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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어디로 갔을까? / 박미림

부흐고비 2021. 7. 6. 09:10

이사는 얼핏 중반으로 접어들었다. 짐을 실어온 아저씨들이 자장면을 먹는 동안 나는 애지중지 챙겨 온 새장을 화단 가로 옮겨 놓았다. 이제 막 피기 시작한 산수유꽃이 앵무새의 샛노란 깃털과 너무나 닮았다. 녀석들은 처음 맛보는 바깥공기 때문인지 시끄럽게 조잘조잘거렸다. ‘그래, 마음껏 노래하렴.’ 늘 갇혀만 지내던 불쌍한 목숨 아닌가?

이사한 집은 아파트 1층
베란다 하나만 열면 화단이 내 집 정원 같았다.

. 책장은 어느 방에 놓을 것인지? 소파는 어느 쪽이 좋은지? 짬짬이 인부들에게 참견만 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제 소소한 액자들만 걸면 이사는 마무리된다.

밖은 어느새 어둑어둑하다. 그제야 나는 앵무새를 데리러 산수유나무가 선 화단으로 내려갔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조용하다. 조심조심 새장을 들어보았다. 순간

‘아뿔싸!’
텅 빈 새장이라니? 어찌 된 일인가? 문은 여전히 닫혀 있는데….

새가 사라졌다.

나는 울상이 되어 산수유나무 위에도, 회양목 아래도, 축대 밑에도 정신없이 두리번거렸다. 그러나 아무 데도 없다. 유난히 샛노란 사랑앵무가 쓰러져 있다면 그 주검이 어둠 속이라고 보이지 않을 리 없다. 나무 위에도, 돌 틈에도 녀석의 흔적은 찾을 길이 없었다.

우리 가족은 피곤함도 잊은 채, 어느새 녀석의 행방에 대해 설왕설래하고 있었다.

“새장 틈으로 들어갈 수 있는 건 뱀밖에 없어요. 뱀의 소행인가 봐요.”

아들의 말은 그럴듯해 보이나, 서울 아파트 화단이 아무리 무성하다 한들 뱀이 나오겠는가? 더구나 지금은 뱀도 겨울잠에서 깨지 않았을 성싶은 초봄 아닌가?“고양이 짓일 거야 길고양이.”

남편도 나름 그럴듯한 주장을 폈다. 그렇다면 앵무새가 저항한 흔적이라도 남아 있지 않았겠는가? 떨어진 앵무의 깃털이거나 고양이의 털 뭉치라거나.

그도 저도 의문이 들기는 마찬가지였다. 어찌 된 노릇인가?

도둑이 어렵사리 화단을 넘어왔다 한들, 달랑 새나 가져가려 위험을 무릅썼을 리는 없다. 더구나 ‘푸드덕푸드덕’ 저항하며 시끄럽게 굴었을 테니 그를 못 보았을 리도 없다. 우리 가족은 빈 새장 앞에서 나름의 상상을 펼치며 이별의 허무를 달랠 수밖에 없었다.

의문을 해결하지 못한 채 몇 개월이 지났나 보다. 우연히 새 전문가를 만났다.

“앵무새는 스스로 새장 문을 열고 날아갈 수 있지요.”
‘설마. 그럴 리가.’

나는 전문가의 말도 믿을 수가 없었다. 아무리 영리한 새라 해도 나간 문을 다시 얌전히 닫고 고리까지 걸어 잠그고 날아갔을 리 없지 않은가. 그것도 두 마리가 함께. 어떤 추측도 논리도 고개를 저었다. 진정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였다.

나는 믿거나 말거나 나만의 결론을 냈다. 나의 사랑앵무들이 바깥 공기를 맡자, 에너지가 충만해졌을 것이다. 저 좁은 새장을 박차고 나올 만큼. 그리하여 영혼이 먼저 야문 구슬처럼 반짝 새장을 튕겨 나왔을 것이다. 그리고 영혼 빠져나간 몸뚱이가 풍선처럼 쪼그라져 ‘푸르르르’ 새장 틈을 비집고 나왔을 것이다.

제법 그럴듯한 상상 아닌가?

사랑앵무는 자유를 맛본 것이다. 세상의 모든 생명이 꿈틀대는 봄날, 산수유 꽃처럼 피어나고 싶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총총 푸른 하늘을 향해 날아올랐을 것이다. 영혼과 육체가 다시 합체된 황홀한 몸으로.

오래전 새를 분양받기 위해 가게에 갔던 날이 떠오른다. 주인은 가위로 사랑앵무의 날개 끝을 싹둑 잘랐다. 좀 깊다 싶을 만큼.

“좁은 새장에서 날다 다치지 않게 하려는 배려에요.”

내가 가엾다는 듯 인상을 찡그리자 웃으며 한 주인의 대답이었다.

‘배려?’ 세상에 이런 말도 안 되는 합리화라니? 순간 인간들의 파렴치에 대해 분노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나는 돈을 주고 생명을 거래했다. 그리고 적당히 날개 자른 앵무새 한 쌍을 분양받아 행복한 얼굴로 돌아왔다. 암묵적인 폭력 조장이 틀림없었다.

이제 와 돌아보니, 나의 행동은 이기심의 극치다. 그러고도 나는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스스로 생각하곤 했으니. 새에게 날개란 가장 소중한 하나님의 선물 아니겠는가? 갇힌 새에게 날 수 있는 능력보다 더한 불행은 없을 것이다. 그를 새장에 가두고 나는 ‘새를 좋아한다’라고 ‘새를 사랑한다’라고 떠들었다.

나는 빈 새장에 다시는 새를 가두지 않는다. 그간 새들의 자유를 빼앗은 일을 반성하면서. 물론 이사 온 집 유리창 밖으로는 아침마다 새들이 열매처럼 열린다. 참새, 박새, 직박구리, 물까치……. 그러니 따로 새를 사 올 필요도 없어 보였다. 나는 앵무가 살던 헌 새장을 미련 없이 버렸다. 그리고 짚으로 촘촘 엮어 만든 새집을 사다 목련 나무에 걸어두었다. 하지만 새들은 여름이 다 가도록 그 둥지를 기웃거릴 뿐이다. 아무도 그것을 편안히 제집 삼지 않는다. 아무래도 새들 세상에 나의 파렴치함이 다 소문난 모양이다. 사랑앵무가 아직도 어딘가 살아 있어 새 친구들에게 소문을 내고 다니는 건 아닐지 모르겠다.

이젠 보인다.
새의 날개가
꿈꾸는 저들의 자유가

진정 사랑하는 것은 가두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제야 알 것 같다.

날개가 잘린 순간, 폐물이 된 신의 선물. 새는 얼마나 생이 사무쳤겠는가? 자유를 빼앗는 인간이 얼마나 원망스러웠겠는가? 그들은 기회 있을 때마다 좁은 새장을 탈출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목숨을 걸고 철조망을 넘었을 것이다.

탈북민 바리스타 윤정 씨.
시를 읽다가 북에 두고 온 엄마 생각난다고 숨죽여 눈물을 흘리던.
그의 꿈을 위해 함께 기도하고 싶다.
내가 가두었던 사랑앵무에게도 이제야 진심으로 사과한다. 날개를 잘린 채 어둠 속에서 헤매는 지상의 모든 아픈 자들을 위해 기도하련다.
얼어붙은 인간의 땅에는 언제쯤 봄바람이 불까?
산수유꽃, 살구꽃도 꿈이 부풀고 꽃 피우는데…….
‘모든 자유여! 날개가 돋기를, 활짝 피어나 무궁무궁 꿈꾸며 날아오르기를….’


■ 박미림 수필가
* 2016년<조선일보> 신춘문예 동시 당선, 2003년<문예사조>시, 2012년 <문예감성> 수필 등단
* 저서 : 시집 별들도 슬픈 날이 있다, 벚꽃의 혀, 수필집꿈꾸는 자작나무, 동시집 숙제 안 한 날 외 다수 * 수상 : 2020년 바다문학상 본상(수필), 2001년 박목월 백일장 시 장원, 박인환백일장 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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