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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등대, 희망을 품다 / 허정진

부흐고비 2021. 5. 20. 14:53

별빛도 없는 밤, 길 잃은 망망대해를 혼자 날갯짓하고 있었다. 위치와 방향을 상실한 채였다. 비행각은 삭풍에 가파르고 심장 소리는 두려움에 막막조였다. 칠흑 같은 어둠, 산 같은 너울, 침묵으로 염장 된 시간 속에 불빛만이 유일한 탈출구였다. 날갯짓에 기운이 빠져나갈수록 무력감과 절망감도 그 무게만큼 커져만 갔다. 한시바삐 등대를 찾아야 한다.

길 잃은 자에게 먼 곳의 불빛은 구원의 섬광이다. 어머니 품속 같은 안도감이고, 멀리 두고 온 연인처럼 끝없는 그리움의 대상 이다. 혼자가 아님을 위로하는 존재의 등불이고, 가야 할 방향을 길라잡이 하는 삶의 나침반이다. 믿음과 같은 거였다. 자전거를 배울 때 뒤에서 받쳐주고 있다고 믿으면 손을 놔도 넘어지지 않는 것처럼.

하얀 등대였다. 원통형 기둥에 방서모를 쓴 신사의 기품이다. 육지 끝머리에 묵상하듯 성자의 자세로 홀로 서 있다. 목화송이 피어나듯 뭉게구름이 하늘에 섬처럼 떠 있고, 갈맷빛 바다에는 갯바위로 밀려드는 포말이 조팝꽃숭어리 흔들리듯 하얗게 눈부시다. 짭조름한 갯내음과 청신한 해풍을 실은 아침바다의 정조가 안식과 평안의 증표처럼 부유하고 있다.

밤새 먼 바다에서 돌아온 괭이갈매기 한 마리가 등대 난간에 앉아 지친 날개를 접는다. 비구름 떼를 힘들게 건너온 듯 몸과 마음이 온통 상처투성이다. 아침햇살이 빗살무늬로 퍼지며 허공에 내려앉는다. 묵시록 같은 그의 눈빛 속에 먼바다의 꿈, 사랑, 동경, 항해, 자유로운 비상의 여명이 어른거린다.

등대는 바다의 꽃이고 영혼의 빛이다. 붙박이 나무처럼 언제나 그 자리에서 떠나보냄과 기다림의 생애로, 땅과 바다의 경계로, 직립과 수평의 구도로 존재한다. 뭍은 안전지대이고 등대는 안식처의 표식이다. 바다를 가로지르는 철새들이 유목민이라면 날아든 씨앗처럼 노박이로 뿌리 내린 등대는 토착민이다. 세상 밖에 유랑하는 모든 생명이 언제나 달려가면 내남없이 반겨줄 고향 같은 존재이다. 지치거나 외롭고 힘든 자에게 여유와 치유의 쉼터이고, 안녕과 위안의 등받이가 되어 밤마다 장명등 불빛을 밝혀놓고 있다.

평탄하고 안유한 자리는 결코 아니다. 외딴 섬이나 곶, 만, 협수로, 벼랑처럼 험한 곳에 위치해서 날고 걷고 헤엄치는 모든 숨 탄 것들을 험하지 않은 곳으로 인도한다. 바람막이 하나 없는 폭풍과 거친 풍랑을 온몸으로 막아내고 한설 삭풍의 추위도 홀로 견뎌내야 한다. 세상 설움이 혹독해도 결코 흔들리거나 움츠러드는 법이 없이 무게중심은 언제나 정확하다. 부모가 자식 때문에 불만하지 않는 것처럼 자기 자리에 대한 태생적 수고와 의무를 원망하는 일도 없이 절대적 사랑과 희생이 등대의 본질이다.

그는 고독하면서도 자유롭다. 혼자라는 외로움이나, 유한적인 생명 앞에서 견유나 대책 없는 허무주의가 아니다. 죽음도, 부패도, 멈춤도 없는 바다. 끝없는 대자연의 생명력 앞에서 홀로 등불을 밝혀 후회 없는 삶을 찾아가는 긴 여정이다.

등댓불은 어쩌면 존재의 궤적이 아닐까. 아프지도 삐걱거리지도 않는 삶은 없다. 때로는 고통과 절망도 있지만, 고독 속에서도 빛을 내어 꿈과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짐 하나 등짝에 올려놓고 직진하는 민달팽이처럼 번설보다는 묵언으로 꿋꿋이 자기에게 주어진 길을 가는 구도자의 삶이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누구의 도움이 없이도 자신의 생을 굳게 담당하는 단독자이고 독립자의 표상이다.

등대가 그리웠던 적이 있었다. 꿈꾸던 일들이 좌절되었을 때거나, 세상일이 내 뜻대로 되는 게 없다고 포기하고 싶을 때도 그랬다. 머나먼 곳으로 떠난 이민자처럼 낯선 땅에 홀로 서서 어디로 가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상실감 같은 것이었다. 앞날에 대한 두려움, 지금 이 순간의 막막함에서 무언가 위로와 격려를 받고 싶었다. 황석어젓처럼 짜기만 한 삶이어서 해녀의 숨비소리 터지듯 가슴에 숨구멍 하나 열어두고 싶었다. 먹빛 어둠 속에서도 어디선가 들려오는 희망의 무적소리, 밝고 따뜻한 빛줄기를 그리며 다가오는 등댓불이 보고 싶었다.

등댓불은 당당하고 형형하였다. 누구에게나 구별과 차별 없이 비추었다. 등명기를 막 빠져나온 미색의 불빛이 어두웠던 세상을 향해 한없이 쏟아졌다. 한 치 앞도 가늠할 수 없었던 바다는 빛이 다다르는 곳마다 망원렌즈의 피사체처럼 제 모습을 드러냈다가 사라지고, 때로는 빛다발의 이동통로처럼 허공을 가로질러 하얗게 머물렀다가 멀어지기도 했다. 고요하면서도 경이로운 빛이었다. 등탑에서 쏟아져 나온 빛줄기가 슬픈 마법을 푸는 묘약처럼 텅 빈 가슴속을 마구 파고들었다.

호호탕탕, 바다가 출렁인다. 바다는 육지의 산과 강, 구별과 경계를 뛰어넘어 세상을 하나로 만드는 곳이다. 세상의 모든 벽과 높고 낮음의 관계도 허물고, 오물이든 탁류든 미움도 허물도 아무 거리낌 없이 두 팔로 받아들인다. 펄펄 뛰는 생명체가 자유의 알몸으로 거침없이 유영하는 곳, 등 푸른 고등어를 보면 바다는 날 선 예각이 아니라 소통과 포용의 유선형임이 틀림없는 것 같다. 귀를 기울여 보았다. 심해 어둑한 곳에서 향유고래의 쿵쿵 뛰는 심장 소리가 들려왔다. ‘넌, 살아있다.’라고 관자놀이가 불끈거렸다.

과거는 바꿀 수 없고 미래는 어떤 모습일지 알 수는 없다.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떻게 달라져야 할지는 당장 모르겠지만 한 가지만은 분명했다. 새롭게 출발할 수 있는 시간은 바로 지금, 이 순간이 아니면 내일은 역시 절망뿐이라는 것이었다. 희망은 곧 가능성이었다. 끝까지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는 저 밝은 등대 불빛이 내게도 비추게 될 것이라는 믿음이 뱃고동처럼 멀리서 울려왔다. 두 주먹을 쥐고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용기를 끌어낸 것은 그날의 등대였다.

중학생 어린 시절이었다. 도시로 고등학교 진학하고 싶어 밤늦게까지 공부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가로등 하나 없는 외딴집이었다. 무당집 지나 뜬소문 바스락대는 대밭도 지나려면 보름 달빛 아래도 머리끝이 쭈뼛거렸다. 지척이 분간되지 않는 그믐에는 도마뱀 달아나듯 어둠을 뛰어가지도 못하고 새카만 불안이 터벅터벅 발걸음을 붙잡았다. 그때였다. 신작로 끝나는 언덕배기에 어둠 속에 반짝이는 작은 불빛 하나가 있었다. 하루를 털어내지도 못하고 마중 나온 아버지가 무거운 짐 진 어깨로 등대처럼 오도카니 서서 “나, 여기 있다.”고 손전등을 깜빡이고 있었다. 그럴 때면 시험 합격통지서라도 받은 것처럼 안도와 환희로 소리 지르며 불빛을 향해 막 달려갔다. 좁은 언덕길을 앞장서게 하고 등 뒤에서 오롯이 내 앞으로만 비춰주던 불빛, 한 모숨 햇살 같았던 아버지의 등댓불이었다.

어느 시인은 등대를 별에서 오는 편지와 별에게 보내고 싶은 편지를 넣어두는 우체통이라고 했다. 씨줄 날줄 같은 사연들의 발신인은 많이 망가진 사람, 희망을 잃은 사람, 상처가 있는 사람들일 것이다. 등대는 밤마다 세상의 모든 빛을 무대로 끌어모아 대자연의 서사시를 연주하고, 영혼을 치유 받은 관객들은 빛을 향한 노스탤지어를 마음 한편에 품고 산다.

빛은 모든 생명의 근원이자 삶의 원동력이다. 빛이 있기에 사람들은 어둠과 절망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어두워 보이지 않는 것들이 빛으로 밝혀 볼 수 있게 된다면 그것은 곧 소통이고, 희망이며, 평화일 것이다. 세상살이가 하루도 파랑주의보 아닌 날이 없지만 살아가는 방법은 어느 곳에나 있다. 원근도 없는 안개 같은 세상에서 등대처럼 빛의 손으로 보듬어 준다면 아무리 힘든 고난과 역경도 헤쳐나갈 기적을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사람도 저마다 제빛을 내는 등대가 아닐까 한다. 각양각색의 모양새이지만 사회와의 관계성 속에서 알게 모르게 많은 영향을 미치며 살아간다. 나는 남에게 따뜻하고 친절한 빛이었을지 궁금하다. 등댓불이 어두운 바닷길을 열어준 것처럼 누군가에게 힘과 위로가 되는 등댓불이었는지, 혹시 고장 난 등명기는 아니었는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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