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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오래된 연애의 기술 / 박미림

부흐고비 2021. 7. 6. 09:03

“학창시절 내가 쓴 연애편지는 작가 뺨쳤지.”
오랜만에 만난 초등 동창의 너스레다.
“아쉽다 책으로 묶였다면 베스트셀러가 됐을 텐데…”
나는 웃으며 맞장구를 쳐 주었다.

왜 아니겠는가? 사춘기 시절, 누군가로 인해 까닭 없이 가슴이 뛸 때, 상대 마음을 사로잡기 위한 필살기. 한 줄 한 줄 밤새워 편지를 썼을 것이다. 썼다 지우기를 수십 번. 편지쓰기 습작은 나날이 필력이 붙었을 것이다. 그런 사랑을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글쓰기 실력의 정점도 그즈음 이었음을 단언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가슴앓이 편지를 쓴 사람이 어디 그 친구뿐이랴. 누구나 연서를 쓰는 순간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사여구를 활용했을 것이며, 스스로의 검열을 거친 뒤에야 비로소 봉투에 봉인되었을 터. 그러니 비록 유치함과 조잡함이 유추된다 하더라도 그의 자아도취를 지탄할 필요는 없다. 자칭 명작이니까. 그 허풍이 조금 지나치다 할 지라도 믿어주고 퉁 쳐 주는 것도 배려가 아닌가. 그런 까닭에 연애편지에 한 줄 베끼려고 밤낮 시를 뒤지다가 시인이 되었다는 이도 있지 않은가?

여고 시절 내게도 분홍빛 연서를 보내던 오빠가 있었다. 가을이면 자기 집 과수원에서 가장 실한 사과만을 골라 반짝반짝 닦아 배낭 가득 담아 오던. 그 오빠는 늦은 나이에 고등학교를 진학한 이웃 학교 동급생이었다. 학교 대표로 학생 수련회를 함께 다녀온 이후 그는 줄곧 내게 편지를 보내오곤 했다. 전화가 없던 시절이었다. 대문간 우체통에 편지가 꽂힌 날이면 나는 누가 볼세라 황급히 편지를 숨기곤 했다. 편지를 보내오는 남학생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불경스러운 양 생각됐기 때문이다. 편지가 온 날은 몰래 건넌방으로 달려가 식구들이 아무도 없는지를 몇 번씩 확인한 후에야 이불을 뒤집어쓰고 읽었다. 콩닥거리던 가슴을 진정하지 못해 안절부절못한 채 말이다.

무슨 내용이었는지? 지금은 가물가물하다. 너를 ‘보고 싶다’라거나 ‘사랑한다’라거나 그런 대단한 단어는 아니었던 것 같다. 딴청을 부리듯 에둘러 표현해 알쏭달쏭 여러 번 읽고 또 읽어야 했다. 편지의 글씨는 정말 단정하고 달필이었다. 그가 모범생이란 것 정도는 단번에 봐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나는 생각만으로 얼굴이 달아올랐다. 처음으로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답장을 쓸까? 아니야. 그러다 너무 친해지면 어떡해. 나는 호기심과 설렘으로 답장을 쓸까 말까를 몇 번씩 망설이곤 했다. 용기가 필요했다. 그렇게 고민의 고민을 하던 어느 날이었다. 그날은 어찌 된 일인지 이웃집 아주머니 손에 편지가 들려 있었다. 우체부가 아주머니네 우편물과 함께 놓고 간 것이었다. 나는 괜히 부끄러워 얼굴이 홍당무가 되었다. 아주머니께 내 마음을 들킬까 봐 편지를 받아들고 인사도 못 한 채 황급히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런데 받아든 편지가 예전과 달랐다. 꽤 두꺼웠다. 서둘러 편지를 뜯어본 순간 나는 그만 그 자리에 주저앉을 뻔했다. 웃통을 벗고 서서 알통을 드러낸 사진, 얼마나 놀랐는지 나는 한치의 머뭇거림도 없이 사진을 찢고 또 찢었다. 그리고 알 수 없는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무서웠다. 나쁜 오빠란 생각이 들었다. 찢은 사진을 흔적 없이 버리기 위해 두엄 밭으로 달려가 깊이깊이 묻었다. 사진 때문에 읽지 못한 편지까지도 마구 구긴 채. 배신감에 떨리는 순간이었다. 텔레비전도 귀하던 그 시절, 남자들이 흔히 한다는 근육 자랑 같은 건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던 나였다. 커다란 충격이었다. 난 한동안 밥맛을 잃었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다. 그 오빠네 동네에 사는 학교 친구가 쉬는 시간 내게 달려와 귓속말을 전했다.

“있잖아, OO 오빠가 며칠 전에 네게 사진 보냈다며? 근데 잘못 보냈대. 수학여행 가서 찍은 사진인데 다른 친구와 바뀌어 보냈나 봐. 오빠가 실수했다고 엄청 미안해하더라. 미안하지만 사진만 돌려받을 수 있을지 물어봐 달래.”

오해는 풀렸지만 나는 놀란 마음이 좀체 가시지 않았다. 그 후로 나는 친구를 통해 거듭 전했다. 절대 편지 보내지 말아 달라고. 아마도 이미 찢어버린 사진을 끝까지 돌려달라고 할까 봐 은근 걱정이 되어서였던 것도 같다.

벌써 40년여 년 전 이야기다. 아쉽다. 답장을 보낼까 말까 망설이던 즈음이었는데. 지금도 사과가 빨갛게 달린 과수원 길을 지날 땐 그 오빠가 생각난다. 교복에 학교 모자를 꾹 눌러쓰고 마루 끝에 사과를 내려놓던.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겸연쩍게 웃던. 지금은 어디서 국화 향내 나는 아내와 오순도순 생의 겨울을 준비하고 있겠지.

막 사랑이 움트려 하던 순간이었는데. 그 사건만 아니었다면 나는 연애편지를 제대로 쓰게 됐을지도 모른다. 밤새 편지를 지우고 뭉개고 찢으며 마음껏 필력을 기를 수도 있었겠다. 그때 아련한 사랑을 키워갔더라면 나는 마음 부자가 되어 첫사랑의 글감을 무궁무궁 우려먹으며 대문호가 되었을지 누가 아는가? 기회의 신은 그 후로 몇 번 더 나를 실험했던 것 같다. 좋아하는 감정을 표현할 줄 모르던 그 시절 사랑하는 이에게 꼭꼭 눌러 편지를 쓰는 이의 풍경만큼 아름다운 모습이 또 있으랴.

언젠가 통영의 문학 기행을 간 적이 있다. 청마 시인이 이영도 여사에게 날마다 편지를 썼다던 우체국 앞에서 나는 나지막이 그의 시 <행복>을 낭송해 보았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는 이보다 행복 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이 시도 청마 선생이 이영도 여사에게 쓴 5000여 통의 편지 중 한 편이라 한다. 스물아홉 청상의 이영도 여사와 기혼이던 청마 선생, 서로 이룰 수 없는 사랑이었다. 에메랄드빛 하늘이 흐르는 이 우체국 창가에서 그는 전하지 못한 말들을 수 없이 편지로 써 보냈을 것이다.

오면 민망하고 아니 오면 서글프고
행여나 그 음성 귀 기우려 기다리며
때로는 종일을 두고 바라기도 하니라
(후략)
                                                 『청저집』 중에서 < 무제Ⅰ>이영도

뭍같이 꿈쩍도 하지 않던 이영도 여사도 날마다 보내오는 청마의 사랑 고백에 그만 마음이 흔들리곤 했던 것이다.

사랑의 기억은 아름답다. 사랑하는 이에게 받은 손편지의 기억은 더더욱 아름답다. 그가 먼 곳에 있을수록, 그리움이 깊을수록 사연은 더욱 애틋하고 절절하다. 보고 싶어도 금방 볼 수 없었던 시절. 기다리고 기다리다 지쳐갈 무렵에나 도착하던 손편지. 거기엔 그리움과 사랑의 마음이 넘쳐났다. 메일을 보내고 핸드폰으로 가볍게 사랑을 전하는 오늘날의 젊은이들에게 ‘손편지를 써 보라’ 말한다면 무슨 답변이 올까? 뻔한 일이다. 하지만 손편지의 힘은 대단하다. 수십 년이 되도록 그 아련함과 설레던 감정이 식지 않는 걸 보면. 연애의 기술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사람이라면 특별히 손편지를 추천하고 싶다. 이메일로 쉽게 전하는 사랑은 쉽게 휘발한다. 손편지를 쓸 때의 감정은 진실하다. 감동의 진폭도 깊다. 천하 없는 AI도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구역이다. 손편지는 오래된 연애의 기술이되 여전히 유용하다.

그나저나 푸른 바다가 바라다보이는 통영 미륵산, 그곳에서 쓴 나의 ‘느린 편지’는 잊지 않고 주인을 찾아주기나 하려나? 아직도 남해가 보이는 언덕 어귀에서 쭈뼛쭈뼛 부끄럼 많은 주인처럼 딴청을 하고 있으리라.

파란 하늘이 보이지 않아 우울한 도심에도 가을은 왔다. 창가엔 국화꽃 지고 있다. 문득문득 손편지가 쓰고 싶은 계절이다. 이 계절엔 나도 애틋한 사랑 하나 갖고 싶다. 무뎌진 펜촉을 향기롭게 다듬어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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