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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우리 집 보물 / 고정완

부흐고비 2021. 7. 9. 08:38

우리 집에는 쉰살이 된 살아있는 보물이 있다. 그 보물은 한 달에 한번 밥만 주면 아침부터 저녁까지 종일토록 쉬지도 않고 군소리 없이 일한다. 아침이면 나를 깨우고 밤이면 재워주는 충실한 심복이다. 몸통은 네모요 동그랗게 생긴 얼굴 양쪽 볼에 입이 있고, 하복부엔 여름철 축 늘어진 늙은 소 낭심(囊心) 같은 진자(振子)가 왔다 갔다 바쁘게 움직인다.

이것은 내가 1970년, 모교인 당북국민학교에서 6학년을 담임 했을 때 졸업 기념으로 선물 받은 벽시계이다. 그래서 우리집에서 아내 다음으로 가장 오래된 식구로 정이 듬뿍 들었다. 식구들이 게으름을 부릴 때면 똑딱똑딱 채찍도 하고 땡~ 땡 경고도 울려준다. 국민학교 2학년 때만 해도 시계 공부를 하는데 집에 시계 있는 집은 23명중 2명 밖에 없었다.

농촌에서는 해가 뜨면 일하고 해가 지면 일을 끝냈다. 해가 없는 새벽에는 첫 닭이 울면 일어나고 초저녁이면 닭 우는 소리를 듣고 잠자리에 드는등 때를 맞추었다. 그런데 뜻하지 않은 초저녁에 수탉 한 마리가 울면 온 동네 닭이 덩달아 따라 울기도 했다. 그러나 그 닭의 울음은 그 이튿날 들을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바로 그 이튿날 잡아 없앴기 때문이다.

옛날 골목을 떠돌았던 이야기 중에는 ‘과부댁 머슴들이 새벽닭이 울면 일어나 일을 시켜서 그 닭이 얼마나 얄미운지, 머슴들이 그 닭을 없애려고 상의를 했다고 한다. 그 결과 닭만 없으면 늦잠도 잘 수 있겠다 생각 하고 닭을 잡아먹었다. 그리고 이제 닭이 없으니 편히 잘 수 있다 싶어 좋아 했다. 그런데 이게 왠 일인가? 과부댁이 잠도 오지 않으니 이제는 시도 때도 없이 일찍 깨워서 일을 시켜 닭 잡아먹은 것을 후회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중학교 때의 일이다, 하늘이 맑은 날에는 달이나 별의 위치를 보고 또 사람의 발걸음 소리를 듣고 때를 가늠했지만, 비가 오거나 안개가 끼면 시간을 알 수 없어 새벽밥을 먹고 학교에 갔다. 얼마나 일찍 갔던지 학생이 한명도 없어 학교 시계탑을 보니 새벽 5시였다. 이처럼 시계가 없었기에 시간관념도 아주 희박했다, 어머니께 내가 몇 시쯤 태어났냐고 물으니 저녁 새참 좀 지나서 낳았다고 한다.

시골에서 이처럼 길을 물으면 ‘담배 한참이면 가요,’ 라고 해서 가까운 줄 알고 갔는데 아주 먼 길이기도 했다. 이런 상황 이다 보니 한 때는 시간을 지키지 않으면 ’코리안 타임‘이라 했다. 기차나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 30분은 보통이요 1시간 이상 걸려도 오지 않는 때가 많았다. 그랬던 지금 우리나라는 시간이 정확하고 약속 시간도 잘 지켜 선진국이 되었다.

우리는 시간을 먹고 살고 시간을 먹고 죽는다. 이처럼 시간은 우리에게 아주 값진 것이다, 평생을 시계를 만들어 왔던 사람이 아들의 성인식 날 손수 만든 시계를 선물했다고 한다. 시침은 동, 분침은 은, 초침은 금으로 되어 있어서 아들이 물었다

“아버지, 시침이 가장 크니까 금으로 만들고 가장 가는 초침은 동으로 만들 어야 하지 않습니까?”

그랬더니 아버지가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단호하게 말했다.

“아니다, 초침이 금으로 만들어져야 한단다. 초를 잃는 것이야 말로 금을 잃는 것과 마찬 가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계를 채워 주며

“초를 아끼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시간과 분을 아낄 수 있겠니?

세상의 흐름은 초에 의해 결정되는 것임을 명심하고 성인이 되었으니 너의 초에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 되어라.”

고 당부를 했다.

어느새 나이를 먹다 보니 ‘얼마 남지 않은 인생 이제 무엇을 해’ 하며 지난 일이 후회스럽다. 등산을 할 때 한발 한발 오르면 정상에 올라 환호를 하는 것처럼, 인생의 여정도 짧은 순간순간이 모여 꿈을 이루게 된다.

어느 목사님 설교 중에 신도들에게 물었다.

“거금 86,400달러씩을 여러분에게 나누어 드리려고 합니다. 저축이나 주식에 투자해서는 안 되고 오늘 하루에 다 써야 한다면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하고 말하자 가지각색의 답변들이 쏟아졌다. 한참을 듣고 있던 목사가 말했다. 나중에 돌려받을 수 없는 오늘 하루에 쓰십시오. 하루를 시간으로 나누면 24시간을 분으로 나누면 1440분, 이를 초로 나누면 86,400초가 됩니다. 내가 드리려고 한 86,400달라는 하루라는 시간의 돈입니다, 따라서 내게 주어진 것은 오늘 뿐이니 지금 이 순간에 충실 하라는 말입니다, 지금도 아침부터 똑딱똑딱 쉬지 않고 50년을 즉 15억7천6백8십만 초를 우리 집에서 일 했는데 그 품삯은 얼마나 될 가?

이 귀한 보물을 허투루 대하고 대접도 하지 않았으니 얼마나 원망하고 서운 했을까? 우리 모두는 큰 죄인이다. 오늘은 나의 남은 날 첫날이니 새롭게 알차게 사는 것이 보물에 대한 보답이라 생각하며 항상 고맙고 감사하게 살겠다.


수필가 고정완
‧ 대한문학 2006년 11월 가을호 등단

‧ 수필집 ; 백두산 천지에 손을 담그고(2020.12,15)

‧ 행촌 수필 이사. 전북수필 이사, 전북문협이사. 교원 문학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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