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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구멍, 늧을 읽다 / 김원순

부흐고비 2021. 7. 26. 11:29

떨켜가 드디어 잎자루의 물구멍을 닫아버렸다. 체념한 잎들이 우수수 떨어진다. 별리의 가을이 못내 아쉬워 흘리는 나무의 눈물이다. 열정의 구멍이 스르르 닫혀버린 내 몸에서 떨어진 잎들이 생의 겨울이 올까 봐 바짝 긴장하고 있다. 의지, 도전, 끈기, 인내, 용기, 목표 그리고 믿음의 잎들.

결기의 겨울을 건너기 위해 잎자루를 야멸치게 내치는 수문장, 떨켜. 떨켜가 수문의 기척을 낼 때까지 봄은 준산빙벽을 오르내리며 오기와 극기로 심신을 단련시킨다. 눈 속의 노란 복수초와 매화의 안위를 살피는 눈, 동장군보다 매서운 봄이다. 내 열정의 구멍마다 풍구를 돌려보지만 기척도 않는다. 구멍이 한 생명을 키우거나 버린다는 것을 생의 구멍을 진중히 여닫아본 사람만이 안다.

다람쥐, 청설모도 겨울을 건너기 위해 나뭇구멍, 바위틈을 총총대고, 날짐승들은 설한풍을 막아낼 둥지에 세 드느라 꽁지가 빠지고 쇠골이 되겠다. 능갈맞은 해는 여름을 달달 볶던 심장을 꺼내 저무는 노을강에 담금질하고, 심술궂은 바람은 허파를 부풀려선 차도녀 같은 겨울을 휘파람 소리로 유혹한다. 불쑥, 삶의 허기가 심장 깊숙이 파고든다. 뼛구멍마다 냉기로 가득하다. 구멍에서 부는 바람소리를 세상 밖으로 날려 보낸다.

사각구멍 속의 작은 사각구멍들에 둘러싸인 방, 화장실, 거실, 현관을 거쳐 수문장인 대문을 나선다. 일 년이 넘도록 입, 코를 단속하는 마스크가 일상의 구멍들을 닫거나 막아버린 탓이다. 어느새 분신이 된 마스크를 끼고 을씨년스런 거리를 달팽이처럼 걷는다. 발자국 소리로 무성하던 미로가 겨울 연지처럼 괴괴하다. 어깨를 부딪던 무표정한 그림자들이 울컥, 그립다.

거리 양쪽으로 빽빽이 늘어선 유리벽 구멍들. 투명한 빙부(氷膚) 속의 우아하고 세련된 것들이 행인들의 눈을 현혹한다. 미련스런 더듬이로 멀뚱거리던 나는 유리벽 구멍으로 소리 없이 빨려 든다. 순간, 유리벽에 비친 내 모습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란다. 지고 다니는 집 한 채 없는 민달팽이가 은빛길을 끌고 나를 빤히 쳐다본다. 구멍이 하 많아도 마음자리가 눅눅하면 ‘마땅한’ 구멍이 아니라고 말하는 달팽이의 늧이 기껍다.

타인 같은 유리벽 구멍을 황급히 빠져나와 파장머리 난전으로 발길을 돌린다. 일상의 체증과 변비를 뚫어줄 풋것들을 주섬주섬 바구니에 담는다. 민달팽이가 잣는 은빛길이 될 환상의 그린푸드다. 초록 구멍을 뚫으며 야금야금 갉아먹는 맛, 둥근 초록세상을 다 가진 맛이다. 방구멍의 개수나 대소유무를 차별하지 않는 풀밭 같은 세상의 맛이다. 세상살이의 온갖 맛을 골라먹는 희열을 느끼려면, 세상을 보고 읽는 혜안을 가질 일이다.

말[言]구멍, 살림구멍, 사람구멍에 곧잘 빠지는 나를 노심초사 지켜보던 땅거미가 내려와 수굿한 내 등을 떠민다. 나를 기다릴 섬 같은 구멍이 문득 떠오른다. 보잘것없고 가년스럽지만 돌아갈 구멍이 있다는 것이 살아가는 데 얼마나 큰 힘이 되고 의지와 위안이 되는지! 산마루에 걸린 생, 등 따습고 두 다리 뻗을 구멍만 한 방이면 그것으로 족하다. 벌집 가슴은 밀봉들에게 다 내주겠다. 행여 구멍마다 ‘분별’과 ‘분수’의 꿀들로 채워지면 ‘자만’과 ‘부정’으로 가득 찬 가슴들에게 나눠줄 생각이다.

유일한 은신처이자 안식처인 사각구멍으로 돌아와 딸깍, 스위치를 올린다. 저무는 생의 고적한 밤을 환히 밝히는 따스한 구멍이다. 물속처럼 나른한 평온과, 켜켜이 쌓인 적막의 평담한 결이 구멍난 가슴을 속속들이 헹군다. 한평생 길이 아닌 길을 헤쳐온 뒤꿈치 굳은살 같은 구멍에, 고단한 하루를 끌고 온 두 다리를 경건히 뉜다. 영원한 꽃잠에 들고 싶은 구멍이다. 삶과 죽음을 공유하는 구멍에서 700년 전 ‘아라홍련’의 숨결이 되살아나 싹을 틔울 듯하다.

단풍처럼 곱게 물들어야 할 신혼시절, 시댁은 나갈 구멍조차 없는 우리 부부를 뒤도 한 번 돌아보지 않고 내쳤다. 우듬지에 둥지를 튼 까막까치, 여럿 구멍을 마음대로 드나들던 두더지, 생쥐가 참 많이 부러웠다. 부러움은 어느새 절망이 되고 체념의 뿌리마저 뻗었다. 눈물로 나를 바라보던 친정어머니께서 바늘구멍만 한 방을 마련해주셨다.

가을의 어귀 그 방에서 떡두꺼비 같은 아이를 낳았다. 아이가 막 들어섰을 때 하혈을 쏟았지만 어머니의 약손으로 겨우 붙든 아이다. 징검다리처럼 문구멍만 한 방, 대통 같은 방을 건너서 물항아리만 한 방에 왔을 때 백설공주 닮은 딸도 얻었다. 복덩이였을까, 방구멍의 개수도 늘고 비둘기 같은 화평도 깃들기 시작했다. 내게 있어 구멍은 기적과 신화를 낳는 신전이었다.

온전히 내 것이 아닌 구멍을 열 손가락도 넘게 옮겨다녔다. 하지만 아이들은 비 온 뒤 죽순처럼 자라서 멀리, 높이 바라보는 독수리처럼 제 둥지를 찾아 날아갔다. 어쩌다 아이들의 둥지를 가보면, 마침맞은 구멍에서 제 새끼들에게 절벽에서 날아오르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있었다. 구멍은 더 이상 바닥이 아니었다. 그 바닥을 차고 오르는 발구름판이었다.

어머니는 한동안 그 방으로 김치며 된장, 간장을 이고 오셨다. 삶의 맛 같은 시고 짠 국물들이 이마를 타고 구멍난 가슴으로 흘러들었다. 나는 어머니의 가슴에 싱크홀만 한 구멍이 생긴 줄 몰랐다. 부부의 연을 끊으려고 울부짖을 때 악마의 입 같은 크레바스가 어머니 가슴을 두 쪽으로 쩍, 갈라놓는 소리가 들리긴 했다. 그러나 내 어머니니까, 세상의 어머니들은 다 그렇게 살았으니까 그러려니 했다. 자수정동굴 천장을 녹여서 자란 종유석과 석순을 보면, 어머니의 애간장을 녹인 나 같아서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흘러내린다.

막무가내 구멍을 메우기보다 구멍의 변명을 뭉근히 들어주고, 구멍의 통절이 잦아들 때까지 묵상하는 것. 그 구멍의 진물이 마르면 딱지가 앉도록 마음의 연고를 발라주는 것. 이것이 헐은 구멍에 새살을 차오르게 하는 아름다운 처방이다. 채 아물지 못한 구멍난 가슴을 안고 귀천하신 어머니 영전에 촛불을 켠다. 눈물 같은 촛농이 나 대신 구멍을 메운다.

어느덧 봄이다. 느슨해진 흙구멍에 개미들의 발걸음이 분주하다. 고사리며 둥굴레는 연둣빛 봄을 쏘아올리고, 개나리와 산수유는 간지럼 태우는 햇살을 향해 깔깔댄다. 이 찬란한 봄날 세상에 첫울음을 터뜨리는 생명도 있고, 세상 구경 끝내고 귀천하는 생명도 있다.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은 구멍에서 태어나 구멍놀이를 하다가 구멍으로 돌아간다. 이 구멍 저 구멍 기웃대다 길을 잃고 헤매거나, 천 길 구멍 속에 처박히거나, 숨겨놓은 덫에 걸려 낭패를 보거나, 용케 빠져나와 ‘개’나 ‘용’이 되거나. 생성과 소멸의 꽃이 무궁무진 피고지는 구멍은 돛이고, 닻이고, 덫이다. 어떤 구멍에서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들여다보면 그 사람의 늧을 가히 짐작할 수 있다.

나의 늧은 가을하늘처럼 창창할까, 검은 옥 같은 야삼경일까. ‘늧이 사납다’, ‘늧이 글렀다’는 말이 타인의 입질에 오르내리지 않으려면 마음자리를 수시로 닦고, 다듬고, 치우고, 비우고, 버릴 일이다. 될성부른 나무의 떡잎처럼 모난 것, 못난 것, 앵돌아앉은 것, 숨거나 허공에 뿌리내리려는 것들을 품는 마음자리를 넓히는 일이다. 거짓없고, 솔직하고, 진실된 삶을 사는 사람들의 구멍은, 진흙 속에서 연꽃을 피우는 연근 같은 것. 내 탓이라며 가슴을 치고, 뉘우치며, 용서하는 향연이 회한처럼 피어오르는 거룩하고 위대한 성지다. 내가 살고 있는 구멍자리를 들여다보며 늧을 읽고 있다.

바람의 섬, 슬도의 파도가 켜는 비파소리를 듣는다. 일백만 개의 구멍이 뱉어내는 한(恨)의 소리다. 거친 파도와 먹이사슬로부터 제 육신을 지키기 위해 피눈물로 판, 석공조개들의 은신처이자 안식처였던 구멍이다. 폭풍우와 풍랑이 하 거셌으면 바위를 뚫어 은신했을까.

곰보섬. 석공조개들이 목숨을 걸고 지어준 이름이며 피땀으로 빚은 위대한 예술품이다. 제 몸 하나 살자고 살을 파내고 뼈를 추려도 가부좌를 틀고 묵상에 잠겼을, 작지만 어느 섬보다 품이 넓고 깊은 바위섬이다. 그러나 해골의 입 같은 백만 개의 구멍이 없었다면 파도가 감히 비파를 켤 수 있었을까.

석공조개들이 지어준 이름 슬도를 보면, 슬도보다 더 크고 많은 구멍을 품은 어머니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싶다. 아프다고, 괴롭다고, 힘들다고, 화난다고, 죽고 싶다고 어머니 가슴을 막무가내 후벼 판 내가 마치 못난 석공조개인 듯 섧다. 슬도의 파도처럼 비파를 켜서 용서를 빌고 싶은데, 어머니는 이제 내 곁에 계시지 않는다. 슬도의 파도는 밤낮으로 제 몸을 부숴서 비파를 켜는데... . 그런데 내 가슴의 구멍은 누가 비파를 켜주지?

무인도 등대에 기대어 비파소리를 듣고 싶다. 석공조개에게 육신을 다 내준 곰보바위를 닮고 싶다. 천지가 구멍인 세상 한가운데 서서 비파를 켜고 싶다. 그러면 내 삶의 떨켜도 수문을 활짝 열고 생의 봄날을 길어올리지 않을까, 무진장 꽃비를 뿌리지 않을까. 웅크렸던 구멍이 기죽지 않게 가슴을 활짝 편다.

구멍난 가슴에 휘파람소리가 들리면 한걸음에 달려갈 것이다. 슬도 앞바다가 구멍난 내 가슴에 비파를 켜주려고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의 늧을 보시고, “그만하면 됐다”고 말씀하시던 어머니처럼 덥석 안아줄지도 모른다.

처얼썩, 철썩. 예까지 들리는 파도소리가 아직도 희뿌연 내 늧을 속속들이 맑힌다.

김원순 △1992년 월간《한국시》신인상 △1994년 월간《수필문학》천료 △2010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수필「소금」당선 △2011년 제1회 부산문인협회 ‘올해의 작가상’ 수상 △수필집:『적심』(2015년),『세상은 막걸리다』(202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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