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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잡초를 뽑으면서 / 최규풍

부흐고비 2021. 7. 13. 08:45

두 달 보름 동안 봄 가뭄이 심하다. 그런데도 잡초는 끄떡하지 않는다. 가뭄을 타기는커녕 더 억세어졌다. 오늘 쪽파 밭에 무수히 돋아난 잡초가 한눈을 판 사이에 무성하여 뽑았다. 톱칼로 뿌리를 베고 쪽파는 다치지 않게 손으로 사이사이에 파고 든 잡초를 뽑았다. 잡초의 뿌리가 파의 뿌리를 휘감고 거름을 빼앗아 먹고 있다. 쪽파는 힘도 못 펴고 핼쑥하다. 머지않아 쪽파가 잡초한테 파묻힐 지경인데 오만하고 기세등등하던 잡초를 뽑아버리니 마치 복통을 일으키던 뱃속의 회충이 없어진 것처럼 내 마음조차 개운하다.

좀 일찍 뽑아주지 않은 것을 쪽파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하였다. 잡풀에 가려 겨우 숨을 쉬는 쪽파가 주인을 향해 나무라는 것 같다. 작물은 주인의 발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말이 있다. 가물고 덥고 미세먼지도 많고 이상한 날씨에 몸을 사리고 밭에 나오는 것을 꺼렸기 때문에 잡풀이 밭을 덮는 것을 외면한 것이다.

대파 밭을 바라보니 여기도 잡초들의 행패가 극심하다. 한번 마음먹고 제초를 시작하였으니 오늘 좌우간 누가 이기든지 씨름해 보자. 이마에서 목을 타고 가슴팍으로 땀이 흐른다. 잡초는 물기를 찾아서 깊이 내려 박은 뿌리를 내주지 않으려고 몸부림을 친다. 뒷목에서 등줄기를 타고 땀이 흐른다.

시금치 밭도 오그라들고 시들어서 이미 죽은 것도 있다. 이 틈을 노려서 잡초는 번지르르 때깔도 좋고 호시절을 만났다. 시금치는 고개를 숙이고 힘이 빠지는데 잡초는 고개를 쳐들고 억세다. 시금치 뿌리는 살짝 스치기만 해도 끊어진다. 게으른 주인을 믿고 의지하여 스스로 살아갈 자력을 잃은 것이다.

잡초는 강하다. 톱칼도 우습게 알고 깊이 파고 숨는다. 손가락으로 찔러서 안간힘을 다하여 뽑으니 어렵사리 끌려나온다. 왜 잘 되라는 채소 보다 살지 말라는 잡초가 더 무성할까? 잡초는 온실의 식물보다도 강하고 전답의 작물보다도 강하다. 사람들의 발길에 짓밟히고 돌덩이에 맞아도 살아남는다. 뽑아 던진 것이 다 말라서 시들어도 비 한 방울에 새로 뿌리를 박고 일어선다. 잡초를 다 매고 수일 후에 다시 가 보면 어느새 잡초가 다시 살아나기도 하고 땅 속에 숨어 있던 씨가 싹을 틔워서 새 세력을 이루기도 한다. 잡초처럼 살까. 죽어도 죽지 않고 살아남는 잡초가 부럽다. 잡초는 나름대로 강인한 생의 투쟁을 하는 것이 대견하지만 농부의 입장에서는 곡식과 채소를 해치는 적이다.

어른들은 물론이고 아이들도 하라는 것보다 하지 말라는 것에 더 유혹이 강하여 쉽게 빠진다. 사람들은 몸에 해로운 술과 담배에 찌들고, 게임과 놀음에 몰리고, 남의 흉보기에 장단을 맞춘다. 첨단 과학 문명과 풍요한 물질의 세상은 그 끝이 요지경 세상이다. 물질은 눈부시고 환락이 넘쳐나는 거리에서 우리의 눈을 끌어가고, 귀를 쫑긋, 코를 킁킁, 혀를 쩝쩝거리게 하는 수많은 경계며, 퇴폐 문화로 말초신경을 자극하여 흥분시키고, 온갖 경계를 만들어서 돈 버는 수단으로 우리의 정신을 빼앗고 어지럽히는 일들이 난무하며, 개인 정보를 도용하듯이 우리의 육근을 고스란히 도용을 당하고, 황금만능주의, 배금사상, 물질 최우선주의의 거센 물결에 휩쓸린 인류는 마치 잡초처럼 언젠간 제거하고 구속당할 아무 쓸모없는 성대한 축제를 벌이는 것이다.

한동안 내가 소홀한 틈에 잡초가 채소를 억눌러 질식시켜 버리듯이 우리의 정신이 물질로 인하여 잠식되고 질식당하지나 않을까. 밭에 잡초가 뽑아도 다시 나고 또 뽑아야 하듯이 우리 마음속에서 기생충처럼 숨어서 버티는 심중의 잡초는 뽑고 또 뽑아야 한다.

뽑아도 다시 나는 잡초처럼 오래 맛들인 악습과 훈습의 뿌리는 깊다. 다름 아닌 탐진치로 탐욕, 진에, 우치심이다. 이 세 가지 독한 마음이 삼계의 천만 가지 번뇌를 끌어안고 독사처럼 혀를 날름거리면서 우리의 마음에 막대한 세력이 되어 번뇌를 일으키고 심신에 막중한 해를 끼친다.

어느 정도 욕심을 취했으면 만족하고 물러설 일이다. 온갖 핑계를 대면서 더 취하려고 욕심을 낼 일이 아니다. 재물도 권력도 명예도 사랑도 내가 어른이니 하는 장로 수자상도 놓을 자리에 놓아 버리자. 버리고 비운다는 것은 얼마나 깨끗하고 가볍고 시원한 일인가? 숨기고 감추고 속이고 돈으로 나를 지켜줄 사람들을 사고, 나를 죄 씻게 할 변호사를 수도 없이 세우고, 아무리 진실을 위장하고 역사를 왜곡시키려 눈에 불을 켜도 내 양심을 속일 수는 없다. 진실은 시간이 알고 하늘이 알고 땅이 안다.

탐욕을 멈추자. 그리고 내려놓고 가벼운 마음으로 떠나자. 인생을 탐욕으로 칠하고 또 칠하고 자꾸 덧칠해서야 되겠는가? 나중에는 종이가 망가지고 구멍이 나게 되듯이 탐욕에 빠지면 허우적대다가 마침내 인생이 누더기가 되고 걸레가 된다. 제발 훌훌 버리고 높이 솟아올라 가볍게 떠나자.

성냄을 버리자. 성을 내면 내 몸이 무거워지고 내 마음이 어두워진다. 이왕 떠나는 길이면 내 마음에 맞지 않아도 분하게 생각하지 말고 미워하고 욕하지 말고 떠나자. 내가 잘못이 없고 억울하다 해서 떠나는 마당에 누군가를 원망하고 증오해서야 되겠는가? 내가 잘못한 일로 용서를 빌고 참회하자. 내 잘못을 감추고 남을 원망하고 떠난다면 열반은 꿈같은 일이다. 내가 지은 업으로 인정하고 다 내 잘못이라고 빌고 떠나면 얼마나 좋을까. 떠날 때에는 미련 없이 떠나고 성내지 말고 선량한 마음으로 떠나자. 내 영혼이 맑아지고 내 영로가 밝아질 것이다.

수치심을 버리고 떠나자. 내 몸을 내려놓고 갈 때에는 어리석음을 헌신짝 버리듯이 내던져버리고 떠나자. 마음을 비우면 정신이 맑아지고 생각이 밝아진다. 더 멀리 더 널리 내다 볼 수 있는데, 나는 왜 그리 못하고 세상에 어두웠을까. 나의 어둡고 어리석은 우치심 때문이다. 나는 모든 현상에 어둡고 물정에 어둡고 세상사에 어둡고 도리에 어두웠다. 몸은 늙어가도 마음은 그대로여서 철을 모르고 산 탓이다.

세상 사람들의 어려운 모습을 모르고 살았다. 어렵게 살아 본 사람이 남의 세정도 알아줄 수 있는 데, 어려움이 없이 살다보니 남들이 왜 어렵게 사는 지 이해하지 못하였다. 사물에 어둡고 이치에 어둡고 바르게 판단이 안 섰다. 하지만 어디다 내놓고 내 부족한 것을 채워 달라고 하겠는가. 차마 남들에게 물어 보기에는 너무 늦었고 창피한 일이다. 몰라도 아는 것처럼 하자니 나는 늘 외로웠다. 남들의 충고도 침묵으로 막았고 내 고집스런 판단이 남보다 앞선 불만 알았다. 지나고 보니 결국은 내 잘못이었다. 내 잘못이 부메랑이 되어 날 후려쳤다. 내가 판단을 못하면 누군가가 나를 속이고 이용하리란 것을 미처 몰랐다. ‘나는 몰라, 네가 좀 고쳐주어.’ 내 일은 내가 책임지고 고칠 일이지 남에게 시킬 일은 아닌 것을 이제 깨달았다. 정말

모질게도 끝까지 나를 따라다니면서 괴롭혀 온 지긋지긋한 파렴치와 이 무거운 어리석음에 더 이상 짓눌려 살지 말자. 무거운 고독을 벗어버리고 솔직하게 소통하며 사람들 속에서 살자.

이제는 물욕을 절제하고 온전한 정신을 차리자. 우리가 생사를 해탈하고 열반을 얻으려면 이 지독한 세 가지의 독과 같은 마음을 벗어 던져야 한다. 그래야 나를 보고 참 나를 아는 것이다. 거짓을 벗어 버리고 참 나를 찾아야지, 내 자성자리를 챙겨야지. 견성을 하고 항마를 하고 열반을 이루어야 한다. 탐진치를 조복 받아서 착심을 풀어 던져야 한다.

이제부터 시작해도 늦지 않다. 내가 지은 부끄러운 죄업을 진심으로 참회하자. 내 무거운 철면피를 벗고 가벼운 양심을 드러내자. 이 두껍고 질긴 업장을 걷어내자. 온갖 착심을 버리고 생사를 해탈하자. 내 마음을 내 스스로 자유자재하는 진정한 자유인이 되자. 하늘 높이 가벼운 몸으로 훨훨 나는 새처럼 천만 경계를 놀이 삼아 고락을 즐기면서 가지고 노는 자유를 얻자.

 


▲수필가 최규풍
‧ 등단 : 대한문학 시‧수필, 한국창작문학 시

‧ 수필집 : ‘거울 속의 나’ 외

‧ 양지춘추, ,대한문학, 전북문단, 한국문인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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