축제의 기쁨을 뿜어내는 축포 소리에 이어 불꽃이 하늘을 수놓았다. 팡팡 터지는 하얀 불꽃 하나하나에 창백한 어린이들의 수심에 찬 얼굴이 들어있었다. 담도 제대로 없는 창고 같은 공장의 마당에서 폭죽을 만들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이 떠올라 한숨이 나왔다. 가시에 둘러싸여 그 가시의 겨드랑이에서 조심조심 얼굴을 내미는 연약한 꽃봉오리들이 떨고 있었다. 빚에 묶여 폭죽을 빚고 있는 어린 담보노동자들의 기막힌 삶이 며칠 전 텔레비전에서 울고 있었다.

인도 폭죽산업의 중심지인 시바카시의 밤은 화려하다. 이곳에서는 생산된 폭죽을 실험하느라 밤마다 불꽃축제가 벌어진다. 폭죽이 터지는 동안 밤하늘은 화려하기 그지없지만 불꽃이 스러지고 나면 어둠은 더욱 깊어진다. 그 어둠 속에 열네 살 치트라와 수많은 십 대 아이들이 있었다. 치트라는 열 살 때 폭죽공장에서 일하다가 폭발사고로 전신화상을 입었다. 피부가 오그라들어 이마와 눈을 제외하고는 성한 데가 없다. 마디가 불분명해진 손은 턱 밑까지 오그려 붙었다. 혼자서는 일어설 수도 없다. 온몸을 담요로 가리고 눈만 내놓은 채 아이는 세상과 격리되어 있다. “얼른 나아서 부모님 빚을 갚아드리고 싶다.”는 아이의 말에 통역은 울어버리고 말았다고 한다. 아이의 푸른 기운이 도는 눈빛이 맑았다.

그 아이들은 탱자꽃이었다. 어른들이 촘촘히 엮어놓은 감옥에 갇혀 가시울타리 틈새를 뚫고 간신히 굽은 꽃줄기를 내밀어 존재를 말하는 삶이 힘겨운 탱자꽃이었다. 학교도, 놀이도, 하고 싶은 일도 거부당한 채 노동의 현장에 갇혀버린 어린아이들이 가질 수 있는 꿈은 무엇이 있을까. 가을이 되면 꽃 떨어진 서러운 자리에 동그란 탱자 여물 듯, 세월이 가면 아이들도 어른이 되고 나름대로 삶을 꾸리겠지만 담보노동을 하며 익힌 열매가 어찌 귤의 꿈을 꿀 수 있을까. 같은 씨앗이라도 강의 남쪽에다 심으면 귤이 되지만, 그것을 북쪽에 옮겨 심으면 탱자가 되어 버린다는 고사도 있지 않은가. 꽃부터 시들어버린 치트라의 탱자는 어찌 여물어질지 아득할 따름이다. 조금의 방심도 허락하지 않는 팍팍한 삶의 한 가운데서 아이들은 탈출구를 찾을 수 없을 것만 같다.

힘들게 찾아간 모교에 탱자울은 없었다. 몇십 년을 버틴 가시울타리는 걷혀지고 밖에서도 운동장을 볼 수 있는 현대적인 낮은 서양형 펜스가 자리잡고 있었다. 하얀 색깔이 산뜻하였으나 내 눈은 그 자리에서 옛날의 가시울을 불러낸다. 울타리가 사라졌다고 서러움의 정서까지 없어지는 것은 아닌가 보다. 레이스처럼 아련한 탱자꽃 향기가 어쩌면 내 마음에 두터운 그늘을 드리웠는지도 모르겠다.

탱자꽃이 사나운 가시울 속에서도 나름의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것은 진한 향기 덕분이다. 향기가 그렇게 곱지 않았다면 벌도 나비도 위험을 무릅쓰고 찾아들지는 않았을 터이지. 코를 킁킁대며 동그란 주머니처럼 닫힌 꽃봉오리를 벌려보기도 하고 춤추듯 벌어진 꽃잎을 따서 소꿉놀이를 하던 아이들이 어른이 되었다. 서러움이든 그리움이든 그들의 마음은 탱자꽃을 향해 열려있을 것 같은데……. 자신보다 어머니의 건강을 염려하고 하루의 끼니를 걱정하는 그 아이들의 눈물겨운 마음은 탱자꽃보다 더 향기롭다. 현실의 날선 가시울타리를 걷어내고 고운 향기를 지켜주는 일이 어른들이 해야 할 일이건만 어른들의 마음은 아직 한겨울 가시덤불이다.

한순간 반짝이고 더 깊은 어둠을 몰고 오는 줄 알면서도 그것이 그 아이들의 식사가 되는 것이 아니냐며 애써 나서기를 부인하거나 어쩔 수 없는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냐며 시선을 거두려다가 멈칫 놀라고 말았다. 사나운 가시울타리를 엮고 있는 게 내 모습이구나 싶어서다. 열 살 남짓 아이들의 눈물을 밟고 즐기는 불꽃놀이, 세상은 부끄럽기만 하다. 불꽃 터질 때 아이들의 울음 또한 터지는 것을…….

사람들은 불꽃놀이에 열광한다. 환한 빛에만 눈길을 두고 어둠은 짐짓 몰라라 한다. 눈에 보이는 것에만 마음을 두고, 보이지 않는다고 곪은 부위를 모른 체 해서야 어찌 낫기를 기대할 수 있으랴. 아이들이다. 가시에 포위된 탱자꽃이나 탱자가 되어서는 안 될 연약한 아이들이다. 탱자꽃의 향기를 즐기고 탱자를 굴리며 노는 평범한 기쁨을 알아야 할 소중한 아이들이다.

올해도 불꽃축제가 열리겠지. 한때는 나도 불꽃에 홀려 사진 촬영을 하느라 바삐 돌아가기도 하였다. 그 불꽃 뒤에 드리워지는 떨어진 탱자처럼 빠르게 시들어가는 아이들의 영상을 어찌 지울 수 있을까. 이제 찬란한 불똥 속에서 내 꿈을 그리기는 어려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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