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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어떤 동거 / 손금희

부흐고비 2021. 7. 1. 19:22

며칠 전 이웃으로 지내던 지인이 돌로 만든 호랑이 한 마리를 안고 찾아왔다. 낡은 집을 헐고 집을 짓는 일터에서 집주인이 두고 간 것이라 하였다. 건강이 좋지 않아 어머니 혼자 시골에 가신 것을 아시고는 아파트보다 시골농장에 어울릴 것 같아 챙겨 왔다고 하였다.

주말이 되어서야 남편의 품에 안겨 들어서는 것을 어머니는 무엇이냐고 물었다. 남편은 지킴이 호랑이 데려왔다고 농을 하며 마당에 놓았다. 호랑이의 매서운 눈매와 날카로운 이빨이 예사롭지 않았다. 군더더기 없는 몸의 얼룩무늬들은 살아 움직이는 듯하였다. 몸을 지탱하고 있는 다리의 근육과 힘줄은 금방이라도 먹이를 낚아챌 것 같아 보였다. 당신의 천국에 온 것을 환영이라도 하는지 어머니는 어느새 다가가 달래 듯 어루만지고 있었다.

지금에야 병약한 어머니도 한때는 저 호랑이처럼 눈을 부라리며 날을 새워야만 하였던 적이 있었다. 호락호락하지 않은 삶속에서 자식들을 지키기 위해 억척스럽고 악착스럽게 변해야만 하였다.

아직 터가 고르지 못하여 변변한 방 한 칸 지어드리지 못했지만 어머니는 이곳을 자칭 천국이라며 여기시며 텃밭을 일구신다. 봄이면 나물 캐고 가을에는 곶감 만들어 지인들에게 나누어 주는 재미로 세월 가는 줄 모르는 귀농 3년차 할머니가 되었다.

쓰러져 병원에 계시는 동안 몇 번이나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의사의 권유에 가슴을 쓸어내려야만하였다. 그러던 중 퇴원을 하게 되었고 당신 몸을 부축 없이는 일어나 앉기조차 힘들게 되었다. 집안에만 있는 것이 안타까워 드라이브 차 들렀던 곳이었다.

주변을 둘러보고는 숨을 고르더니 당신을 이곳에서 살게 해 달라고 하였다. 산세도 마을의 모습도 당신 어렸을 때 살던 고향과 흡사하다고 하면서 어린아이처럼 떼를 쓰셨다.

가파른 산에 터를 다듬었으나 다져질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채근을 하였다. 급한 마음에 큰 하우스 앞 쉼터로 지었던 간이 하우스를 구해 어머니만의 궁전을 지었다. 아주 추운 한 겨울에 그렇게 어머니의 귀농생활은 아니 천국생활은 시작되었다. 엉성하기 이를 데 없는 집은 물 컵의 물을 얼리고 외풍은 볼과 콧잔등을 시리게 하였지만 어머니는 무척 행복해 하였다.

어머니의 어린 시절 산골생활은 산을 아무리 개간하여 농사를 지어도 살림살이는 늘 어렵고 배고팠다. 가난의 멍이 깊은 탓인지 어머니의 가슴에는 시대가 변했음에도 부농의 꿈을 저버리지 못하였다. 굳은살이 된 꿈은 자식들 다 키우고 나면 귀농하여 농사일을 실컷 하는 것이 평생소원이 되었다.

척박하고 가파른 산을 보며 내 평생 내 땅에 농사를 지을 수 있게 되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노라며 강한 의지를 보였다.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주인공 스칼렛이 목화농장에서 내일의 태양을 기약하듯이 어머니도 내일을 기약하는 듯하였다.

신발이 무거워 맨발로 당신의 평생소원을 이루기 위하여 줄기차게 오르내렸다. 몸을 가누지 못하여 하루에도 몇 번씩 넘어 지셨다. 심지어 수도 없이 굴러 떨어지니 온몸에 피멍이 가시지 않는 어머니를 뵙고 돌아오는 길은 늘 마음이 무거웠다.

더러 지인이나 친척 중에는 병든 어머니를 모시기 싫어서 21세기 고려장이라도 치른 듯 곱지 않은 시선을 보여 마음이 상하기도 하였다. 이제는 넘어지는 일도 없거니와 이웃들과 관광도 다니신다. 마을 사람들은 어머니께서 이곳에 터 잡으신 것은 당신이 살기 위해 하신 것이라 하였다.

텃밭에는 콩, 상추, 오이, 가지, 토마토, 당귀, 도라지, 취나물, 머위 등등 다양하다. 어머니는 저녁에 먹을 부추와 상추를 따느라 바쁘게 손을 움직이신다.

먼지를 많이 덮어 쓴 호랑이를 옮겨와 샤워를 시키며 마음에 드느냐고 넌지시 물어 보았다.

“처음이라 그런지 썩 마음이 가지 않는다. 자꾸 보면 어떨란가 몰라도.”

“멧돼지나 노루니 온갖 짐승들이 돌아다니는데 호랑이가 지켜주니 얼마나 든든해.”

“아니, 가가 집을 지키고 나를 지켜준다꼬.” 어머니는 웃으며 말을 이어셨다.

“오히려 지나 내 덕 볼라카겠다. 호랑이는 무슨 고양이 같구마는 크기도 딱 고양이구나는….” 하는 바람에 우리는 한참을 웃었다.

양치질도 해야지 하며 입에 호스를 물렸다. 깜짝 놀랐다. 송곳니가 네 개여야 하는데 세 개 밖에 없다. 자세히 살펴보니 아래 송곳니가 빠진 호랑이였다. 당당하던 카리스마는 오간 데 없고 짠한 마음이 가슴을 서늘하게 적신다. 어머니는 이미 알고 계셨을까? 호랑이도 세월에 못 이겨 지친 것을…

어머니와 이빨 빠진 호랑이의 첫 날이 저물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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