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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봄꽃이라는 소식 / 김인기

부흐고비 2021. 6. 23. 13:18

벚꽃과 개나리꽃이 막 피어나는 철이라 이제는 정말 봄이구나 싶은 이즈음에 류인서 시인이 내게 시집 한 권을 우송했다. 불현듯 나는 시인의 통통한 볼이 생각났다. 그러나 류 시인한테는 섭섭한 소리이겠지만, 지금 보기에 좋다는 저 볼도 세월을 이길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니까 저것도 조만간 바람 빠진 축구공이 되겠지. 하, 그래도 애써 낸 작품집을 보내준 사람한테 이런 망발이나 해대다니, 역시 나란 인간은 몹쓸 부류이다. 내가 이렇게 반성하면서 시집을 펼치니 이런 글이 보인다.

봉투를 열자 전갈이 기어 나왔다
나는 전갈에 물렸다
소식에 물렸다
전갈이라는 소식에 물렸다

이게 류 시인의 시 「전갈」 첫째 연이다. 이걸 읽자마자 나는 근래 내 주위에 출몰했던 전갈이 생각났다. 나는 봉투를 열지도 않았는데, 이것이 문득 나타났다. 그리고는 놈이 그만 배 선생을 앗아갔는데, 그간 선생은 늘 신통방통하게 우리들을 즐겁게 하였는데.

연전에 문학기행을 가는 길에 선생은 그랬다, 발바닥이 움푹 들어간 이유는 지구가 둥글기 때문이라고, 겨울에 새들이 남쪽으로 날아가는 이유는 걸어갈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학생들이 아침에 학교로 가는 건 학교가 학생들한테로 올 수 없기 때문이라고. 아, 또 있다. 사람의 콧구멍이 두 개인 이유는? 이건 바로 ‘코 후비다가 숨이 막혀 죽을까봐’가 정답이었다.

‘기회가 생기면 다 배운다.’ 마치 이런 걸 모토로 삼기라도 한 듯 선생은 참으로 다양한 것들을 익혔다. 그림·사진·동화·아코디언……. 선생은 이것들에 다 어느 정도의 수준에 이르렀는데, 그랬는데, 바로 지난 7일에 배드민턴을 치다가 그만 심장마비를 만나고 말았다.

사람 앞날은 아무도 모른다. 아마도 이걸 선생만큼 우리들한테 절감하게 한 분도 없으리라. 나도 정말 이럴 줄은 몰랐다. 몇 달 전이었던가. 나는 몇몇 분과 함께 커피를 마시러 갔다. 이 자리에서 내가 선생한테 평소에 궁금했던 바를 물었다. 그래서 나는 누드화에 대해 더 잘 알게 되었다.

혹자는 제 마음을 자기도 모르노라 한다. 특히 남녀관계에서 혼란을 겪는 이들이 더러 있다. 그러나 나는 이런 판단을 쉽게 한다. 나는 누드화를 두고도 다르지 않다. 나는 자신을 그 상대로 상상해 본다. 이런저런 허울 다 던져버리고 직접 다가가 내내 어루만지고 껴안아 보고 싶으면, 나는 이걸로 충분하다. 그게 명화냐 아니냐 하는 건 내 관심사도 아니다.

선생은 사십 년 넘게 교직에 있다가 교장으로 정년을 맞았다. 그래도 여느 사람들과는 또 다르게 사고가 유연했다. 무엇보다도 남들의 말을 들을 줄 알았으니까. 그렇다고 하여 고집 또는 소신이라 할 게 없었던 것도 아니다. 그게 더러는 나와 달랐어도, 결과를 두고 보면, 그것 또한 내게는 유익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이것이다.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이 시대에 누구라도 뭘 알아야 하지 않느냐? 그런 만큼 교사도 열심히 준비해서 학생들한테 많이 가르쳐야 한다. 그런데 저들은 뭐 저러냐? 교육정상화니 뭐니 하면서도 수업은 제대로 하지 않고 시간만 보내지 않느냐? 그래서 교장이 왜 그러느냐 물으니 담당교사는 노는 것도 공부라고 하더라.”

배 선생이 꼭 이렇게 표현한 건 아니지만, 그 뜻을 헤아리면 대체로 그랬다. 더군다나 일부 교사들이 학생들의 실력을 가늠할 시험마저 반대해서 큰일이라는 개탄이었다. 그러면 이와 다른 쪽 주장은 어떻게 될까? 내 생각엔 아마도 이럴 것만 같다.

“밤낮으로 경쟁하며 공부랍시고 했다는 게 다 뭐냐? 자본이나 권력의 종복 노릇이나 하면서 성공이라 착각하고, 제 온당한 권익조차 당당하게 옹호할 길을 열지 못해 사사롭게 연줄이나 찾아다닌다. 소위 배웠다는 것들일수록 더욱 잔인하고 배타적이며 이기적이다. 이건 다 망하자는 작태이다. 이런 꼴로 누가 감히 교육을 들먹이느냐?”

그런데 이런 이야기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이쪽은 저쪽을 보고 교사들이 신성한 교단에서 순진한 학생들한테 정치 선동이나 해댄다고 분노하고, 저쪽은 이쪽을 보고 무늬만 교사인 기술자들이 학생들을 아무런 비판정신도 없는 바보로 만든다고 성토한다. 그러면 아이들을 학교로 보내는 학부모들은? 이들은 또 이들대로 처지가 다르다.

이렇게 다 제각각이다. 그런 만큼 사실은 누가 누굴 설득하기도 어렵거니와 사사건건 꼭 그래야 하는 것도 아니다. 때로는 그게 부당한 간섭이기도 하니까. 그러니까 웬만하면 저마다의 한계를 자인하고 공조하자. 의당당 그 방식에서도 지배와 복종이 아니라 연대와 자율이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면 아마도 한동안은 시행착오에 따르는 비효율도 나타날 것이다.

‘그러나 과연 사람들이 이런 걸 얼마나 견딜 수 있을까?’

과연 이것도 걱정스러운 바이다. 또 이런 와중에도 사람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이러면 이런 대로 저러면 저런 대로 해야 할 일도 있을 테고. 배 선생도 이승을 떠나버렸고. 나는 선생과 언제 이런 걸로 언쟁을 벌인 적도 없다. 만약에 그랬더라면 잘잘못을 불문하고 나는 아마도 편치 않았을 것이다. 나는 교직에 있는 사람이 아니어서 이런 현안을 두고 당장 따따부따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전갈이라는 소식’과 조금 닮은 ‘봄꽃이라는 소식’이나 전하려는데, 그렇다고 내가 그런 것들과 아주 무관할까? 나는 아마 그럴 수도 없을 것이다.

아무튼, 당신이 내게 등이 푸른 지독한 전갈을 보냈으니
그 봉투를 그득 채울 답을 가져오라 했음을 알겠다
긴 여름을 다 허비해서라도
사루비아 씨앗을 담아오라 했음을 알겠다

이건 류 시인의 시 「전갈」 셋째 연이다. 둘째 연은 내가 전갈의 독에 정신을 잃어 그만 빠뜨렸다. 아마 시인도 이런 나를 탓하지 않으리. 한때 배부성 선생은 학교가 학생들한테 오지 않아서 학생들이 학교로 간다고 했다. 그렇다면 천국이 이리로 오지 않아서 선생은 그리로 갔을까? 이승에서 재미난 분이었으니 저승에서도 그럴 텐데, 어쩌면 내가 이렇게 시집을 뒤적이는 걸 보고 선생이 가만가만 아코디언을 연주할지도 모르겠다. 그게 아니라면, 거 뭣이냐, 선생은 막 피어나는 봄꽃이 그리워 몰래 저승의 울타리를 넘었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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