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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배기에 산수유가 선웃음을 날린다.
제비꽃 살풋 고개 숙이고 쑥은 쑥쑥 올라와 푸르른 향내로 길손의 손길을 맞으리.
길가에 넌출넌출 수양버들 팔 벌리니 흰머리 휘파람새 그 품에 집을 짓고,
벌판은 꽉 짜인 풍경화.
실바람에 꽃비가 내린다. 좁은 길 굽은 길 연분홍 점묘화가 지천이다. 벚꽃이 진다고 애달플 건 없네.
봄볕은 벚나무 아래 곳간을 열어 이팝꽃 팡팡 나누네.
이팝꽃 곁 철쭉이 오동통 꽃망울 앙다물고 머지않아 여민 가슴 열어보이리.
꽃비, 걱정 없다.
벚꽃은 바람에 휘날릴 때가 절정인걸. 절정에서 스러지는 저 눈부신 산화, 달콤한 봄날이다.
.....
앞 산, 키 큰 소나무가 팔 벌려 새들을 부르고
단풍나무가 아직 마른 잎을 떨치지 못하는 사이
눈치 빠른 놈은 뾰족 아기새부리 같은 여린 잎을 내밀었다.
허리께서 나긋나긋 진달래 속삭이고, 희고 붉은 철쭉들 수다 질펀하다.
먼데 산 바라보면 여리여리 연둣빛 잔치 한창이다.
진진 초록으로 건너가기 전 말랑말랑한 생명의 시작, 만만 봄이다.
봄산에 들바람이 불면 머리에 꽃 꽂고 싶어지는 날 많다.
아주 드문 일이지만 일순 깜깜해지는 모니터처럼
한참 얘기 중에 뚝 끊어지는 수화기마냥 그가 등 돌린 것도 삽시간,
꽃보라 휘날리는 것도 잠깐, 목련이 환한 것도 한 순간
쟁쟁 햇살이 애먼 눈 흘기니 겨우 버티고 선 무릎이 꺾인다.
꽃이 져야 잎이 돋듯, 어제의 그를 보내야 내일이 온다.
가기위해 오는 봄, 가거라 그대.
노정숙 작가 :
□ 경남 함양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랐다.
□ 2000년 『현대수필』 봄호에 「말 한마디」로 등단했다.
□ 2012년 〈SDU사이버문학상〉 입상하여 『시작』으로 시 발표
□ 『현대수필』 편집장 역임, 현재 자문위원 시인회의, 분당수필문학회 동인으로 『The 수필』 선정위원이며 문예비평지 『창』 편집위원, 성남 문예아카데미 원장으로 활동 중이다. □ 수필집으로 『흐름』, 『사막에서는 바람이 보인다』, 『한눈팔기』 아포리즘 에세이 『바람, 바람』 (2013년 문학나눔 우수도서)을 출간했다.
□ 제5회 〈한국산문 문학상〉, 제9회 〈구름카페 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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