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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시 원고료 / 허영자

부흐고비 2021. 5. 25. 21:07

가까운 지방에서 발간되는 문예지에서 원고 청탁이 왔었다. 신작시 두 편을 보내 달라는 청탁이었다.

작품을 보내고 얼마 후 발간된 잡지를 받았다. 그리고 택배 물품 한 개가 도착하였는데 바로 그 잡지사에서 보내온 것이었다. 의아해하며 묶음을 풀어보았더니 안에서 나온 것이 뜻밖에도 소주 수십 병이었다. 작고 납작한 플라스틱병이었지만 숫자가 많다 보니 꽤 무거웠을 뿐만 아니라 부피도 상당하였다.

생전 처음 있는 일이라 깜짝 놀랐지만 곧 웃음이 나왔다. 원고료 대신 보내온 것이 소주라니 아마도 그 잡지사 사장님이 양조장 주인이거나 아니면 소주 회사에 근무하거나 하여서 이런 물건을 보낸 것이려니 혼자 생각하였다. 그렇지 않다면야 소주 못 먹는 여자 시인인 나에게 일부러 이런 선물을 할 리가 없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원고료를 소주로 대신 받아 소주 좋아하는 지인들에게 나누고 집에 오신 손님 대접도 하면서 나는 대단히 재미있는 원고료를 받았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잡지사에 고마운 마음이 컸다.

요즈음 우리나라에서는 문학잡지가 헤일 수 없이 많이 발간되고 있으며 시 전문잡지도 많지만 시 원고료를 제대로 지급하는 잡지사는 지극히 드물다. 저작권법에 의하면 지적재산권이라는 것이 있고 따라서 시도 저작료를 받는 것이 마땅하고 글을 가져가는 쪽에서는 글의 값을 지불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원을 못 받는 잡지는 말할 것도 없고 공적 지원을 받는 잡지사에서조차도 시 원고료는 제대로 주려고 하지 않는 현실이다. 시 원고료가 제일 액수가 적은데도 불구하고 잡지에 실리는 편수가 많다보니 지불 액수가 만만치 않아서라는 이유를 댈 수도 있겠다. 따라서 원고료까지 지급을 하자면 잡지사 운영이 타격을 입을 것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럴 때마다 나는 옛날 일을 떠올리곤 한다.

지금부터 60년도 더 전 내가 대학 1학년 때 우연히 김광섭 선생님을 뵐 기회가 있었다. 그때 김광섭 선생님은 문예지 《자유문학》을 발간하고 계셨다. 그날 함께 모시고 간 어른과 나누는 말씀 중에 잡지 발간의 어려움을 토로하시면서 ‘잡지를 위하여 집을 팔았다’고 하셨다.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였던 나는 그 말씀을 곁에서 귀동냥하여 들으면서 ‘잡지를 발간하려면 집도 팔아야 하는 것이구나’라는 생각을 하였다. 그리고 갑자기 선생님이 당당하고 키가 큰 대장부로 우러러 보였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 이후 나는 이런 경험을 한 일이 다시는 없다.

사실 문학잡지의 발간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독자들이 많이 사보는 것도 아니고 출판비를 후원하는 후원자가 쉽사리 구해지는 것도 아니며 축적된 많은 자산이 있어서 출판비 걱정 없이 책 만드는 일에만 전념할 수 없는 것이 대다수 문예지의 형편이다. 다시 말하면 경제적으로 몹시 어려운 문예지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큰 사명감과 출혈을 감수하지 않는 한 잡지들은 동인지 비슷한 형태로 운영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수많은 잡지가 있을 뿐만 아니라 새로 출판되는 잡지들이 있으니 글 쓰는 문인에게는 발표 지면이 그만큼 늘어나고 발표 기회가 많아지니 여간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사정을 뻔히 알면서도

“원고료를 보내드릴 수 없습니다. 책 두 권으로 대신하겠습니다”

라는 원고 청탁서를 받으면 섭섭한 마음이 든다. ‘책에 실어주는 것을 고맙게 알아라’라는 뜻이 은근히 내포된 듯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이를 좀 더 확대하면 ‘네 글을 읽어주니 고맙게 알아라’라는 독자들의 소리가 들리는 듯하여 약간의 모욕감마저 느낀다면 너무 과민한 것일까.

“원고료는 우리 지방의 특산물로 대신하겠습니다. 양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밝힌 청탁서를 받고는 어쩐지 마음이 짠하면서도 존재감이 느껴졌다.

“원고료 보낼 계좌를 알려 주십시오.”

이런 청탁서를 받으면 시인인 것이 기쁘다. 시 고료로는 생계를 꾸리는 일이 가당찮지만 얼마 안 되는 고료가 부추겨주는 자부심은 대단히 크다.

전후 50년대 후반, 문인도 화가도 음악가도 모두 가난하던 때 명동의 인심 좋은 다방에 모인 예술가들은 오랜만에 원고료를 받으면 그대로 주머니에 넣고 집으로 곧장 가지 않았다. 분명 집에는 밥 지을 쌀이 떨어진 아내와 밀린 학비를 내야 할 아이들이 기다리고 있었지만 원고료 받은 이는 하루 종일 엽차만 마시고 있는 친구들을 호기롭게 불러 소주도 아닌 막걸리 집에서 한 턱을 내고는 하던 것을 보았다.

지금은 원고료를 은행계좌로 보내오니 현금으로 바로 받을 때와는 다르지만 그래도 원고료 받는 날은 한 턱을 쓰고 싶다. 그리고 평소에 못 하던 일, 어디 기부라도 하고 싶다. 내 노동으로 얻는 수입 중에도 시 원고료는 그중 귀한 것이기 때문에 그만큼 유용하게 쓰고 싶은 마음이 든다.

비교할 일은 아니겠지만 가령 음악저작권의 경우는 음악 한 곡을 두고도 작사자와 작곡가 그리고 연주자가 각각 저작료를 받는다. 시인은 시 한 편의 고료를 못 받는 일이 허다하다. 그래서 드물게 받게 되는 고료는 소위 지적재산권이 행사되고 그만큼 시인으로 존중받는 듯하여 기쁘다.

몇 년 전에 받은 원고료ㅡ소주가 다 없어졌지만 단 한 병만은 지금도 기념품으로 간직하고 있는 이유도 바로 이런 데 있다.



▲허영자 시인
1962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 『얼음과 불꽃』 『투명에 대하여 외』 등. 목월문학상 등 수상. 현재 성신여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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