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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삼겹살 / 김상영

부흐고비 2021. 6. 16. 09:00

삼겹살은 좀 침침한 골방에서 먹어야 더 맛이 난다. 그 방은 좁아서 아늑해야 하고 적당히 지저분해야 한다. 기름때 낀 포마이카 상다리의 나사가 헐거워 꺼떡거려도 상관없다. 가스레인지는 군데군데 기름얼룩이 누리끼리하게 붙어있어야 좋다. 방바닥에 사려놓은 가스 줄을 궁둥이로 슬쩍 밀치고 앉은들 어떠랴. 누런 비닐 장판은 기름기가 덜 닦여져 눅진해야 정이 간다. 방석은 이 손님 저 손님 하도 깔고 앉아서 윤이 날듯하고, 손으로 잡으면 쩍 달라붙을 것 같은 것이라야 편하다.

환풍기는 내미는 바람이니 묵은 먼지가 끼어 있은들 상관없고, 스위치 줄을 당기려 발돋움한들 뭐 그리 대수랴. 파리똥 듬성한 벽에 빌붙은 고장 난 시계는 언제나 어제 그 시각이며, 이 손님 저 환자에게 헤프게 나눠줬을 한의원 달력은 온갖 주문이 괴발개발 정겹다.

고기마다 어울리는 불판이 있을 거다. 천하의 업자들은 어떤 불판으로 맛을 더 낼까, 머리에 쥐가 나도록 연구했을 게다. 돌 판이니 뭐니 해도 삼겹살엔 그저 툭박진 무쇠로서, 둥근 귓바퀴에 동그란 걸개가 떨렁거리며 멋을 좀 부린 불판이 좋다. 거기에다 자글자글 노릇노릇 잘 구워질 수 있도록 윤이 나게 질이 났으면 더 좋다. 세척 후, 기름 두른 불판에 미처 덜 씻긴 고깃점이 한두 군데 눌어붙어 있은들 껄끄럽지 않다. 다시 익어서 무탈할 테니―.

삼겹살에 파절임이 빠진다면 팥소 빠진 찐빵이요 고무줄 없는 팬티다. 그런 파절임은 낙동강 하구 명지대파처럼 대가리가 허여멀쑥하고 굵어서 그 달콤한 즙이 입안을 한가득 적셔주니 더할 나위 없다. 상치와 들깻잎은 당연한 듯 기본인데 사각대는 배춧속까지 등장할 때가 있어 그들먹하고도 푸짐하다. 그에 더하여 소고기구이에나 올려 질 참기름까지 곁들여지면 감읍할 지경이다.

고기는 숙성된 것으로서 맛있다고 소문난 걸 내놓고는, 돈 천 원 더 받으니 나무랄 생각은 없다. 그것이 바다 건너 왔다 한들 무슨 상관이랴. 진국 같은 주인을 만났으니 제대로 맛이 날 거다.

주인장은 아줌마가 편하며, 기둥서방 없는 과부는 더 편하다. 뚱뚱한 데다 엉덩이마저 펑퍼짐하면 후해 보여 좋다. 살 뺄 여유 없이 장사에 전념하였을 것이므로 그만큼 음식 맛도 좋을 것이다.

여인네 뱃살을 숨기기엔 월남치마가 좋겠으나, 나 좋아라고 한물간 그 치마를 입어 줄 리는 만무하다. 바지를 입은들 어쩌랴, 소주 회사 판촉용 앞치마로 월남치마 시늉을 해주는 것으로 만족할 일이다.

반찬 쟁반을 든 손은 여느 촌부처럼 툭박지고 설거지하다 그냥 들어온 양, 젖은 손이 좋다. 그 손에 들린 살얼음 살짝 낀 소주병은 괴뢰군 방망이 수류탄을 닮아 폭발하여 종내에 우리를 쓰러뜨릴 모양새다.

주인장의 슬쩍 지나치는 바람에 쉰내를 약간 풍긴들 어쩌랴. 서방 없고, 일에 치이고, 볶은 머리 아까워 그럴 것인즉.

정식定食에나 올리는 생선구이를 슬쩍 들이미는 건 단골손님에 대한 정표라서 고맙다. 그뿐이랴, “너거는 어예 그클 다정하이꺼?”하며 부러워 해주는 주인장이 좋다. 그 앞에서 행복해 보이는 것이 도리가 아닌 것 같아 표정 관리에 애가 쓰여도 스멀스멀 흐뭇한 것이다. 삼겹살의 온전한 맛은 인정이 가미되어야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다.

언감생심 옛 시골에야 삼겹살이 있었을쏘냐. 큰일 치를 때 삶아 빚어내는 넓적 살을 장물에 찍어 먹으면 그만이었다. 목기쟁반에 걸쳐진 초승달 같은 그 돼지고기는 딱 한 쪼가리가 고작이었다. 끓는 물을 끼얹어 식칼로 대강 민 탓에 그조차도 털이 숭숭 난 것이 얻어걸릴 때가 있었다. 대강 씹어 꿀꺼덕 삼킨 그것이 목구멍을 타고 내릴 땐 약간 껄끄럽긴 해도 이것저것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삼겹살 구이가 돼지고기의 진수란 걸 알게 된 것은 걸신들린 그 세월을 지나 대처에서 살 때였다. 늦게 배운 도둑질 날 새는 줄 모른다고, 고소한 그 맛에 홀딱 반한 나는 하루가 멀다고 퇴근길에 동료와 어울려 삼겹살집을 거쳤다. 주인장에게서 길든 불판을 선물 받을 정도였으니 그야말로 번질나게도 드나들었다.

그즈음이었을까, 내 고향 두메에도 발전이란 게 있어 삼겹살이 제법 유행인 듯싶었다. 초가지붕을 걷고 슬레이트를 이다가 남은 조각은, 골골 따라 기름이 졸졸 흘러내려 불판으로 더할 나위 없었다. 그것이 암을 일으키는 석면을 함유하고 있음을 뒤늦게 알아차린 사람들은 속이 느글거려서 ‘퉤퉤~ 아이고 뜨거라!’ 하며 맛있던 그 세월을 지우고 싶었을 게다.

시골이나 도회 할 것 없이 음식점이 많이도 생겼다. 한식, 양식, 중식, 일식 또 무슨 식이 있을 것도 같다. 비싸다는 곳은 가보지 못해도 이집 저집 싼 곳은 자주 가게 된다. 음식값이야 집집이 고만고만해서 별 차이가 없지만, 하루가 멀다고 사 먹으니 가랑비에 옷 젖는 격이다.

혼자는 외로워서 자네 한 번 나 두 번 사게 되는데, 그렇다 한들 얻어먹을 때는 불안하고 내가 낼 때는 갈빗대가 휘청하니 그곳의 분위기와 음식 맛을 제대로 감상할 수 없는 게 흠이다. 그러므로 내가 즐겨가게 되는 곳은 그 칙칙한 삼겹살집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내 친애하는 삼겹살집 아줌마도 자꾸만 방을 늘리고 새 시설을 갖추고 싶은 욕심을 가진 듯하다. 그 명당이 없어진다면 마음 편히 갈 수 있는 곳이 또 하나 줄어들지 않을까 걱정이다.

돈을 벌고, 나보다 더 훌륭한 고객을 맞고 싶은 것을 어찌 말리겠나. 다만 내가 들락거리는 장터에만은 오래도록 그냥 그대로 남아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러면 나는 어느 어스름한 저녁, 술 고프고 출출할 때 내 친구들을 몰고 그 집으로 쳐들어갈 것이다. 소주 일병과 맥주 이병을 우선 청한 뒤 간을 맞추고서, 불판이 달궈질 아까운 막간에 반찬 나부랭이를 안주 삼아 잔 대어 보자고 외칠 것이다.

"위하야!"

그러면 아내는 은근한 잔소리로 말릴 것이다.

"앗따, 고기 꾸버지마 조근조그이 마시소."

나는 그 소리를 노래처럼 들으며 느긋해 할 것이다.

화력은 당연히 내가 조절하여 삼겹살에 걸맞게 딱 세 번만 뒤집어 최고의 맛을 낼 거다.

술병들이 대책 없이 나뒹굴 때쯤이면 알딸딸한 기운을 빌어 옆 상에 앉은 이웃들에게 고기 근이나 소주 몇 병을 호기롭게 쏠지도 모른다. 그러면 그 이웃도 세상을 겁 많게 사는 사람들이니 나를 보고, 어느 동네 뉘 집 손인지 알아차리고 수십 년 만에 귀향하더니 인사성 밝고 참 인정 있다 할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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