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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그 쓸쓸함에 대하여 / 고정완

부흐고비 2021. 7. 9. 08:36

하얀 소 신축년(辛丑年)이 동산위에 떠 오른지도 한 달, 유난히 춥고 눈도 자주 내리고 있다.

멈추지 않는 ‘코로나19’와 매서운 한파로 세상은 얼어붙고, 사회적 거리두기로 외출이 자유롭지 못하다보니 대부분의 시간을 집안에서 보내고 있다.

햇볕이 맑고 포근한 날 답답하고 외로움을 떨치고자 덕진공원을 찾았다. 그 많던 사람들은 보이지 않고 텅 빈 공원에는 나목이 오돌 오돌 떨고, 화려했던 연꽃은 허리꺾기고 물에 잠겨 쓸쓸하고 애처롭다, 생을 다한 흑갈색 연잎에서 일평생 농사를 지으며 희생으로 주름진 촌노의 얼굴을 떠 올린다.

덕진 연못은 본래 건지산 계곡의 물이 고인 연꽃 피는 자그마한 늪지였는데, 건지산과 가련산 사이에 제방을 쌓으면서 커다란 연못으로 변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전주의 지세가 북서방향이 허하여 덕진지에 제방을 쌓게 되었다고 한다. 덕진제방은 전주 땅의 덕과 기가 빠져나가는 것을 막고 온전한 고을을 이루고자 했던 풍수 비보적 문화유산이다. 이 제방을 쌓으니 물이 고이면서 저절로 연못이 되었고 전주시민들은 예부터 이곳에서 단오절이 되면 머리를 감고 즐기는 전통이 있었으며, 지금도 시민들이 즐겨 찾는 편안한 휴식처이다.

진흙 속에서 자라면서도 청결하고 고귀한 연꽃, 그 모습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고, 꺾기고 찢어진 벌집 같은 움집에 열매가 점점이 박혀있다. 연꽃씨앗은 생명력이 대단하다. 중국에서 발견된 1000년 묵은 씨앗이 발아된 적도 있고, 일본에서는 2000년 묵은 씨앗이 발아하기도 했다. 또한 한국에서도 700년 된 연꽃 씨앗이 발아하여 아라홍련이라고 불린다, 아라연꽃은 2009년 5월 경상남도 함안군 성산산성에서 발굴된 연꽃 씨앗에서 발아한 연꽃이다. 이 연꽃은 성산산성 발굴 현장에서 발견된 씨앗에서 자란 것이며, 발견된 10개의 종자 중 일부를 ‘한국지질자연연구소’에 의뢰해 성분 분석한 결과 각 650~760년 전, 즉 고려시대 연꽃 씨인 것으로 확인 되었다. 함안군에서는 함안지역이 본래 옛 아라가야가 있었던 곳이었기 때문에 이 연꽃을 ‘아라연꽃’이라고 명명하였으며, 일부 연꽃씨앗을 발아시키는 데에 성공하였다. 발아한 연꽃은 이후 같은 해 7월 7일에 꽃을 피웠는데 이는 약 700년 만에 꽃을 피운 것이다. 아라연꽃은 꽃잎 하단은 백색, 중단은 선홍색, 끝은 홍색으로 현대 연꽃과 달리 길이가 길고 색깔이 엷어 고려시대의 불교 탱화에서 볼 수 있는 연꽃의 형태와 색깔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물속에 잠긴 연잎은 갈기갈기 찢어지고 볼품없이 생명을 다했지만 이불이 되어 뿌리를 보호하고 거름이 되고 있다. 시절이 좋은 여름에는 물속에서 수영하다 지친 개구리도 올라와 쉬고, 하늘을 날던 잠자리도 내려와 놀다 갔지만, 계절 따라 모두 떠나 적막하기 그지없다. 연은 진흙탕 속에서 자라지만 진흙에 물들지 않고, 흙탕물이 썩어서 악취가 나지만 꽃이 피면 냄새는 모두 사라지고 향기로 충만해진다.

요즈음 공직자 중에는 뇌물수수, 부동산 투기, 권력남용 등 부정부패로 얼룩져 있다. 욕심이 많으면 몸을 버리고 넘치는 법이다.『목민심서』에 ‘현명한 수령은 관청을 여관으로 여겨 마치 이른 아침에 떠나갈 듯이 문서와 장부를 깨끗이 정리해 두고 그 행장을 꾸려두어 항상 마치 가을 새매가 가지에 앉아 있다가 훌쩍 떠나갈 듯이하고 한 점의 속된 애착도 일찍이 마음에 머무른 적이 없다.’고 하였다. 우리는 항상 떠날 준비를 하고 살 때, 욕심이 적어지고 담백해 지는 것이다.

법정스님은 소욕지족(少欲知足) 작은 것과 적은 것으로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고. 우리가 누리는 행복은 크고 많은 것에서 보다 작은 것과 적은 것 속에 있다. 크고 많은 것만을 원하면 그 욕망을 채울 길이 없고, 작은 것과 적은 것 속에 삶의 향기인 아름다움과 고마움이 스며있다’고 하였다.

연은 버릴 것이 없다. 연뿌리는 우리 몸에 좋아 식용으로 애용하고, 연잎과 줄기는 차로 달여 마시고, 연꽃의 줄기는 부드럽고 유연해서, 좀처럼 바람이나 충격에 부러지지 않는다. 연꽃은 피면 반드시 열매를 맺는다.

연꽃의 생명은 3일인데 첫날은 반이 피어서 오전 중에 오므러 든다. 이틀째 활짝 피고 그 때 화려한 모습과 아름다운 향기를 피어 낸다, 3일째는 연잎이 피었다가 오전 중에 연밥과 꽃술만 남기고 꽃잎을 하나씩 떨어뜨리기 때문에 연꽃은 자기 몸이 가장 아름답고 화려할 때 물러 날줄 아는 군자의 꽃으로 평가하고 있다.

연뿌리는 구멍이 있어 공기의 통로로 진흙 속에서 썩지 않고 견딜 수 있다. 비우면 썩지 않고 자손 만대 번성하리라, 연을 바라보며 겨울의 눈보라와 추위의 시련을 겪어야 여름에 아름다운 꽃을 피어낼 수 있을 것이다,

취향교에 앉아 연방죽을 바라본다. 취향정은 연꽃 향에 취한다는 이름처럼 자연의 풍광을 오감으로 느낄 수 있는 최적의 쉼터이다. 어머니가 살아 계실 때, 덕진공원에 놀러와 취향전을 배경으로 가족사진도 찍고 즐겁게 지냈던 일이 엊그제 일처럼 생생한데 강산이 몇 번이나 바뀌어 옛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보호수 왕버들이 취향정을 한껏 북돋아 주고 있다. 수령 200년 나무 둘레 3.2m, 수고14m의 보호수로 단오날 머리감는 여인들의 모습, 우리의 옛 이야기를 들려줌도 한데 입을 꼭 다물고 묵묵히 서있다.

연화교 다리를 걷는다. 총연장 284m, 교폭3.0m, 공사기간 2018년 11월28일 ~2020년 11월 26일로 돌다리로 개축되었다. 다리를 걸으며 옛 출렁다리가 운치도 있고 추억이 깃든 다리라 그런지 출렁다리가 그립다. 다리주변은 정리되지 않고 돌무더기와 흙무더기가 여기저기 쌓여있고 물이 빠져 흉물스럽다.

이 스산한 계절이 지나고 때가오면 푸른잎과 아름다운 꽃이 가득해 지고 그 맑은 향기는 멀리멀리 퍼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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