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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피어라, 오늘 / 노정숙

부흐고비 2021. 6. 3. 17:04

70년을 사는 솔개는 40살쯤 되면 두 가지 선택을 할 수 있다. 노쇠한 몸 그대로 죽을 날을 기다리든가 아니면 반 년에 걸쳐 새 몸을 만드는 것이다. 산 정상에 올라 바위에 낡은 부리를 쪼아서 빠지게 한다. 서서히 새 부리가 돋아나면 그 부리로 무뎌진 발톱과 무거워진 깃털을 뽑아낸다. 그 후 새 발톱과 깃털이 나와 솔개는 다시 힘차게 새로운 삶을 산다.

시난고난하던 때, 이 이야기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이것이 우화라는 걸 알았다. 실제로 솔개의 수명은 20년 정도이며 부리가 상한 뒤 다시 자라는 조류는 없다고 한다. 새로운 선택을 할 때나 중요한 결정을 할 때 우리의 의지를 다그치기 위해서 만든 우언이었다. 어쨌거나 맹렬한 행은 고수의 몸짓이다.

그럼에도 나는 쇄신을 생각했다. 머리는 산뜻한 색으로 바꾸고 늘어진 피부는 잡아당기고 부실해진 무릎의 연골도 갈아 끼워 삐걱거리는 육신을 먼저 바꿀까. 대책 없는 호기심과 지치지 않는 역마살을 무질러야 할까. 불쑥불쑥 치미는 부아와 아집, 시시로 들끓는 속은 어쩌나.
아무래도 쇄신刷新에 쇄신碎身할 자신이 없다. 내일을 위해 오늘 고통스럽지 말 것, 오늘 즐거워야 내일도 즐겁다. 다시 제자리다.

사람은 피어날 때는 더뎌도 스러지는 데는 가속이 붙는다. 후반부 시간이 빨리 가는 건 다행이다. 다만 슬로비디오로 이어지는 행동과의 언밸런스를 잘 다스려야 한다.
겨우 한철을 살다 가는 꽃이 말한다. '잎은 나비에게 주고 꿀은 벌에게 다 주고 향기는 바람에게 주고 그래도 잃은 건 하나도 없다.'고. 가을이 오면 풍성하게 거두는 게 아니라 또바기 나누면서 그득해지는 비책을 알려준다. 짧은 시간에도 속속들이 여물었다. 그래서 모두 좋아하는 '꽃'인가보다.
우리는 안다, 행복은 삶의 양이 아니라 질이라는 걸. 꽃 닮은 사람은 인생의 계절 어디에 서 있든 사랑옵다.
여린 봉오리든 한창 피었든 슬몃 이울어가든, 누구나 오늘이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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