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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끝물 참외 / 김정화

부흐고비 2021. 7. 12. 09:19

과일은 언제나 색깔로 찾아온다. 마트에도 노점에도 골목길 과일 트럭에도 봉긋한 참외가 지천으로 노란 물을 덮어쓰고 앉았다. 이제는 제철이라는 말이 무색하지만 내 과일 달력은 딸기의 봄빛이 지나고 수박이 붉은 속을 채우는 사이에 금쪽같은 참외의 계절이 펼쳐진다.

집 앞 과일 가게에도 며칠 전부터 황금빛 줄무늬 참외를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판다. 마치 참외밭 한 이랑을 통째로 옮겨놓은 듯 착시가 인다. 바다오리알 같은 둥그레한 열매들이 열대 과일 사이에서도 당당하고 옹골차다. ‘금싸라기 참외’라는 상표를 붙인 것도 땅심을 향한 경배의 마음이 담겼으리라. 선이 반듯하고 골이 옴폭 파인 주먹만 한 참외를 몇 개 골라 담았다.

식탁 위에 펼쳐놓은 샛노란 열매가 프리지어 꽃빛보다 곱다. 저 어리고 어여쁜 것에 감히 칼질하기가 마뜩잖아 꽃병 옆에 도로 내려놓았다. 내가 자랄 때는 참외는 돈을 주고 사는 것이 아니었다. 고향 마을은 사방이 지평선으로 덮일 만큼 들이 넓게 펼쳐졌는데 계절 따라 열매와 곡식이 차례로 여물어갔다. 시골 어디서나 흔하던 감나무나 포도 덩굴은 없었지만 누릇한 참외만은 여름이 다가오면 골마다 널브러졌다. 하굣길에 단내가 훅훅 도는 외밭 옆을 지날 때면 늘 곤혹스러웠다. 개궂은 남자애들이야 서리도 곧잘 했지만 겁약한 시골 소녀들은 달팽이 눈을 한 채 생침만 꼴딱 삼켰다.

그래도 운이 좋은 날은 장독 뚜껑 안에 못난이 참외 몇 개씩은 뒹굴었다. 인심 좋은 밭주인이 두고 가기도 했고, 어머니가 밭일을 거들고서 얻어올 때도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오직 끝물 때가 오기만 기다렸다. 땅 주인은 대부분 외지인이었는데 무탈하게 작물을 거두어들인 보답이라 여겼는지 야멸차게 싹쓸이를 해 가지 않았다. 참외밭이나 토마토밭이나 연밭이나 우리가 미국미나리라 부르던 셀러리밭에서도 마지막 수확 날이면 흠다리들을 둑이나 밭고랑에 무더기로 내어놓았다. 비록 얽고 기울고 시들고 꼬부라져 한물간 것일지라도 그때만은 집집마다 이삭 과일이나 채소가 푼푼했다.

나는 무엇보다 끝물의 참외밭이 좋았다. 요즈음 아이들이야 기겁할 일이지만, 동네 조무래기들과 밭둑에 퍼질러 앉아서 개미도 훑고 까치도 한입 찍어 먹었을 둥근 열매를 껍질째 오독오독 깨물어 먹던 기분을 무엇으로 대신하랴. 푸른 줄기가 키워낸 살덩이 중에서 단연 최고의 맛이 났다. 번듯한 상자에 담기던 물오른 단맛을 먼저 알았더라면, 입이 얼얼할 정도로 먹지도 않았을 것이고 싱겁고 맹맹하다며 단박에 밀쳐 냈을지도 모를 일이다.

어머니는 익지 않은 청참외만 따로 골라내어 장아찌를 담갔다. 과일도 채소도 아닌 푸른 열매들을 속을 파고 껍질을 깎고 소금물에 절여 고추장이나 된장독에 묻어두면 밑반찬으로 훌륭했다. 요즈음에야 정품으로 에이드나 샐러드도 만들고 말랭이와 피클과 심지어 참외 술도 담그지만, 그때는 오직 두고 먹을 찬거리가 우선이었다. 그러한 끝물 참외는 오래도록 어린 나를 키워냈다.

끝물처럼 외롭고 적적한 말이 또 있을까. 사전에는 맏물의 반의어로 ‘과일 푸성귀 해산물의 마지막 수확이나 시절의 마지막 때’라고 명명하지만, 실생활에서는 어디 그런가. 지고 저물고 소멸해가는 생물들과 이미 일그러졌거나 시효를 넘긴 끝판의 물상에도 당겨쓴다. 끝물 딸기, 끝물 배추를 넘어 끝물 여름, 끝물 인생 그리고 끝물 풍경, 끝물 거래에도 갖다 붙이니 엄전한 국문학자들께 눈총을 받기도 십상이다. 제철이 아니라고 눈 흘김 당하는 세상의 끝물들을 생각한다. 끝물 참외를 먹던 시골 소녀도 어느새 쉰의 끝머리에 이르렀다. 허무한 끝물이라고 서러워할 일만은 아닐 터. 산다는 것은 끝을 향해 달려가는 일이니까 절정과 고비를 넘긴 기특한 것들이다. 끝물 참외가 장아찌로 거듭나듯이 극에 달한 끝물에도 잔광이 남아 있다. 때로는 죽은 나무줄기에서도 실눈 뜬 잎새를 발견하지 않는가. 그러니 떠나고 손 흔들기 전에 거품 꺼지는 것들의 잔심(殘心)을 한번 헤아려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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