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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고덕산 가는 길 / 박광안

부흐고비 2021. 7. 2. 08:36

인생의 길에는 매순간 선택의 연속이다. 코로나19의 불청객이 나타나 갈 길을 막아버렸다. 날씨는 화창한 봄날 꽃들은 만발하였다. 답답하여 홀로 고덕산을 향하였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십여 년 전에 등산모임에서 다녀온 일이 떠올랐다. 동물원에서 출발하는 1000번의 버스를 집 앞에서 타고 시내를 돌아 좁은 목 약수터 앞에서 내렸다.

시계를 보니 10시를 가리키며 초침은 째깍 째깍 가고 있었다. 나도 뚜벅뚜벅 한걸음씩 산을 오르기 시작하였다. 옛 추억을 생각하며 여유로운 시간이었다. 표지판에 대승사와 남고사 길이 나타났다.

첫 번째 선택의 순간이다. 어떤 결과가 나타날지는 알 수 없다. 대승사 길로 향했다. 한참을 가니 백구 네 마리가 달려 나와 멍멍 짖어댄다. 겁이 났지만 조용히 걸어가니 달려들지는 않았다. 인기척은 없고 절의 모습은 초라하여 발길이 끊긴지 오래된 것 같았다. 한 바퀴 돌아보니 돌탑과 불상은 이끼와 잡초에 묻혀 외로이 서 있었다. 갈 길이 막혀 허무한 마음으로 되돌아 나와 남고사로 가는 길에 들어섰다. 한참을 오르니 바위능선이 나타나 발걸음이 조심스러웠다. 겉옷을 벗어 가방에 넣고 물 한 모금을 마시니 시원한 바람에 마음이 상쾌해 졌다.

인생길에도 이러한 여러 가지 변화가 나타난다. 나무들을 벗 삼아 발걸음을 옮겼다. 이마에 땀방울이 맺힐 무렵 억경대가 나타났다. 전망대에 오르니 전주 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오른쪽은 치명자산 동고사가 있고 그 밑으로 흐르는 맑은 물은 한벽당을 거쳐 유유히 흘러가고 있었다. 천년고도 전주의 상징 한옥마을에 오목대가 보였다. 600여 채 기와집이 오순도순 이야기하고 있는 것처럼 다정스러웠다. 왼쪽으로는 학산과 완산칠봉이 그 너머로 모악산이 구름위에 걸쳐있다. 6각 정자에서 내려와 남고산성으로 내려가니 길이 끊겨 발걸음을 되돌리고 말았다. 한참을 걸으니 남고사로 가는 길과 산성 길로 나누어진다.

두 번째 선택의 순간이다. 한참을 망설이다 남고사 쪽으로 가니 오른쪽으로 남고사가 나타났다. 경내를 한 바퀴 돌아보니 생각나는 것이 떠오른다. 석양에 은은하게 울려 퍼지는 종소리가 남고모종이라고 한다. 전주팔경에 들어가 아름다운 울림이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남고산성 둘레길 따라 한참을 내려가니 만경대가 나타났다. 정몽주 우국 시로 만경대 입각서는 전주향토 문화유산 1호라고 쓰여 있었다. 처음 보는 것으로 충성심에 머리가 숙여졌다. 임은 가고 없어도 충혼은 역사 속으로 흐르고 있었다. 눈앞에 보이는 삼경사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경사가 급해서 줄을 잡고 속도를 조절하였다. 서암문지를 지나 걸으니 삼경사 입구가 나타났다. 한 바퀴 돌아보니 자비의 가르침에 젖어 마음이 편안해졌다.

세 번째 갈림길에서 선택의 순간이다. 450m 전방에는 관성 묘가 있고 오른쪽으로는 천경대 가는 길이다. 시계를 보니 12시가 되어 아쉽지만 천경대 가는 길로 들어섰다. 남고산성 둘레는 약 3㎞로 원형모습은 많이 유실되어 보수된 곳이 많았다. 오르막길로 다시 땀이 나기 시작하였다. 오늘은 외로운 인생길 가는 길에 새로운 것이 많이 나타나고 있었다.

천경 대에 올라섰다. 새로운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산들은 푸름과 꽃들로 감싸여 때를 만나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다. 땀을 흘리고 수고하면 이와 같이 기쁨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 젊은이가 산악자전거를 끌고 힘들게 올라오고 있었다. 어디서 오느냐고 물으니 고덕산에서 오고 있다고 하였다. 취미도 각양각색이다. 나름대로 특색이 있어 좋고 나쁨을 말할 수 없다. 서로 반대방향으로 발길을 돌리며 짧은 만남 긴 여운을 남겼다. 고덕산을 바라보며 평탄한 길을 걸었다.

동포루지의 쉼터에서 시계를 보니 1시가 되어간다. 김밥과 과일로 점심을 하고 나니 햇볕이 따가워 나른하였다. 의자에 누워 흘러가는 구름을 바라보니 정처 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나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지 무엇을 남기고 가야하는지를 마음 판에 그려보았다. 일어나 갈 길을 찾으니 지금부터는 성곽 길을 벗어나 오솔길에 들어서니 고요함마저 들었다. 오고가는 사람이 없어 오늘 만난사람이 십여 명도 안 된다. 좌측으로 내려가면 고덕산장이고 900m 곧장 가면 고덕산 정상이다. 나의 오늘 목표는 고덕산 이므로 앞으로 나갔다. 가파른 길을 만나니 나무계단으로 보기 좋게 만들어 놓았다. 전에는 없었는데 언제 만들었는지 찾아오는 사람들을 반가이 맞아주었다. 지금은 어느 산에 가던지 힘든 곳에는 계단 길을 만들어 놓았으며 출렁다리도 많이 볼 수 있다. 편리함도 있지만 자연의 본래의 모습이 감춰진 곳이 있어 환경보존의 아쉬움도 따른다.

드디어 정상에 올라섰다. 다가서며 603.2m 표지 석을 바라보니 하늘을 나는 기분이었다. 사방을 둘러보니 환상의 파로나마가 펼쳐지고 있는 것이었다. 이 아름다움을 혼자 만끽하고 있는 동안 내 마음은 창공으로 훨훨 날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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