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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어머니의 지팡이 / 박금아

부흐고비 2021. 5. 21. 12:39

“인자부터는 엄마 혼자서 다 하세욧!”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을 다녀온 셋째의 말투가 심상치 않았다.

‘어머니는 늘 옳다’는 것은 우리 칠 남매 모두가 인정하는 진리였다. 어머니 뜻을 따르자면 힘이 들어도 지나고 보면 다 잘한 일이었다. 그런 어머니가 떼꾸러기가 되었다.

요즘 들어 어머니의 고집은 도를 넘을 정도였다. 완강하기가 신념처럼 굳건해서 최근에 판정받은 치매가 너무 빠르게 진행되는 것이 아닌가, 걱정되었다. 자식들과는 함께 살지 않겠다, 죽는 날까지 삼천포를 떠나지 않겠다, 지팡이는 짚지 않겠다, 등등이었다. 다른 것들이야 당장 탈 날 일이 아니지만, 지팡이가 문제였다.

계단을 오르다가 다리를 헛디디는 사고가 났다. 치료가 끝나자 의사는 지팡이를 권했다. 의사 말은 ‘말씀’으로 받아들이는 어머니가 웬일인지 묵묵부답이었다. 검색 왕 넷째가 인터넷을 뒤져서 찾아냈다며 최신식 지팡이를 보내와도 걸어만 둘 뿐이었다. 그런데 달포를 넘기지 못하고 또 넘어졌다. 고관절에 인공 뼈를 넣고 재활 치료를 받을 때는 어린애가 따로 없었다. 병실이 떠나가라 엉엉 울었다.

“올매나 살끼라꼬 이리 아픈 일을 견디야 하노 말이다아.”

뼈를 깎는 아픔 같았다. 두 달 넘게 병원 신세를 지고 퇴원하던 날, 의사는 정색을 하며 말했다.

“어르신, 이제는 지팡이를 꼭 짚으셔야 합니다.”

이번에도 대답이 없었다. 눈빛이 어찌나 싸늘하던지 민망할 정도였다. 미국에 있는 둘째도 지팡이를 보내왔다. 이국에서 고생하며 번 돈으로 사 보낸 정성을 보면 마음을 움직일까, 가격표 그대로 드렸지만 여전히 왼고개를 틀었다.

외출할 때마다 실랑이가 일었다. 의정부 집에서 병원이 있는 여의도까지 매일 오가며 병구완을 해 준 셋째 말도 듣지 않더니 퇴원을 하고 첫 외래 진료를 받으러 가는 날 아침에는 한바탕 큰 소리가 나고야 말았다. 셋째도 이번에는 지지 않을 작정이었던지 지팡이를 들고 따라 나섰다. 낮은 장애물도 넘어서지 못하고 몇 번이나 넘어질 고비를 넘기면서도 어머니는 외출 내내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모양이다.

셋째는 돌아오자마자 가시 돋친 말을 쏟아놓고 가버렸다. 그날 밤, 어머니는 평소보다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수십 알의 약을 삼키면서도 저녁은 두어 술이 전부였다. 연속극 시간이 되어도 일어나지 않았다. 다음날, 식구들이 일어나기도 전부터 베란다 창을 여닫는 소리가 몇 번이나 났다. 오후 두 시를 넘어가도 셋째가 오지 않자 어머니는 불안한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달랠 겸하여 어머니와 함께 산책을 나갔다.

맨발공원 벚나무 아래에 할머니들이 앉아 있었다. 한 할머니가 손자가 사서 보냈다며 지팡이 자랑을 했다. 다른 할머니들이 차례로 짚어보고는 걸음이 한결 수월하다기에 어머니에게도 권했더니 한사코 손사래를 쳤다.

“지팽이는 무신….”

부아가 났다. 어머니를 남겨두고 빠른 걸음으로 공원을 나와 버렸다.

‘어디 한 번 혼자서 집까지 걸어가 보셔욧!’

그렇게 해서라도 속내를 전하고 싶었다. 그런데 황망히 나의 뒷모습만 바라보고 있을 생각을 하니 금세 고개가 돌려졌다. 어머니는 퍼뜩 내게서 눈길을 거두어 일없이 무릎을 치는 게 아닌가. 다시 가 앉으니 눈길이 어머니의 다리에 닿았다.

어머니가 온몸으로 이고 지고 나른 짐의 무게는 이 세상의 어떤 저울로도 다 달아 낼 수 없었을 것 같았다. 말로만 부잣집 맏며느리였지, 종갓집 큰살림은 버거운 짐이었다. 층층시하 식구들을 지게에 담아 지고 가녀린 두 다리로 험한 고갯마루를 넘어왔다. 친정에 두고 온 홀어머니와 어린 동생들도 평생을 두고 내려놓지 못한 가슴 짐이었을 거다. 사업에 실패하고 빚더미에 묻혀 있던 아버지를 다시 세상으로 끌어 올린 힘은 얼마였을까. 집안을 일으키기 위해 떡집 일을 시작했을 때 들어올려야 했던 떡 시루는 또 얼마나 무거웠을까. 관절은 결딴났을 것이다.

신혼 시절, 시가 식구와 함께 사느라 힘들어하던 내게 어머니가 일러주던 말이 있었다. 도리를 다하면서 참고 살다보면 자식이 지팡이가 되어 좋은 세상으로 이끌어 줄 거라던 말이었다. 스스로에게 건 주문呪文이었을 것이다. 넘어지고 엎어지면서도 잠시 무릎을 꿇었을지언정, 어머니는 지워진 짐을 포기한 적이 없었다. 남의 것조차 자신의 것으로 끌어안다시피 했다. 일곱이나 되는 자식 짐은 얼마나 무거웠을까. 그런데 지팡이로 삼으셨단다.

그러니 그깟 나무나 쇠로 만든 지팡이가 평생 당신 손으로 깎아 다듬은 ‘자식 지팡이’에 비할까. 다 출가시킨 다음에는 자식 낳아 기른 보람을 제일로 여겼다. 오순도순 살아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 당신의 논에서 난 쌀로 모두를 거두어 먹이는 일, 봄이면 친구들이랑 사천 선전리 벚꽃밭에 꽃놀이 한 번 다녀오라는 성화를 듣는 일, 손주가 주는 돈으로 지인들과 국수 한 그릇을 나누는 일, 이 소소한 일 하나하나도 어머니의 지팡이를 더 단단하게 했을 거다. 새 지팡이를 권하는 자식들의 속내에서 더는 지팡이가 되어주기를 포기하는 마음을 읽기라도 한 것은 아닐까. 어머니는 당신의 지팡이를 잃게 될까 두려웠던지도 모르겠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보니 어머니는 내 신을 신고 있었다. 뒤꿈치를 할딱이며 한 발 두 발 땅을 딛는 모양이 처음으로 엄마 구두를 신고 뒤뚱 걸음을 걸어 보이는 어린 소녀 같았다. 내 팔을 꼭 붙든 손에서 아기 새의 날갯짓이 전해져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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