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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하정소하(夏精小話) / 윤오영

부흐고비 2021. 6. 24. 08:33

내 봄을 사랑함은 꽃을 사랑하는 까닭이오. 겨울을 사랑함은 눈을 사랑하는 까닭이요, 가을을 사랑함은 맑은 바람을 사랑하는 까닭이다. 그러나 봄을 사랑하고 꽃을 사랑함은 실은 추운 겨울을 벗어난 기쁨이요, 맑은 바람을 사랑하고 가을을 사랑함은 뜨거운 여름에서 벗어난 기쁨이다. 만일 겨울의 추움과 여름의 뜨거움이 없었다면 봄과 가을이 그처럼 반갑지는 못했을 것이다. 여름은 오직 뜨거울 뿐이다. 그 무덥고 훈증하고 찌는 듯한 여름을 좋아할 사람은 적다. 그래서 여름은 모두 피하려 한다. 피서란 여기서 온 말이다. 그러나 나는 결코 더위를 피하려 하지 않는다. 만일 내가 여름에 여행을 하고 수석을 찾은 일이 있다면 그것은 피서를 위해서가 아니요 휴가를 이용했을 뿐이다. 더우면 더울수록 기쁨으로 참는다.

​ 땀이 철철 흐르고 숨이 턱턱 막히며 풀잎이 바짝바짝 마르고 흙이 쩍쩍 갈라져 홍로 속에 들어앉은 것 같지만, 무던히 즐겁게 참아 나가는 것은 한줄기 취우를 기다리는 마음에서다.

​ 이와 같이 달구어 놓고 나야 먹구름 속에서 천둥번개가 일고 장대 같은 빗줄기가 쏟아진다. 그때의 상쾌함이란 어디다 견줄 것인가. 금방 폭포 같은 물이 사방에서 쏟아지고 뜰이 바다가 되어 은방울이 떴다 흩어졌다 구르는 장관, 그 상쾌함이란 또 어디다 견줄 것인가. 비가 뚝 그친 뒤에 거쳐오는 상쾌한 바람, 싱싱하게 살아나는 푸른 숲, 씻은 듯 깨끗한 산봉우리, 쏴하고 가지마다 들려오는 매미소리, 그 청신함이란 가을을 열두 배하고도 남음이 있다. 더위를 참고 극복하는 즐거움이란 산정을 향하여 험준한 계곡을 정복하는 등산가의 즐거움이다.

​ 험준한 산악을 정복하는 쾌감도 좋지만, 소요자적하는 산책의 취미는 더욱 그윽한 데가 있다. 여름에는 여기에 견줄만한 즐거움이 또 있으니 저녁 후의 납량이 그것이다. 하루의 찌는 듯한 더위가 서서히 물러가고 선선한 바람이 황혼을 타고 불어온다. 이때 건건이 발로 베적삼을 풀어헤치고 둥근 미선을 손에 든 채 뜰에 내려 못 가에 앉아 솔바람을 쏘인다. 강이 보이는 언덕이면 더욱 좋고, 수양버들이 날리는 방죽, 하향이 떠오른 못 가, 게다가 동산에서 달이 떠오르면 그 청쾌함이란 또 어떠한가. 어렸을 때 본 기억이지만 베 고이적삼을 걸친 촌옹들이 등꽃이 축축 늘어진 정자나무 밑에서 납량하던 모습이 이제와선 한 폭의 신선도같이 떠오른다. 또 귀가댁 젊은 여인들이, 잠자리 날개 같은 생초적삼에 물색고운 갑사치마, 제각기 손에 태극선을 들고 연당에서 달을 보며 납량하던 모습은 천상미인도라고나 할까. 그러나 이제 비좁고 복잡한 서울의 거리, 흙내조차 아쉬운 두옥사는 사람들에게는 납량이란 꿈같이 환상처럼 느껴질 것이다.

​ 내가 짐을 꾸려가지고 처음 이 돈암동 구석을 찾아온 것은 어느 해 여름철이었다. 콧구멍 같은 집에서 진땀을 흘렸다. 어느 날 밤늦게 잠이 깨인 나는 우리 집 건너편에 야트막한 동산이 있었던 것을 생각해 내고 가만히 일어서서 대문 밖으로 나갔다. 판잣집이 옹기종기 있는 골목 사이로 아카시아 나무 밑을 지나 언덕길로 가면 쉽게 등성에 올라갈 수 있었다. 군데군데 나무가 서있고 드문드문 바위도 깔려있었다. 우선 시원한 바람이 흉금을 상쾌하게 했다. 주위는 말할 수 없이 고요하고 어둠은 끝없는 바다같이 퍼졌는데 시내의 등불들이 하늘의 뭇별인양 아름다웠다. 이렇게 시원하고 아름다운 풍경일 줄은 몰랐다.

​ "만호의 등불 빛은 별처럼 반짝이고 온 하늘의 저문 빛은 망망한 바다 같네" 백락천은 이사가서 오동나무에 걸린 달을 보고 흥에 겨워 집값을 더 주었다지만 나는 이 동산 주인을 찾아가 세전을 얼마나 치루어야 족할 것인가. 나는 이사를 참 잘 왔다고 생각했다. 그 후, 이 작은 언덕은 나의 유일한 납량처가 되었다.

​ "띠집 세칸이 만금에 값한다." "성 가운데 절로 작은 산림이 있네" 이 동산이 이웃에 있음으로 해서 내 집은 만금이 싸다고 자부했다. 달밤이면 더욱 아름다웠다. 푸른 잔디가 달빛에 젖고 어른 거리는 나무 그림자가 물에 뜬 마름 같고, 호수같이 고인 그 달빛! 정밀이 이속에 있고 청허가 이속에 있었다. 불시의 청추가 여기 있다.

​ 어느 달밤에 밤이 훨씬 깊어서 올라갔더니 내가 늘 앉았던 바위에 한 여인이 앉아있었다. 월하미인이라더니 달밤이라 그런지 매우 아름다웠다. 그 단아하게 앉은 자태며, 한복 차림의 청초한 모습이 그림 같았다. 한참 바라보다가 미안한 생각에 앞을 지나 등성 너머로 자리를 옮겼다. 한 식경이나 넘어서 돌아와보니 그 여인은 여전히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 나를 보자 가만히 고개를 들어 약간 미소를 띠며

​ "선생님댁이 이 근처세요?" 묻는다. 나는 의아했다.

​ "더러 뵈온 건요." 나는 더욱 의아해서

​ "어디서?" 물었으나 그는 대답이 없었다. 나도 더 묻지 않고 천천히 내려왔다. 그 후 나는 늘 오르내렸으나 그 여인은 나타나지 아니했다. 아직 그 여인이 누구인지 모른다. 때때로 바위 위에 앉은 그 모습이 떠오르기는 한다. 그러나 나는 더 묻지 않아 좋았다고 생각한다. 만일 그가 어느 다방 마담이었거나 범속한 여인이었다면 "월하미인"으로 길이 그 자리에 머무르게 하며 한 폭의 풍경화로 간직하느니 보다 아예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 동산도 없어지고 그 자리에는 고층 주택 세 채가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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