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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적敵 / 배혜경

부흐고비 2021. 7. 26. 09:29

반가운 얼굴이 화면 가득하다. <정조지>에 푹 빠져있다고 한다. <정조지鼎俎志>는 실학자 풍석 서유구가 쓴 음식요리 백과사전이다. 총 7권 4책, 12만 자가 넘는 책으로 ‘정조鼎俎’는 솥과 도마를 뜻한다. 어릴 때부터 서유구는 어머니에게 손수 감저죽을 쑤어 드렸다고 한다. 활시위를 팽팽히 당긴 듯한 눈초리로 쌓아둔 자료를 읽는 작가 김훈. <연필로 쓰기> 이후의 작품이 기대된다.

재료 고유의 맛을 살린 다양한 음식 중 ‘전립투氈笠套’가 인상적이다. 당시 집집마다 있었다는 전립투는 요리도구이자 음식 이름이다. 조선 시대 군복에 쓴 전립이라는 벙거지 모양을 본떠 무쇠나 곱돌로 만든 전골 요리용 커다란 식기로 양편에 고리 모양의 손잡이를 달아 들기에 편하게 만들어졌다. 먹고 사는 생활의 엄중함에 자연스레 속해 있는 전투모가 오래전 읽은 그의 소설을 불러준다.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 주격 조사를 두고 오래 고심했다는 첫 문장이다. 생경한 문체로 벼린 날 선 의식이 비장하게 읽히다 책장을 덮는 순간 전체를 관통하는 유장한 이미지로 서늘한 풍경을 그려주었다. 감추지 못하는 낭만주의자의 밑얼굴을 흠모하며 먹먹해지도록 비정한 문장을 붙들고 앞뒤로 왔다 갔다 머뭇거렸다. 칼로 긋듯 단문으로 내리치며 나아가는 문장을 헤집고 나는 흡사 울돌목의 거센 소용돌이를 더디게 빠져나와야 했다. 추상적 단어와 관념 속 어떤 이미지들이 명치를 치고 들어왔다 치고 나가길 반복하는 과정에서 이순신이라는 실제 인물보다 전쟁터에 속한 한 인간이 격전의 한바다에 실존으로 서는 환영을 본 듯했다.

전쟁터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의 역사적 배경을 초월하여 시공을 넘나드는 우리 삶의 보편적 공허함 속에 건재한다. 그 공허함이 부정적인 것일까. 의문을 제기하는 순간 그것은 시비를 가릴 수 없는 저 너머에 서서 미성숙한 독자를 그윽하게 바라보며 미소짓는다. 너무 긍정적이어서 섬뜩한 진실의 칼날에 베이는 것이다. 전능자의 눈길이 그와 비슷할지 모른다. 묻지 말고 입어야 할 숙명의 갑옷과도 같은, 연명한 목숨의 권리에 대한 부채가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그것은 생포되어 견뎌야 할 생의 그렇게나 대단한 폭염이거나 입가리개를 하고 싸워야 하는 정체불명의 바이러스와도 같다. 무더위가 육신을 누르고 정신마저 지치게 하는 즈음, 그렇다면 이것이 생에 마지막 폭염이라 생각하고 살라는 누군가의 명철한 말을 떠올리는 순간이기도 하다.

소설 <칼의 노래>는 우리 삶의 무수한 적敵에 대한 담론이다. 온갖 냄새 창궐하는 전장戰場에서 죽음을 맞는 법에 대한 고찰이다. 적은 실체를 드러내지 않고, 전체적으로 밀려온다. 개별적으로 닥쳐올 때마저도 그것은 하나의 전체로서 압박한다. 어쩌면 한 척 몽유夢遊의 적선敵船에 솥과 도마를 걸고 사는 우리. 격랑에 난파한 오욕칠정을 부여잡고 표류하듯 적들도 '나'가 대적할 대상이 애초에 아닌지도 모른다. 나를 경멸하고 조롱하는 적, 나에게 불친절하고 나를 오역하는 세상의 모든 적, 나의 총체적 적군에게 취할 수 있는 자세는 무엇일까.

계곡물 소리 들리는 늦여름 평상에 앉아 죽음을 이야기한 적이 있다. 아무도 경험해 보지 못한 일을 설왕설래하다니, 부질없었다. 곧 죽음을 겪을 수매미가 그악스레 울어댔다. 그리 울어대면 장렬한 전사戰死가 되려나. 그래봤자 흙이 될 주검이다. 그즈음 지리산에서 홀로 생의 종지부를 찍었다는 여인의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치료를 거부하여 온몸에 퍼진 암세포가 그의 드러난 적이었다. 혼신을 다해 살다 죽음의 방식을 일부 선택한 그이가 어떤 인물과 겹쳐졌다. 소설 속 이순신은 전쟁터에서 적의 화살에 죽는 것이 자연사라고 확신했다. 그런 의미에서 세상의 죽음은 모두 자연사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이들이 '얼마나 외로웠을까'를 웅얼거렸다.

죽음을 맞이하는 때 속해 있을 공간도 이야기했다. 죽음을 맞는 방식은 공간과 밀접할 것 같다고 여겼다. 저녁이면 아스라이 작은 불빛 명멸하는 포구마을이거나 폭풍우 치면 배가 묶일 남쪽 섬을 꿈꾸지만, 뭐가 됐든 지리멸렬한 전세戰勢의 끄트머리에서 서성대는 사랑, 그러니까 적의 품 정도가 될 것이다. 사랑의 실체도 모호하다는 생각이 그제야 들었다. 신기루에 불과하거나 제멋대로 탈바꿈하며 원정遠征하는 구름 떼일지 모른다. 전승은 요원하고 기껏해야 쇠잔한 패잔병으로 퇴각할 것이다. 사랑은 그런 게 아니다, 아니어야 한다는 말을 어깨를 움츠리며 삼켰다.

살아온 만큼의 세월을 더 살아야 할지도 모르는 시대가 끔찍하다는 말이 급기야 튀어나왔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새로운 걸 시작해도 늦지 않다는 말이다. 죽음을 맞는 방식이 생을 맞는 방식일 것이다. 적과 부대끼다 자연사하고, 장기는 기증할 것이다. 그 정도면 족하다. 술잔이 몇 순배 돌고 그 힘을 빌려 대책 없이 주절대었지 싶다.

작가는 소설의 서문에서 “사랑은 불가능에 대한 사랑일 뿐”이라며 절박한 오류를 안고 홀로 살겠다고 선포했다. 살기등등하게 눈보라 휘날리며 달려드는 적 앞에서 "고착은 곧 죽음"이라고 장군의 입을 빌려 엄포했다.

적은 우리가 희망을 거는 것들이 복면을 벗고 고개를 쳐드는 복병인지도 모른다. 잠시나마 비상하던 꿈을 깨워 천 길 낭떠러지로 추락하게 한다. 비루한 우리는 어제도 오늘도 꿈을 꾸었고 또 깨어났다. 내일은 내일의 꿈을 꿀 수 있겠지만 장담할 수 있는 건 한 가지도 없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절망마저 사랑해야 한다.

"사랑이여 아득한 적이여, 너의 모든 생명의 함대는 바람 불고 물결 높은 날, 내 마지막 바다 노량으로 오라. 오라, 내 거기서 한줄기 일자진으로 적을 맞으리."

‘칼의 울음’으로 시작하여 '들리지 않는 사랑노래'로 맺는 긴 서사는 전장의 끝에서 발하는 처절한 희망으로 우리를 치닫게 한다. 적과 함께 너울거리다 칼로 베어지지 않는 적을 온몸으로 안아 자연사를 꿈꾸는 소설 속 고독한 성웅은 적을 가장 사랑한 사람, 치욕스러운 결박의 삶을 누구보다 사랑한 사람이 아니었을까. 두렵지 않았을 리 만무하다.

나는 지금 나의 전쟁터에 제대로 속해 있는가. 내 마음의 전립투를 가만히 짚어 본다. 적 속에 내가 속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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