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수필 읽기

연리지목 / 정원영

부흐고비 2021. 5. 26. 09:22

내가 이들을 만난 건 오래전 일이다. 삼십여 년 전 큰아들초등학생 때 식물 채집 하러 보호자겸 안내자로 들과 산에 풀 찾 다니다 이들을 처음으로 보게 되었다. 우리는 신기한 모습에 호기심을 갖고 한참을 바라보았다. 그 둘은 정답게 손을 잡고 푸른 하늘을 향해 기도하고 있었다.

그 둘은 수령 지긋한 노부부였다. 행복하고 다정한 모습으로 보였다. 한참을 보고 있노라니 그들이 지나온 삶의 흔적들이 눈에 띄었다. 잘려 나간 몸의 일부에는 상흔이 보였으며, 이들의 가슴에 옹이가 박혀있었다. 수십 어쩌면 백 년이 되었을지 가늠하기 어렵지만, 오랜 세월을 살아온 깊은 연륜이 묻어나 있었다. 그들 옆에 있으면 평온함이 나에게까지 전해왔다.

내가 연리지목(連理枝木: 한 나무와 다른 나무의 줄기나 가지가 서로 맞닿아서 결이 서로 통한 나무)를 보았을 당시에는 원미산은 고즈넉하고 사람들 발길도 뜸했었다. 이 숲속은 묵상하기에 딱 좋은 길이었다.

지금도 나는 조용히 자연에 안기고 싶을 때, 가까운 산을 찾아 대자연의 책을 읽곤 한다. 그 책은 언제나 내 앞에 펼쳐 있고, 나는 숲에 파묻혀 편안하고 행복감에 젖어들곤 한다. 자연은 너무 위대한 스승이라 내 자신이 작게만 여겨지지만, 산은 나를 내치거나 보잘 것 없는 자로 치부하지 않는다. 품어주고, 들어주고, 마주 바라봐주면서 위로와 깨우침을 안겨 준다. 조용히 자연이 주는 소리에 귀 기울이면 파문이 일지 않는 마음이 된다. 내 자신의 내면으로 빠져 가만히 나를 들여다볼 수 있다. 내가 한 일에 곰곰이 되새김해보는 반추의 시간을 가질 수 있어 좋다. 그래서 예나 지금이나 내가 혼자 산을 찾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는 살면서 남편을 이해하기 힘들 때면 연리지목을 찾았다. 묵묵히 상대를 믿고 지켜 봐주고 있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둘이면서도 하나인 듯, 하나이면서도 둘 같은 연리지목을 보면서, 부부사이에도 적당한 선을 유지하는 거리가 있어야함을 알게 되었다. 가깝다고 너무 알고 싶어 하거나 간섭하지 않고, 상대방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거리, 고개를 돌리면 눈이 마주칠 수 있는 거리, 서로에게 부대끼지 않는 안전거리다. 손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거리에서 편안하고 친숙한 동반자로, 서로위하며 애틋한 사랑과 정으로 살아가는 부부상을 느낄 수 있었다. 남편은 앞에서 리어카를 끌고 아낙은 뒤에서 밀며가는 행상인. 찌는 무더위 여름철에 들에서 일하고 온 남편 등에 시원한 물바가지 끼얹어 등목 해주며 더위를 식혀 주는 사이좋은 부모님. 연리지목에서 나는 이러한 필부필부(匹夫匹婦)의 모습을 보았다. 미래에 나도 연리지모습을 한 부부로 닮아가야겠다고 다짐했었다.

이사를 온 이후에는 여러 해 동안 거리상 이유로 잘 가지 않게 되었다. 어느 날 그곳이 그리워 찾아갔다. 천천히 느린 걸음으로 옛날을 생각하며 걸었다. H자로 두 손 꼬옥 잡고 그들이 서있었던 장소에 이르렀다.

‘아! 어떻게’내 눈을 의심했다. 남편 목(木)의 한 팔은 땅을 짚고, 다른 손은 힘겹게 버티고 서있는 아내 목(木)의 손을 잡은 체 비스듬히 쓰러져 있는 게 아닌가. 아내나무도 삼십도 가량 기울어져 있었다. 쓰러져있는 남편 손을 놓지 않고 다른 팔은 더 이상 쓰러지지 않으려고 허공을 향해 구원의 손을 뻗치고 있었다. 간절한 몸짓이었다. 나무둘레가 굵고 큰 것으로 봐서 쓰러져있는 나무가 남편이고, 좀 더 가늘고 작은 그루가 아내라고 생각했다. 병들어 누워 있는 남편을 아내자신도 성치 않은 몸으로 돌보고 있다고 느꼈다. 우리 부모님과 너무도 닮아 있었다. 그래서 더 한층 애틋함을 자아내게 하였다. 엄마도 뇌졸중으로 쓰러져 한쪽에 마비가 와서 힘들게 투병하고 있는 상태였다. 아버지는 젊어서 받은 내조의 정성을 그대로 엄마에게 갚는다는 마음으로 정성껏 보살펴 드리고 계셨다. 나는 그 자리에서 돌기둥이 되었다.

한 참 후에야 이천십삼 년도에 우리나라를 휩쓸고 간 콘바스 태풍 영향 탓이라는 안내판의 글이 눈에 들어 왔다. 한반도를 강타하고 지나간 강한 태풍이었다. 많은 피해가 속출했던 그때의 상황이 떠올랐다. 베란다유리창이 깨지고 전봇대, 가로수가 넘어졌었다. 우리나라 전역을 초토화시킨 몇 안 되는 강한 태풍이었다. 감당치 못할 강풍이 휘몰아칠 때 얼마나 무섭고 힘들었을까. 폭우에 지반이 약해져서 뿌리 체 뽑히는 나무를 보면서, 서로 위로하면서 조금만 더 조금만 버티자고 위로 하며

“이손 놓고 당신만이라도 살아남으시오.”

“무슨 그런 소리 마요. 나 혼자는 안 살라요.”

캄캄한 밤 번쩍이는 번개와 뇌우로 가지가 찢겨나가고, 아름드리나무들이 맥없이 쓰러지고 가지가 부러지는 위력의 바람. 천지가 진동할 천둥소리에 서로의 귀를 막아주고, 폭우에 얼룩진 얼굴을 부비며 버텼을 것이다. 쓰러진 아내를 구급차에 태우고 옆에서 엄마 손을 잡고, 옆에 살아만 있어달라고 애원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겹쳐보였다. 모진 풍파를 격고 난후 반은 쓰러진 연리지목이지만 부디 잘 버티며 살아 주길 빌었다. 두 분이 의지하며 사시는 우리 부모님처럼 서로 보듬어주고 아껴주는 영원한 부부상이 되어 달라고 청했었다. 그래야만 우리 부모님들도 더 잘 견딜 것 같은 마음이 들어서였다. 부모님과 연리지를 연결시켜 동일시하곤 하였다. 의견불일치로 충돌이 생긴 부부가 이들 나무를 보면 즉시 화해하게 되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사이좋은 부부가 되는데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했다.

몇 해지나 시(市)에서 연리지목에서 가까운 곳에, 유난히 진달래가 많았던 산자락 한 폭을 내어‘진달래동산’을 만들어 놓았다. 진달래 피는 사월이면 이곳에 오는 사람들의 마음까지 분홍빛으로 물들게 한다. 진달래꽃 구경도 하고 내가 닮고 싶어 했던 연리지목도 만나볼 겸해서 이른 아침 산에 올랐다. 그런데 그들은 온데간데없고, 덩그렇게 사진만이 비목에 새겨져있었다. 지난해 잦은 태풍으로 인해 완전히 사목(死木)이 되었다. 흔적조차 없이 잡풀만 무성하다. 두 번의 충격이고 아픔이었다.

어쩌면 그 연리지 목은 내 부모님과 같이 살아 왔을까하는 마음이 든다. 부모님이 건강 했을 때, 성치 않을 때 보듬어 주는 모습, 지금 나 있는 세상에서 뵐 수 없는 어느 별나라에 계실부모님, 같은 시기에 닮은 모습을 하고 떠나신 부모님과 둘이면서도 하나인 나무가 겹쳐져 아픔이 배가된다.

예전 그들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셀폰에 담았다. 봄이면 새잎 피우고 여름이면 무성한 잎으로, 쉬어가는 이에게 그늘도 만들어 주었지. 열매 키워 새들의 먹이로 내주던 그들. 온 몸속의 진액 까지도 자식에게 내주고 뼈와 마른 살갗만 남은 병든 엄마와, 인간에게 모든 것을 내주는 주는 나무. 눈 덮인 산속에서 나목으로 깊은 묵상에 잠겼던 연리지목. 정화수 길어다 자식위해 시린 손 모아 비비며 소원 비는 어머니. 어찌 이리도 닮았을까. 사랑은 주는 거라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준 그대들이여 영혼의 안식을 빌어드릴 자격이 제게 있을까요⋯.

▲ 정원영 수필가
‧ 수필⌜춘추⌟등단. ⌜서정문학⌟ 수필 부문 신인상. 
‧ 한국예총 부천지회백일장 장원, ‧부천문화원 시조백일장 최우수, 향촌문학회 전국여성문학대전 최우수

'수필 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너희를 사랑했다 / 김선자  (0) 2021.05.26
구틀이 / 김선자  (0) 2021.05.26
담쟁이덩굴 / 정원영  (0) 2021.05.26
시 원고료 / 허영자  (0) 2021.05.25
배반자의 십자가 / 허영자  (0) 2021.05.25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