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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화전민의 한 소녀 / 김규련

부흐고비 2021. 7. 16. 08:41

주인 없는 빈집 뜰에도 봄은 와서 이름 모를 풀꽃들이 한창이다. 무너진 장독대 돌틈 사이에는 두어 송이 민들레며 채송화도 무심히 피어 있다. 집이라고는 하지만 본시 어느 가난한 화전민이 살던 곳이라 울도 담도 없다. 이엉은 비바람에 삭아 내려앉고, 문이 떨어져 나간 빈방은 짐승이 살고 있는 동굴같이 그늘진 아궁이를 벌리고 있다.

그 퇴락됨이 그지없는 빈집 뜰에 한 소녀가 외롭게 돌멩이를 만지며 놀고 있다. 나는 묘한 느낌이 들어 바쁜 걸음을 멈추고 그 소녀에게 다가갔다. 여기는 태백산 준령이 동남으로 치닫는 산허리 깊숙한 산골 화전민 마을이다. 집들은 서로 산비탈에 흩어져 있고 인적도 드문 곳이기 때문이다.

반짝이는 눈으로 나를 힐끗 보고선 수줍은 듯이 손을 털며 일어서는 그 소녀에게 넌지시 말을 건네 봤다. 그녀는 열한 살, 초등학교 4학년생. 이곳에서 아랫마을로 정착한 화전민의 딸이었다.

소녀는 머리칼을 쓰다듬어 주는 나에게 이내 친근감을 느낀 듯 곧잘 말을 했다.

"이 시간에 학교는 안 가고 왜 여기 나와 있지?"

"오늘은 학교 일찍 마쳤습니더. 용철이가 돌아왔나 싶어서예, 와봤습니더."

"용철이가 누군데?"

"용철이는 우리 반 실장이고예, 나하고 제일 친했습니더. 그런데 작년에 포항쪽으로 이사를 갔습니더. 떠날 때 용철이는 봄이 되면 꼭 한번 온다 했는데 아무 소식도 없습니더."

스스럼없이 얘기를 해오다가 아무런 소식도 없다는 말에 이르러서는 그 어린것도 조금은 쑥스러움을 느꼈는지 쓸쓸한 표정을 감추려는 듯 살며시 얼굴을 돌렸다.

작금 양년에 걸쳐 이곳 영양(英陽)군 산골 마을에는 화전 정리가 시작되었다. 이로 인하여 산에 불을 놓아 밭을 일궈 살던 화전민들은 뿔뿔이 흩어져야만 했다. 그들은 헤어지기 앞서 여러 날 밤을 호롱불 밑에 모여 앉아 살아갈 궁리들을 했다.

어떤 밤은 소주를 나눠 마시며 막연한 새희망에 부풀어 기뻐들 해봤고 또 때로는 암담한 앞날이 내다보여 실의에 빠져 삶을 저주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드디어 어떤 화전민은 보상금을 타서 도시로 떠났고, 더러는 아랫마을로 옮겨 정착을 하기도 했다. 아마도 용철이네는 보상금 50만 원을 쥐고 낯선 도시를 찾아 정처없이 떠난 모양이었다.

조금 전 그 소녀가 혼자 앉아 놀던 자리에 제법 큰 돌무덤이 하나 있다. 그것은 지난날 그 소녀가 용철이와 함께 쌓아 올린 서낭당이라 했다. 어린것들이 무엇하러 서낭당을 다 만들었을까. 산중 아이들의 손쉬운 장난감은 돌멩이뿐이다. 그들은 기나긴 봄날 무료함을 달래려고 돌을 모아 성이며 탑을 쌓아올려 봤으리라. 그러다 문득 어린 가슴에 소망 같은 것이 느껴져서 그 돌멩이를 한 곳에 모아두고 불쑥 서낭당이라 불러 봤을지도 모른다.

화전민 어린이들에게 소망이 있다면, 그것은 감옥 같은 첩첩 산중을 빠져 나와 도시에서 살아 보는 일이다.

어쩌면 용철이는 이 소박한 소망이 이뤄져서 부모를 따라 저 험준한 읍령(泣嶺)을 넘게 되었으리라. 옛날 이 산중 사람들은 산이 하도 험해 울며 넘나들었다는 저 읍령을, 용철이는 어떤 느낌으로 넘어갔을까. 그도 역시 흐느끼며 넘어갔을 것이다. 산이 험준해서가 아니다. 코앞이 답답한 후미진 산중이지만 그가 태어나서 자란 정든 고향이기에 도시로 간다는 기쁨보다는 버리고 떠나는 섭섭함이 앞섰기 때문이었으리라. 전교생이라야 40여 명밖에 안되는 동기 같은 S분교 어린이들과 기약 없이 헤어지는 안타까움 때문에 어쩌면 그 순진한 산골 소년은 소리내어 울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소녀와 함께 쌓아 모은 서낭당의 돌멩이 하나쯤 차마 감춰 가지 않을 수 없었으리라.

나는 괜히 용철이가 보고 싶어져서 빈집, 빈방으로 발을 옮겨 봤다. 손때가 전 문설주에는 용철이네 식구의 따뜻한 체온 같은 것이 아직도 흐르고 있다. 신문지로 바른 벽에는 용철이가 그려 붙인 낡은 그림 몇 장이 그냥 남아 있다. 그가 상상해서 그렸을 기차며 도시 풍경 그리고 배가 떠 있는 바다그림. 그것은 분명히 파르르 떨며 아직도 숨을 쉬고 있는 것 같았다.

용철이의 그림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던 소녀는 불현듯 물기 젖은 목소리로 말을 했다.

'아저씨예, 포항 시내 초등학교 4학년 박용철 하면 편지가 가겠십니껴?'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냥 묵묵히 뜨락으로 걸어 나왔다. 하늘 아래 첫동네라는 이 적막한 산중에 뻐꾸기는 연신 구성진 울음소리를 토하고 있다. 외로운 소녀의 머리카락엔 노란 송화가루가 묻어 흐르고. 황량한 고산지대 허물어져 가는 빈집, 풀꽃 우거진 뜨락, 흐트러진 돌무덤과 이슬방울처럼 굴러 떨어지는 뭇 산새소리, 거기에 혼자 서성거리는 소녀. 나는 이 분위기 속에서 문득 산골 화전민 소녀의 수정같이 맑은 우정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또한 어린 가슴에 응어리지는 절규 같은 것을 들을 수 있었다. 그것은 아쉬움과 고독, 안타까운 기다림과 기도 같은 것이었다. 어쩌면 그것은 허공을 향하여 어린 손을 내젓는 허우적거림이라 할까.

언젠가는 있어야 할 화전 정리이기 때문에 한번은 겪어야 할 화전민의 아픈 숙명을 나는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옛부터 동심여선(童心如仙)이라 했는데 자연 속에 묻혀서 멋모르게 자라 오던 화전민의 어린것들이 너무도 일찍 그리고 갑자기 삶의 한 쓴맛을 느끼게 되는 것이 괜스레 마음에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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