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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 느낌

김상용 시인

부흐고비 2021. 8. 4. 08:43

남으로 창을 내겠소 / 김상용
남(南)으로/ 창(窓)을 내겠소.// 밭이 한참갈이/ 괭이로 파고/ 호미론 김을 매지요.// 구름이 꼬인다/ 갈 리 있소.// 새 노래는 공으로 들으랴오.// 강냉이가 익걸랑/ 함께 와 자셔도 좋소// 왜 사냐건/ 웃지요.//

* 1934년 2월 《문학》제2호에 실렸다.

시(詩) / 김상용
골짜기를 혼자 거닐 때……. 별안간 무슨 소리고 내고 싶은 충동이 난다. 입술을 새 주둥아리처럼 한데 모아야겠다. 새 주둥아리로 압축되었던 '김'이 질주한다./ 그 소리가 (분명 소리리라) 건너편 절벽에서 반발한다. 곳곳에 작은 작열의 불꽃. 이때 나의 새 발견이 있다 하고 가슴이 외쳐준다. 경이다./ '시(詩)'란 작열이다. '저'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라 해서 죄는 안 된다. '돌'이 갈려 옥이 될 수 없다. 예서 더 진부한 상식이 있겠는가. 능금꽃은 능금나무 가지에 피고……./ '시의 생성'은 아메바적 분열 작용에만 유래한다. '시'와 '시인'은 같은 조각이다. 파란 시의, 시인의 얼굴빛의, 분홍색의 허위성의 진정을 알아야 한다. '시는 나다' 할 수 있는 시인이 '피로 썼다' 할 수도 있다./ '달이 청첩을 보냈다' 이 환자를 몽유병환자로 진단한 명의의 과학에 오류가 없다. 그러나 이때 '시'의 산욕은 어수선하였다. 진리는 달이라 하나, 시는 허무의 아들로 자처한다. 시에서 모순을 발견치 못하는 건 백치다. 그러나 시의 모순을 사랑하지 못하는 건 백치를 부러워해야 할 속한이다./ 시커먼 바위에서 애정을 느낄 수 있을까? 있다. 어떻게? 시커먼 바위에서 애정을 느낄 수 없으니까 느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시커먼 바위에서 애정을 느낄 수 있으니까 느낄 수 있다. 이때 위대한 시인은 월계관을 쓰고 동구 앞에 서 있게 되는 게다./ 쥐 둥지 하나의 파괴를 로마 성의 함락보다 서러워한 천치가 있었다. 이날, 세상은 도량형의 이상을 경고한다./ 아유(阿諛)*할 때 시는 죽는다./ 진흙에서 연꽃이 핀다. 이 점에서 자연은 시인이다./ 시를 직업으로는 못한다. 정절을 직업으로 할 수 있을까./ 시가 거울일 때, 그는 고독의 단 젖을 빤다.//
* 아유(阿諛) : 남의 환심을 사거나 잘 보이려고 알랑거림. 또는 그런 말이나 짓.

희망의 봄 / 김상용
4월 남풍이 개나리와 진달래를 어루만지고 지나간 봄날 오후, 태양빛이 포도 위의 싹이 트려는 가로수에 따사롭다./ 완(緩)한 구배(勾配)의 탄탄한 가도를 올라가는 두 어린 학생./ 새 구두에 새 모자, 이번 새로 입학된 모(某) 중학생임이 분명하다./ 모자의 흰 줄과 새 모표가 유난히 빛났다./ 그들의 걸음은 가벼웠다./ 둘이 어깨를 펴고 걸으며 도란도란 교환하는 이야기를 들을 수가 있었다./ “나는 이제부터 정말 공부를 잘해볼 작정이다”하는 한 학생의 말에,/ “무슨 공부를 할 테냐?”하고 다른 한 학생이 물었다./ “나는 과학을 연구할 테다. 천문학이 재미가 있는 것 같아. 화성 세계에 가보고 싶구나.”/ “그것도 좋은 생각이다. 나는 큰 시인이 되겠다. 내 글이 만 사람을 위로하고 그들의 넋을 깨끗이 해준다면 정말 좋을 것 같이 생각이 돼!”/ 희망에 불타는 네 눈동자./ 언덕 저편에 솔 우거진 산이 솟고 산 너머로 한없이 하늘이 연(連)하였다.//

 

가을 / 김상용
달이 지고/ 귀또리 울음에/ 내 청춘(靑春)에 가을이 왔다.//

눈오는 아침 / 김상용
눈오는 아침은/ 가장 성(聖)스러운 기도(祈禱)의 때다.// 순결(純潔)의 언덕 우/ 수묵(水墨)빛 가지가지의/ 이루어진 솜씨가 아름다워라.// 연기는 새로/ 탄생(誕生)된 아기의 호흡(呼吸)/ 닭이 울어/ 영원(永遠)의 보금자리가 한층 더 따스하다.//

고구양약 / 김상용
배금열(拜金熱)이 팽배하던 자유주의의 그 시절 그때엔 사실 돈만 가지면 능치 못한 것이 없었다. 그러나 금력으로도 무가내하(無可奈河). 일정한 양미, 일정한 시탄(柴炭)으로 절제의 생을 달게 여겨야 되는 날이왔다. 너무 풍성하던 옛 호화의 기억에 자칫하면 오늘의 긴장이 고(苦)로 생각될 수도 있다./ 물자가 너무 풍성하던 그때 우리는 황금의 힘에 절대고 물(物)의 고마움을 채 잊기 쉬웠다./ 이제 비로소 쌀알의 귀함, 목면옷의 고마움을 알게 되었다. 나아가 논 가는 이, 나무 베는 지아비의 덕을 깨달아야 한다./ 생과 물에 대한 의의를 발견할 절호의 기라면 오늘의 군색은 차라리 고마운 교훈이 아닐까. 사물을 바로 보는 자를 경계해 이런 고화(古話)가 있다./ 아내가 김장독을 사다 씻어 엎어놓았다. 이것을 본 지아비,/ "허, 입 없는 독을 사왔구나."/ 문득 밑을 들어보고,/ "이런, 밑까지 빠졌네."/ 이 지아비의 평은 독자에게 맡긴다.//

허식(虛飾)의 변(辯) / 김상용
“매사에 정직하라.”/ 이는 수신서(修身書) 1권부터 소리를 높여 가르치는 수양의 옥조(玉條)다./ 이어 “꾸미지 말라. 허식을 버리라”한다. 참으로 그럴까./ 임종기의 병자에게 “너는 곧 죽는다”함은 별로 받고 싶지 않은 정직한 인사일 게다. 둔한 자식이라도 재자(才子)라고 하면, 그 어버이는 우선 어리석은 위안을 받음이 또한 인정이 아닐까./ 희로애락을 색에 안 나타냄이 군자라 하니 군자학의 첫 장은 먼저 속을 안 뵈는, 말하자면 겉을 지극히 부정직하게 꾸미는 데서 시작이 된다 하리라. 잘 살아가려면 ‘곱게 부정직’해야 한다는 이만 정도의 해학은 성립될 것 같다./ 한 동안 사람들의 초대면 시간 상(相)을 살펴본 일이 있다. 백의 99는 정해놓고 먼저 미소를 띤다. 쇠살에 말뼈건만 연해 싱글벙글하는 것이 보통이다. 의식 유무간에 미소는 허식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 미소를 말살한다면 가뜩이나 쓸쓸한 세상이 얼마나 더 적막할 것이뇨./ 가작 · 허식 - 이는 차라리 예양지도(禮讓志道)의 7분(分)일지도 모른다.//

서글픈 꿈 / 김상용
뒤로 산/ 높이 들리고/ 돌 새에 샘 솟아 적은 내 되오.// 들도 쉬고/ 잿빛 뫼뿌리의/ 꿈이 그대로 깊소./ 폭포는 다음 골에 두어/ 안개냥 '정적'이 잠기고..../ 나와 다람쥐 인친 산길을/ 넝쿨이 아셨으니// 나귀 끈 장군이/ 찾을 리 없오.// '적막' 함께 끝내/ 낡은 거문고의/ 줄이나 고르랴오.// 긴 세월에게/ 추억마저 빼앗기면// 풀잎 우는 아침/ 혼자 가겠소.//

포구(浦口) / 김상용
슬픔이 영원(永遠)해/ 사주(砂洲)의 물결은 깨어지고/ 묘막(杳漠)한 하늘 아래/ 고(告)할 곳 없는 여정(旅情)이 고달퍼라.// 눈을 감으니/ 시각(視覺)이 끊이는 곳에/ 추억이 더욱 가엾고// 깜박이는 두 셋 등잔 아래엔/ 무슨 단란(團欒)의 실마리가 풀리는지......// 별이 없어 더 서러운/ 포구(浦口)의 밤이 샌다.//

나 / 김상용
나를 반겨함인가 하여/ 꽃송이에 입을 맞추면/ 전율(戰慄)할 만치 그 촉감(觸感)은 싸늘해-// 품에 있는 그대로/ 이해(理解) 저편에 있기로/ '나'를 찾았을까?// 그러나 기억(記憶)과 망각(忘却)의 거리/ 명멸(明滅)하는 수(數)없는 `나'의/ 어느 '나'가 '나'뇨.//

태풍(颱風) / 김상용
죽음의 밤을 어질르고/ 문(門)을 두드려 너는 나를 깨웠다.// 어지러운 명마(兵馬)의 구치(驅馳)/ 창검(槍劍)의 맞부딪힘,/ 폭발(爆發), 돌격(突擊)!/ 아아 저 포효(泡哮)와 섬광(閃光)!// 교란(攪亂)과 혼돈(混沌)의 주재(主宰)여/ 꺾이고 부서지고,/ 날리고 몰려와/ 안일(安逸)을 항락(享樂)하는 질서(秩序)는 깨진다.// 새싹 자라날 터를 앗어/ 보수(保守)와 조애(阻碍)의 추명(醜名) 자취(自取)하든/ 어느 뫼의 썩은 등걸을/ 꺾고 온 길이냐.// 풀 뿌리, 나뭇잎, 뭇 오예(汚穢)로 덮인/ 어느 항만(港灣)을 비질하여/ 질식(窒息)에 숨지려는 물결을/ 일깨우고 온 길이냐.// 어느 진흙 쌓인 구렁에/ 소낙비 쏟아 부어/ 중압(重壓)에 울던 단 샘물/ 웃겨 주고 온 길이냐.// 파괴(破壞)의 폭군(暴君)!/ 그러나 세척(洗滌)과 갱신(更新)의 역군(役軍)아,/ 세차게 팔을 둘러/ 허섭쓰레기의 퇴적(堆積)을 쓸어 가라.// 상인(霜刃)으로 심장(心臟)을 헤쳐/ 사특, 오만(傲慢), 미온(微溫), 순준(巡逡) 에어 버리면/ 순진(純眞)과 결백(潔白)에 빛나는 넋이/ 구슬처럼 새 아침이 빛나기도 하려니.//

그대가 누구를 사랑한다 할 때 / 김상용
그대가 누구를 사랑한다고 할 때/ 그대는 결국 그대를 사랑하는 걸세./ 그대 넉의 그림자가 그리워/ 알들이 알들이 따라가는 걸세.// 그대 넉이 허매지를 안켓는가/ 헤매다 그 사람을 찾앗다 하네/ 그 사람은 그대의 거울일세./ 그대 넉을 비최는 분명한 거울일세.//그대는 그대 그림자를 보고/ 그 그림자를 거울만 녁여 사랑하네./ 그래 그 거울을 사랑한다 하네./ 그 사람을 사랑한다 맹서하게 되네./ 그러나 그대 그림자 없스면/ 그대는 도라서 가네.// 그대가 그 사람을 부족타하고 가지 않는가./ 그대 넉 못빗최는 구석이 잇는 까닭일세./ 지금 그대 넉은 또 길을 떠나네./ 누군지 모를 그 사람을/ 또 찾아 허매러 가네.// 그대 넋 온통을 비춸 거울이 어듸 잇나/ 그대 찾는 정말 그 사람이 어듸 잇나/ 찾다가 울고 울다가 또 찾아보고/ 그리다가 찾든 그대 넉 좃차/ 어듼지 모를 곳 가 바릴게 아닌가.//

일어나거라 / 김상용
아침의 大氣(대기)는 宇宙(우주)에 찼다./ 동편 하늘 붉으레 불이 붓는데/ 槿域(근역)의 일꾼아 일어나거라/ 너희들의 일때는 아침이로다.// 濃霧(농무)가 자옥한 神爽(신상)한 아침/ 죽은듯 고요한 輕快(경쾌)한 아침에/ 큰 소래 웨치며 일어나거라/ 너의들의 잘때는 아침이 아니다.// 아침의 大氣(대기)를 흠씬 마시며/ 鞏固(공고)한 意志(의지)와 굿굿한 肉體(육체)로/ 팔 다리 것고서 일터에 나오라/ 血潮(혈조)의 戰線(전선)에 힘있게 싸우자.//

물고기 하나 / 김상용
웅덩이에 헤엄치는 물고기 하나/ 그는 호젓한 내 심사(心思)에 걸렸다.// 돍새 너겁 밑을 갸웃거린들/ 지난 밤 져버린 달빛이/ 허무(虛無)로히 여직 비칠리야 있겠니?/ 지금 너는 또 다른 웅덩이로 길을 떠나노니/ 나그네 될 운명(運命)이/ 영원(永遠) 끝날 수 없는 까닭이냐.//

괭이 / 김상용
넙적 무뚜룩한 쇳쪼각, 너 괭이야/ 괴로움을 네 희열로/ 꽃밭을 갈고,/ 물러와 너는 담 뒤에 숨었다.// 이제 영화의 시절이 이로/ 봉오리마다 태양이 빛나는 아츰,/ 한 마디의 네 찬사 없어도,/ 외로운 행복에/ 너는 호올로 눈물 지운다.//

노래 잃은 뻐꾹새 / 김상용
나는 노래 잃은 뻐꾹새/ 봄이 어른거리건/ 사립을 닫치리라./ 냉혹한 무감을/ 굳이 기원한 마음이 아니냐.// 장미빛 구름은/ 내 무덤 쌀 붉은 깊이어니// 이러해 나는/ 소라(靑螺)같이 서러워라// '때'는 지꿎어/ 꿈 삼켰던 터전을/ 황폐의 그늘로 덮고…// 물 깃는 처녀(處女) 도라간/ 황혼(黃昏)의 우물 ㅅ 가에/ 쓸쓸히 빈 동이는 노혔다.//

반딧불 / 김상용
너는 정밀(靜謐)의 등촉/ 신부 없는 동방(洞房)에 잠그리라.// 부러워하는 이도 없을 너를/ 상징해 왜 내 맘을 빚었던지// 헛고대의 밤이 가면/ 설은 새 아침/ 가만히 네 불꽃은 꺼진다.//

어미소 / 김상용
산성(山城)을 넘어 새벽 들이 온 길에/ 자욱자욱 새끼가 그리워/ 슬픈 또 하루의 네 날이/ 내[煙] 끼인 거리에 그므는도다.// 바람 한숨 짓는 어느 뒷골목/ 네 수고는 서 푼에 팔리나니/ 눈물도 잊은 네 침묵(沈黙)의 인고(忍苦) 앞에/ 교만(驕慢)한 마음의 머리를 숙인다.// 푸른 초원(草原)에 방만(放漫)하던 네 조상(祖上)/ 맘 놓고 마른 목 축이든 시절(時節)엔/ 굴레 없는 씩씩한 얼굴이/ 태초청류(太初淸流)에 비쵠 일도 있었거니……//

기도 / 김상용
님의 품 그리워/ 뻗으섰든 경건(敬虔)의 손길/ 걷우어 가슴에 얹으심은/ 거룩히 잠그신 눈이/ <모습>을 보신 때문입니다//

황혼의 한강 / 김상용
‘고요함’을 자리인 양 편 ‘흐름’ 위에/ 식은 심장같이 배 한 조각이 떴다.// 아- 긴 세월, 슬픔과 기쁨은 씻겨가고/ 예도 이젠듯하늘이 저기에 그믄다.//

한잔 물 / 김상용
목마름 채우려던 한 잔 물을/ 땅 위에 엎질렀다.// 너른 바다 수많은 파두를 버리고/ 하필 내 잔에 담겼던 물// 어느 절벽 밑 깨어진 굽이런지/ 어느 산마루 어렸던 구름의 조각인지/ 어느 나뭇잎 위에/ 또 어느 꽃송이 위에/ 내려졌던 구슬인지/ 이름 모를 골을 내리고/ 적고 큰 돌 사이를 지난 나머지/ 내 그릇을 거쳐/ 물은 제 길을 갔거니와......// 허젓한 마음/ 그릇의 비임만을 남긴/ 아아 애닯은 추억아!//

마음의 조각 / 김상용
1// 허공에 스러질 나는 한 점의 무(無)로 -// 풀 밑 벌레소리에,/ 생과 사랑을 느끼기도 하나// 물거품 하나 비웃을 힘이 없다.// 오직 회의의 잔을 기울이며/ 야윈 지축을 스러워 하노라.// 2// 임금 껍질만한 정열이 있느냐?/ '죽음'의 거리여!// 썩은 진흙 골에서/ 그래도 샘 찾는 몸이 될까// 3// 고독을 밤새도록 잔잘하고 난 밤,/ 새 아침이 눈물속에 밝았다.// 4// 달빛은 처녀의 규방으로 들거라./ 내 넋은 암흙과 짝진지도 오래거니-// 5// 향수조차 잊은 너를/ 오늘부턴 또야 부르랴?// 혼자 가련다.// 6// 오고 가고/ 나그네 일이오// 그대완 잠시 동행이 되고.// 7// 사랑은 완전을 기원하는 맘으로/ 결함을 연민하는 향기입니다.// 8/ 생의 '길이'와 폭과 '무게'녹아 한낱 구슬이 된다면/ 붉은 '도가니'에 던지리라.// 심장의 피로 이루어진 한 구의 시가 있나니 -// '물'과 '하늘'과 '님'이 버리면 외로운 다람쥐처럼/ 이 보금자리에 쉬리로다.//

새벽 별을 잊고 / 김상용
새벽 별을 잊고/ 산국山菊의 '맑음'이 불러도/ 겨를없이/ 길만을 가노라.// 길!/ 아-- 먼 진흙 길/ 머리를 드니/ 가을 석양夕陽에/ 하늘은 저리 멀다.// 높은 가지의/ 하나 남은 잎새!// 오랜만에 본/ 그리운 본향本鄕아.//

굴뚝 노래 / 김상용
맑은 하늘은 새 님이 오신 길!/ 사랑 같이 아침볕 밀물 짓고/ 에트나의 오만(傲慢)한 포­즈가/ 미웁도록 아름져 오르는 흑연(黑煙)/ 현대인(現代人)의 뜨거운 의욕(意欲)이로다.// 자지라진 로맨스의 애무(愛撫)를/ 아직도 나래 밑에 그리워하는 자(者)여!/ 창백(蒼白)한 꿈의 신부(新婦)는/ 골방으로 보낼 때가 아니냐?// 어깨를 뻗대고 노호(怒號)하는/ 기중기(起重機)의 팔대가/ 또 한 켜 지층(地層)을 물어 뜯었나니……/ 히말라야의 추로(墜路)를 가로막은 암벽(岩壁)의/ 심장(心臟)을 화살한 장철(長鐵)/ 그 우에 ‘메’가 나려/ 승리(勝利)의 작열(灼熱)이 별보다 찬란하다.// 동무야 네 위대(偉大)한 손가락이/ 하마 깡깡이의 낡은 줄이나 골라 쓰랴?/ 천공기(穿孔器)의 한창 야성적(野性的)인 풍악(風樂)을/ 우리 철강(鐵鋼) 우에 벌려 보자/ 오 우뢰(雨雷) 물결의 포효(咆哮) 지심(地心)이 끊고/ 창조(創造)의 환희(歡喜)! 마침내 넘치노니/ 너는 이 씸포니­의 다른 한 멜로디­로/ 흥분(興奮)된 호박(琥珀)빛 세포(細胞) 세포(細胞)의/ 화려(華麗)한 향연(饗宴)을 열지 않으려느냐?//

손 없는 향연(饗宴) / 김상용
하늘과 물과 대기에 걸려/ 이역의 동백나무로 자라남이여/ 손 없는 향연을 버리고/ 슬픔을 잔질하며 밤을 기다리로다// 사십 고개에 올라 생을 돌아보고/ 적막의 원경에 오열하나/ 이 순간 모든 것을 잊은 듯/ 그 시절의 꿈의 거리를 배회하였도다// 소녀야 내 시름을 간직하여/ 영원히 네 가슴속 신물(信物)을 삼으되/ 생의 비밀은 비오는 저녁에 펴 읽고/ 묻는 이 있거든 한 사나이/ 생각에 잠겨 고개 숙이고/ 멀리 길을 간 어느 날이 있었다 하여라//

 

향수 / 김상용
인적 끊긴 산속/ 돌을 베고/ 하늘을 보오./ 구름이 가고./ 있지도 않은 고향이 그립소.//

추억(追憶) / 김상용
걷는 수음(樹陰) 밖에/ 달빛이 흐르고,// 물에 씻긴 수정(水晶)같이/ 내 애상(哀傷)이 호젓하다.// 아―한 조각 구름처럼/ 무심(無心)하던들/ 그 저녁의 도성(濤聲)이 그리워/ 이 한밤을 걸어 새기야 했으랴?//

 



김상용(金尙鎔, 1902년~1951년) 시인, 소설가, 번역문학가
경기도 연천군에서 출생. 아호는 월파(月坡). 성씨와 아호를 합쳐 김월파(金月坡)라고도 불리었다. 1927년 일본 릿쿄대학교 영어영문학과 학사 학위 취득했고, 1928년 귀국하여 이화여자전문학교 교수로 근무했다. 1930년 동아일보에 〈무상〉, 〈그러나 거문고의 줄은 없고나〉 등을 발표하여 등단했다. 김상용의 시에는 동양적이고 관조적인 허무의 정서가 깔려 있으나 낙관적인 방식으로 어둡지 않게 표현된 것이 특징이다. 1934년 《문학》에 발표한 〈남으로 창을 내겠소〉와 이 시의 마지막 연 "왜 사냐건 웃지요"가 유명하다. 1943년에 일제 탄압으로 영문학 강의가 폐지되었고, 이화여자전문학교 교수직을 사임했다. 광복 이후에는 미군정 하에서 강원도 도지사로도 임명되었으나 며칠 만에 사임하고 이화여대의 교수, 학무처장이 되었고, 1946년에 미국으로 건너가 3년 동안 보스턴 대학교에서 영문학을 연구했다. 한국 전쟁 중 부산으로 피난했다가 1951년 6월 식중독으로 병사했다. 시집으로 <망향>(1939년)이 있다.

망우리에 있는 김상용 시인의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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