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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빛 곱게 물드는 저녁나절에 우연히 어느 낯선 농촌마을을 지나게 되었다. 멀찌감치 떨어져 보이는 외딴 집 굴뚝에서 향수처럼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연기 때문인지 몇 가구 안 되는 마을의 정경이 고즈넉하기 그지없다.

마을 어귀에 들어서자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이곳의 수호신인양 당당한 위풍으로 버티며 서 있는 한 그루의 거목, 바로 당수나무였다. 나는 그 앞에 이르러 가든 길을 멈춰 섰다. 동제를 지낸 지 며칠 되지 않았나 보다. 나무의 둘레를 휘감아 얼기설기 동여 놓은 금줄이며 주변 바닥에 잔뜩 부려 놓은 황토의 선명한 빛깔로 하여 언뜻 그 곁에 다가서지를 못하고서 서성거렸다. 나는 금줄에 매달린 한지조각들이 간간이 스치는 바람에 나풀거리는 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아득히 멀어진 세월 때문일까. 실로 오랜만에 보는 숙연한 분위기에 그만 가슴까지 뭉클거렸다. 천진한 꿈을 키워오던 내 어린시절, 고향마을 시골에는 수 백년 해묵은 느티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그 주변일대에는 보다 키 작은 나무들이 서로 몸을 기대며 옹기종기 모여 풍광좋은 마을 숲을 이루었다. 우리 마을 사람들은 이 느티나무가 마을을 지켜준다하여 당수나무라고 불렀다.

언제부터였을까. 어쩌면 까마득한 옛날부터였으리라. 해마다 마을에서는 정월 대보름 날 당수나무아래서 마을 제(祭)를 올렸다. 제의가 있기 며칠 전부터 당수나무 둘레를 깨끗이 쓸고, 왼쪽으로 꼰 새끼줄에 대나무와 어린 소나무를 번갈아 꽂아 걸었다. 그렇게 만든 금줄을 나뭇가지 끝에 쳐 놓고 한번도 바깥 기운을 쏘인 적 없는 산 속의 황토를 가져다가 뿌리고서 그때부터 외부사람의 접근을 막는 것으로 동제는 준비되었다. 그 누구도 함부로 범접할 수 없는 신성한 곳임을 나타내려는 것이었는데 어리기만 했던 내 나이에는 금방이라도 뿔 달린 도깨비가 나타나서 나를 나꿔 채 갈 것 같은 공포심에 와락 겁이 났었다.

동제를 올리기 바로 전 날 밤, 마을 구판장에 어머니의 심부름을 갔다 돌아올 때였다. 무량한 달빛이 사방에 내리 쏟아져 흡사 대낮 같기만 한데도 당수나무 옆을 지날 때는 덜컥 겁이 났다. 나는 애써 무서움을 참으려고 두 눈을 꼭 감고서 단숨에 뛰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달려서 집에 다다르면 그제서야 나는 안도의 한숨을 몰아쉬며 무사히 도착한 내가 스스로 대견스럽기만 했다.

다람쥐처럼 하루에도 수없이 오르내리던 내 친구 같았던 당수나무가 그날따라 왜 그렇게도 무섭고 두렵기만 하던지 지금도 그 날을 생각하면 가슴이 사뭇 방망이질 한다.

동제는 꾀나 까다로운 절차 끝에 이루어진다. 회의를 거쳐 엄격하게 선정된 제주는 일주일 전부터 냉수로 목욕재계 하고서 마을의 무사안일과 풍년농사를 기원하면서 꼭두자정 시각에 맞춰 제를 올린다. 제의는 여러 종류의 소지를 태워 올리는 것으로 끝이 나는데 마을에 사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임시로 외지에 출타해 있는 사람들의 몫까지도 염원을 함께 불사른다고 하니 그 성심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사실일까마는 당수나무의 영험에 대해 마을사람들 모두는 확신에 가까울 만큼 대단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할머니께서는 동제가 끝나면 제일 먼저 금줄에 꽂혀 있는 한지 한 오라기를 빼와서 소지소원을 빌어 올리면 소원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는 그런 말씀을 하셨다. 아마 그 때가 초등학교 삼학년때였던가 보다. 오빠와 나는 동제가 끝난 이른 새벽, 당수나무를 향해 힘껏 달렸다. 그러나, 그 곳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금줄의 여기저기에 한지 조각들이 빠져 버리고 없었다. 아. 그 때의 허탈함이란……. 그러나, 오빠는 아랑곳하지 않고 남아 있는 몇 장을 쏙 뽑아내더니 그 중의 하나를 내 손에 꼭 쥐어 주었다. 집에 돌아온 우리는 촛불을 켜 놓고 소원을 빌었다. 나는 공부를 잘 하게 해 달라고 빌었는데 오빠는 글쎄 무엇을 간곡히 빌었을까. 그 때 촛불에서 당겨 붙인 소원의 불씨를 달고 높이 높이 하늘로 비상하던 소지의 꿈들이여!

오빠와 나의 소원이 한결같은 바램으로 반드시 이루어지리라 믿었던 철부지 어린 시절이 문득 생각난다. 동제가 끝나면 그 동안 금기시했던 모든 일들이 풀려지고 마을 사람들은 다시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 대동계를 열었다. 이 날은 온 동네 사람들의 마음이 하나되는 화합의 한마당으로 화기애애해 진다.

여고 시절, 친구에게 우리 마을의 동제 얘기를 해주었더니 그 친구는 한마디로 '미신'이라며 일축해 버렸다. 촌사람들이 흔히 하는 일로만 여겨 별것 아닌 듯이 폄훼하는 태도가 두고두고 불쾌했다. 당시에는 마땅히 나서서 대응할만한 이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터여서 남몰래 속상했던 일이 떠오른다. 이미 우리 마을 사람들의 익숙한 생활의 일부가 되어 버린 동제를 보며 그렇게 커 온 터라 한번도 미신이라고 여겨 본 적이 없다. 지금 다시 그 친구를 만나게 된다면 상당한 설득력을 지닌 설명을 할 수 있을 텐데 아쉽기만 하다.

나는 어쩌다 사찰에 가면 산신각이나 삼성각을 눈여겨 본다. 이러한 사찰의 부속 건물들은 거의 다 대웅전의 뒷편인 산비탈 위쪽에 자리하고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러한 현상은 외래종교였던 불교가 우리의 토속신앙의 형태를 합리적으로 수용한 까닭이다. 만약에 외래종교의 유입이 없었다면 동제는 당당히 우리 종교로서의 자리매김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인간은 누구나 거대한 자연 앞에 어쩔 수 없이 두려움과 경외심을 가지게 마련이다. 때문에 옛 사람들은 초자연적인 전지전능의 힘을 가진 존재를 믿었고 나름대로 초월세계를 상정해 놓았다. 이러한 점들이 '토템'이나 '샤머니즘'적인 원시신앙을 유발시켰고 오늘날의 첨단문명시대에까지 다양한 형태로 전승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나는 낯설은 마을의 당수나무를 보면서 신비의 여지에서 다가서는 신과의 지속적인 교감을 통하고 있는, 그래서 조화로운 삶을 영위해 가는 이곳 사람들이 왠지 낯설지 않다. 어쩌면 이런 심성이야말로 끊임없이 샘솟는 우물에서 두레박으로 퍼 올린 말간 물빛의 천심이 아니고서 무엇이랴.

오늘 따라 고향마을에 늠름하게 서 있을 당수나무가 마치 꿈에도 그리운 연인처럼 그렇게 문득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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