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수필 읽기

작은 행복의 발견 / 김순경

부흐고비 2021. 7. 28. 10:47

- 정진권의 「비닐우산」을 읽고 -

전혀 낯설지가 않다. 정진권의 「비닐우산」은 읽는 내내 온기가 전해진다. 쉽게 접할 수 있는 평범한 생활을 통해 서민들의 소소한 행복을 나타냈다. 난해하거나 현학적이지 않아 쉽게 읽힌다. 그렇다고 글이 가볍거나 헤픈 것은 아니다.

주변에서 경험하고 보아왔던 일상적인 소재에서 출발하지만 갈수록 몰입하게 한다. 가벼운 이야기로 시작된 글이 점차 삶에 투영되면서 자연스럽게 공감하게 하는 힘이 있다. 「비닐우산」을 읽다 보면 지나친 욕심이나 허세를 부리지 않고 오직 현실에 충실한 소시민의 모습이 떠오른다. 주제가 무겁거나 어렵지 않아 별도의 설명 없이도 오래도록 뒷맛이 남는다.

정진권(1935∼2019)은 충북 영동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와 명지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문교부(현 교육부) 편수관과 한국체육대학교 교수를 역임했다. 학회나 문학단체의 자리보다는 “글이 곧 사람이다”라는 신조를 지키며 오직 학생을 가르치고 글을 썼다. 좋은 수필의 요건은 언어가 정서적이고 쉬워야 하며 소재가 일상적이어야 독자에게 친근감을 준다고 했다. 『내 아내는 잘라 팔 머리가 없다」의 「머리말」에서 "나는 우리말을 정확하게 쓰려 노력했고 글에 악의惡意가 스며들지 않도록 늘 경계했다. 내 글에 틀린 말이 많고 미워하는 소리가 섞여 있다면 그것은 내 재능과 인품이 모자라서이지 내가 노력도 경계도 안 해서 그런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비닐우산은 참 볼품없는 우산이다. 눈만 흘겨도 금방 부러져 나갈 듯한 살 하며, 당장이라도 팔랑거리면서 살을 떠날 듯한 비닐 덮개 하며, 한 군데도 탄탄한 데가 없다. 그러나 그런대로 우리의 사랑을 받을 만한 덕德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아주 몰라라 할 수만은 없는 우산이기도 하다."

소재와 제목이 서민의 상징인 비닐우산이다. 첫 단락만 읽어도 마음을 열 수 있는 친근한 소재이다. 수명이 짧아 상류층이나 부자들과는 거리가 멀지만 함부로 다룰 수 있는 보잘것없는 물건은 아니다. 평소에는 눈에 잘 띄지 않는 구석진 곳에서 온몸을 움츠리고 있다가 비만 오면 대로를 누비며 존재감을 드러낸다. 살이 부러지고 비닐이 후줄근하게 늘어나도 날개를 활짝 편다. 아무리 홀대해도 인간의 간사함을 탓하지 않고 비 오는 날이면 대오리를 힘껏 펼치며 제 역할을 다한다.

제대로 대접을 받은 적도 있다. 한때 우산은 학교 가는 아이들이나 외출하는 어른들만 주로 들고 다녔다. 바람만 불면 정신없이 뒤집히는 비닐이 천으로 바뀌고 어설픈 대오리가 강철로 변해도 예전만큼 귀한 대우를 받지는 못한다. 각종 행사장마다 들고 다니기 편한 2단, 3단으로 접히는 우산을 기념품으로 주다 보니 이제는 잘 가져가지도 않는다.

"비닐우산을 받고 위를 쳐다보면 우산 위에 떨어져 흐르는 맑은 빗방울이 보인다.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이 빗방울들이 떨어지며 내는 싱그러운 빗소리가 들린다. 투명한 비닐 덮개 위로 흐르는 그 맑은 빗방울, 묘한 리듬을 튕겨내는 그 싱그러운 빗소리, 단돈 백원으로 사기에는 너무 미안한 예술이다."

싸구려 우산에서 낭만과 행복을 찾는다. 값싼 일상용품에서 평상시에 맛볼 수 없는 여유를 찾고 다양한 세상 풍경도 바라본다. 우산이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가슴 졸이며 창밖을 내다보거나 복잡한 골목길을 황급히 뛰어가는 상상을 하지 않아도 된다. 살이 한두 개 부러져도 개의치 않고 한 번도 본 적 없는 소녀가 뛰어들어도 사랑스럽게 받아준다. 가슴속에 빈자리가 생기고 마음이 깃털처럼 가벼워야 떨어지는 빗방울이 보이고 얇은 비닐을 두드리는 싱그러운 빗소리도 들린다. 때로는 단돈 백 원짜리 비닐우산이 찌든 삶을 헝그럽게 만든다.

버스가 정류소에 섰을 때의 장면에서 일을 마치고 돌아올 가족을 기다리는 우산을 우산꽃이라 했다. 둥글게 펼쳐진 우산을 꽃에다 비유하고 버스에서 내린 사람들이 흩어지는 모습을 아름다운 풍경이라 했다. 많은 말을 했을지 아니면 빗소리를 들으며 조용히 걸어갔을지는 모르지만 우산 속에는 서로의 페로몬이 가득했을 것이다. 평범한 광경을 꽃의 아름다움으로 풀어내며 행복을 느끼게 하는 부분에서 잠시 눈을 감았다. 잊힌 줄 알았던 오래된 기억 하나가 눈 앞을 가렸다.

처음 도시로 유학을 왔을 때였다.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버스를 탈 때까지만 해도 멀쩡하던 날씨가 갑자기 흐려지더니 빗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먹구름이 점점 모여드는 것을 보니 크게 한줄기 할 것 같았다. 정류장에 내리면 한참을 뛰어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자꾸만 창밖으로 눈길이 갔다. 신입생이라 옷과 구두는 물론이고 가방까지 새것이라 신경이 쓰였다. 빗줄기는 점점 거세졌다. 봄비가 소나기처럼 내릴 줄은 몰랐다.

초등학교 시절이 생각났다. 아무리 빗줄기가 거세도 책 보따리를 어깨에 걸쳐 메고 비포장 오리길을 냅다 뛰었다. 가끔 우산을 들고 기다리는 부모도 있었지만, 언감생심 무조건 뛸 준비부터 했다. 어차피 기다려봐야 올 사람이 없었다. 한 번도 마중을 온 적이 없어 기다리지도 않았다. 거침없이 빗줄기 속으로 뛰어들었다. 양철 필통과 알루미늄 도시락의 달그락거리는 소리에 맞춰 한참을 뛰다 보면 빗물이 눈물처럼 흘러내렸다. 시간이 갈수록 달라붙는 젖은 옷이 점점 힘들게 했다. 그래도 아무 생각이 없이 앞만 보고 뛰었다. 오직 책만 젖지 않으면 되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가방을 품고 뛸 준비를 했다. 그때였다. 비닐우산 하나가 휙 날아와 머리 위에 멈췄다. 깜짝 놀라 고개를 들어보니 큰형수님이었다. 갑자기 비가 내리자 아기를 업은 채로 버스 정류장에 나와 있었던 것이었다. 언제 올지도 모르면서 기다렸다고 생각하니 말문이 막혔다. 말없이 골목길을 들어섰던 그 날은 유난히 빗방울 소리가 맑고 곱게 들렸다.

현관 구석에 비닐우산 하나가 서 있다. 어쩌다 눈이 마주치면 40여 년 전 환히 웃고 서 있던 큰형수님의 얼굴이 떠오른다. 지금도 캄캄한 검은 우산보다 세상이 훤히 내다보이는 비닐우산을 더 좋아한다. 하찮은 비닐우산으로 삶을 들여다본 정진권의 「비닐우산」에서 따뜻한 인간애가 느껴진다.

 

 

 비닐우산 / 정진권


언제 어디서 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우리 집에도 헌 비닐우산이 서너 개나 된다. 아마도 길을 가다가 갑자기 비를 만나서 내가 사 들고 온 것들일 게다. 하지만, 그 가운데 하나나 제대로 쓸 수 있을까? 그래도 버리긴 아깝다.

비닐우산은 참 볼품없는 우산이다. 눈만 흘겨도 금방 부러져 나갈 듯한 살하며, 당장이라도 팔랑거리면서 살을 떠날 듯한 비닐 덮개하며, 한 군데도 탄탄한 데가 없다. 그러나 그런대로 우리의 사랑을 받을 만한 덕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아주 몰라라 할 수만은 없는 우산이기도 하다.

우리가 길을 가다가 갑자기 비를 만날 때, 가난한 주머니로 손쉽게 사 쓸 수 있는 우산은 이것밖에 없다. 물건에 비해서 값이 싼지 비싼지 그것은 알 수 없지만, 어떻든 일금 일백 원으로 비를 안 맞을 수 있다면, 이는 틀림없이 비닐우산의 덕이 아니겠는가?

값이 이렇기 때문에 어디다 놓고 와도 섭섭하지 않은 것이 또한 이 비닐우산이다. 가령 우리가 퇴근길에 들른 대폿집에다 베우산을 놓고 나왔다, 이렇게 생각해 보라. 우리의 대부분은 버스를 돌려 타고 그리로 뛰어갈 것이다. 그것은 물론 오래 손때 묻어 정이 들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러나 백 원짜리라면 아마도 그러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고가의 베우산을 받고 나온 날은 어디다 그 우산을 놓고 올까 봐 신경을 쓰게 된다. 하지만, 하루 종일 썩인 머리로 대포 한잔하는 자리에서까지 우산 간수 때문에 걱정을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버리고 와도 께름할 게 없는 비닐우산은 그래서 좋은 것이다.

비닐우산을 받고 위를 쳐다보면, 우산 위에 떨어져 흐르는 물방울이 보인다. 그리고 빗방울이 떨어지면서 내는 그 통랑한 음향도 들을 만한 것이다. 투명한 비닐 덮개 위로 흐르는 물방울의 그 청랑함, 묘한 리듬을 만들어 내는 빗소리의 그 상쾌함, 단돈 백 원으로 사기에는 너무 미안한 예술이다.

바람이 좀 세게 불면 비닐우산이 홀딱 뒤집혀지기도 한다. 그것을 바로잡는 한동안, 비록 옷은 다소의 비를 맞는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즐거운 짜증을 체험할 수 있고, 또 행인들에게 가벼우나마 한때의 밝은 미소를 선사할 수 있어서 좋다. 그날이 그날인 듯, 개미 쳇바퀴 돌 듯하는 우리의 무미한 생활 속에, 그것은 마치 반박자짜리 쉼표처럼 싱그러운 변화를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좀 오래된 이야기 하나가 생각난다. 퇴근을 하려고 일어서다 보니, 부슬부슬 창밖에 비가 내린다. 나는 캐비닛 뒤에 두었던 헌 비닐우산을 펴 들고 사무실을 나왔다. 살이 한 개 부러져 있었다. 비가 갑자기 세차졌다. 머리는 어떻게 가렸지만, 옷은 다 젖다시피 했다. 그때였다. 누군가가 뛰어들었다.

책가방을 든 어린 소녀였다. 젖은 이마에 머리카락이 흩어져 있었다. 나 하나의 머리도 가리기 어려운 곳을 예고도 없이 뛰어든 그 귀여운 침범자는 다만 미소로써 양해를 구할 뿐 말이 없었다. 우리는 버스 정류소까지 함께 걸었다.

옷은 젖지만, 그래도 우산을 받고 있다는 안도감이 있었다. 마침내 소녀의 버스가 왔다. 미소와 목례를 함께 보내고 그는 떠났다. 이상한 공허감이 비닐우산 속에 남았다. 그것도 백 원으로 살 수 없는 체험일 것이다. 나도 곧 버스를 탔다. 차가 M 정류장에 설 때였다. 비는 여전히 쏟아지는데, 정류소엔 우산꽃이 만발해 있었다. 아버지를 기다리는 아들딸들, 오빠나 누나를 기다리는 오누이들, 남편을 마중나온 아낙네들일 것이다. 버스에서 내린 사람들은 용하게도 그를 맞으러 나온 우산을 찾아내었다.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그때 나는 차창 밖으로 한 젊은 여인을 보았다. 그녀는 비닐우산을 받쳐 들고 버스안을 살피었다. 남편을 기다리는 신혼의 여인이었을까?

버스는 또 떠났다. 그녀는 우두커니 서 있었다. 몇 번이나 버스를 그냥 보냈을까? 말없이 떠나는 버스를 조금은 섭섭하게 바라볼 그녀의 고운 눈매가 눈앞에 아른거렸다. 나는 눈을 감았다. 다음 버스에선 그녀가 기다리는 사람이 꼭 내렸을 것이다. 그리고 역시 용하게 알아보고는 그녀의 비닐우산 속으로 성큼 뛰어들었을 것이다.

왜 이렇게 늦었느냐는 원망의 눈길과 미안해하는 은근한 미소, 찬비에 두 온몸이 다 젖는대도 그 사랑은 식지 않을 것이다. 비닐우산은 참 볼품없는 우산이다. 한 군데도 탄탄한 데가 없다. 그러나 버리기에는 너무나도 아름다운 효용성이 있음으로 하여 두고두고 보고 싶은 우산이다. 그리고 값싼 인생을 살며, 조금만 바람이 불어도 넘어질 듯한 부실한 사람, 그런 몸으로나마 아이들의 머리 위에 내리는 찬비를 가려 주려고 버둥대는 삶, 비닐우산은 어쩌면 나와 비슷한 데도 적지 않은 것 같아서, 때때로 혼자 받고 비 오는 길을 쓸쓸히 걷는 우산이기도 하다.

'수필 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천국은 하늘에 없다 / 석인수  (0) 2021.07.29
매화는 지고 / 석인수  (0) 2021.07.29
살아있는 몸의 샘, 땀 / 김명인  (0) 2021.07.27
구멍, 늧을 읽다 / 김원순  (0) 2021.07.26
적敵 / 배혜경  (0) 2021.07.26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