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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신암동, 마포종점 / 김상영

부흐고비 2021. 6. 15. 12:33

‘대구시 동구 신암2동 1235번지’.

신도극장 부근 강남약국 골목 잡화상들을 지나 몇 구비 꺾어 돈 그곳은 고등학교 시절 자취집입니다. 우리 집 전화번호조차 까먹는 터에 그 주소가 기억난다니 희한합니다. 그뿐이겠습니까, 마당 가운데 공동수도에 젖줄처럼 매달려 연명하던 고만고만한 삶들도 그려집니다.

우리 문간방 옆으로 동대구시장 생선 좌판 장수 부부, 곱사 아이를 생손 앓듯 건사하던 아낙네, 5·16쿠데타로 몰락한 자유당 정권 전직 국장네 식구, 다소곳이 합숙하던 여대생 둘, 노는 꼴 보기 싫다는 어미 성화에 들볶여 머리핀 공장에 다니던 말만 한 계집애 가족이 디귿 형태로 포진하고, 늙은 내외가 오동통 곱살한 며느리 봉양을 오지게 받던 주인집이 일자로 채워지면 저 일천구백하고도 70년대의 성냥갑 같은 기억 속 판잣집이 얼추 완성됩니다.

김원일의 소설 ‘마당 깊은 집’ 같은 정경을 격하게 공감하는 건 그 세월을 겪어본 까닭이겠습니다.

내 고향 두메에서 신암동으로 유학하게 된 건 삼촌 덕이었습니다. 아홉 살 위인 삼촌은 그곳에 세를 얻어 경북대학교 독문과에 다니고 있었는데, 내가 얹혀살게 된 것입니다.

자취 생활이란 대개 궁핍하기 마련입니다. 양식이 떨어지면 나는 21번 버스를 타고 비산동에 갔습니다. 인동촌 시장 부근엔 고모가 살았고, 사글세 신혼살림이긴 해도 군말 없이 쌀 몇 됫박을 쥐여 주시곤 했습니다.

그 무렵 내셔널national 전축이 자취방으로 왔습니다. 고모부가 매부(삼촌) 공부에 쓰라고 준 것입니다. 판이라야 딱 한 장, 한복차림의 은방울 자매가 곱게 웃고 있었습니다.

“캔는지 헤른 데르만? 야, 야흐.”

삼촌이 독일어 회화 판을 틀 때 나는 아침밥을 지었습니다. 데르만 씨가 카랑카랑한 성우의 음성을 빌어 안부를 물어오면 삼촌도 앵무새처럼 따라 물었습니다. 판잣집 이웃들은 매일같이 문안을 받으며 아침을 연 셈입니다.

인사성 밝다고 끼니가 해결되는 건 아니었습니다. 양식이야 어찌어찌 마련되었지만, 국거리가 없어 난감할 때가 많았지요. 된장 간장으로 맨밥을 먹는 것도 하루 이틀입니다. 그해 겨울 아침, 부엌의 성긴 판자 사이로 연탄재 나무상자에 버려진 허드레 배추 몇 닢이 보였습니다. 나는 라면 수프와 어울리겠다 싶어서 마당을 들락거리는 사람들이 비는 틈새를 살폈습니다. 이때다 싶어 잽싸게 주워든 그때 아뿔싸! 그만 주인집 새댁과 맞닥뜨리고 말았습니다. 그녀도 당황하였는지 황급히 눈길을 거두며 돌아섰고, 정신이 아득해진 나는 부뚜막에 망연히 주저앉았습니다.

‘비에 젖어 너도 섰고, 갈 곳 없는 나도 섰다~♬’

마포종점은 그럴 때 어울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고 마냥 눈물 젖은 밥만 먹은 건 아니었습니다. 삼촌이 청천 하양까지 가서 여고생 둘을 가르친 과외 수업비를 받는 날이면 우린 칠성시장 난전에 소머리국밥을 먹으러 갔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이 그때 그 시절 소머리국밥입니다. 그러나 학교만큼이나 밥은 엄중하였으므로 돌아서면 끼니 걱정이었습니다. 나는 밥 당번이었으니까요.

반찬이 시원찮은 우리는 국수를 자주 삶았습니다. 문제는 석유풍로인데, 그게 앙탈을 부리는 겁니다. 희한하게도 불이 심지 조절 톱니의 성긴 틈을 타고 내려 석유통에서 터지는 것입니다. 분리된 기름통을 맞춰 끼울 양이면 음식에선 석유 냄새가 약간 나곤 했습니다. 그거야 뭐 그리 대수겠습니까만, 겁나는 건 언제 또 그 펑! 을 할지 예측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망할 놈의 몹쓸 풍로를 바꿔야 했지만 어림없는 일이었습니다.

비 내리는 어느 날 삼촌과 친구 몇이 들이닥치자 나는 당연히 국수를 삶았습니다. 오늘도 무사히! 복불복을 빌어 마지않던 풍로는 기어이 심술을 부리고 말았습니다. 과하게 달구자 화를 낸 것이지요. 끓는 솥이 벌러덩 뒹굴고, 나는 기름 묻은 손을 씻을 새도 없이 빗속을 뛰어가 또 외상 국수를 사야 했습니다.

‘궂은 비 내리는 종점 마포는 서러워라~♬’

비 내리는 삼천포에 정든 배는 떠난다는 노래도 있지만, 마포종점 궂은비야말로 솥 뒤집어진 서러움에 걸맞습니다.

그러긴 해도 이 노래를 자주 부르지는 않습니다. 노래방이나 관광버스 분위기에 썩 어울리는 곡은 아닌 것이, 흘러간 레퍼토리에다 청승맞은 느낌이 살짝 나기 때문이지요. 나훈아 정도면 모를까, 바리톤으로야 도무지 가녀린 은방울 자매의 분위기를 낼 수 없기도 하고요. 멋진 인생을 구가하는 노래는 많잖아요. 십팔번을 듣기와 부르기로 구분할 양이면 듣기의 애창곡은 이 노랠 첫손에 꼽습니다.

그렇습니다. 독일어 회화 판이 격조 높은 클래식이라면 내게 있어 마포종점은 생존이자 불멸의 뽕짝입니다. 어느 시인의 '밥'이 격조의 뻐김을 통렬히 꾸짖었거니와, 너나없이 밥 앞에선 무력하기 마련입니다. 은방울 자매가 노랠 썩 잘 부른다고 여긴 적은 없습니다. 그런데도 가슴 시리게 느끼는 건 문예 창작을 전공한 정두수의 노랫말에 박춘석 선생이 작곡한 가락이 절묘한 데다 자취 시절의 애환이 어우러져 설 겁니다. 서울 어딘가에 마포가 있겠지만, 가보지는 않았습니다. 강 건너 영등포의 아련한 불빛과 비에 젖은 밤 전차, 그리고 돌아오지 않는 사람이 그리운 마포종점은 신암동 언덕배기에도 있었으니까요.

어느 어르신은 쓴맛이 사는 맛이라 했는데, 살아내고 보니 서러운 맛도 사는 맛이었습니다. 그러한 세월을 지나 밥술이나 먹게 되었을 때야 비로소 그 시절 그 동네를 그리게 되었는데, 그래도 가보지는 않았습니다. 아슴아슴한 옛 정경이 흐트러질까 봐 겁이 나서입니다. 맥고모麥藁帽에 둘린 낡은 필름처럼 짧고도 아련한 그 시절은 더없이 소중합니다. 풍진세상風塵世上이지만, 시린 기억의 힘만으로도 견딜 만한 요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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