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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풀빛 원피스 / 조향미

부흐고비 2021. 6. 24. 08:31

예뻤다. 풀빛 원피스에 하얀 구두를 신고 단아하게 앉아있었다. 창가에 달린 햇살 한줌이 뽀얀 얼굴위에 발그스레한 연지처럼 모여 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철지난 해풍에 그녀의 머리카락이 가볍게 흔들렸다. 미소를 머금으며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학처럼 부드럽고 우아하였다.

중학교 일학년 여름 방학이 끝날 무렵이었다. 아버지는 우리에게 중요한 약속이 있음을 알렸다. 동생과 나는 그저 가족 나들이 인줄만 알았으나 언니들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송도에 있는 음식점으로 갔다. 바다 풍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잘 꾸며진 이층 별실이었다.

그곳에 들어서자 미리 와 기다리던 그녀는 웃으며 우리를 맞이했다. 처음 본 여인의 반기는 모습이 어색하게 느껴졌다. 저 사람이 누구인지. 왜 우리와 같이 밥을 먹는 건지. 아버지의 헤픈 웃음이 어쩐지 낯설었다.

이듬해 봄. 그녀는 아버지와 재혼을 하고 우리 집으로 들어왔다. 아버지는 쉰하나, 그녀는 마흔이었다. 당시로서는 시대를 앞선 여자였다. 클래식 음악을 즐겨 들었으며 서양요리도 잘했다. 우리가 듣기 거북한 말은 아버지와 일본어로 얘기를 나누곤 했다. 세련되었으나 개성이 강하였다.

고분한 태도는 처음 얼마간뿐이었다. 세월이 흐르자 집안 대소사의 모든 결정권이 아버지에게 있는 것에 그녀의 반기도 만만찮았다. 나는 그때 아버지 뜻에 반대하는 사람을 처음 보았고 양보하는 아버지도 처음 보았다. 요조숙녀 모습은 간데없고 전장의 전위대처럼 앞서가고 목소리도 커졌다. 한동안 그녀와 아버지의 갈등으로 집안 분위기가 비 오는 그믐밤처럼 어둡고 무거웠다.

그러나 그녀는 교육에 관한 한 시대를 앞선 사고를 가졌다. 나의 대학 진로에 적극 지지해 주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그림그리기를 좋아했고 대회에 나가기만 하면 제법 굵직한 상을 받아오곤 했다. 자연히 미대에 진학하고 싶었다.

당시 기성세대는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밥 빌어먹는 일이라고 천박하게 취급하였다. 체면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아버지는 딸이 예능 쪽으로 전공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노릇이었다. 그래도 그녀는 여자들도 재능을 살려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그녀의 주장이 아버지의 편견을 이겼다. 덕분에 나는 원하던 서양화 전공의 길로 들어설 수 있었다.

고부 관계인 할머니와는 견원지간처럼 좋지 않았다. 가난한 어촌 마을에서 아들을 일본으로 유학 보낼 정도로 강단 있는 할머니와 할 말 다하는 그녀는 사사건건 부딪혔다. 대찼던 아들이 기센 며느리에게 밀리는 것을 본 할머니는 기함하였다. 착하고 순종적이었던 첫 며느리와는 정 반대였다. 아버지의 난감하고 불편해하는 낯빛에 할머니는 작은 아들네로 딸네 집으로 몇 달을 유랑하다 시피하고 오시곤 했다.

집안의 절대 권력인 아버지는 경제권을 무기로 가족의 화합을 강요했다. 아직 학생이었던 우리 형제는 이런저런 불만이 있어도 속으로만 삭였다. 그러나 올 곧은 작은 언니는 그녀에 대한 거부가 유독 심해 언제 붙을지 모르는 불씨가 되었다. 조마조마한 두 사람의 대립은 아버지의 불호령으로 냉전을 이어갔다. 그럴수록 감정의 골이 깊어지고 터지지 못한 휴화산처럼 모두 불만이 쌓여갔다. 위태위태하던 가족 간의 반목은 아버지의 병환으로 모든 것이 묻혀버렸다.

이삼 년의 투병 생활 후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장례식이 지나고 그녀는 거처를 친정 쪽으로 옮겼다. 자신의 짐을 싣고 난 뒤 시집 올 때 큰 절 인사 했듯이 할머니에게 마지막 큰 절을 하고 떠났다. 아마 그녀도 살아서는 만나지 못할 거라는 걸 예감했을까. 아버지의 첫 제사 때도 오지 않았다. 그 후로 연락이 끊겼다. 고모들이나 숙모들은 차라리 그렇게 인연이 끝난 게 서로를 위해서 잘된 일이라 했다. 야속한 어른들이 섭섭했지만 나로서는 아무런 결정권이 없었다.

이십여 년이 지난 어느 해 낯선 동네의 주민 센터에서 한 통의 전화가 왔다. ㅇㅇㅇ씨를 아느냐고 물었다. 너무 오랜만에 듣는 이름이라 기억의 밑바닥에서 그 이름을 떠올리기에는 잠시 시간이 필요했다. 뜨악하기도 하고 이상하게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알긴 아는데 무슨 일로......”

사회복지 담당자였다. 수급 신청을 했는데 자녀가 호적에 올려져있어 조사해야한다고 했다. 자초지종을 얘기하고 난 후 그 분 사시는 주소를 알려 달라하니 개인 정보라 알려줄 수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헤어져 남남이 되었지만 내게 뭔가 모를 아쉬움이나 마음의 빚이 있었던 것 같다. 나도 그때 그녀 나이를 훌쩍 넘기고 보니 이해 될 수 있는 여유와 포용이 생겨서 일까. 하지만 이제 그녀에 대한 생각은 접기로 했다. 언니들의 만류만이 이유가 아니다. 인연이 남았다면 언젠가는 만나겠지. 그 후 지금까지 어떤 소식도 없다.

헤어진 지 사십 년 가까이 지났다. 어떻게 사는지. 건강하신지. 살아 있다면 아흔을 바라보는 연세다. 지금도 생각하면 풀빛 원피스 곱게 입은 그녀가 아련히 떠오른다. 내 기억 속의 어머니는 환자복을 입고 있는데 그녀의 젊고 역동적인 모습이 필름처럼 지나간다. 인생의 한 고비를 같이한 인연으로 서운한 마음도 미련도 풀어낸다. 이제는 풀빛 원피스 입은 여자를 보내야 한다. 머물러 있는 젊은 날의 아픈 그늘을 벗어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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