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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봄날은 간다 / 최규풍

부흐고비 2021. 7. 13. 08:43

가수 백설희 선생이 부른 노래 ‘봄날은 간다.’를 애창한다. 심금을 울리기 때문이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산 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에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마단조 블루스 곡이 애절한 가사와 흐느끼는 듯 슬픈 곡조가 서로 어울려서 눈물겨운 노래가 되었다.

봄바람은 참 변덕스럽다. 어루만지듯이 살랑대다가도 어느 순간에 북풍이 되어 살을 파고들기도 한다. 살랑대며 낯을 간질이듯이 불 때에는 외로운 처녀 총각의 가슴이 두근거리게 불을 지핀다. 방안에 가만히 틀어박혀 있지를 못하게 유혹하여 밖으로 끌어낸다. 더구나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는 처녀를 보고도 목석이 아닌 이상 어찌 설레지 않을까? 가슴이 뜨거워지고 마음이 부풀어 숨이 가쁘다.

눈길은 집요하게 고집을 부리고 처녀를 향한다. 얼굴이 안 보여도 확인도 필요 없다. 벌써 예쁘고 이미 내 사람이다. 눈은 금세 선글라스를 끼고 어두워지다가 이내 멀어 버린다. 눈에 콩깍지는 무엇이 그리도 급하고 왜 그리도 민첩한가? 마음은 이미 뜨겁고 몸을 재촉하여 발길에 채찍질을 가한다. 어서 만나자, 어서 사랑을 맺자. 아리따운 처녀도 날 기다리는 눈치다. 다가오는 총각을 엉거주춤 힐끗 보면서 수줍음에 외면하는 척한다. 어디쯤 다가왔나 얼굴은 타오르고 가슴은 콩닥콩닥 풀무질을 한다.

봄날에는 온 세상에 만남의 축제가 벌어진다. 벌과 나비하며 온갖 곤충들이 짝을 찾아 쫓고 쫓긴다. 꾀꼬리, 두견새가 짝을 찾아 목 놓아 부르며 온 산을 날아 헤맨다. 길짐승과 들짐승이 잠에서 덜 깬 눈을 부비며 남에게 놓칠세라 먹이보다 짝이 먼저다.

각양각색의 꽃들은 어떠한가? 화려하고 고운 모습으로 단장하고 성스런 결실을 위하여 온갖 애교로 중매를 부른다. 하물며 만물의 영장인 인간 청춘들이 어찌 죽은 듯이 몸을 사리고 있겠는가? 일부러 고상한 점잔을 빼고 아리따운 사랑을 애써 외면하겠는가? 처녀 총각들이 홀로 있지 아니하고 짝을 찾아 거리로 나서는 것이 얼마나 지당한 일인가? 막을 수 없고 거절할 수 없는 자연의 섭리요 조물주 신의 은총이다. 이것이 이른 바 꽃의 소식이요, 인생의 봄소식인 사춘기다.

사춘기는 걷잡을 수 없이 일어나는 그리움이요 충동적인 사랑이다. 작은 일에도 웃고 운다. 꽃이 피어도 웃고 꽃이 지어도 운다. 잎이 돋아나도 웃고 낙엽이 바람에 떨어져도 운다. 모든 일이 쉽고 모든 생각이 내 마음이다. 마냥 흥분하고 마냥 들뜨고 마냥 주장을 앞세우고 한껏 멋을 부린다.

전주의 한옥 마을에 한복을 입은 청춘 남녀들이 넘친다. 한번은 시샘이 나서 외면했지만 공연한 일이다. 지난 세상에 내가 저리 하지 못한 것을 이 세상에서 볼 수 있으니 얼마나 발랄하고 아름다운 모습인가? 시샘이 아니라 오히려 박수를 보내고 노래를 불러주어야 할 일이다. 내가 사춘기 때에는 대낮에 저와 같이 내 노라며 자랑스럽게 손잡고 거닐 수가 없는 세상이었다. 얼굴을 맞대고 키스도 하며 머리를 매만져 주고 안아 줄 수가 없었다. 사랑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세상의 인심이 날카로워 그리 못 했었다. 이 눈치 저 눈치를 다 보면서 온전한 사랑이 맺어질 리가 없다. 무슨 죄인처럼 그랬으니 비밀스러운 그런 첫사랑이 어찌 깨지지 않으랴. 그래서 ‘봄날은 간다.’는 노래가 나를 울리는 노래가 되었다.

전주 한옥마을에서 한복을 입고 허리를 껴안고 입 맞추고 머리칼을 쓰다듬는 청춘 쌍쌍들아, 절대로 그 노래는 부르지 마라. 이 좋은 아름다운 세상에서 신나고 즐거운 사랑의 노래를 불러야지. 이별의 노래나 애절한 기다림의 노래를 불러서야 쓰겠는가? 우리나라가 동방의 예의지국에서 벗어나도 좋다. 세계 제일의 연애국이 되어도 좋다. 짝을 이루어야 자녀를 낳는다. 사랑하는 청춘들이 헤어지지 않고 혼인하여 아들 딸 많이 나아 인구 강대국이 되면 좋겠다.

혼인을 기피하고 독신으로 살고 혼인을 해서도 아이를 거부하면 머지않아 한국의 인구가 제로가 될 거라 한다. 국민이 없으면 나라가 존재하지 못함이 당연하다. 그러니 청춘들이 짝을 지어 손잡고 껴안고 다니는 한옥마을이 활기가 넘치고 아름답다. 우리나라의 희망이 보인다. 자꾸 눈길이 가고 구경하고 싶은 곳이다. 젊은이들아, 부지런히 짝을 지어야지. 어서 연애하고 사랑해라. 화창한 봄날이 아닌가? 새로운 희망이 손짓하고 짝을 부르는 봄이다. 이 얼마나 포근하고 온화하고 아름다운 봄날인가?

하지만 눈 깜빡할 사이에 사라지는 계절이 봄이다. 언제 가는지 눈치 못 채게 몰래 살며시 미련 없이 우리를 버리고 떠나는 봄이다. 이 절호의 봄날을 놓치지 말고 붙잡아 마음껏 사랑하고 연애하라. 화려한 한복을 입고 곱게 치장하고 부지런히 청춘을 누려라. 봄날 잠들지 말고 부지런히 짝을 찾아 손잡고 서로를 안아라. 소리 없이 떠나는 봄을 기쁨으로 보낼 일이다. 울면서 매달리고 아쉬워하지 말자. 애인과 함께 봄을 사랑으로 보내자.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산 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에 돌아오지 않는 내 님을 기다리는 여인이 되면 가슴이 아프다.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헤어지지 말자고 알뜰한 맹세를 해도 사랑의 밧줄을 놓아버리면 피눈물이 난다. 서로가 조금 다르다고 헤어지고 조금 서운한 일을 했으니 헤어지면 알뜰한 맹세는 물거품일 뿐이다. 사소한 다툼으로 사랑의 맹세를 깬다면 ‘봄날은 간다.’의 주인공이 되는 것이다.

봄날이 가버려도 마음에는 봄날이 아직 생생하게 살아 있어야 맹세가 아름답고 사랑이 익을 것이다. 알뜰한 맹세가 실없는 기약이 되지 않게 젊은 청춘들아, 애인이 넘어지지 않게 손 잡아주고 돌아서지 않도록 꼬옥 안아주며 살자. 사랑을 꽃 피우고 사랑의 열매를 맺도록 너와 내가 둘이 아닌 하나로 살자. 영원한 사랑으로 봄날의 맹세를 지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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