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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수저 한 매 / 김인기

부흐고비 2021. 6. 23. 08:51

옴마니반메훔! 밥이 하늘이었다. 사람들은 쉬이 다반사(茶飯事)를 말하지만, 그러나 누구라도 다(茶)를 잊을 수는 있어도 밥을 거를 수는 없다. 그러니 우선 수저부터 한 매 챙겨야지. 설령 밥이야 밖에서 험하게 먹더라도 수저는 꼭 좋은 걸로 한 매 챙겨야지.

참선(參禪)이 다 뭐더냐! 이 수저가 바로 화두(話頭)로다. 나도 이미 예전에 이걸 실감했다. 짝이 맞지도 않는 수저를 잡고 밥을 먹자니, 어쩐지 내 인생마저 비루해져. 그래서 나도 한때 반듯한 수저 한 매를 챙겨 다녔다.

수저를 들고 다니는 내 소행을 두고 메뚜기는 논에서 별스럽다 했다. 그 말이 아주 그른 것도 아니다. 그러나 나도 남의 집이나 식당에 손님으로 가서 내 수저로 밥을 먹지는 않았다. 나는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살고자 했으니까. 그런데도 눅눅한 날 홀로 밥을 먹을 적이면, 나도 숟가락으로 밥알을 꾹꾹 누르고 만다.

사람이란 귀하게 보면 참 귀한 존재이지만, 천하게 보면 그 정도로 천한 존재이다. 마구 먹고 시끄럽게 떠벌리다 끝내 늙고 병들어 죽는 운명을 보나, 내 하루하루 연명하는 꼴을 보나, 살아도 살아도 제대로 살기는 사는 것인지 의아스럽다. 그러면서도 때로는 온갖 모습들이 그지없이 아름답다. 삼라만상이 늘 이렇다면, 내 굳이 해탈을 꿈꾸지 않아도 좋으리.

칠성무당벌레는 숲에서 말한다. 아마 이 순간에도 어디선가 그 누군가 굵은 눈물 뚝뚝 흘리며 어설픈 수저 더 어설프게 잡고 꾸역꾸역 밥을 먹을 것이다. 과연 그는 언젠가 내가 겪었던 바로 그런 마음으로 그렇게 그렇겠지.

“이 놈아, 그 눈물도 그럴 여력이 있어 흘리는 줄이나 알아라, 이 쓸개 빠진 놈아!”

이런 매운 덕담 몇 바가지 더 얻어먹으면 그 눈물도 보석이 되려나. 하지만 아직은 그 놈도 서럽기만 하리라. 놈은 그저 복받치는 설움 주체하지 못해 눈물 콧물 쏟으며 가소롭게도 신세 한탄이나 하겠지.

누구라도 세상을 살면서 한 번도 사는 게 고달프다 외롭다 울어 보지 못한다면, 기실 그것도 불행이다. 어쩌면 그런 놈들은 인간도 아니라는 게 더 적절한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궂은 날을 대비해 수저 한 매 챙기는 위인의 소행은 어떻게 봐야 하는가? 하하, 부전나비가 뭐라 하더냐, 호랑나비가 뭐라 하더냐.

누구는 내게 아주 겁이 많은 좀팽이의 방패를 말했고, 누구는 내게 이런저런 물정을 다 알아 버린 생활인의 고집을 말했다. 수저 한 매를 두고, 바로 이 수저 한 매를 두고, 누구는 내게 세상사에 더 미련이 없어진 회의주의자의 균형추(均衡錘)를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이게 평범한 인간이 드러내는 소박한 유머 감각이었으면 좋겠다. 옴마니반메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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