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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 느낌

이성부 시인(2-2)

부흐고비 2021. 8. 25. 06:26

 

  [시집]   '내가 걷는 백두대간' 부제를 단 연작시집 - <지리산>

 

 

산경표 공부 -내가 걷는 백두대간 서시 / 이성부

물 흐르고 산 흐르고 사람 흘러/ 지금 어쩐지 새로 만나는 설레임 가득하구나/ 물이 낮은 데로만 흘러서/ 개울과 내와 강을 만들어 바다로 나가듯이/ 산은 높은 데로 흘러서/ 더 높은 산줄기들 만나 백두로 들어간다/ 물은 아래로 떨어지고/ 산은 위로 치솟는다/ 흘러가는 것들 그냥 아무 곳으로나 흐르는 것/ 아님을 내 비로소 알겠구나!/ 사람들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들 흘러가는지/ 산에 올라 산줄기 혹은 물줄기/ 바라보면 잘 보인다/ 빈 손바닥에 앉은 슬픔 같은 것들/ 바람소리 솔바람소리 같은 것들/ 사라져버리는 것들 그저 보인다//

 

그 산에 역사가 있었다 -내가 걷는 백두대간 1 / 이성부
오랫동안 나는 산길을 그냥 걷는 것만으로도/ 산이 있음에 고마워하고/ 내 튼튼한 두 다리를 주신 어버이께 눈물겨워했다./ 아무 생각 없이 걸어가는 일이야말로 나의 넉넉함/ 내가 나에게 보태는 큰 믿음이었다/ 자동차가 다녀야 하는 아스팔트에게/ 서로 다 마음 안 놓여 괴로울 따름이다/ 그러나 산길에서는 사람이 산을 따라가고/ 짐승도 그 처처에 안겨 가야 할 곳으로만 가므로/ 두루 다 고요하고 포근하다/ 가끔 눈 침침하여 돋보기를 구해 책을 읽고/ 깊은 밤에 한두 번씩 손 씻으며 글을 쓰고/ 먼 나라 먼 데 마을 말소리를 들으면서부터/ 내가 걷는 산길이 새롭게 어렴풋이나마/ 나를 맞이하는 것 알아차린다/ 이 길에 옛 일들 서려 있는 것을 보고/ 이 길에 옛 사람들 발자국 남아 있는 것을 본다/ 내가 가는 이 발자국도 그 위에 포개지는 것을 본다/ 하물며 이 길이 앞으로도 늘 새로운 사연들/ 늘 푸른 새로운 사람들/ 그 마음에 무엇이 생각하고 결심하고/ 마침내 큰 역사 만들어갈 것을 내 알고 있음에랴!/ 산이 흐로고 나도 따라 흐른다/ 더 높은 곳으로 더 먼 곳으로 우리가 흐른다.//

중산리 -내가 걷는 백두대간 2 / 이성부
중산리에서는 산이/ 바라다보이는 것 아니라/ 올려다보인다 조금 멀리 조금 가까이/ 흰구름 뭉치 천왕봉 언저리에 걸려있다/ 그리움도 손에 잡혀 가슴이 뛴다/ 아 비로소 여기 이르렀구나/ 아잇적부터 어른이 될 때까지/ 반고비 고개 넘어 세상일 조금은 보일 때까지/ 꿈에서만 올라보던 그 봉우리/ 오늘은 내 두발로 온몸으로 오르기 위해/ 여기 왔거니!/ 물소리 바람소리가/ 중산리에서는 옛일들 되감아 내려와서/ 내 앞에 펼쳐 놓는다/ 내 앞에 놓여진 오르막길/ 그냥 무턱대고 가야하는 길 아니다/ 짐승처럼 킁킁거리며 냄새 맡거나/ 누군가의 발자국 흔적이라도/ 그가 쫓기고 스치고 갔을 댓이파리 하나라도/ 다시 매만지며 올라가야 한다/ 내 살아 있는 동안의 산길 있음이여/ 왜 이리 가슴 벅찬 풋풋함이냐//
* 중산리(中山里) : 경남 산청군 시천면 지리산 자락에 있는 마을. 천왕봉 산행의 가장 가까운 들머리. 마을에서 정상까지 10km. 백두산 종주의 시발점이다.

남명선생-내가 걷는 백두대간 3 / 이성부
중산리 사람들은 좋겠다/ 날마다 천왕봉 고개 들어 우러르는/ 중산리 사람들/ 저마다 가슴이 천왕봉 하나씩 품어/ 무엇에 노여워도 눈 감음/ 저를 다스리거나 돌아보거나/ 깨우치거나 해서 좋겠다/ 저 아래 덕산골 살았던 남명선생/ 하루에도 몇 번씩 산봉우리 쳐다보며/ 하늘이 울어도 산은 울지 않는다는/ 크고 넉넉한 마음/ 벼슬길 마다하던 그 까닭 알겠거니/ 소인배 들끓는 세상에서는/ 군자가 저를 감추어 더/ 고요해지는 일 내 알겠거니//
*남명선생 : 조선 중기의 성리학자 조식(曺植, 1501-1572)남명(南冥)은 아호. 일찍이 깨달은 바 있어 과거에 응시하지 않고 조정의 부름에도 일절 나아가지 않음. 지리산 아래 은거하며 학문 연구와 제자 가르침에 전념하였다.

다시 남명선생-내가 걷는 백두대간 4 / 이성부
세상에 나아가서 부대끼는 사람보다/ 세상에서 숨어 귀 막고 눈 가린 사람이/ 세상을 더 잘 터득하는 법!/ 큰 산을 끌어와서 방에 가두고/ 좁은 문 닫아 잠그면/ 그리운 얼굴들 이리저리 헤매어 신발 찾는 일/ 선연하게 내려다보이느니/ 바람 불어 나뭇잎 떨어지는 소리에 귀가 트이고 눈이 밝아져/ 잠자코 있음도 오히려 살맛난다네/ 큰 산 속에 묻힌 외로움과 어깨동무/ 만권 서책 즐거움과 호미거리/ 사람도 큰 산에 숨으면/ 그 산을 닮아 더욱 커져가는 것/ 내 오늘에서 깨달았으니//

좋은 사람 때문에 -내가 걷는 백두대간 5 / 이성부
초가을 비 맞으며 산에 오르는/ 사람은 그 까닭은 안다/ 몸이 젖어서 안으로 불붙는 외로움을 만드는/ 사람은 그 까닭을 안다/ 후두두둑 나무기둥 스쳐 빗물 쏟아지거나/ 고인 물웅덩이에 안개 깔린 하늘 비치거나/ 풀이파리들 더 꼿꼿하게 자라나거나/ 달아나기를 잊은 다람쥐 한 마리/ 나를 빼꼼이 쳐다보거나/ 하는 일이 모두/ 그 좋은 사람 때문이라는 것을 안다/ 이런 외로움이야말로 자유라는 것을/ 감기에 걸릴 뻔한 자유가/ 그 좋은 사람으로부터 온다는 것을/ 비 맞으며 산에 오르는 사람은 안다//

산죽(山竹) -내가 걷는 백두대간 6 / 이성부
에헤라 풀 허로 가자/ 나무 허로 가자 에헤라/ 노래를 따라 오늘은 내가 간다/ 노래를 따라가면/ 옛 시간들 내 삶에 가득 차서/ 나 힘겨워도 거듭 새로 태어남이여/ 에헤라 배낭 하나 둘러메고/ 온갖 세상일은 산 들머리에 벗어버려/ 홀가분한 날/ 그들 땀내음 피내음 배인 이 길로/ 오늘은 내가 거슬러올라간다/ 돌쇠 개똥이 삼봉이/ 이름 천한 사람이 되어 내가 따라간다/ 제 이름으로/ 남아 있는 저의 이야기가 없는/ 그들을 따라 나도 간다/ 그들 갔던 길 내가 가는 길/ 눈발이 댓이파리로 살아서/ 지금 저리 많이 푸르러 있는 것인가//

치밭목 산장 -내가 걷는 백두대간 7 / 이성부

이 골짜기에서는/ 북소리 징소리 들려 가슴 두근거린다/진주민란/ 초군가 가락/ 지금도 둥둥 내 귓전을 울린다/ 힘이 솟는다/ 산허리 돌고 돌아/ 오르막 내리막길 수도 없는 되풀이/ 칠부능선 짐승 다니던 길을/ 사람들 모여들다가 또는 쫓겨가다가/ 이렇게 길을 만들어 내 그리움이 간다/ 그녀 발걸음도 닳고닳아 만들었을 길/ 오늘은 등산로가 되어 내가 걷는다/ 대원사 아래에서 십리길 걸어 유평리/ 유평에서 이십리길 치밭목 산장/ 다시 이십리길 써리봉 중봉 천왕봉까지/ 지리산 동쪽 줄기/ 과연 쉽사리 저를 드러내 보여주지 않는다/ 섣달 매서운 바람 쌓인 눈밭에/ 어디 둘러보아도 사람 하나 얼씬거리지 못한다/ 산장에는 난로가 없다/ 모닥불도 횃불도 없다/ 그래도 바람막이/ 곱은 손 호호 불며 다리를 쉰다/ 두둥 둥둥/ 북소리가 울린다//

정순덕에게 길을 묻다 -내가 걷는 백두대간 8 / 이성부
이 길에서는 온통 그대 생각에/ 마음이 나를 떠나 낯선 곳으로만 달려가고/ 내 몸도 어지러워 안갯자락이라도 붙잡아야 한다/ 산허리 굽이굽이 돌아 끝없이 가다보면/ 마침내 나타나는 우리네 살림살이/ 마을에 깔린 저녁 연기/ 그러나 그대는 돌아와야 할 때 집을 떠나/ 죽음이 뻔히 내다보이는 길로 들어갔다/ 내 몸은 지칠 대로 지쳐 주저앉고 싶지만/ 내 정신은 새처럼 온 산골짜기/ 넘나들며 푸르구나/ 열여섯 어린 나이에 산에 들었다면/ 사상보다는 그리움의 키가 커서/ 더 먼 데 하늘 바라보는/ 눈망울 착한 한 마리 짐승으로 쓸쓸할 뿐/ 그대 젊음 써리봉 기슭 철쭉이거나/ 드러난 나무뿌리로 뒤엉/ 지금 나를 자빠지게 하는 것은 아닌지/ 무르팍 생채기 피를 흘리면/ 마음도 돌아와 나를 가득 채우느니/ 아 우리나라 지리산 서러운 하늘/ 내 태어난 숨결이구나!//
* 정순덕 : 1950~1963년까지 지리산에서 빨치산으로 활동하다 생포됐던 여자. 지리산 최후의 빨치산으로 알려져 있으며, 신혼시절 입산한 남편을 찾아 산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소금길 소금밥 -내가 걷는 백두대간 9 / 이성부
옛 사람들 소금짐 지고 오르던 길로/ 오늘은 내가 산행길 배낭을 지고 오른다/ 혼자 가며 혼자가 아님을 거듭 깨닫는다/ 댓이파리 살랑거려 내 땀내음도/ 맑은 산에 보태지는 시원함 아니겠느냐/ 옛 사람들 너무 팍팍하게 이 길 걸었기에/ 그들이 만든 바람 나를 떼밀어/ 내 발걸음 이리 쉽게 길을 찾고/ 내 외로움도 넉넉하여 시(詩)가 되지 않느냐/ 지도 공부를 한참 하다가/ 덕산골부터 올라오는 소금길을 알았다/ 중산리 거쳐 칼바위/ 왼쪽으로 돌아 장터목에 이르는 골짝길을 찾아냈다/ 쏟아지는 물줄기 바라보며 주먹밥을 먹는다/ 지게 받쳐놓고 해먹던 소금밥 아니라/ 깨소금 참기름 김에 싼 주먹밥/ 먹으면서 목이 메인다//

축지(縮地) -내가 걷는 백두대간 10 / 이성부

천왕봉 멀리 쳐다보더니/ 곽형은 오르기도 전에 힘이 빠진다고/ 고개 젖는다/ 그게 그런 것 아니라/ 비로소 힘이 몸 구석구석 돌아가는 소리라는 것을/ 나는 안다/ 여운이하고 중한리 계곡에 와서/ 진주시인 정규화와 하룻밤 묵었을 때도 그랬다/ 웬 술을 그리 많이 퍼마시고도/ 신새벽 오르막길/ 갈수록 두 다리에 힘 솟는 것을 알았다/ 이상하게도 지리산에만 들어오면/ 온 몸이 되살아난다/ 서울에서 어지러워 자빠진 몸이/ 눈 새롭게 떠서 일어나고/ 굳세게 용틀임을 하면서 간다/ 라디오 소리/ 산천을 이죽대는 젊은이들 노닥거림/ 듣도 보도 싫어서/ 수도 없이 제치며 앞질러 올라간다/ 이름없는 영혼들 지금 떠돌아/ 내 발길에 날개 달아준 때문인가/ 배가 고파도/ 이 산길 너무 푸르러 고맙구나!//

칠선골 -내가 걷는 백두대간 11 / 이성부
처음에 골짜기 찾았을 때는/ 내려가는 길 잘 못 들어 헤메다가/ 되돌아 올라가고 말았다/ 하루 두 번씩이나 천왕봉을 올랐다고/ 여운이가 어이없는 듯 투덜거렸다/ 혼자서 두 번째 왔을 때는/ 그만큼 칼칼한 정신들 우글거려/ 길 잃음도 복이라고 믿었다/ 바윗돌들이 한사코 나를 떠다밀므로/ 이 어려움도 머지않아 기쁨이 되리라는 것을 알았다/ 잘 참아내며 오르막 내리막/ 수도 없이 되풀이되는 길/ 우리 삶의 고단한 한나절 또는 한평생/ 깊게 가르치는 길/ 점필재에게 정순덕이까지 또 누구 누구/ 이 길로 오르내렸음을 떠올리면서/ 나도 산과 사람들에게/ 조심스럽게 고마워하는 법을 배웠다// 추정리 다 내려온 돌담아래에서/ 살모사 한 마리 본다/ 그늘 속에서 천천히 걸어 나오는 햇볕 한 줄기 본다//
* 칠선골 : 지리산 천왕봉에서 북서쪽으로 경남 함양군 마천면 추성리에 이르는 계곡. 지리산에서 가장 험하고 긴 계곡이다.
* 여운 : 화가, 한양대 교수
* 점필재 : 조선 초기의 학자 김종직의 호, 1472.8.14.~08.18. 지리산 유람기 “유두류록”이 유명하다. 연산군의 무오사화로 부관참시를 당하였다.
* 정순덕 : 신혼 초 남편을 찾아 지리산으로 들어가 빨치산이 되었음. 1950~1968까지 활동하다 생포된 지리산 최후의 빨치산

달뜨기재 -내가 걷는 백두대간 12 / 이성부
지리산에 뜨는 달은/ 풀과 나무와 길을 비추는 것 아니라/ 사람들 마음속 지워지지 않는/ 눈물자국을 비춘다/ 초가을 별들도 더욱 가까워서/ 하늘이 온통 시퍼런 거울이다/ 이 달빛이 묻은 마음들은/ 한줄로 띄엄띄엄 산그림자 속으로 사라지고/ 귀신들도 오늘은 떠돌며 소리치는 것을 멈추어/ 그림자 사이로 고개 숙이며 간다/ 고요함 속에서 나를 보고도 말 걸지 않는/ 고개에 솟는 달 잠깐 쳐다보았을 뿐/ 풀섶에 주저않아 가쁜 숨을 고른다/ 밝음과 그림자가 함께 흔들릴 때마다/ 잃어버린 사랑이나 슬픔 노여움 따위가/ 새로 밀려오는 소리를 듣는다//
* 달뜨기재 : 웅석봉과 연결된 산줄기의 고개 이름

도령들의 봄 -내가 걷는 백두대간 13 / 이성부

봄은 산 아래 절이나 마을에만 들어오지 않았다/ 산골짜기와 봉우리 북쪽 돌얼음 박힌 곳에도 왔다/ 거기 숨어 있는 사람들에게도 왔다/ 햇볕 아래 벌레처럼 기어나와서도 비틀거리지 않았다/ 어둑한 감방에도 봄이 와서 쇠창살을 흔들었다/ 하사마댁 도령이 칠선골 초막에서 총을 집어들었다/ 총열에도 총구에도 방아쇠에도 봄이 묻었다/ 쇠붙이가 따스하게 힘을 북돋운다라고 써도 될까/ 이제 머지않아 왜놈 순사들이 몰려올 참이었다/ 더 어떻게 숨거나 쫒기거나 할 일이 못되었다/ 기어이 물리친 다음에라야 어디로든 떠나가야 했다/ 도령들은 다가온 봄을 가득 마시고 일어섰다//

천왕봉 일출에 물이 들어 -내가 걷는 백두대간 14 / 이성부
캄캄한 칼바람 속 바위 등걸에 앉아/ 얼어붙은 털모자 땀고드름을 털어낸다/ 사람 사는 일 오고가다/ 더러는 모진 사연 만나는 줄이야 이미 알았거늘/ 새로 또 닥치는 매서운 추위/ 아무래도 삶은 돌아볼 겨를도 없이/ 저만치서 내빼는 것 뒤쫓기만 하다가/ 넘어져서 덜덜 떨고 있는 일 아니더냐/ 손발은 카니와 코도 귓볼도 내 것 아닌 것 같아/ 바람막이 바위 아래로 몸을 낮춘다/ 한결 고즈넉하다/ 내 여기 이르러 움츠려 있음은/ 내 여기 이토록 힘겹게 또는 씩씩하게/ 험한 길 찾아 올라와서 그대 기다리는 일/ 길이 나를 새롭게 만들어 사랑 맞이하는 일/ 온 천하 산지사방 어둠 속에서/ 문득 동쪽 하늘 어슴푸레 긴 가로 금/ 마침내 한점 붉디붉은 것 틔어 빛나더니/ 큰 덩어리로 떠올라/ 내 온몸 달아오름이여//
* 카니와 : 물론이려니와,라는 뜻을 지닌 옛말

또 다른 일출 -내가 걷는 백두대간 15 / 이성부
사람들이 해를 맞이하려 올라왔는데/ 해가 오히러 사람들을 감싸안는다/ 사람들 옷자락에도 마른 나뭇가지에도/ 불그스름한 햇볕 물들어 우리나라 온통 황홀함이여/ 천왕봉 일출 사람 병풍 너무 신기해서/ 뜨는 해도 오히려 어리둥절/ 구름 사이로 저를 감추거나 갸우뚱 내다보다가/ 사람들 짠하다고 생각했는지/ 저를 다 드러내어 불덩이로 솟아오른다/ 사람들은 함성을 지르다가 산을 내려가고/ 해는 떠서 어리석은 백성들을 비추어 나무란다/ 삼대적선이라니!/ 하루라도 아니 한 순간이라도 하나가 되거라//
* 삼대적선(三代積善) : 할아버지, 아버지, 내가 착하고 옳은 일을 하는 것. 천황봉 일출은 삼대적선을 해야 볼 수 있다는 말이 예로부터 전해진다.

통천문 내려가며 -내가 걷는 백두대간 16 / 이성부
천왕 일출을 보면 신선도 가슴을 쓸어내린다/ 통천문 내려가면 신선도 보통사람이 된다/에전에는 등골 오싹하게 오르던 통나무 계단이/ 어느덧 철계단으로 바뀌면서/ 요란한 세상의 소리를 낸다/ 속세도 갈수록 조금씩 하늘에 가까워지는 것인가/ 죄많은 사람도 어렵지 않게 신선이 되는 나라인가/ 생각하면서/ 천천히 통천문을 내려간다/ 요즘 사람들은 무엇이 옳고 옳지 않음인지/ 스스로 깊이 헤아려보지 않는다/ 잘못된 글 따위를 읽고 자기주장으로 삼는다/ 오백년 전 점필재 유두류록 떠올리며*/ 멀리 겹겹이 솟구친 산봉우리 용틀임 바라본다/ 석문을 나와 세상 속으로 들어간다//
* 점필재(金宗直의 호) : 조선 초기의 학자. 연산군 때 무오사화로 부관참시를 당했다. 지리산 천왕봉에 올라 가까이 조망되는 산들의 이름을 열거한 것이 그가 쓴 『유두류록遊頭流錄』에 보인다.

제석봉 -내가 걷는 백두대간 17 / 이성부
참을성이 많은 봉우리다 있는 듯 없는 듯/ 넓게 펑퍼짐하게 저를 받들고 있다./ 아래로는 뼈다귀처럼 드러난 영혼들이/ 저마다 다른 목소리로 솟아올라/ 내 발걸음 자꾸 멈춰서 돌아보게 한다/ 덕을 쌓고 넓히고 베풀어/ 스스로를 즐겁게 하고/ 무엇 하나 미워하지 않으므로써/ 스스로 잠잠하여 마르기만 할 뿐이다/ 힘겨워하는 산 사람들 등을 밀어/ 위로 위로 올려보내고/ 구름과 바람은 장터목으로 내려보낸다/ 제 몸을 스쳐가는 것들/ 저를 때려도/ 그냥 그대로 앉아 있음이여//

고사목 -내가 걷는 백두대간 18 / 이성부
내 그리움 야윌 대로 야위어서/ 뼈로 남은 나무가/ 밤마다 조금씩 자라고 있음을/ 나는 보았다/ 밤마다 조금씩 손짓하는 소리를/ 나는 들었다/ 한 오십년 또는 오백년/ 노래로 살이 쪄 잘 살다가/ 어느 날 하루아침/ 불벼락 맞았는지/ 저절로 키가 커 무너지고 말았는지/ 먼 데 산들 데불고 흥청망청/ 저를 다 써버리고 말았는지/ 앙상하구나/ 그래도 사랑은 남아/ 하늘을 찔러/ 뼈다귀는 뼈다귀대로 사이좋게 늘어서서/ 내 간절함 이토록 벌거벗어 빛남이여//

성모석상의 사연 알아보니 -내가 걷는 백두대간 19 / 이성부
천왕봉 꼭대기 바위밭 언저리에 예전에는 성모사와 그 안에 모셔진 성모석상이 있었다고 한다 스님들은 마야부인이라고 우기고 당골네들은 우리 삼신할매라며 치성드리고 제왕운기는 고려 태조의 어머니라고 했다 성모석상은 하나인데 왜 그리 설만 분분했을꼬 십여년 전에야 나는 그것이 중산리 새로 지은 절 뒤켠에 놓여 있음을 보았다 일천여년 동안 지리산을 지켜온 두자 높이 돌덩이가 그 안에 너무 큰 상처들 지니고 있어 오르라졌거나 야위어가는 것만 같았다 쪽찐 머리와 잔잔하게 다문 입술과 가슴에 두 손 모두웠으나 귀는 어디론가 떨어져나가 내가 듣는 솔바람소리에도 구멍이 뚫렸다 오백여년 전 천왕봉에 올라 성모사에서 하룻밤을 묵은 점필재는 이 성상이 얼굴에 짙은 분화장을 해서 눈길을 끌었다고 유두류록에 썼다 아무튼 신령스러움을 시샘한 때문인지 왜구들에게 칼을 맞기도 하고 왜정 때에는 두 동강이 되어버리고 보쌈을 당하고 어떤 종교인들에게는 미움을 받아 굴러 내려지기도 하였다 육이오가 저만큼 물러간 어느 해 이석상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고 하는데 기도하러 올라온 저 수많은 아낙들 모두 넋을 잃었다고 한다 무슨 한스러운 일 그리 많아서 우리나라 사람들 이 높은 상상봉까지 올라왔다가 하나 더 한을 보태 보듬고 내려갔을 터이다 성모석상은 본디 제자리에 사당을 다시 세우고 그 안에 모셔야 할 일이다//

성모석상의 말 -내가 걷는 백두대간 20 / 이성부
매 몸에 햇볕을 바르면/ 불그작작해지지/ 더 오래 더 많이 바르면/ 가무잡잡해지지/ 내 마음 빛깔은/ 햇볕 천년을 발라/ 타고 타고 또 타버려서/ 잿빛 되었을지도 몰라/ 내 온 삭신 바래고 바래져서/ 먼지나 부스러기 같은 것/ 그리움의 머리비듬 같은 것/ 되어 날아가버렸을지도 몰라//

지리산 -내가 걷는 백두대간 21 / 이성부
가까이 갈수록 자꾸 내뺴버리는 산이어서/ 아예 서울 변두리 내 방과/ 내 마음 속 깊은 고향에/ 지리산을 옮겨다 모셔 놓았다/ 날마다 오르내리고 밤마다 취해서/ 꿈속에서도 눈구덩이에 묻혀 허위적거림이여//

산길에서 / -내가 걷는 백두대간 22 이성부
이 길을 만든 이들이 누구인지를 나는 안다/ 이렇게 길을 따라 나를 걷게 하는 그이들이/ 지금 조릿대발 눕히며 소리치는 바람이거나/ 이름 모를 풀꽃들 문득 나를 쳐다보는 수줍음으로 와서/ 내 가슴 벅차게 하는 까닭을 나는 안다/ 그러기에 짐승처럼 그이들 옛 내음이라도 맡고 싶어/ 나는 자꾸 집을 떠나고/ 그때마다 서울을 버리는 일에 신명나지 않았더냐/ 무엇에 쫓기듯 살아가는 이들도/ 힘이 다하여 비칠거리는 발걸음들도/ 무엇 하나씩 저마다 다져 놓고 사라진다는 것을/ 뒤늦게나마 나는 배웠다/ 그것이 부질없는 되풀이라 하더라도/ 그 부질없음 쌓이고 쌓여져서 마침내 길을 만들고/ 길 따라 그이들 따라 오르는 일/ 이리 힘들고 어려워도/ 왜 내가 지금 주저앉아서는 안 되는지를 나는 안다//

백무동 -내가 걷는 백두대간 23 / 이성부
내 어린 시절 짝사랑했던 가시내가/ 커서 당골네가 되었다는 소문을 떠올리며/ 백무동 골짜기 내려간다/ 이리저리 차이는 돌밭 길에 거친 인생에/ 발가락 아픈 것도 잊어버린 채/ 문득 우리 할매도 당골네 아니었을까/ 생각하며 내려간다/ 됫박에 쌀 담아들고/ 놋그릇에 쏟아 부어/ 삼베로 감싸 내 아픈 배 문질러주시던 할매/ 쌍칼을 들고 늬 뱃자국을 찢기 전에/ 썩 물러가거라/ 섬찟한 그 한 마디로/ 슬그머니 내 울음 멈추게 하시던 우리 할매/ 내 일곱 살 적 내리 쌓이던 눈발/ 여기서도 아주 잘 보이느니/ 조선 팔도에 흩어져서/ 모든 고을 당골네가 되었다는 백무(百巫) 가운데/ 내 어린 시절 가시내도 우리 할매도/ 피를 이어받은 이 있을지 모르겠네//
* 당골네는 무당.
* 현재의 지리산 백무동(白武洞)은 옛날 백무동(百巫洞)으로 불리기도 했다.

한신골에서 나를 보다 -내가 걷는 백두대간 24 / 이성부
월급쟁이를 그만두고 나서 찾아온/ 한신계곡 오름길이 새롭고도 따뜻하다/ 느린 발걸음으로 이 골 물 저 골 물 내려다보고/ 바위벽을 기어오르는 늦가을 햇살/ 따라가보기도 하고/ 그 햇살 틈에 끼여 노닥거리기도 한다/ 언제나 정신 새로 만들기에 알맞은/ 지리산 깊은 골짜기에서/ 나를 본다 사람마다 자기의 길을 찾아가고/ 그러기에 사람마다 스스로 외로움을 데불고 가는/ 사연이 아주 잘 보인다/ 흐르는 물이 저를 벗어 제 속을 맑게 보여주듯이/ 내 속을 드러내는 나를 내가 본다/ 이 얼마만에 맞이하는/ 내 젊음이냐 설레는 자유냐//

유두류록이 헤아리는 산 -내가 걷는 백두대간 25 / 이성부
나무꾼이 먼산 바라보는 것과/ 선비가 먼산 바라보는 것이/ 어떻게 다를까/ 점필재는 산 바라보는 데에 요령이 있어야 한다고 말하였다/ 눈으로 보는 것에 무슨 요령이?/ 문득 내가 어려웠던 칠십년대 팔십년대/ 신문을 보면서 행간의 침묵 읽어야 했던/ 그 안간힘 되살아났다/ 있는 그대로를 보되/ 구름 속에 가려진 무등산 봉우리가 어디쯤인지/ 동서남북 산들이 어디쯤 숨어서 저를 키우는지/ 찬찬히 짚어보는 일도 공부하는 사람의 맛이다/ 요즘 신문들은 저녁 어스름으로 사라져야 할 것들이/ 너무 많이 튀어나와 쓰레기더미가 되었다/ 쓸모없는 일들에 눈과 귀를 모으게 한다/ 나무꾼도 산꾼도 배운 사람들도/ 이런 신문을 보고 목청을 높인다/ 가려진 산들이 첩첩 허물을 벗기 시작하고/ 나도 하나씩 나를 벗어버리는 일이 새롭다/ 참으로 산은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가/ 비로소 내 안에서 눈떠 눈을 비빈다//

김일손이 이렇게 말하였다 -내가 걷는 백두대간 26 / 이성부
배운 사람이 벼슬살이에 얽매이는 모습은/ 덩굴에 달린 박이나 외와 같다?/ 젊은 나이에 이런 생각하여 산을 살폈으니/ 나같이 삼십년 월급쟁이 끝에 물러나와/ 다래 달린 덩굴 보며 깨닫는/ 이 놀라움 어디다 쓸꼬/ 높은 곳에서는 비바람 몰아치거나/ 자꾸만 떨어뜨리는 것들 있어 위태롭고/ 낮은 곳에서는/ 땅 위위 도끼들 만나/ 해를 입기 마련이다/ 덩굴에 달린 박이나 외는 떨어져나가/ 저의 꿈이 달리는 데로 가고 싶을 뿐/ 사람은 움직이는 것이어서/ 나무처럼 끄떡없이 살지 못하고/ 나무는 그 안에 흐르는 삶을 담고 있어/ 바위처럼 오래 살지 못한다/ 최고운의 지팡이와 신발 시중하면서/ 나도 그렇게 살고 싶어라//

가는 길 모두가 청학동이다 -내가 걷는 백두대간 27 / 이성부
청학동이라는 데가 정말 이곳인지/ 저 건너 등성이 너머 악양골인지/ 최고운(崔孤雲)이 사라진 뒤 청학 한마리/ 맴돌다 가버렸다는 불일폭포 언저리인지/ 피밭골 계곡인지 세석고원인지/ 도무지 가늠할 수 없다/ 옛사람들이 점지해놓은 청학동 저마다 달라도/ 내가 걸어 찾아가는 곳마다 숨어살 만한 곳/ 그러므로 모두 청학동이다/ 혼자 가는 산길/ 거치적거리는 것 없어 편안하고/ 외로움은 따라와서 나를 더욱 살갑게 한다/ 내 눈에 뛰어드는 우리나라/ 안개 걷힌 산골짜기 모두 청학동이어서/ 발길 머물고 그냥 살고 싶어라//
* 악양골 : 경남 하동군 악양면 청학사 부근.
* 불일폭포 : 쌍계사에서 동쪽으로 3[km]쯤 산속으로 들어가 만나게 되는 지리산에서 가장 긴 폭포.
* 피밭골 : 피아골의 원래 이름. 오곡 중의 하나인 피(稷)를 재배한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 세석고원(細石高原) : 지리산 주능선상의 넓은 고원지대. 해발 1600[m]. 세석평전. 잔돌평전이라고도 부른다.

청학동에 사는 남난희 -내가 걷는 백두대간 28 / 이성부

쇠통바위가 열린다 -내가 걷는 백두대간 29 / 이성부

소년전사의 앙양 청학이골 -내가 걷는 백두대간 30 / 이성부

<얼굴 가죽 벗겨져 피범벅이 된 작은 몸집/ 비스듬히 쓰러져서 나를 불렀다/ 대장 동무 간호원 동무/ 가냘픈 외침에도 누구 한사람 거들떠보지 않았다/ 모두들 흩어져 달아나기에 바쁜 각자도생/ 더 걷지 못하게 된 소녀전사 하나/ 여기 어디쯤에서 숨을 거두었다>/ 이태가 전하는 그 청학이골에 올라/ 동쪽으로 청학동 넘어가는 산판 길/ 북쪽으로 삼신봉 오르는 험한 길을 본다/ 사람이 사는 길 저 흔들리는 억새풀이거나/ 이름 모를 들꽃이거나 개 돼지 짐승이거나/ 어디 다를 바가 있으랴 생각하면서/ 가까운 언저리 무덤 하나라도 있는가 살펴본다/ 경기도 파주군 적성면 어느 골짜기에는/ 적군 묘지도 있다는데/ 인민군 중공군들 묻혀 계급 이름 푯말도 보인다는데/ 이 지리산 네가 죽은 곳/ 흙바닥을 기어가도 더는 못 갔던 곳/ 아무데서도 네 슬픔으로 삐져나온 갈비뼈 하나/ 찾을 길이 없구나/ 나는 어차피 나를 버리고 모두를 버리는 개운함으로/ 혼자 산에 올랐으나/ 그 자유가 이토록 비싸게 나를 울린다/ 아직도 세상의 일에 쩔쩔매는 내가/ 정신의 거품만 들먹거리는 내가/ 비로소 나를 본다/ 바람처럼 사라져가는 것들을 사랑해야겠다//

외삼신봉 -내가 걷는 백두대간 31 / 이성부

학 한 마리를 불러 함께 노닐거나/ 굴 속 바위틈 햇살을 모아 책을 뒤적이거나/ 고향이 그리워지면 구름 타고 가거나/ 모두 옛 사람의 일만이 아니다/ 여섯개 도당회의에서 돌아온 이현상/ 빗점골 초막 기둥에 이마를 찧고/ 외삼신봉에 올라 학과 구름으로/ 또는 책으로/ 제 노여움을 달랬을지 모른다/ 숨어서 싸우는 일 고달프고 서러워도/ 가는 길 어찌 끝이 없으랴/ 백의종군! 죽음이 가까이에 이르렀음을/ 미리 알고도 그 죽음 맞이하러 나아갔을까/ 세석에서 삼십리 걸어 내려와서/ 외삼신봉 돌덩이에 나도 주저앉는다/ 문득 돌아보는 지리산 큰 몸뚱아리 너무 잘 보여/ 나도 학이나 구름타고 넘나드는 것 같다/ 사람이 가야할 길/ 책보다 먼저 내다보이는 곳이다//

세석고원이 옷을 입었다 -내가 걷는 백두대간 32 / 이성부
세석고원은 어쩐지 산문(散文)의 일요일 같다 긴장과 떨림이 안 보인다 기승전결도 무시해버린 들밭이다 안개 내려앉아 얼키고 파인 길들이 나를 어지럽게 한다 그리움도 찾아야 할 사람도 세월 깊어지다 보면 갈 길을 잃는다 여기서는 철쭉꽃도 고개를 내밀지 못한다 그냥들 숨어서 저마다 시들시들 떨어지거나 어디 한군데 마음 붙일 데 없어 숨만 가쁘다 육이오 때라든가 더 오래 전이라든가 불타기 전에는 오막살이 한 채 비스듬히 누워 있었다던 곳 약초 캐며 살던 노인 그 집과 함께 무너져 내려 잿더미로 남았다던 자리 지금은 이층 통나무집 산장이 되어 무엇에 굶주린 산꾼들을 불러 모은다 예전에는 나도 잘 손질했던 글들을 업고 다녔으나 요즘은 갈수록 손질하지 않은 놈들이 좋아 함께 드러눕는다//

쌍계별장을 나서며 -내가 걷는 백두대간 33 / 이성부
밤늦도록 그리 술 퍼마시고도/ 오늘 산에 오를수 있을까 두려움이/ 먼저 나를 깨운다/ 내색은 안하지만 작취미성 새삼 서글퍼지고/ 어젯밤 웃음꽃들도 모두 사그라지고/ 말없이 멍청하게 배낭을 짊어진다// 진의장이는 하동으로 내려가/ 시를 읊조리거나/ 바다를 불러들여 그림을 그리거나/ 세무서장으로 자리를 지킬것이고/ 용이 진이 운이와 내가 이제부터/ 칠불암 거쳐 토끼봉으로/ 삼도봉으로 넘어가서/ 임걸령지나 피아골로 내려갈 참이다// 험한산길 육십리길 징허게 우람한 저 높이/ 그래도 바라볼수록 이리 가슴 가득한 꼴림!/ 길에 나와서야 술도 깨는듯 뒤돌아보니/ 어젯밤 묵었던 쌍계별장 용마루 고개 쳐들어/ 걱정스럽게 우리를 내다본다//

화개동천에서 최치원을 보다 -내가 걷는 백두대간 34 / 이성부

단풍이 사람을 내려다본다(중에서) -내가 걷는 백두대간 35 / 이성부
닳아빠진 짚세기로/ 해진 고무신으로/ 젖어버린 지까다비로/ 혹은 무명베 발싸개로/ 짐승처럼 내닫던 곳/ 얼음 들어 검푸른 발가락 잘려나가도/ 스스로는 아깝지 않았던 목숨들/ 오늘은 단풍 물들어/ 물끄러미 나를 내려다본다//

날망과 등성이 -내가 걷는 백두대간 36 / 이성부
날카로운 산봉우리는/ 부드러운 산등성이를 사랑하기 위해/ 저 혼자 솟아 있다/ 사람들이 편안하게 걷는 모습을 보고/ 저 혼자 웃음을 머금는다/ 부드러운 산등성이가/ 어찌 곧추선 칼날을 두려워하랴/ 이것들이 함께 있으므로/ 서로 사랑하므로/ 우리나라 산의 아름다움이 익는다/ 용솟음과 낮아짐/ 끝없이 나를 낮추고/ 속으로 끝없이 나를 높이는/ 산을 보면서 걷는 길에 삶은 뜨겁구나/ 칼바위가/ 부드러움을 위해 태어났듯이/ 부드러움이/ 칼날을 감싸 껴안는 것을 본다//

대성골에서 비트를 찾아내다 -내가 걷는 백두대간 37 / 이성부
산길 오가는 사람에게 보이지 않아야 하고/ 산길에서 되도록 멀리 떨어져 입을 다물어야 한다/ 다복솔이거나 마른 풀더미로 굴 문을 가리고/ 굴 속에서는 쥐죽은 듯 웅크려 귀를 기울인다/ 아 나는 안에서 숨어 세상을 살피고/ 세상은 나를 들여다 볼 수 없어 답답하구나/ 타다 남은 촛물이 바위에 흘러붙어 저를 삼키고/ 빈 그릇들 여기저기 나뒹굴어/ 무당도 짐승도 여기서 사라졌음을 알겠다/ 사람들은 살기 위해 지리산으로 들어왔으나/ 지리산은 그들을 살려 보내지 않았다//
* 대성골 : 지리산 세석평전에서 화개쪽으로 내려오는 골짜기
* 비트 : 지리산 빨치산들이 사용하던 비밀아지트의 준말

젊은 그들 -내가 걷는 백두대간 38 / 이성부
지리산은 자기 품에 안긴 사람들을/ 거두어들여 자기의 몸으로 만들었다/ 산에 숨은 사람들은/ 살아서 내려가야 할 길이/ 주검으로도 내려가지 못한다는 것을 보았다/ 하나씩 둘씩 그렇게 쓰러져서/ 젊음은 흙이 되고 산이 되었다/ 굶어 죽고 얼어 죽고 총맞아 죽고/ 온 산이 부릅뜬 몸당귀신 세상/ 동상 걸린 발가락 하나 입 앙다물어 잘라내고/ 생솔가지 물어뜯어 울음으로 씹었다//

 

정규화 시인에게 -내가 걷는 백두대간 39 / 이성부

청허당 흉내내어 쓰다 -내가 걷는 백두대간 40 / 이성부
가까이에서 엎드린 산/ 먼 데서 손 흔들어 나를 부르는 산/ 내 눈에 뛰어드는 우리나라 모든 산/ 오르거나 내려가거나 자빠지거나/ 무르팍 피 머금어 잠시 주저앉아 길만 나무라다가/ 문득 바라보면 모두 내 고향 산이거니/ 입석대 올라 내려다보던 열네살 때/ 빛나던 고을의 보잘것없음 구름 사이로 숨어버리고/ 마흔두살 때 천왕봉에서 생각하던 세상살이/ 산과 강의 마음으로 만져보면/ 모든 도시들 개미둑을 닮아 부스럭거리네/ 천하에 잘나서 거들먹거리는 사람들 걸음걸이/ 그것이 저의 죽음인지도 모르면서/ 시고 단 데 모여드는 벌레들 같아 어리석구나/ 육십이 다 된 시쓰는 놈은/ 지팡이 날리며 산으로만 헉헉거리고/ 일흔 넘어 스님은 서산 옛절에 머물다가/ 산에서 내려와 창칼을 잡았으니!//
* 청허당(淸虛堂) : 휴정(休靜) 서산대사(1520~1604)
* 입석대(立石臺) : 무등산에 있는 바위기둥

금(禁)줄 -내가 걷는 백두대간 41 / 이성부
내 어린 시절 몇살 때였든가/ 금줄 친 집에는 들어가지 않는다는/ 할머니 말씀 문득 짚어볼 때가 생긴다/ 요새는 산길에도 금줄이 많아져서/ 나를 가로막는 것들 켜켜이 쌓여간다/ 어렸을 적에도 그러했지만 어른이 된 뒤에도/ 나는 노상 가지 말라는 곳을/ 가고 싶어 밤잠을 못 자고 몸을 뒤척였다/ 사는 일 가도가도 가로막는 것들과의 싸움이다/ 밤 깊어 지리산 돼지평전에서 길을 못 찾고/ 여기안가 저기인가 말설였을 때/ 랜턴 불빛에 스친 금줄 하나/ 멧돼지 서식지 표지판/ 짐승의 길을 따라 피아골로 내려갔다/ 사람이 산에 가는 것은/ 모처럼 짐승의 마음이 되고 싶어서라고/ 나는 그날 생각했다 풀꽃과 조릿대가/ 바람에 흔들리는 것처럼/ 바람이거나 흰구름이거나 안개거나 눈보라거나/ 그것들에게 나를 맡겨/ 나를 그냥 흘러가게 하는 일이 나는 좋았다/ 돼지평 멧돼지 길에서는 멧돼지 한 마리/ 만나지도 못하고/ 선비샘 아리 금줄 넘어서는/ 한나절 거미줄만 헤치고 내려왔다//

이현상 아지트에 길이 없다 -내가 걷는 백두대간 42 / 이성부
계곡을 건너자마자 길은 풀섶을 두껍게 뒤집어쓰고 저를 감춘다 나는 발길로 헤쳐가며 길의 몸을 본다 허물어진 상처 아물었어도 길은 이미 슬픔이어서 저를 드러내지 못한다 우리들의 사랑이 비록 옛일이어서 가물거린다 하더라도 그 사랑 어찌 지워질 수 있으랴 허리께에 올라온 조릿대밭 서걱이며 바람이 옛 시간들을 불러 모으고 나는 문득 멈추어 오십년 전 숨결소리를 찾아 귀를 기울인다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무렵 그 사람은 자주 여기 어디 바위에 앉아 고개를 들어 숲속 하늘 쳐다보았다고 한다 조릿대밭이 끝나고 다시 이끼 낀 너덜이 나타난다 길은 어느덧 슬거머니 사라져서 온데간데가 없다 사람이 밖에서 사는 일도 또한 그렇게 어리둥절할 때가 많다 트인 하늘 쪽으로 미끄러운 돌밭을 치고 올라간다 놀란 배암 한 마리 도망가지도 못한 채 빠끔이 나를 쳐다본다 저나 나나 부풀리는 긴장 속에서 눈이 마주치지만 내가 저를 피해 다른 돌을 밟기로 한다 다시 희미한 길이 풀섶에 덮여 있는 것이 보이고 그 길에 들어서서 안심하는 것도 잠깐 돌과 바위가 나를 가로막는다 가로막는 것들은 내 젊음의 어느 한때 뒤척이며 잠 못 이루던 그 불확실성의 불안함과 왜 그리 닮았을까 이렇게 끊어졌다가 이어지고 이어졌다가 끊어지는 길을 헤매인지 두어 시간은 된다 편편하면서도 긴 바위벽이 마치 우리 동네 중학교 담벼락 같은 생각이 든다 더 오르다 보니 이런 큰 바위벽이 또 나타나고 널찍한 너덜에는 풀막 수십 채도 앉힐 만하다는 느낌이다 아 길은 끝내 저를 다 보여주지 않고 나는 담배 두어 개비만 태우고 내려왔다//
* 이현상(李鉉相 1905~1953) : 지리산에서 항일 운동을 하다가 해방 후 6.25때 지리산 빨치산 부대인 남부군을 이끌었던 사령관. 1953.9.17 토벌대에 의해 사살됨

화가 양수아의 빗점골 회고 -내가 걷는 백두대간 43 / 이성부
낮에는 조릿대 밭에 엎드려 쥐 죽은 듯/ 포스터를 그리고 글씨를 쓰고 숨 죽이며 울었다/ 밤이 되면 조심스럽게 마을 뒤로 맴돌다가/ 빈집 같은 곳 상여집 같은 곳 뒤져/ 먹이를 찾아 헤매는 짐승처럼 눈에 불을 밝혔다/ 흙 묻은 무말랭이 시래기 몇가닥 주워 털어/ 입에 쑤셔 넣고 바쁘게 씹어 삼키고/ 개울물 두 손바닥으로 퍼마시고/ 내려왔던 길 도로 올라가 몸을 눕혔다./ 댓잎 사이로 쏟아지는 별들 추워도/ 바람소리 죽은 동무들 외침소리 나를 덮어도/등뒤에 깔린 솔가지들 있어/가슴 위에 포갠 두손 내 돌아갈 집이 있어/ 몸 떨리지 않았다./ 결코 죽어서는 안된다라고/ 살아서 반드시 어린 것을 품에 안아야지라고/ 나는 나에게 눈 부릅떠서 말했다/ 내일을 터진 고무신 전깃줄로 동여매고/ 어디로든 옮겨 선을 찾아야겠다.// ※ 양수아(梁秀雅 1920~1972) : 일본 카와바따(川端)화학교를 졸업하고 귀국. 광주에서 추상미술에 앞장섰던 화가. 6.25 빨치산 활동을 하다 귀순. 화가의 길에 전념했다. 60년대 나와 가깝게 지냈다.
※ 빗점골 : 지리산 벽소령 아래에 있는 골짜기
※ 선 : 빨치산 용어로 본대와 연결이 되는 것을 뜻함

양수아가 토벌군을 사로잡다(중에서) -내가 걷는 백두대간 44 / 이성부
쫓기는 사람이 쫓는 사람을 붙잡았으니/ 이 일을 어찌할까 모르겠다/ 내가 총을 가졌다는 것뿐으로 /잠자는 저를 잡아 묶었는데/ 내가 졸거나 저에게 총을 빼앗기거나 하면/ 이번에는 내가 포로가 되는 것 뻔한 일/ 삶의 어떤 고단한 길목에서는/ 이렇게 거꾸로 놀라운 일 되풀이되는 것 아닌가/ 착하디착한 눈의 청년아/ 너를 만나 내 오랜 입다뭄 저절로 벙글어/ 말문이 터진 것 고맙구나/ 나 좀 눈붙이게 너도 잠들어다오//

오토바이 -내가 걷는 백두대간 45 / 이성부
나는 잘 닦여진 아스팔트 길을/ 달리는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나는 도시의 집들 사이로 아이들과 자동차를 피해가며/ 달리는것에 이미 지쳐버린지 오래이다./ 나는 거친 들판을 사막을 빙하의 골짜기를/ 상처받은 마음들이 지어내는 헛웃음속을/ 거침없이 달려가 부서지고 싶다./ 허공을 가로질러 큰 산을 뛰어 넘어/ 아직도 살아 떠도는 영혼들을 만나고 싶다./ (이런 꿈을 실현시킨 오토바이 한 대/ 지리산 높은곳 선비샘 아래 산죽밭에/ 아름답게 쳐박혀 있었습니다.)//

벽소령 내음 -내가 걷는 백두대간 46 / 이성부
이 넓은 고개에서는 저절로 퍼질러 앉아/ 막걸리 한 사발 부침개 한 장 사먹고/ 남족 아래 골짜기 내려다본다/ 그 사람 내음이 뭉클 올라온다/ 가슴 뜨거운 젊음을 이끌었던/ 그 사람의 내음/ 쫓기며 부대끼며 외로웠던 사람이/ 이 등성이를 넘나들어 빗점골/ 죽음과 맞닥뜨려 쓰러져서/ 그가 입맞추던 그 풀내음이 올라온다/ 덕평봉 형제봉 세석고원/ 벽소령 고개까지/ 온통 그 사람의 내음 철쭉으로 벙글어/ 견디고 이울다가/ 내 이토록 숨막힌 사랑 땅에 떨어짐이/ 사람은 누구나 다 사라지지만/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나씩 떨어지지만/ 무엇을 그리워하여 쓰러지는 일 아름답구나!/ 그 사람 가던 길 내음 맡으며/ 나 또한 가는 길 힘이 붙는다//

벽소령 지나며 -내가 걷는 백두대간 47 / 이성부
산등성이 널찍한 곳에서는 사람도/ 마음 넓게 멀리 둘러보아야 한다/ 남쪽 아래 빗점골 마을 흔적 찾을 길 없어/ 마음만 내려가 더듬어보고/ 북쪽 아래 마천 내려가는 길 뼈다귀 나무들/ 무슨 원한으로 솟아 눈 부릅떴는지/ 찬찬히 살펴 저를 돌아볼 일이다/ 아 사람은 모두 자기 길을 찾아가지만/ 내가 가는 길 과연 나의 길인가/ 아직도 시작인 듯 꿈결인 듯/ 서쪽으로 가는 내 발걸음/ 언제쯤 노고단에 닿아 나를 눕힐까//

어찌 헤매임을 두려워하랴 -내가 걷는 백두대간 48 / 이성부
내 가고 싶은 데로/ 내가 흐르고 싶은 곳으로/ 반드시 나 지금 가고 있을까 글쎄/ 이리저리 떠돌다가 머물다가/ 오르막길 헉헉거리다가 수월하게 내려오다가/ 이런 일 수도 없이 되풀이하다가/ 문득 돌아다보면 잘 보인다/ 몇 굽이 돌고 돌아/ 어느덧 여기까지 와 있음 보인다/ 더러는 길 잘못 들어 헤매임도 한나절/ 상처를 입고 나서야 비로소/ 깨달음 얻어안고 헤쳐나온 길/ 돌아다보면 잘 보인다/ 내가 가고 싶은 곳 흐르고 싶은 곳/ 보이지 않는 손길들에 이끌려/ 나 지금 가고 있음도 잘 보인다//

대성골이 너무 고요하다 -내가 걷는 백두대간 49 / 이성부
음양수 샘터에서 목을 축이고/ 대성골 내리막길 눈과 함께 걷는다/ 내리는 눈 쌓이는 눈 얼음 감춰 나를 나뒹굴게 하는 눈/ 온 세상 너그럽게 눈꽃밭으로 피어올라/ 내 옷입었음도 부끄럽게 하는 눈/ 몇겹 옷 껴입고서도 덜덜 떠는 이 육신/ 치사스런 정신/ 솟은 바위가 나를 꾸짖듯 타이르듯 내려다본다/ 한 바위를 붙들고 왜 이리 고요한가/ 왜 이리 외로운가라고 물어본다/ 바위가 내 어깨를 누르면서 말한다/ 내가 뒤집어쓴 눈과 내 몸 패인 곳 채워진 얼음 보아라/ 고요함이란 이런 것 시끄러움의 뒤에 오는 것/ 외로움도 또한 스스로를 들여다볼 때 자라는 것/ 오랜 세월 고요함과 외로움이 쌓여져서/ 오늘은 눈으로 세상을 덮지 않았느냐/ 1952년 1월 17일부터/ 내 몸은 사흘 동안 불에 타고도 이리 살아 남았다/ 이 골짜기 온통 불바다가 되던 날/ 박격포탄 기관총탄 하늘을 찢어/ 하얀 산에 불꽃 날름거리고 검은 연기/ 하늘을 덮어 불춤을 추던 날/ 이 골 저 골 저 등성이 천불을 맞아/ 하얀 산이 온통 피가 되고 숯덩이가 되었다/ 엉겨붙은 그 주검들 더미 위에/ 누깔과 상처를 쪼던 까마귀 서너 마리/ 숨어살던 비결쟁이도 열네살 소년도/ 거기 쓰러져서 역사(歷史)가 되었다/ 나는 바위를 떠다밀고 일어나 눈을 털고/ 무릎까지 빠지는 눈길 헤치며 내려간다/ 그 죽음들은 지금 어디로들 헤매고 다닐까/ 그로부터 사십여년 침묵이 쌓인 지금/ 이 골짜기 왜 이리 고요해 숨이 막힐까//

통곡봉은 아직 울음을 그치지 않았는가 -내가 걷는 백두대간 50 / 이성부
낫날처럼 생겼다고 해서 낫날봉이라든가/ 내가 들고 가는 지도에는 날라리봉/ 또 어떤 지도에는 삼도봉이라고 씌어 있다/ 경상남도와 전라남북도를 가르는 꼭지점이다/ 사람이 종이 위에 점을 찍고 선을 그었을 뿐/ 산은 아무 경계가 없이 그저 한마음을 보여준다/ 낫날봉에서 바라보는 남쪽 능선 섬진강까지/ 크고 작은 봉우리 불무장등 통곡봉 황장산 화개 탑동/ 육십리 능선길 오르내릴 일 아득하구나/ 사람이 많이 모르는 길이어서/ 풀섶은 길을 덮고/ 내 두려움을 덮어 자꾸 바짓가랑이 젖게 한다/ 언제나 그러하듯 처음 가는 산길은 설레기 마련/ 무엇이 나타날까 무엇이 새로 보일까/ 무슨 사연 감추어 처음 보는 새각시 맞으러 가는 머슴같이/ 나는 옷매무새를 고치고 모자도 똑바로 쓰고/ 눈 크게 떠 바람 한점까지 보며 걷는다/ 불무장등을 넘어 한참 내려가니 길은 두 갈래/ 지친 몸이 오른쪽 내리막길로 가고 싶지만/ 아니야라고 혼잣말 내뱉으며/ 곧바로 천천히 오르막길을 올라간다/ 우리네 삶도 자칫 길 잘못 들어/ 엉뚱한 곳으로 떨어지거나/ 되돌아가지 못하는 일 흔치 않았더냐/ 아 비로소 통곡봉이다/ 왼쪽으로 화개동천 골짜기 숨을 죽이고/ 오른쪽으로 피아골 다랑이논밭 왕시루봉 능선/ 섬진강으로 떨어지는 산자락 끝 석주관/ 고요하다 못해 차라리 무서움이다/ 오십년 전에도 백년 전에도 오백년 전에도/ 좌우 저 골짜기 속의 아비규환 피비릿내/ 이 봉우리는 굽어보며 얼굴을 찡그리다가/ 두 주먹 불끈 쥐다가 마침내 눈물을 쏟았을 것이다/ 오늘은 내가 땀 범벅이 된 얼굴로/ 그 울음에 내 볼을 비빈다//

숨어서 내뱉는 시 -내가 걷는 백두대간 51 / 이성부

막걸리를 노래함 -내가 걷는 백두대간 52 / 이성부
문학과 함께 막걸리를 배웠다/ 내 고교 시절 어릿광대/ 여드름 데불고 다니던 기찻길 엎 선술집/ 불콰해진 국어 선생님/ 양은대접에 막걸리 철철 따라 주셨다/ 서울 변두리 모래내 셋방살이/ 허우적거리는 삶이 돌아가는 길/ 저녁 어스름마다 막걸리 한 사발을 들이켰다/ 흐뭇한 것이 내 안에서 꿈틀거리고/ 아내와 어린것들은/ 가난보다 먼저 나를 껴안아 따뜻해졌다/ 벽소령에서는 종이컵에 가득 부어 나를 적신다/ 내 몸 구석구석을 돌고 돌다가/ 가슴에 이르러 북받치는 것이 되고/ 남쪽 골짜기 바라보는 눈에 닿아 슬픔이 된다/ 이골물 저 골물 합쳐져서/ 더 큰 노여움으로 빛나는 합수내 빗점골/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마을/ 찾아가야 할 길 멀고 몰라서/ 길섶 풀잎에게도 말을 건넨다/ 막걸리에 달아올라 내려가는 길/ 왜 이리 더디고 비틀거리느냐//

배반하는 것이 사랑이라고? -내가 걷는 백두대간 53 / 이성부
그대가 말한다/ 당신이 섭섭해서 배반했다고/ 당신이 나를 멀리하므로/ 개 돼지 아니면 먼지 보다도/ 더 하찮은 것으로 보았으므로/ 배반과 보복을 거듭하다가/ 여기까지 왔다고 말한다// 그대는 떳떳하고 나는 시무룩하게/ 빈 웃음을 날리고/ 담배연기인지 안개구름인지/ 멀리 가까이 또는 달려가는 서글픔인지/ 알수 없는 것들 속에서 산을본다// 그대가 말한다/ 그래도 이것이 사랑이 아니냐고/ 입맞춤속 침을 모아 더 많이 삼키고 싶다고/ 여느 희극배우 처럼 말한다/ 이도 저도 아닌 것들 들끓어/ 나도 이것이 사랑인듯 물들여 지면서/ 부리나케 달려온 지리산 화개동천// 벽소령 오르는 잡목숲/ 고속버스에서 잠든 몸이/ 혼자가는 산길에서 비로소 깨어난다/ 세상인연 여울목에 몰린/ 멸치떼 같은 생 깨닫는다//

있어도 걱정 없어도 걱정 -내가 걷는 백두대간 54 / 이성부

한눈 파는 발 -내가 걷는 백두대간 55 / 이성부
내 발은 자꾸 한눈을 판다/ 내가 보는 곳이 아닌 곳으로/ 내가 가야 할 길 벗어난 샛길로/ 나를 자꾸 이끌어가기를 좋아한다/ 내 발을 한참 따라가다가/ 뒤늦게서야 유혹에 빠진 것을 알았다/ 잘못 가는 길임을 알고 나서도/ 한동안 그렇게 나를 내버려두는 일/ 그대 뜻대로 나를 맡겨버리는 일/ 낮선 아름다움에 젖어드는 일/ 몸을 추스려 되돌아서는데/ 내 발도 돌아서서 나를 따른다/ 이것이 삶이다라고 하나 배우면서/ 내 발이 웃고 나도 웃는다//

귀신 형용 -내가 걷는 백두대간 56 / 이성부
긴 머리칼 아무렇게나 동여매고/ 숯검댕이 같은 얼굴에다/ 눈빛 날캄해서/ 금세 사람 집어 삼킬 듯한 모습이라고 했다./ 춘향가에서는 쑥대머리가 귀신형용/ 지리산 의신마을 정씨 할머니는/ 젊었을 때 본 빨치산 가시내가 귀신형용/ 내가 산길에서 보거나 느낀 바로는/ 속눈썹 같은 달도 없고 별빛도 없고/ 해드랜턴마저 다 닳아 칠흑속을 더듬어 갈 때/ 내 베낭을 붙잡는 나뭇가지/ 나뭇가지의 울음들이 귀신형용/ 총을 들고 정재와 장광을 뒤지다가/ 담을 넘어 사라지는 모양이/ 한 마리 날렵한 고라니 같았다고 했다//

뼈다귀들 나무 사이로 -내가 걷는 백두대간 57 / 이성부
겨울에야 옷 벗어 제 속내를 드러내는/ 뼈다귀들 나무 사이로/ 더더욱 옷 껴입은 내가 힘겹게 간다/ 옷 벗은 나무는 다만 저를 단련시켜/ 다음에 올 봄나들이/ 몽글리는 것이야라고 생각하면서/ 나도 이마의 땀 닦고 겉옷 하나 벗고/ 천천히 옛이야기 찾는 길 오르기로 한다/ 이 산허리 칠부능선쯤에서/ 숨죽여 엎드려서도 눈빛 타올랐던 사람들/ 얼음들어 손가락 발가락 푸르딩딩/ 육신은 찢겨나가도 뜨거운 마음 더욱 사무쳐/ 오늘은 뼈다귀들 영혼으로 바람 불러/ 내 시린 발걸음 더디게 만든다/ 사랑도 옷을 벗어 더 튼튼해진 몸/ 터질 듯 쓰러질 듯 버티고 서서/ 나에게 손짓하는 나무들 사이로/ 한 깨달음이 간다/ 단단히 감싸놓은 내 슬픔의 덩어리를/ 내가 짊어지고 간다//

그리움 -내가 걷는 백두대간 58 / 이성부
낯선 길에 들어서야/ 나는 새로운 내음 가슴 가득히/ 채워 발기한다// 이 길에서는 온통 그대에게/ 보여주고 싶은것 너무많아/ 마음이 나를 떠나 천리 밖을 떠돈다// 절도 중도 없어 바위턱에 나를 앉히고/ 숨을 고르게 하고/ 내 몸도 알맞게 식혀/ 구름에게라도 맡겨야 한다//

풍경 -내가 걷는 백두대간 59 / 이성부
지리산 중턱 벽소령 아랫마을/ 깊은골에 사는 처녀들은/ 아마도 해에게서 내려와/ 왼종일 취나물이나 고사리를 뜯고/ 찢어진 가난이나 그리움 얻어 삼키고/ 저녁이면 다시/ 해에게로 자러 가는지도 몰라/ 반야봉에 지는 노을 섬겨서/ 저마다 하나씩 해를 배는 처녀들이/ 저렇게 도란도란 사이가 좋다//

24번 국도 -내가 걷는 백두대간 60 / 이성부

할머니와 어머니의 소곤거림 속에서/ 빨치산과 빨갱이?/ 일곱 살 때 처음 들었던 말이다/ 얼굴이 빨간 무서운 사람이라고 했다/ 아버지는 그 사람들을 잡으러 다니는/ 토벌군의 트럭 운전수였다/ 돌아오지 않는 아버지를/ 우리 식구는 밤마다 기다렸다/ 얼굴이 하얀 눈이 큰 아이가/ 틈만 나면 나를 따라다녔다/ 논에 나가 메뚜기를 잡고 우렁을 캤다/ 빨갱이 자식이라고 놀림받던 아이가/ 어디론가로 떠나고/ 아버지는 돌아와서 말했다/ 함양서 도라꾸가 박살나 쳐박혔으니/ 내가 무슨 일을 하겄고/ 총 쏠 줄도 모르는데.../ 백무동 내려와 남원 가는 24번 국도/ 그 아이 지금 살아 있을까 생각하며/ 아버지의 트럭이 갔던 길 내가 간다//

아름다운 돌이 불길을 다독거렸다 -내가 걷는 백두대간 61 / 이성부
우리나라 산골짜기 절간치고/ 저 숱한 난리에 불타지 않은 절 있을까마는/ 피아골 들머리 연곡사는 특히 많은 불벼락을 맞았다/ 절 앞으로 지금은 자동차들 무심하게 달려가버리지만/ 옛 사람들은 구례나 화개 섬진강에서부터 걸어/ 이 절에서 밥지어 먹고 다리품도 쉬어갔다고 한다/ 깊은 산속으로 쫓겨 들어가는 사람들과/ 산속에서 숨어 있다가 허기져서 내려오는 사람들과/ 스스로 창검을 들었던 스님들과/ 싸우던 한말 의병들과 왜놈들과/ 빨치산들과 토벌 군경과/ 이 절은 오래동안 한데 섞여 시달리느라/ 본디 가야 할 제 길을 여러 차례 멈추어 서서/ 어디 먼 곳으로만 자꾸 눈길을 주었을지도 모른다/ 절이 불에 타고 지어지고 다시 불타고 지어지고 해서/ 지금 보다 더 튼튼해진 다리로 제 길을 가고 있다/ 아마도 화염 속에서도 버티어냈을/ 저 아름다운 돌부도와 돌거북의 기세가/ 세속의 불을 다독거렸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 연곡사 : 전남 구례군 토지면 외곡리에 있는 절. 통일 신라 때 세워졌으며 동부도, 북북도, 서부도 등 국보와 보물이 있다.

피아골 다랑이논 -내가 걷는 백두대간 62 / 이성부
이 마을이 어떻게 태어났는지/ 이 깊은 곳에 어떤 사람들이 흘러 들어와/ 마을을 만들었는지/ 나는 굳이 알려고는 하지 않는다/ 다만 사람들이 빈 산골짜기로 올라와서/ 비탈에 하나씩 둘씩 돌을 쌓고 땅을 고르고/ 마침내 씨앗 뿌려 질긴 목숨 끌어갔음을 본다/ 참으로 사람이야말로 꽃피는 짐승/ 가슴 가득히 불덩이를 안고/ 피와 땀을 뒤섞이게 하는/ 그것이 눈물겨워 나도 고개 숙인다/ 구례군 토지면 직전마을 피아골 들머리/ 아침 햇발에 층층 쌓인 다랑이논들/ 거친 숨결 내뿜는 것을 본다//

피아골 산장에서 들은 이야기 -내가 걷는 백두대간 63 / 이성부
산 좋아하는 젊은 남녀가 약혼여행 삼아 지리산으로 들어왔지요 이십여 년 전 일입니다 여기 어디쯤 편편한 곳에 텐트를 치고 물도랑을 만들고자 흙을 팠습니다 한참 파내려가던 사내가 그만 기겁을 한 채 허둥지둥 산을 내려가 버렸습니다 놀란 아가씨가 흙 파던 자리를 살펴보니 사람의 뼈가 솟아 있었지요. 벼엉신 나를 두고 저만 혼자 도망가? 아가씨도 주섬주섬 텐트를 거두어 짊어지고 내려갔답니다 이 골짜기에서는 풀 나지 않는 흙땅이 흔히 막영할 자리로 이용되지만 아는 사람들은 그런 곳을 피해서 치지요 이 산장만 해도 명당자리라고 하는데 돌과 바위로 뒤덮인 골짜기에 이곳만이 흙땅으로 꽤 넓습니다 산장을 지을 때 땅을 팠더니 엄청나게 많은 인골이 나와 몇 트럭이나 됐다고 합디다 난리가 날 때마다 이 골짜기에서는 이곳밖에 떼주검 묻을 곳이 없기 때문이지요//

남겨진 것은 희망이다 -내가 걷는 백두대간 64 / 이성부
이렇게 드러누워 천장 바라보는 몰골이/ 남의 일이라고만 여겼더니/ 오늘은 나에게로 닥쳐와서 새 삶을 가르친다/ 여러 시간 혈관주사를 맞으면서/ 살아가는 동안 이런 일도 벌어지는구나 생각하면서/ 사방 흰 벽들을 본다/ 꿈의 힘줄들이 아름답게 어른거리고/ 히말라야가 온통 불을 밝혀 나를 손짓한다/ 문득 우리나라도 지금 이렇게 앓고 있는/ 꼴이 아니냐고 쓴웃음을 웃으면서/ 어저께 사고를 되새기니 기가 막힌다/ 남들 뒤따르는 것이 답답하고/ 남들이 나 따라오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아/ 길이 아닌 곳으로 앞질러 내달렸다/ 다른 때 같으면 잘 내려왔을 바위 비탈에/ 무엇이 씌었는지 넋이 나갔는지/ 나무 잡고 발 디딘 것 잘못이었다/ 나무가 먼저 부러졌을까/ 내가 먼저 미끄러져 나무가 다쳤을까/ 아무튼 나는 그대로 떨어지고 말았다/ 돌부리에 깨진 무르팍에서 피가 흘렀다/ 철들기에는 아직 멀었구나/ 건방지고 거들먹거리는 마음 아직도 남아 있어/ 이 모양 이 꼴이 되었구나/ 새삼 하나를 더 배우고 더 깨우쳐서/ 이렇게 누워 있음이여/ 깁스를 한 채 눈만 멀뚱거리는/ 한국이여//

반야봉 꽃안개 -내가 걷는 백두대간 65 / 이성부
불빛들이 뱀처럼 꿈틀거리며 줄지어 나아간다/ 어느 사이 불빛들이 모두 제자리에서만 흔들거린다/ 길이 끊어졌다 지리산은 가르쳐주지 않는다/ 폐광인 듯한 굴 속에서 찬바람이 불어 나오고/ 고로쇠나무에 붙은 비닐병에 빗물이 고여 있다/ 묘한 인연이다 달궁 근처에서 오를 때마다/ 꼭 한 번은 들머리에서 길을 잃다니/ 쟁기소에서도 그랬고 심원마을에서도 그랬다/ 마한 땅에서 태어난 천한 백성 자손이/ 시멘트 바닥으로 변한 왕궁터를 밟아왔기 때문일까/ 총맞아 피흘리며 산죽밭에 누워 있던/ 빨치산 이야기를 내가 시로 쓴 때문일까/ 벼라별 생각을 하면서 위아래로 길을 찾는다/ 길이 보인다라고 누군가가 소리치고/ 나는 앞장서서 뱀의 불빛들을 이끌고 나아간다/ 등성이에 올라서서도 길은 어렴풋이 이어진다/ 억새밭 사이로 짐승이나 산사람이 다녔을 것 같은/ 길을 조심스럽게 따라 올라간다/ 아 그사람들은 어떻게 이 길을 걸었을까/ 불빛 하나 없이 소리도 내지 않고/ 이 칠흑의 어둠을 어떻게 헤집고 나아갔을까/ 아주 조금씩 밤이 벗겨져간다/ 내 기다림의 오랜 침묵이 저절로 입을 벌린다/ 헤드렌턴을 꺼버리자 길이 회색빛으로 드러나고/ 나는 신생(新生)으로 서서/ 처음인 듯 숲과 동쪽 하늘을 내 눈에 빨아들인다/ 반야봉 북쪽 골짜기를 내려다보니/ 탐스런 꽃봉오리 같은 새벽 안개 넓게 피어올라/ 우리들 살아 있음의 이 기쁨/ 먼저 간 그들과 함께라는 것을 알겠구나!//

뱀사골에서 빠져죽은 고정희 생각 -내가 걷는 백두대간 66 / 이성부
처음 여기 내려갈 때는 골짜기 너무 아름다워/ 내 발걸음 자꾸 멈추게 하더니/ 두 번째 이곳으로 올라갈 때는 비트가 어디쯤이었을까/ 물은 건성으로 보고 산세만 살피며 걸었다/ 오랫만에 세번째로 와서 뱀사골 계곡을 본다/ 그 사이에 이곳은 슬프고 억울한 일 하나가 보태졌다/ 아름다운 물이 올곧은 처녀시인을 앗아가다니/ 힘차고 뜨거운 가슴의 시들을 다시는 못보게 하다니/ 양성우와 함께 내 사무실을 찾아와서/ 광주 가시내 고쟁이라 합니다 말하면서/ 함박꽃 웃음 크게 터뜨리던/ 여전사를 닮았던 시인/ 고정희가 빠져 죽은 곳 어디쯤일까 두리번거리다가/ 나도 미끄러져 바짓가랑이 적시고 돌아간다//
* 고정희(1948~1991) ; 여류시인. <실락원 기행> <초혼제> <지리산의 봄> 등
* 양성우 ; 시인. <겨울 공화국> <북치는 앉은뱅이> <노예수첩> 등

서둘지 않게 -내가 걷는 백두대간 67 / 이성부
오늘은 천천히 풀꽃들이나 살펴보면서/ 문수골 시린 물에 얼굴이나 씻으면서/ 더러는 물가에 떨어진 다래도 주워 씹으면서/ 좋은 친구 데불고 산에 오른다/ 저 바위봉우리 올라도 그만 안 올라도 그만/ 가는 데까지 그냥 가다가/ 아무데서나 퍼져앉아버려도 그만/ 바위에 드러누워 힌구름 따라 나도 흐르다가/ 그냥 내려와도 그만/ 친구여 자네 잘하는 풀피리소리 들려주게/ 골짜기 벌레들 기어나와 춤이나 한바탕/ 이파리들 잠 깨워 눈 비비는 흔들거림/ 눈을 감고 물소리 피리소리 따라 나도 흐르다가/ 흐르다가 풀죽어 고개 숙이는 목숨/ 천천히 편안하게 산에 오른다/ 여기쯤에서/ 한번 드넓게 둘러보고 싶다//

그들은 지금 어디 있는가 -내가 걷는 백두대간 68 / 이성부
자유를 외치던 시인들이 있었다/ 이름없는 사람들도 그들의 뒤를 따랐다/ 나는 연필로 시를 쓴 적이 있다/ 고무지우개로 지워가면서/ 자유라고 또는 평등이라고 썼다/ 내 상처투성이 젊음 흔적도 없이 지워졌다/ 그 시인들 지금 어디 있는가/ 그들을 따르던 더 많은 사람들/ 모두 사라졌는가 지금 어디들 나자빠져/ 모습 보여줄 수도 목소리 들려줄 수도 잊었는가/ 아침마다 Enter키를 두드리며/ 다른 사람의 생각과 문자를 조금씩 고쳐가면서/ 이렇게 지워지는 것이 어쩌면 아까운 정신이라고/ 생각하면서/ 그 가슴 뛰던 단어들을 새삼 되새겨본다/ 치졸한 채로 오히려 상큼한 눈길/ 덤벙대면서도 깨끗한 함박꽃 웃음/ 그 너머 반짝 비치는 까닭 모를 슬픔/ 그들은 지금 어디 있는가/ 그토록 목메이던 자유 그물에 갇혔던 자유/ 지금 온 천하 가득히 돌아와 있다는 것인가/ 나는 연필로 시를 쓴 적이 있다/ 아름다운 말들 몇번이고 쓰고 또 지웠다/ 내가 내 몸의 작은 움직임으로부터/ 어디론가 그대를 찾아가는 힘겨운/ 헤매임에 이르기까지/ 가쁜 숨결 헉헉거릴 때까지/ 구만리장천 내 생각의 날개 잠시 접어둘 때까지/ 나는 지우고 또 썼으며/ 그 자리에 더 날카로운 나를 세운 적이 있다/ 볼펜으로 쓰기를 바꾸면서/ 열손가락으로 두드리며 문장을 만들면서/ 나는 날마다 얼굴빛을 너그럽게 고치고/ 날마다 내가 아닌 다른 내가 되어간다//

오월 -내가 걷는 백두대간 69 / 이성부
그해 봄에 나는 이상하게도 눈물이 많았다/ 사람들 틈에 아무렇게나 코를 풀었다/ 눈병 같은 것 감기몸살 같은 것/ 내 안의 천덕꾸러기인 나를 밖으로만 흘려 보냈다/ 사무실 창밖 거리 내려다보며/ 봄비로 내리는 아비규환들 나를 적셨다/ 그리고 나는 채 마르지 않는 신문 대장을 들고/ 군인들이 줄지어 앉아 있는 곳을 드나들었다/ 노여움보다도 더 무서운 것이 침묵임을/ 그때 나는 나에게서 배웠다/ 내 눈물은 쓰잘데없는 쓰레기 부스러기/ 내 슬픔 시궁창 같은 삶의 구덩이/ 내 외로운 갈보/ 실눈 뜨고 바라보는 세상을/ 더럽게도 나는 살아 남아서/ 길이 가는 대로 혼자 걸어 임걸령까지 왔다//

반야봉에 해가 저물어 -내가 걷는 백두대간 70 / 이성부

오늘 반야봉에 해 저물어 한 해가 가고/ 한 세기가 또한 저렇게 사라져갑니다/ (중략)/ 미음과 다툼의 세월이 세계를 들쑤시고/ 온갖 허물과 지저분함이 우리를 못살게 하고/ 부정 부패 부조리 지역감정 따위들/ 우리나라를 어지럽게 했다 하더라도/ 그것들을 모두 어둠 속에 묻어버리는/ 저 큰 깨우침의 적멸(寂滅)이 엄숙합니다/ 모든 사라져가는 것들이/ 저를 역사에 맡겨 숨죽이듯이/ 우리도 모두 저렇게 사라져갑니다//

노고단에 여시비 내리니 -내가 걷는 백두대간 71 / 이성부
노고단에 여시비가 내리니/ 산길 풀섶마다/ 옛적 어머니 웃음빛 닮은 것들/ 온통 살아 일어나 나를 반긴다/ 내 어린 시절 할머니에게 지천 듣고/ 고개만 숙이시더니/ 정재 한구석 뒷모습/ 흐느껴 눈물만 감추시더니/ 오늘은 돌아가신 지 삼십여년 만에 뵙는/ 어머니 웃음빛/ 이리 환하게 풀꽃으로 피어 나를 또 울리느니!//

보석 -내가 걷는 백두대간 72 / 이성부
지리산을 여러 차례 오르내렸는데 그 모습 모르고만 다녔다 이 골 저 골 이 등성이 저 등성이 많이 더투고 헤집고 돌아다녀도 그 산은 저를 보여주지 않았다 함께 잠자며 뒹굴며 살 섞어 땀흘려보아도 거듭 알 수 없었다 어느 해 겨울 기진맥진 청학이골 내려와서 강 건너 남쪽 보았더니 크낙한 산줄기 또 하나 무겁게 버티고 있었다 이듬해 겨울 한달음에 그 남쪽 산 올랐더니 비로소 옆으로 누운 지리산 긴 몸둥어리 한꺼번에 보이더라 빛나는 큰 보석 병풍 펼쳐져서 내 그리움 달려가 북받치게 하더라 사랑하는 것들 멀리 떨어져 바라보아야 더 잘 보이느니//

김개남의 사진 한장 -내가 걷는 백두대간 73 / 이성부

달과 바람을 끄집어오다 -내가 걷는 백두대간 74 / 이성부

인월 마을에 와서 보니 달이 없다/ 보름밤인데도 하늘 어두워/ 내 마음속 길도 어슴프레 비추지 못한다/ 인풍마을에서도 바람 한점 없어/ 근심만 포개놓고 여기까지 왔다/ 좁은 길에 시멘트포대 가득 실은 트럭이 달려가고/ 벗들은 군내버스 정류장을 이리저리 맴돌고/ 나는 길턱에 주저앉아 번쩍이는 노래방 불빛을 본다/ 바래봉 덕두봉 시커먼 산이 남쪽으로 길게 누워 있다/ 내 앉은 자리 모두 산이었을 때 사연 생각하니/ 이곳에서도 밤마다 귀신 울음소리 그치지 않음을 알겠다/ 땅바닥에 막대기로 귀곡성이라 쓰고 또 지운다/ 나도 태조를 닮아 욕심이 많아서/ 구름 뒤에 숨은 별들과 바람과 달을 끌어와/ 내 배낭 가득히 쓸어담는다//

도선국사 -내가 걷는 백두대간 75 / 이성부

매천선생의 절명시를 흉내내어 -내가 걷는 백두대간 76 / 이성부
밤마다 호롱불 아래 책을 읽고 글을 썼다/ 아침저녁으로 바라다뵈는 종석대 산마랑이/ 왜 한숨 속에 고개 숙이고 있는가를 알겠다/ 새와 짐승들도 왜 저리 슬피 울부짖는가를/ 바람소리 먼 인경소리 왜 먹구름으로 와서/ 내 두 눈 가리는지를 알겠다/ 나라가 망했는데도 아무 한사람 나서는 이 없고/ 배운 사람은 오히려 망국노에 붙어/ 아양을 떠는구나!/ 내 비록 벼슬길에 나아간 적 없고/ 내 비록 책을 찾아 천리길도 마다하지 않았거늘/ 숨어 살거나 책을 벗하거나 다 부질없는 일/ 배운 사람의 뜻으로 또는 부끄러움으로/ 내 오늘은 책을 덮고 스스로 사라지려 하나니/ 너희들은 결코 슬퍼하지 말아라//

처용을 닮아간다 -내가 걷는 백두대간 77 / 이성부
나는 아무래도 게을러서 한눈팔기 좋아하고/ 아둥바둥 세상일에 등 돌리기 일쑤이고/ 너무 부끄러움 많아 좋은 사람 빼앗기는 일 적지 않았다/ 산에 올라 멀어 버린 시간 멀어 버린 사람 돌이켜보니/ 그 일들은 아프기는 했지만 그래도 참을만하였다/ 섭섭하다 라는 느낌은/ 어릴 적 황토산에서 엎어져 입속 흙을 앞니로 깨물던 느낌/ 뱉어내고 입맛 다시던 느낌/ 정령치 풀밭이 달빛 물들어 스산해도/ 한판 춤이나 출까부다 어릿광대 같은 붉은 웃음 날리며/ 북 소리 장구 소리 없어도 신명나게 춤이나 출까부다//
* 정령치正嶺峙 : 지리산 서북능선에 있는 고개. 삼한시절 정鄭 장군이 이곳을 지켰다고 해서 정鄭령치라고도 불렀다.

정월 보름달 복조리가 하는 말 -내가 걷는 백두대간 78 / 이성부

화가 한 사람 -내가 걷는 백두대간 79 / 이성부
내 다리가 절뚝거리는 것은/ 내가 병신이어서가 아니라/ 세상의 모든 땅이 울퉁불퉁해서 그럴 수밖에/ 땅이 병신이기 때문이지/ 기쁨의 당사자는 따로 있는데/ 엉뚱한 내가 기뻐하는 데서/ 내 그림도 태어나는 것 같아/ 내가 기쁘니 온 세상 기쁜 것 아닌가/ (노루목*에서 다리에 총맞아 불구가 된/ 60년대 화가* 한 사람/ 나와 함께 막걸리 마시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 노루목 : 지리산 주능선의 서쪽, 주능선과 반야봉 오름길의 교차점
* 화가 한 사람 : 빨치산 출신의 화가 양수아

전적기념관 -내가 걷는 백두대간 80 / 이성부
산을 내려와서 무심코 전적기념관 둘러보니/ 내 어린 시절의 초가 한채 널브러져 있다/ 토방 위에 놓였던 짚세기 지까다비 검정고무신/ 그 위 마루끝 걸레 빗자루 처넣던 자리에/ 아무렇게나 던져진 무명베 발싸개 따위/ 나를 말없이 안으로 울게 하는 손짓들이 있다/ 내 꿈을 널뛰게 했던 야성의 허파가 있다/ 오리길 달려 할아버지 개장국 사다 드리던/ 미제 국방색 반합 구부러진 젓가락 숟가락/ 누비옷 개털모자 기운 담요 같은 것들/ 몇십년 만이냐 이것들 다시 보는 세월/ 오십년이 지나버린 오늘 지리산 반야봉 끝자락에/ 내 어린 시절 무량수 설레임이 있다// 판자 울타리로 넘겨가던 주먹밥 보따리와/ 별표 달린 모자 다발총 수류탄 빛바랜 총알들/ 꼬두메에서 바라보던 쌕쌕이 흰구름 푸른 하늘/ 새롭게 내 몸 떨리게 하는 역사가 있다/ 진열창 너머에서 넋이 불타는 소리 들린다//

우리를 감싸안고 가는 길 -내가 걷는 백두대간 81 / 이성부
새로운 길을 들어설 때마다/ 우리는 가슴 두근거림으로 날개를 단다/ 날개 달린 가슴이/ 우리 어머니인 대지의 품을 더듬어가고/ 아버지인 시간의 바다를 향해서 간다/ 새로운 길에 들어서는 일은/ 우리들 모두 꿈과 희망을 가득 채우고 가는 일/ 우리의 발걸음으로 두 손으로 뜨거운 만남으로/ 그 꿈과 희망 우리들의 땅에 실현시키는 일/ 우리 앞에 비록 천길 벼랑 가로막고/ 앞을 가리는 험한 눈보라/ 거센 파도 몰아친다 하더라도/ 우리 이미 그것들을 헤치고 예까지 오지 않았더냐/ 시련이 많을수록 고달픔이 클수록/ 우리가 성취한 길 그 보람으로 더욱 컸으니/ 이제부터 우리 가야 할 통일의 길/ 더 큰 어려움 나타날지라도/ 우리가 어찌 우리 나아갈 실 망설일 수 있으랴/ 우리의 어머니인 대지와/ 아버지인 바다가/ 우리를 감싸안고 가는 길 아니더냐!//

 

 [시집]   '내가 걷는 백두대간' 부제를 단 연작시집 완결편 - <작은 산이 큰 산을 가린다>

 

 

이성부씨, 연작시 '내가 걷는 백두대간' 완결

(서울=연합뉴스) 정천기 기자 = 시인 이성부(李盛夫.63) 씨가 8년여간 백두대간을 종주하며 쓴 연작시 '내가 걷는 백두대간'이 완결돼 시집으로 나왔다. 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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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재 마을 -내가 걷는 백두대간 82 / 이성부
큰 살줄기가/ 사람 사는 마을로 내려왔다가/ 자동차 길을 따라 한참을 더불어 흐르다가/ 논둑길 가로질러 엎어지기도 하다가/ 잠시 세상의 때묻은 몸 털어내고/ 가재 마을 뒤 소나무 아래에서 낮잠 한숨 부치고/ 천천히 몸을 일으켜 다시 나아간다/ 예전에는 사람과 짐승들도 조심스럽게/ 몸을 낮추거나 숨죽이며 걸었던 길에/ 자동차들이 요란한 소리로 산천을 흔들며 달려가고/ 사람들도 가슴마다 멍이 들어 걸어가므로/ 사람들 말 없음도 더 큰 외침이라는 것을 알겠다/ 짐승들은 모두 어디로들 숨어버렸는지 나자빠졌는지/ 산길도 이빨이 빠진 듯 헛바람만 내뿜는다/ 큰 산줄기가/ 지리산 긴 몸뚱아리 뒤로 남겨두고/ 제 갈길을 찾아 올라간다 고즈넉하게//

소리가 숨는 곳 -내가 걷는 백두대간 83 / 이성부

나무 지팡이 -내가 걷는 백두대간 84 / 이성부
풀섶에 버려진 나무 지팡이 하나 쓸 만해서/ 집어들고 산을 내려간다/ 오랜만에 짚어보는 지팡이 모가지 잡은/ 내 왼손을 거쳐/ 땅 기운이 내 몸속으로 들어오는 것을 알겠다/ 언젠가 다른 산에서도 느껴 알아차렸던/ 그 편안한 가슴 트임 같은 것/ 내 손가락 발가락 끝 모세혈관까지/ 힘이 실려 도는 소리 같은 것/ 붉은 나무마저 땅과 사람을 잇는구나/ 저녁 하늘이 불그레하게 옆으로 드러누워/ 나도 너의 편이다라고 말씀하신다//

논개를 찾아서 -내가 걷는 백두대간 85 / 이성부
주논개 태어났던 마을 물에 잠겨/ 오늘은 검푸른 오동제 호수로 출렁인다/ 새로 복원된 생가 마루에 앉아/ 바라다보이는 깃대봉 높은 등줄기/ 눈덮인 대간 마루금/ 내 온몸을 벅차오르게 한다/ 전라도 장수에서 태어나 경상도 함양에 묻힌/ 스무살 한 떨기 가녀린 목숨/ 그녀 무덤 찾아가는 발길에 눈만 내리 쌓이고/ 육십령에서는 자동차들도 엉금엉금 기어서 간다/ 진주정 빼앗기고 돌아가던 패전 의병들/ 이 고개에 올라 잠시 숨 고르며/ 그녀가 묻힌 저 산자락 돌아보았을 게다/ 방지마을 앞쪽 산줄기 양 날개 사이로/ 뻗어내린 산 매듭을 지어 머문 언덕/ 위아래로 자리잡은 무덤 두 기/ 아 지아비와 지어미의 하늘 바라보기/ 사백 수십년 세월 자라나서 산이 되었구나/ 대간에서 나고 대간에 묻혔으니/ 내가 가는 길도/ 그녀 매서운 눈보라 맞으러 가는 길이다//

내 고향으로도 뻗어가는 산즐기 -내가 걷는 백두대간 86 / 이성부

산을 배우면 -내가 걷는 백두대간 87 / 이성부
산을 배우면서부터/ 참으로 서러운 이들과 외로운 이들이/ 산으로만 들어가 헤매는 까닭을 알 것 같았다/ 슬픔이나 외로움 따위 느껴질 때는/ 이미 그것들 저만치 사라지는 것이 보이고/ 산과 내가 한몸이 되어/ 슬픔이나 외로움 따위 잊어버렸을 때는/ 머지않아 이것들이 가까이 오리라는 것을 알았다/ 집과 사무실을 오고 갈 적에는/ 자꾸 산으로만 떠나고 싶어 안절부절/ 떠나기만 하면 옷 갈아입은 길들이 나를 맞아들이고/ 더러는 억새풀로/ 삐져나온 나뭇가지로/ 키를 넘는 조릿대 줄기로/ 내 이마와 빰을 때려도/ 매맞는 즐거움 아름답게 살아남았다/ 가도 가도 끝없는 길 오르락내리락/ 더 흘릴 땀도 말라버려 주저앉을 적에는/ 어서 빨리 집으로만 돌아가고 싶었다/ 산을 내려가서/ 막걸리 한 사발 퍼마시고 그냥 그대로 잠들고만 싶었다/ 이렇게 집과 산을 수도 없이 오가면서/ 슬픔과 외로움도 산속에서는/ 저희들끼리 사이 좋게 잠들어 있는 것을 보았다//

옛적에 죽은 의병이 오늘 나에게 말한다 -내가 걷는 백두대간 88 / 이성부
나는 본디 내 이름ㅇ리 무엇인지/ 아비 어미 이름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누구든 아무렇게나 이놈 저놈/ 되풀이 나를 부르다가 어느덧 바우가 되었다/ 가세 가세 나무 가세/ 깊은 산에 나무 가세/ 우드락 뚝딱 나무 가세/ 지게 지고 올라와 삭정이 끍어면서/ 흥얼흥얼 뱉어내는 노래/ 내려와서는 장작 패고 쌓아두고/ 불때거나 논에 물꼬 잡으러 나가거나/ 이 세상 내 이름 따라다니는 나의 일이었다/ 난리가 났다고 했다/ 어르신네 말씀 좇아 온 동네 동무들 불러모았다/ 글 읽는 도령들도 왔다 우리는/ 횃불 켜들고 육십령으로 몰려가서/ 밤새워 숨죽이며 왜놈들을 기다렸다/ 어르신 고함 소리 새벽 하늘을 찌르고/ 우리들은 함성을 지르며 내달렸다/ 나무하던 낫으로 저들을 찍고 또 찍어/ 나도 쓰러져서 이 산에 보태는 흙이 되었다/ 이 고개를 넘어/ 내 본디 이름이 있는 다른 세상으로 나도 갔다//

붉은 악마 -내가 걷는 백두대간 89 / 이성부

송흥록 -내가 걷는 백두대간 90 / 이성부

하늘이 속물 하나 내려다본다 -내가 걷는 백두대간 91 / 이성부

쇠지팡이 -내가 걷는 백두대간 92 / 이성부
앞서가는 사람 쇠지팡이 두 개/ 바윗돌을 스칠 때마다/ 내 머리 어지러워 주저앉아버리고/ 푸나무 건드릴 때마다 내가 아퍼/ 눈으로 신음소리를 낸다/ 씩씩하게 땅바닥 찍는 것을 보고/ 땅이 문 닫는 소리 저를 가두는 소리/ 온 세상 귀 막는 소리 나에게도 들린다//

떠돌이별 하나가 -내가 걷는 백두대간 93 / 이성부
밤하늘 별 쳐다보기를 잊어버렸다가/ 이게 얼마 만인가/ 밤 깊은 산길에서 하늘을 본다/ 마치 돋보기 너머로 쏟아지는 것들 같아/ 눈을 깜박거리며 쳐다본다/ 저렇게 크게 빛나는 것도 별인가요?/ 아까부터 나도 궁금해하던 것을/ 함께 걷는 이가 묻는다/ 떠돌이별 하나가 사람 사는 곳으로 낮게 내려왔다가/ 우리들 살피느라 저리 빛을 내리 쏘는지/ 아니면 무슨 인공위성 불꽃인지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조릿대밭 사이로 힘겨운 발걸음이 간다/ 저 또록또록한 별밭 가운데서/ 손에 잡힐 듯 가깝고도 큰 별 하나/ 먼동이 트기 전 시꺼먼 장수 덕유 자락을 비춘다/ 별은 이미 밤부터 마음을 열어 나를 지켜보았는데/ 내가 아직 문 닫고 나아가고 있음을/ 나중에서야 나는 알아차렸다/ 서울에서 흔히 그러했던 것처럼/ 산중에서도 무엇을 알지 못해 쩔쩔매는 나를/ 별 하나에게 들켜 버리고 간다//

아름다움 -내가 걷는 백두대간 94 / 이성부
안개 속을 헤집고/ 조심스럽게 나아가는 사람의 눈에/ 나뭇가지는 자꾸 덤벼드는 짐승의 발톱이다/ 얼굴을 찌르고 베낭을 잡아 끈다/ 마음도 이리저리 할퀴어져 피를 흘린다/ 안개가 걸어간 발자국을 따라 디디며 걷는/ 내 철썩거리는 발길이/ 마치 전쟁 같아 앞일을 알 수 없다/ 사람들은 산에 올라와서야/ 발 아래 깔린 안개구름을 아름답게 본다//

할미봉이 숨이 차서 -내가 걷는 백두대간 95 / 이성부

너무 많은 것들 버리고 왔으므로/ 세상의 온갖 인연들/ 바람이 나뭇잎 털어내듯 떨쳐버리고 왔으므로/ 나 이토록 앙상하게 소진하여 헐떡거림이여/ 왼종일 쪼그리고 앉아/ 장수 덕유 푸른 묏부리 바라보거나/ 고개 돌려 내 걸어왔던 숨가쁜 길/ 무엇에 쫓기듯 달음박질 치던 삶 내려다보느니/ 이대로 붙박혀 뿌리내린 고단함이 몸을 눕히고/ 긴 세월의 무게 견디어낸 주름살도 터를 잡아/ 나 지금 숨 고르는 할미 되었네//

갓난아기가 되어 -내가 걷는 백두대간 96 / 이성부

거창 땅을 내려다보다 -내가 걷는 백두대간 97 / 이성부
우리나라 산골 마을 어디에도/ 육이오 때 숨져간 억울한 혼령들 없을까마는/ 이 산 아래 거창 땅은/ 오십년이 지난 지금도 가슴이 미어지는/ 누가 들어도 노여운 역사 하나를/ 더 가지고 있어 내 발걸음 잠시 멈추어야 한다/ 대대손손 땅을 일구어 살아왔던/ 순박한 사람들/ 남녀노유 가리지 않고 산골짜기에 몰아넣어/ 엎어지고 자빠지며 무서움에 떨 적에/ 하늘 갈기갈기 찢는 총소리 온 산을 뒤흔들었다/ 골짜기 에워싼 자기나라 군인들의 총질에/ 그 여린 사람들 모두 숨을 거두었다/ 군인들은 그 많은 송장 더미 위에/ 장작을 쌓고 불을 질렀다/ 육이오가 끝나고 세 해 뒤라던가/ 그 골짜기 파헤쳐 유골들을 맞추어보니/ 어른 남자 뼈 일백아홉 명/ 어른 여자 뼈 일백팔십삼 명/ 어린 것들 뼈 이백이십오 명/ 저 눈망울 선한 아기들도 빨갱이라고?/ 이러고도 우리나라 여기까지 왔으니/ 참 요행타!//

산속의 산 -내가 걷는 백두대간 98 / 이성부
하늘로 날자 날자 용한마리 춤을 춘다/ 이 등성이 줄지어 가던 떠돌이 혼령들/ 불러 모아 더덩실 함께 춤을 춘다/ 금새 일어나 솟구 칠듯한 또 다른 산 하나/ 산 속에 버티고 앉아 나를 몸 떨리게 한다/ 사람 속에 다른 사람 하나 숨겨져/ 그 마음을 알 수 없듯이/ 지리산에 반야봉 있어/ 큰 산 부드러움의 깊이 가늠할 수 없듯이/ 얼굴도 눈빛도 보여 주지 않는/ 덕유산 줄기에 꿈틀거리는 무룡산/ 나를 자꾸 숨죽이며 돌아보게 함이여//
* 무룡산: 덕유산 주능선상에 있는 큰 봉우리

상여덤을 지나며 -내가 걷는 백두대간 99 / 이성부
바쁜 걸음으로 백암봉 삼거리 꺾어들어/ 한참을 내려가다가/ 상여 닮은 바위 무더기를 본다/ 저 안에 어떤 주검을 담고 왔어/ 이 높은 산 등성이에 머물러 바위가 되었을까/ 내 나이 스물두살 때/ 꽃상여 안에 누워 어머니가 가셨다/ 함박눈 내려 쌓이는 광주 변두리로/ 가다 가다 쉬는 상여소리 복받쳐/ 어린 동생 손잡고 하늘 쳐다 보았다/ 북망산천이 머다더니 내 집 앞이 북망일세/ 이제 가면 언제 오나 오실 날이나 일러주오/ 너허 너허 너화너 너이 가지 넘자 너화너/ 혼자 뽑는 앞 소리에/ 상여꾼들 받는 뒷소리 더욱 서글퍼서/ 나는 처음으로 죽음에 따르는 하늘빛/ 저마다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이 덕유산 자락 깊은 골짜기마다/ 저 산 아래 터잡은 마을 골목길마다/ 북망으로 가던 퍼런 원한들 쌓여서/ 오늘은 어찌 그 하늘빛 아니다 하겠느냐/ 내가 가는 길 바른쪽이 거창 땅이다//
* 백암봉 : 덕유산 주능선상의 봉우리로, 백두대간 마루금이 향적봉을 거치지 않고 백암봉에서 동진 한다.

덕유평전 -내가 걷는 백두대간 100 / 이성부
산에 들어가는 일이 반드시/ 그 산 정수리 밟고자 함은 아니라고/ 생각한 지 오래다/ 산꼭대기에 올라가거나 말거나/ 중턱 마당바위에 드러누워 잠들거나 몸 뒤채기거나/ 계곡에 웃통 벗어놓고 발 담그거나 햇볕 쐬이거나/ 아무튼 이런 일들이 모두 그 산을 가득히/ 내 마음속에 품고 돌아와/ 묵은 책을 펴들어 기쁨 만나듯이/ 새롭게 다시 만나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넉넉한 덕유평전도 데불고 가서/ 내 쩔쩔매는 나날도 갈수록 너그러워지기를 바란다/ 서울 변두리/ 이미 고향이 돼버린 거리 좁은 골목 거쳐/ 내 집에도 내 어질러진 방에도/ 이 산속 고요함과 살랑거리는 외로움 풀어놓으면/ 한달쯤은 아마 나도/ 잘 먹고 잘 살아 부러울 것이 없을 터이다/ 산에 들어가는 사람이나 나와서/ 허우적거리는 사람이나/ 저 혼자 걸어가는 일은 마찬가지!//

저를 낮추며 가는 산 -내가 걷는 백두대간 101 / 이성부
이 산줄기가 저 건너 북쪽 산줄기보다/ 나지막하게 나란히 내려간다/ 허리 굽히고 고개를 숙여/ 조심스럽게 봉우리 하나를 일군 다음/ 자꾸 저를 낮추며 간다/ 그러다가 또 못봉을 일으켜 세우더니/ 무엇에 취한 듯 드러눕는 듯/ 금세 몸을 낮추어 부드럽게 이어간다/ 머지않아 이 산줄기 크높은 산을 만들어/ 더 나를 땀 흘리게 하리라는 것을 나는 안다/ 아 이런 산줄기가 크게 될 사람의/ 젊은 모습이어야 한다는 것을 하나 배운다/ 저를 낮추며 가는 길이 길면 길수록/ 솟구치는 힘 더 많이 쌓인다는 것을/ 먼발치로 보며/ 새삼 나도 고개 끄덕이며 간다//

거품 -내가 걷는 백두대간 102 / 이성부

어째야 쓰까 -내가 걷는 백두대간 103 / 이성부

빼재 -내가 걷는 백두대간 104 / 이성부
바람과 구름이 쉬어 가고/ 사람과 짐승도 쉬어 넘는다는 고개/ 한낮인데도 어둑하여/ 어디 못 볼 데라도 본 것 같다/ 내 사랑은 가운데 토막이 잘려서/ 어디로들 사라졌을까/ 양족 얼굴은 울퉁불퉁한 바위벼랑이 되고/ 산을 도려낸 자리 고개 위로 자동차들이 오고 간다/ 산의 살을 째고 뼈를 잘라/ 찻길을 내었으니/ 우리나라가 이렇게 가도 잘될까 싶어/ 힘 빠진 내 발걸음 휘청거릴 수밖에//
* 빼재 : 경남 거창군과 전북 무주군 경계에 있는 고개. 옛날 도둑과 사냥꾼에게 잡혀먹힌 짐승의 뼈가 많이 쌓여 있었다고 해서 ‘빼재’로 불렀는데, 경상도 발음으로 ‘뼈’가 ‘빼’로 통용다고 한다. 일제강점기 때 고개 이름을 한자로 표기하면서 ‘빼’를 빼어날 ‘수(秀)’로 해석, ‘수령(秀嶺)’이라는 웃지 못 할 이름도 생겼다. 신풍령(新風嶺)이라는 다른 이름도 있다.

부끄럽게 -내가 걷는 백두대간 105 / 이성부
바위틈에 뿌리 내린 늙은 소나무가/ 뒷짐지고 서서 나를 불러 세운다/ 천만년 참아온 바위의 속내를 읽었는지/ 나에게 무슨 말 던져 깨우치려는지/ 그 까닭 잘 듣고 싶어/ 나도 이녁 그늘에 앉아 땀닦고 귀를 기울인다/ 꿈적도 않는 바위 숨죽이고 엎드려 있지만/ 저 깊은 곳에서부터 오는 가벼운 떨림을 나도 감지한다/ 늙은 소나무는 불그레한 몸뚱어리 거칠게 용트림하므로/ 내가 오줌 마려운 소년처럼 쩔쩔맨다/ 이 높은 곳에서 더 넉넉하게 자리를 깔아놓은 바위/ 허리 휘어져 더 굳센 힘을 감추는 소나무/ 세상만사 다 꿰뚫어보는 눈들 있어/ 내 잠자코 사는 일도 힘에 부치구나/ 내가 저지른 허물들 하나씩 들추어내 널어놓고/ 솔바람 소리 나를 부끄럽게 말려준다/ 늙은 소나무가 알아들었다는 듯이/ 햇살 잘게 썰어 빛나는 이파리로 웃는다//

고운 얼굴들 더 많이 살아납니다 -내가 걷는 백두대간 106 / 이성부

자유의 길 -내가 걷는 백두대간 107 / 이성부

마애삼두불 -내가 걷는 백두대간 108 / 이성부
나는 때로 무한 떠돌이를 꿈꾸지만/ 힘겹게 산마루턱에 오른 몸이 끝내/ 서울로 돌아가는 기차 시간을 앞당긴다/ 통금 시절 달빛 맞으며 달음박질 치던 길이/ 산에까지 따라와 나를 서둘게 한다/ 내 영혼은 여기 남겨두고/ 몸만 빠져나가 내려가기로 한다/ 무풍에서 골짜기 따라 걸어 올라 온 그리움과 영동에서 또 그렇게 올라온 물한리 계곡과 김천에서 올라온 징소리 울음과/ 이런 것들 모두 나의 꿈을 닮았음으로/ 이 높은 곳 바위벽에 또 하나의 나/ 머리 셋 포개진 부처님으로 살거라/ 눈 뒤집어 써서 오히려 청청한 얼굴들/ 가부좌하고 남녘 땅 내려다본다//
* 마애삼두불 : 충북 영동과 전북 무주 사이에 솟은 석기봉(해발 1,200m) 아래 바위의 마애불상. 머리 세 개가 포개져 있어 기이한 형상이다.

황사바람이 쓸 만 하다 -내가 걷는 백두대간 109 / 이성부
철없는 봄눈 쌓여 산책길을 지워버렸다/ 대낮인데도 해는 흐지부지 떠서/ 어디 아편 맞은 하늘처럼 온통 게슴츠레하다/ 황사 데불고 온 성난 바람이/ 나를 눈물콧물 흐르게 하고/ 산골짜기 모두 가려 먼 데를 볼 수 없다/ 동서남북 어디인지 가늠을 못하는데/ 내 안에 잠자던 도발끼가 파르르 눈을 뜬다/ 불확실성이야말로 나를 틔우는 첫 번째 힘이다/ 몇해 전이던가/ 이 등성이에서 꼭 이 무렵에/ 야간행군하던 젊은이들이 많이 죽었다/ 전쟁이 사라진 뒤 오십 년이 지났어도/ 적 없는 전쟁은 여기까지 올라와 사람들을 쓰러뜨렸다/ 억울하고 안타까운 일 산 위에서도 적지 않아/ 그 사연들 더듬어 나도야 간다/ 지도와 나침반과 표지기를 좇아/ 이리저리 헤맨 지 네 시간여/ 민두름한 정수리 편편한 곳에 이르렀다/ 하늘도 세상도 모두 한통속인 찌푸림이어서/ 그 가운데 서성이는 내가 나도 두렵다/ 황사는 모래먼지 안개뿐만 아니라/ 저의 꿈도 보듬고 바다를 건너와서/ 쓸 만하게/ 나를 이토록 더 나아가게 함이여// * 표지기 : 산길을 알리기 위해 나뭇가지에 매달아놓은 리본.
* 민두름산 : 충북 영동군과 전북 무주군 경계에 솟은 민주지산(1241m)의 다른 이름. 충청도 쪽에서 보면 민두름 하게 보이므로 붙여진 우리말 이름인 듯.

울음잡기 -내가 걷는 백두대간 110 / 이성부
내 서러움이 매를 맞아 풋울음을 운다/ 내가 나를 두들기는 손에 주름 잡힌 힘 있어/ 내 노여움이 터져나오는 쇳소리도/ 때려잡아 순한 황소 울음으로 바꾼다/ 내가 알맞게 추스르는 것은 소리가 가야 할 길/ 멀리 널리 되살아나게 하는 일/ 우리나라 김천 징소리는 산줄기를 닮아/ 부드럽게 일어나 춤을 추며 넘실거린다/ 아니 산줄기가 징소리를 닮아/ 긴 울림으로 꿈틀거리며 흘러간다/ 이 등성이 타고 남으로 내려왔던 젊은이들/ 가슴마다 저 벅찬 사랑 닮아 치달렸음이여/ 슬픔과 노여움이 산같이 쌓인 뒤에라야 오는/ 고요함처럼 그 뒤를 따라가는 내 발걸음처럼/ 이 울음은 내가 무담시 내지르는 소리가 아니다//
* 울음잡기 : 방짜 징을 만들 때 쇠를 두들겨 소리를 가다듬는 일
* 풋울음 : 울음잡기를 할 때 처음으로 나는 소리.
* 무담시 : 가닭 없이. 괜히 등의 뜻으로 쓰이는 전라도 말

어떤 길 -내가 걷는 백두대간 111 / 이성부

여시골산 -내가 걷는 백두대간 112 / 이성부
사는 일이 어쩌다가/ 무엇에 씌운 듯 홀린 듯 구차한 곳으로/ 가버리는 수가 생긴다/ 뒤늦게 잘못 깨달을 때라야 비로소 시작이다/ 오던 길 되돌아서서 다시 올라가/ 차근차근 더듬어보아야 한다/ 여시골산에 여시는 안 보이고/ 여시굴인지 육이오 때 포탄 떨어진 자국인지/ 깊게 파인 구덩이 하나 입을 벌리고 있다/ 바닥을 보이지 않는 허무가/ 저런 모습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천천히 고만고만한 산봉우리들을/ 넘고 또 넘는다/ 길을 잘못 든 무덤 하나 둘/ 그만 지쳐서 길섶에 누워 있다/ 괘방령 아스팔트길 내려서서 뒤돌아본다/ 아홉 개의 봉우리를 넘어서 내려왔다/ 구미호가 바로 저것인가?//

사랑이 말을 더듬거렸다 -내가 걷는 백두대간 113 / 이성부
산이 땅바닥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산을 일구며 올라간다/ 이 산을 따라가는 내 발걸음도/ 갈수록 무거워 나는 내가 버겁다/ 가장 아름다운 사람은/ 손쉽게 오지 않는 법이다/ 그럴듯한 수사나 바람둥이 같은/ 매끄러움 부려도 오지 않는다/ 이 산을 가운데 두고/ 이쪽 저쪽 사람들 서로 서먹서먹했다/ 마음을 열지 못했다/ 나지막한 고개가 뚫리면서부터/ 사랑도 오고 갔으나 말을 더듬거렸다/ 그래서 눌의산이 되었음일까/ 지금은 이 산기슭으로 철도가 지나가고/ 고속도로가 지나간다/ 국도와 옛 길도 나란히 달린다/ 오랜 어려움 끝에 오는/ 아름다운 사람이 이리 너그럽고/ 이리 편안하다//
* 눌의산 : 추풍령 서쪽에 있는 산. 해발 743m

덜 익어도 그만 잘 익어도 그만 -내가 걷는 백두대간 114 / 이성부

터덜터덜 -내가 걷는 백두대간 115 / 이성부

나도 지금 어슬렁거리네 -내가 걷는 백두대간 116 / 이성부

금산 일기 -내가 걷는 백두대간 117 / 이성부
마을 식당 아주머니는 그 산을 반조각 산이라고 불렀다 백두산 가는 길이 그 산에 있다고 내가 말하자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마을을 지나 잡목숲을 헤치고 길을 잡았다 표지기 서너개도 흔들거렸다 산봉우리 가까워질 무렵에야 왜 반조각 산이 되었는지를 보았다 길은 반조각 산의 낭떠러지 위로 나를 잡아 끌고 올라갔다 엄청난 벼랑 저 아래로 학교 운동장 같은 하얀 터가 보이고 끊임없이 트럭들이 오고 갔다 분쇄기 돌아가는 소리 온 산을 흔들고 있었다 산새 한 마리 보이지 않고 푸나무들도 넋이 빠져 제 얼굴색을 잃어버린 것 같았다 저도 나도 흐느적거렸다 잘려나간 나머지 반조각 산은 어디로 갔을까 사라져버린 산의 내장들이 저 아래에 하얗게 쌓여 있었다 내가 가끔 가는 모래내시장 순댓국집 소쿠리에 담긴 그 돼지창자 간 허파 셋바닥 머릿고기들 따위//

낮은 산 -내가 걷는 백두대간 118 / 이성부
낮은 산은 그 뿌리가 깊고/ 어깨가 넓어 나도 다라가기에 멀다/ 따 아래로 얼마나 큰 뜻을 품고 사는지/ 무슨 꿈이 이리 느긋하게 사람들 불러 모으는지/ 나도 어림잡지 못하여 잠시 주저앉는다/ 신작로와 논두렁 밭두렁을 질러가는 큰 용이/ 먼데 산등줄기로 올라가는 것 보인다/ 두루 다 편안하기도 하려니와/ 내 마음도 환하게 길을 닦아/ 넘실거리며 간다//
* 따 : 땅
* 용 : 풍수에서는 산을 살아 있는 율동체로 본다고 하며, 그것을 용이라고 한다.

면암선생 운구가 기차에 실려 갔다 -내가 걷는 백두대간 119 / 이성부
가없이 하늘 넓고 햇볕은 남아돈다/ 신의티 찻길을 건넌 내 그리움이/ 자꾸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므로/ 땀을 흘린다// 왜놈 땅에서 나오는 물 한모금 쌀 한톨 입에 넣지 않았다는 사람 왜놈 흙 밟을 수 없다며 조선 땅 흙 뿌려 밟고 갔다는 사람 그렇게 대마도에서 죽은 몸이 바다 건너 고국으로 돌아 왔다 길가에 늘어선 백성들 운구를 가로막고 울부짖었다 산천초목도 떨면서 제 몸들을 짜내 아픈 비를 뿌렸다 상여는 하루 십리도 나아갈 수 없었다 상주 백성들이 더욱 두려운 왜경들은 널을 기차에 태우고 도망치듯 이 고을을 떠났다 낮은 산들이 높은 산들보다 더 힘차게 뻗어갔다 한 사람 죽은 몸뚱어리 가는 길 온 나라의 슬픔이 다독거렸다// 저 많은 그리움들 발돋움을 해서/ 이토록 가멸찬 산과 넓은 들 만들었구나.//

감나무 아래에서 -내가 걷는 백두대간 120 / 이성부

안과 밖 -내가 걷는 백두대간 121 / 이성부

손 들어도 달아나기 일쑤인 자동차를 기다리며 -내가 걷는 백두대간 122 / 이성부

영동할미가 루사를 몰고 왔다 -내가 걷는 백두대간 123 / 이성부

십자고개 -내가 걷는 백두대간 124 / 이성부
고개는 낮은 곳에서 길을 잡아 나를 이끈다/ 처음부터 제 머리를 치켜드는 법이 없다/ 내 걸음걸이 더디게 되면서부터/ 자꾸만 산 뒤편으로 저를 감춘다/ 땀방울들 하나씩 흙에 떨어질 때마다/ 고개는 성깔을 드러내어 된비얄을 만든다/ 버려야 할 것들 모두 버린 다음에라야/ 나도 마루에 올라 가쁜 숨 몰아쉰다// 고개가 높은 곳에서 길을 잡아 나를 끌어내린다/ 저어 아래 저를 꿈틀거리면서 금세 사라진다/ 살아오고 살아갈 길이 저런 숨바꼭질을 닮았는지/ 아니면 큰 파도 일렁임인지 알 수 없다/ 편안함이란 잠시 힘을 빼고 내려가는 것/ 내려온 만큼 다시 올라가야 할 산 쳐다보인다/ 낮은 길이 좌우로 퍼질러 앉아서/ 자동차들도 넘나들거나 쉬어 가는 곳이 되었다// 나도 이쯤에서 주저앉아 뒷사람 기다리기로 한다/ 아래에서 올라오거나 위에서 내려오거나/ 여기서는 누구나 발걸음들 멈추어 저를 돌아본다/ 몸과 넋이 따로 잘 노는 것 보인다/ 눈시울 붉히며 네거리 돌아서던 사람도/ 다시 찾아야 할 고향마을도 또렷하게 되살아난다/ 고개가 가는 대로 나는 걸어/ 땀방울 맑게 빛나는 길로 들어서야 한다//
* 십자(十字)고개 : 고개는 보통 산봉우리와 산봉우리 사이의 안부에 있기 마련이다. 이쪽에서 저 산 너머로 가기 위해서는 낮은 데서부터 올라가 고개를 넘어야 하고, 능선길로만 걷는 종주대는 산봉우리에서 내려가야 고개를 만나게 된다. 백두대간 마루금에는 이런 십자고개가 많다.

청화산인의 말씀을 거꾸로 받아들이다 -내가 걷는 백두대간 125 / 이성부
마음과 몸을 자주 산수에 붙이지만/ 숨어 살거나 세상 피해가지는 노릇이 아니다/ 내가 사는 서울 성산동에서는/ 고층아파트들이 들어서서 내 방을 기웃거리더니/ 산에서도 전화소리들 따라와서 내 갈 길 머뭇거리게 한다/ 내 집에서 쳐다보는 하늘 넓지 못하고/ 해와 달과 별빛 밝게 비치지 않는데/ 그래도 내 오래된 집이 살 만한 곳이라고 여기며 산다/ 배우지 못한 사람들 가끔 싸우고 시끄러워도/ 세상 족으로는 문을 열고/ 마음이 가는 고요함 쪽으로는 문을 닫아/ 내 몸을 시장 바닥이거나 진흙탕 속에/ 내버려두는 것이 나는 즐겁다/ 아무런 근심걱정 생각할 것이 없는 곳/ 사람마다 다를 것이 없는 곳/ 그런 데가 과연 있겠는가 생각하며 산길을 간다/ 우복동이 저어기쯤 될까 내려다본다//
* 청화산인 : ‘택리지’의 저자인 이중환(1690~1752)의 아호. 스스로를 청화산인이라 한 것으로 보아 청화산(경북 상주와 충북 괴산 경계에 있는 산. 해발 984m) 부근에서 살았거나 이 산에 애착이 많았던 것으로 짐작된다.
* 우복동 : 전설적인 이상향으로 알려진 곳. 청화산 동쪽 시루봉 아래에 있다고 한다.

서서 밥 먹는 나를 굴참나무가 보네(중에서) -내가 걷는 백두대간 126 / 이성부
능선 길 이쪽과 저쪽이 딴 세상이라/ 이쪽 비탈에서는 바람 잔잔해 몸들 추스르지만/ 저쪽에서는 바람 사나워 몸들도 밀려간다/ 나에게 등 기대고 떨면서 밥 먹는 사람아/ 안됐기는 하지만 그래도 좋은 시절이다/ 오십년 전에도 내게 기대어 밥 먹는 사람들/ 많이 보았어 나도 무서워 머리털 쭈빗거렸지// 태어나서 처음으로 나무들도/ 사람과 함께 눈물 콧물 울음 우는 것을 보았어/ 세상천지 눈보라 휘몰아쳐 앞이 어둡고/ 나도 부러질 듯 쏠렸다가 일어서고/ 허기져서 더 나아갈 수 없었던 사람들/ 그만 아무렇게나 나무기둥에 저를 맡겨/ 주먹밥 먹는 사람들 나는 보았어/ 지금은 차라리 아름다운 식사시간이라/ 쫓기지 않아도 되고 총알 튀기지 않아도 되는/ 서서 먹는 밥이니까//

돌마당 식당 심만섭 씨 -내가 걷는 백두대간 127 / 이성부
그이는 밥값 방값은 셈을 쳐서 받는데/ 우리들 태워다주는 찻삯은 받지 않는다/ 우리는 그이의 집에서 가깝게 또는 멀리 솟아 있는 산들을/ 찾아 오르기 위해 기차를 타고 가다가도/ 문득 그이에게 휴대전화를 하고/ 밤길에도 그이의 승용차를 불러 타고/ 그이의 민박집에 와서 술 밥 먹고 떠들어 댄다/ 아직 캄캄한 새벽/ 눈 비비는 그이를 깨워 밥 차리게 하고 도시락 싸고/ 또 그이의 차를 타고 산 들머리까지 간다/ 고통의 어떤 나이테도 드러나지 않아/ 나무처럼 안으로 새겨가는 사람이다/ 이 산골자기 들어와 사는 일이 행복하다고 말하지만/ 그이의 젊은 한시절 막장 인생/ 석탄가루로 범벅한 얼굴 나에게 보인다/ 고갯마루에 올라서자 험한 산길 안개 낀 갈림길/ 조심하라고 일러준 다음/ 손 흔들며 차를 몰고 내려가버린다/ 함박눈 내린다//
* 돌마당 식당 : 경북 문경시 가은읍 완장리 벌바위 마을에 있는 식당 겸 민박집. 심만섭 씨(58세)는 이 식당 주인으로, 대간 산행을 하는 산꾼들에게 많은 도움을 준다.

대야산 내려가며 -내가 걷는 백두대간 128 / 이성부
나이 들어갈수록 대소사 많아지는 것이/ 자질구레한 쓰던 것들 버리지 못하는 것이/ 아무래도 이름없는 고만고만한 산봉우리들/ 모두 넘어가야 하는 내 팔자 같아 혼자 버겁다/ 문병하고 문상하고 넥타이를 고쳐 메고/ 돌잔치 친목계 동창회 어쩌다가 수상식 출판기념회/ 이런 데 가는 것이 왜 갈수록 고달파지는지/ 나도 나를 잘 몰라 몸 휘청거린다/ 예전에는 산도 나와 한몸임을 알았는데/ 요즘은 아빨처럼 생겨 덤벼드는 산들 무서워라/ 하얀 이빨 아니라 검게 솟은 침묵의 아가리/ 내 가슴은 어느덧 공동(空洞)이 되어/ 사랑을 삼키고도 덤덤하구나//

버리미기재* -내가 걷는 백두대간 129 / 이성부
고갯마루에 내려서니 어느덧 눈발은 빗줄기가 되었다 다 젖어서 쓸쓸한 마음들이 굴다리 밑으로 내려가 각자의 쓸쓸함을 버너 불에 말린다 산도 어쩐지 서먹하고 산에서 만난 사람들도 모두 낯설다 그런데 이 낯선 것들이 왜 자꾸 말문을 트게 만들까 영재*는 남의 술병을 들어 제 것인 양 나에게 권하고 뜨신 국물에 밥까지 얻어 말아 먹는다 모르는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것이 아름답다 굶주림과 추위가 사람 사는 마을을 떠나 이 고개까지 올라와서 어린 시절 아버지 말씀 죽비소리로 내린다 느그덜 벌어 멕이느라 등골이 휜당께 그렇게 돌아나가시는 아버지의 처진 어깨가 지금 나에게 이르러 내 고단함이 되었구나 손을 들어도 자동차들은 씽씽 지나쳐 가버리고 나는 고개 위를 어슬렁거리면서 먹이 물어다 주는 아비 새처럼 바빠짐이여//
* 버리미기재 : 경북 문경시 가은읍과 충북 괴산을 연결하는 도로상의 고개 이름. "벌어서 먹이기" 의 경상도 사투리가 "버리미기"로 된다.
* 영재 : 지은이와 함께 백두대간을 종주하고 있는 김영재 시인.

슬그머니 사라져버린 길 -내가 걷는 백두대간 130 / 이성부

은티마을 -내가 걷는 백두대간 131 / 이성부

희양산 일기 -내가 걷는 백두대간 132 / 이성부
이름 모를 고개에 내려서니 오른쪽으로 통행금지 푯말이 보인다 통나무와 삭정이를 쌓아놓고 길을 막았다 세상으로 내려가는 길 지금 내가 가야할 길 아니므로 그냥 지나쳐서 된비얄을 또 올라간다 봉우리를 넘어 한참 가다보니 은티재 산중 네거리다 오른쪽 골짜기 내려가는 길이 또 막혀 있다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지만 가까이 가서 막힌 까닭을 읽어본다 스님들 공부하는 절이 있어 이곳으로 내려갈 수 없다는 명령조의 푯말이다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면서 구왕봉 정수리를 향해서 간다 숨은 헉헉거리는데 생각이 비수처럼 가슴을 찌른다 공부는 시끄러움속에서라야 되는 것 아닌가 가장 깊고 높고 넓은 공부는 세상 밑바닥에서 얻어지는 것 아닌가 다 올라왔다 싶었는데 아니다 저만큼 높은 곳이 보인다 어려울수록 마음은 이렇게 넓어지는 것 아닌가 원효는 시정잡배들 속에서 함께 뒹굴어 깨우치지 않았는가 구왕봉 넘어 전망대 바위에 선다 내려다본다 건너쪽 흰바위 뒤집어쓴 희양산이 나와 견주어서 나를 부른다 아 빛남은 다른 데에 있고 또 다른 데에 더 많이 있음을 알겠다 지름티재 내려서니 돌무덤 표지기 오른쪽으로는 또 길을 막았다//

작은 산이 큰 산을 가린다 -내가 걷는 백두대간 133 / 이성부
작은 산이 큰 산을 가리는 것은/ 살아갈수록 내가 작아져서/ 내 눈은 작은 것으로만 꽉 차기 때문이다/ 먼데서 보면 드높은 산줄기의 일렁임이/ 나를 부르는 포근한 손짓으로 보이더니/ 가까이 다가갈수록 그 봉우리 제 모습을 감춘다/ 오르고 또 올라서 정수리에 서는데/ 아니다 저어기 더 높은 산 하나 버티고 있다/ 이렇게 오르는 길 몇 번이나 속았는지/ 작은 산들이 차곡차곡 쌓여서 나를 가두고/ 그때마다 나는 옥죄어 눈 바로 뜨지 못한다/ 사람은 산 속에서는 미물이나 다름없으므로/ 또 한번 작은 산이 백화산 가리는 것을 보면서/ 나는 이것도 하나의 질서라는 것을 알았다/ 다산은 이것을 일곱살 때 보았다는데/ 나는 수십년 땀 흘려 산으로 돌아다니면서/ 예순이 넘어서야 깨닫는 이 놀라움이라니/ 몇 번이나 더 생은 이렇게 가야 하고/ 몇 번이나 더 작아져 버린 나는 험한 날등 넘어야 하나//

* 작은 산이 큰 산을 가린다 : 다산 정약용이 일곱 살 때 저었다는 한시 ‘소산폐대산 원근지부동 (小山蔽大山 遠近之不同)에서 빌려옴. 

* 백화산(白華山) : 경북문경시와 충북 괴산군 경계에 솟은 산.


생명 -내가 걷는 백두대간 134 / 이성부
산 새 한 마리 늦잠 자고 날아와서/ 우리가 저만치 눈 위에다 버린/ 라면 찌꺼기 쪼아먹는다/ 금세 두세 마리가 더 찾아와서/ 바쁘게 눈발을 헤집고 다닌다/ 엄동설한 즈그덜도 살아야 하니까// 문득 내 어린시절 생각난다/ 취나물 뜯으시던 할머니 말씀/ 산에 많다고 다 없애버리면 안돼/ 내가 키운 것도 아닌데/ 이만큼만 뜯어야지/ 즈그덜도 살아남아야 하니까//

무슨 사연들 쏟아부어 새재를 만들었네 -내가 걷는 백두대간 135 / 이성부
곱게 분바른 얼굴 같은 길이다/ 험한 벼랑 내려오느라 땀 흘린 만큼/ 이번에는 편안함이 나를 반기는구나/ 주흘과 부봉*이 힘줄을 세워 굽어보고/ 주름 가파른 치마바위도 눈이 부시다/ 저 많은 절박한 생들은 어디로 갔는지/ 저 한숨들 잠재워 산은 제 가슴을 쓸어내렸는지/ 새 세상을 찾아 힘들여 넘었다는 길이/ 오늘은 너무 잘 닦여서/ 겨울도 햇볕 아래 노닥거리며 간다/ 활빈당 무리들이 숲에 숨어 눈을 밝히고/ 허균의 어린 아들 이 고개를 넘어 도망길을 재촉했다/ 임진년 관군들도 백성들도 의병들도/ 돌배와 연이*도 이강년*도/ 이 고개 넘나들며 흙에 피를 보태었다/ 역사는 비록 지금 관광명소로 남았지만/ 좌우 숲에서는 느슨하면서도 팽팽한 긴장이/ 내 온몸을 감전처럼 흐른다//
* 주흘과 부봉 : 경북 문경시 북쪽에 있는 주흘산과 부봉.
* 돌배와 연이 : 신경림 시인의 장시 「새재」에 나오는 주인공들
* 이강년(1858~1908) : 구한말의 의병대장

토끼비리 -내가 걷는 백두대간 136 / 이성부
벼랑 위로 걷는 일이 처음 아니지만/ 웬일인지 이 길에서는 내 꿈의 내음이 난다/ 헤매고 상처받던 젊은 나날들이/ 어느새 여기 와 굳어져서 색다른 내 몸이 되었다/ 두려움도 때로는 마음을 가다듬고 몸을 추스르는/ 약이다 마음이 한발 한발 그리움을 따라가고/ 몸은 조심스럽게 더운 떨림을 따라간다/ 내 꿈은 아직도 날개를 접지 못해 떠돌고/ 되돌아 자꾸 바라보는 일만 되풀이한다/ 벼랑길 나아가는 일 가늠할 수 없고/ 내 시의 길도 아직 험하고//
* 토끼비리 : 토끼가 다니는 벼랑길

꿈틀거린다 -내가 걷는 백두대간 137 / 이성부

윤광조가 만든 코딱지 산들 -내가 걷는 백두대간 138 / 이성부

나를 숨긴다 -내가 걷는 백두대간 139 / 이성부

더덕 한뿌리를 슬퍼함 -내가 걷는 백두대간 140 / 이성부
밥 먹는 자리 저만치에서 문득 너를 보았다/ 지난해 몸통을 왜 버리지 못하고 새봄에도/ 희물그레 사그라져 내 눈에 띄었더냐/ 그 가까이에 너의 다른 몸 새로 태어나 초록 연한 잎줄기/ 남에게 기대거나 휘감아서 피어 올랐더냐/ 삶도 사랑도 무엇엔가 기대지 않으면/ 홀로 서기 어려워 휘청거리는 것/ 아무리 애태워도 볕에 바래고 바래져서/ 삭아 부서질 수 밖에 없는 네 몸뚱어리/ 바람으로 먼지로 또는 내음으로 사라질 뿐/ 네 뿌리 캐내어 내 지저분한 손톱으로 껍질 벗기고/ 아그작 싸그작 씹어 삼키는 이 몰골/ 탐욕이 아직 집을 비우지 않았으니/ 죄스럽고 슬프고 또 그게 그렇구나//

무정한 총알이 내 복숭아뼈를 맞혔네 -내가 걷는 백두대간 141 / 이성부
그가 태어나고 또 죽어 묻힌 산기슭을 지나왔다/ 오늘은 그의 수많은 싸움터가 된 이 산줄기/ 어디쯤에서 총맞아 쓰러졌을/ 바위 날등 조심스럽게 돌아나간다/ 도망가는 관찰사 붙잡아 목을 베고/ 농암장터에 효수했던 의병장 이강년/ 나라가 다 되었으니 사대부도 일어나서/ 총칼을 집으라고 외쳤던 그가/ 오늘은 황장산 등성이에 척왜. 토왜를 불러내서/ 우리 가는 길에 격문으로 퍼덕인다/ “무정한 총알*이 내 복숭아뼈를 맞혔네/ 차라리 심장에 맞았더라면 욕보지 않고 죽었을 것을“/ 힘이 없어도 뜻은 더욱 하늘을 찌르고/ 총칼을 빼앗겼어도 말씀은 적의 간담을 서늘케 했구나/ 그가 죽음을 찾아 달려갔던 길/ 나는 살기 위해 더듬거리며 간다//
* 무정한 총알이... : 항일 의병장 이강년이 전투중 발목에 부상을 입고 붙잡혔을 때의 심경을 토로한 시에서 차용. [丸子太無情(환자태무정) : 탄환은 너무 무정하도다 臥傷足不行(와상족불행) : 발목을 상하게 하여 갈 수가 없구나 若中心腹裏(약중심복리) : 차라리 심장이나 맞았더라면 無辱到瑤京(무욕도요경) : 욕보이지 않고 요경에 갔을 것을]

제일연화봉 -내가 걷는 백두대간 142 / 이성부
소백산은 그 이름부터 겸손하지만/ 사람이 발을 들여놓으면/ 언제나 저를 편히 보여주지는 않는다/ 힘들수록 욕설이 자주 튀어나오는 영재가/ 오늘은 얌전해졌다 말없이 눈보라와 싸우며 간다/ 일초스님이 연화봉 아래 어느 토굴에 정진하다가/ 홀연 깨달아 산을 내려갔다는 사연과/ 주세붕이 어머니 머리에 자기 머리를 맞대어/ 머릿니를 옮겨 받았다는 이야기가/ 나를 자꾸 눈물콧물 흐르게 한다/ 싸레기눈 내 눈을 때려 앞을 잘 못 보고/ 세찬 바람에 떠밀려서 나도 몸을 가누지 못한다/ 바람이 으르릉거리며 내려가라는/ 길을 거슬러 높은 곳으로/ 한 발자국 두 발자국 나를 밀어올린다/ 서어엉 배고파서 못가것소/ 영재가 나무계단에 주저앉아버린다/ 그의 어깨를 다독거리면서/ 칠십년대 초 내 어깨를 다독이던 선배 시인/ 그 무교동 도라무통 막걸리집이 겹쳐진다/ 부드럽고 크넓은 마음을 가진 사람도/ 때로는 이리 매서운 산을 만드는 구나//

우두커니 -내가 걷는 백두대간 143 / 이성부
감나무 가지 사이를 어렵사리 달려온 달빛이/ 내 책상머리에 떨어져 파득거린다/ 아파트 숲과 새로 지은 연립주택들을 돌아오느라고/ 몹시 지쳐 창백한 얼굴이다/ 늙은 내가 달밭골에서 어린시절의 나를 만나/ 무엇에 홀린 듯/ 풍기까지 함께 걸어 내려갔던 적이 있다/ 내 좁은 방에 들어온 파리한 소년이여/ 이것만 해도 고맙고 곱구나//

김삿갓에 새삼 조바심 생겨 -내가 걷는 백두대간 144 / 이성부
산은 솟았다가도 내려가서 고개 숙이고/ 더 내려가서는 아예 숨을 죽인다/ 가만히 엎드려 있어 내 가는 길 조심스럽고/ 때로는 무릎을 꿇고 앉아 눈 똑바로 떠 쳐다보므로/ 내 한시절 부끄러움도 죄가 되어 두려워진다/ 늘 지고 사는 사람이 꼭 산과 같아서/ 나를 조바심 나게 한는데/ 그가 묻힌 영월 상동 태백 어간으로/ 걸어가면서 나도 솟구칠 일 없음을 알겠다/ 오늘은 그를 따라/ 챙이 큰 모자 하나 눌러쓰고/ 들머리에서 주운 나무지팡이 짚고/ 양백지간에 쏟아지는 햇살과 하늘/ 나도 가리면서 간다//
* 양백지간 : 소백산과 태백산 사이. 천혜의 복지라 한다.

겨울 호식총 하나가 -내가 걷는 백두대간 145 / 이성부
태백산 반재 턱 밑 양지바른 곳에/ 눈 뒤집어쓴 호식총 하나 고즈넉합니다/ 겨울이 깊게 내려앉아 곧 떠날 채비 같습니다/ 식칼도 떡시루도 눈에 묻혀 잠잠한 것이/ 오히려 그 안에서 더 요동치는 소리로 들립니다/ 귀신들도 언제나 탈출을 꿈꾸지요/ 살아있는 것들은 모두 피를 흘리지만/ 살아있는 것들은 또한 그 발걸음으로/ 이녁 상처를 다독거리며 갑니다/ 저기 저 완벽하게 혼자가 된 북곽선생이/ 얼굴 가린 채 줄행랑치는 모습 보입니다/ 나도 저렇게 살아오지는 않았나 돌아보면서/ 부끄러움들에 내 발자국 찍게 됩니다/ 사라지는 것들은 눈으로만 보이지 않을 뿐/ 마음에서는 불에 덴 흉터처럼/ 두고두고 지워지지 않습니다/ 된비알을 올라가면서 그것들은 어느 사이/ 내 숨소리로 가쁘게 터져 나와/ 나를 더 북받치게 합니다//
* 호식총(好食冢) : 호환(虎患)을 당한 사람의 무덤
* 반재 : 태백산 중턱에 있는 고개 이름
* 북곽선생(北郭先生) : 박지원의 열하일기 호질편에 나오는 이중인격의 선비이름

태백산 숯가마 -내가 걷는 백두대간 146 / 이성부
엿새 동안 저를 불태우고 나서/ 벌건 불덩어리인 제 몸을 하루 동안 식히고 나서/ 마침내 검게 굳어진 참나무 숯덩이들이/ 서로 부딪칠 때마다 맑은 쇳소리를 낸다/ 아 이것이 어찌 사람의 일이 아니라고/ 다만 나무가 가는 길이라고 말할 수 있으랴/ 불에 몸을 맡겨 스러져간 젊음의 길이 꼭 이와 같고/ 그들이 죽어 이 나라를 불 밝힌 일이/ 꼭 참숯이 가는 길과 닮지 않았느냐/ 금줄에 꽂혀 궂은 것들을 물리치고/ 간장 독에 떠서 온갖 벌레들 얼씬거리지 못하게 하고/ 더럽혀진 땅과 공기에 무슨 영험을 보태어/ 풋풋한 생명이게 하고/ 요즘에는 숯사우나라는 것이 생겨/ 내 못된 찌꺼기를 버리느라 나도 땀을 흘리고//

비틀거린다 -내가 걷는 백두대간 147 / 이성부
높은 된비얄 땀방울 떨어뜨리며 오르는데/ 배낭에 넣어둔 휴대전화가 울린다/ 안 가져와야 하는데 가져왔구나/ 잠시 멈춰 서서 숨 한번 몰아쉬고/ 전화를 받는다 먼 나라에서 온/ 생은 갈수록 놀랍고도 서글퍼서/ 다시 걷는 발걸음 비틀거린다/ 어쩐지 산들이 자꾸 빙빙 도는 것 같아/ 굴참나무 울퉁불퉁한 몸 붙들고 서서/ 잠시 눈을 감는다/ 산에서도 속물이 되어 노파심만 늘어가는구나/ 초탈은커녕 인연에 주저앉아버리지 않았는가/ 사람은 한번 가면 흙밥이 되고/ 나무들은 이파리를 떨어뜨려 저를 다시 살리네//

비로소 길 -내가 걷는 백두대간 148 / 이성부
새것은 어느 사이 헌것이 되어버린다/ 슬그머니 바래지거나 꼴불견이 된다/ 소위 새로운 시라는 것도 흐지부지/ 안개 속에 황사바람 속에 떠돌다가/ 다음날 아침의 명징! 온데간데가 없다/ 그러므로 이것은 소통이 아니다/ 나는 사십년 전에 읽은 시가 지금 너무 새로워/ 몸이 떨린다 산에 들어가는 것처럼/ 새로운 길은 다음 사람들이 그 길로/ 더 많이 다녀야 비로소 길이다/ 닳고 닳아도 사그라지는 법이 없다//

대간이 남의 집 앞마당을 지나가네 -내가 걷는 백두대간 149 / 이성부
빈집인지 사람 사는 집인지 알 수 없다/ 토방 위에 놓인 빛바랜 운동화 한 켤레 슬깃 보며/ 좁은 마당 가로질러 산으로 들어간다/ 신새벽 곤한 잠 깨워서는 안되므로/ 발걸음 가벼이 말소리는 더욱 참고/ 산으로 들어간다 바로 오르막이다/ 운동화 주인 얼굴 볼 수 없었지만/ 내 마음속 한 켤레 그림은/ 오래 지워지지 않을 농업의 뒷모습이다/ 대간은 이렇게 두루 사람들 보살피느라/ 높낮이가 없고 차별을 두지 않는다//

장성터널 위를 걷는다 -내가 걷는 백두대간 150 / 이성부
은대봉 내려가는 눈밭 길에/ 봄이 또박또박 올라오는 소리 들린다/ 아름다운 풍광이 가르쳐주는 것은/ 아픈 역사가 깊을수록 생명은 더 끈질기다는 것이다/ 이 산 아래 사북과 황지를 잇는 터널이 뚫리고/ 석탄 가득 실은 기차가 달리고/ 한숨과 노여움과 함성이 치솟았다/ 하루 삼교대 막장에서는/ 진폐가 입을 벌려 더 많은 탄가루를 삼키고/ 지열과 땀은 뒤범벅이 되어 사람의 진을 빼버리고/ 피워 문 담배 한 모금에도/ 내장이 뒤틀려 칵칵거렸다/ 계곡 물빛을 검정 크레용으로 색칠한 아이들은/ 도화지를 거둬들이는 선생님이/ 왜 흐느끼고 있는가를 알지 못했다/ 버림받은 사람들도 한 생각으로 뭉치면/ 나라가 온통 들썩거렸다 뜨내기들은/ 더 이상 오갈 데 없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여기가 고향이었다/ 두문동재에 내려서니 햇살과 마른 풀들이/ 바람을 좇아 달려간다/ 막장으로 드나들던 자리에 세워진 강원랜드/ 카지노의 불빛을 먼발치로 보며/ 나도 기차를 타고 돌아가야 한다//
* 장성터널 :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터널(4505[m])로 태백과 고한사이에 있다.
* 은대봉 : 함백산 북쪽 산봉우리. 해발 1442[m]. 장성터널이 이 봉우리 아래를 지난다.
* 두문동재 : 은대봉과 금대봉 사이의 안부, 싸리재라고도 한다.

진달래 꽃빛 같은 통증이 -내가 걷는 백두대간 151 / 이성부

기쁨 -내가 걷는 백두대간 152 / 이성부
살아갈수록 버릴 것이 많아진다/ 예전에 잘 간직했던 것들을 버리게 된다/ 하나씩 둘씩 또는 한꺼번에/ 버려가는 일이 개운하다/ 내 마음의 쓰레기도 그때 그때/ 산에 들어가면 모두 사라진다/ 버리고 사라지는 것들이 있던 자리에/ 살며시 들어와 앉은 이 기쁨!//

표지기를 따라 -내가 걷는 백두대간 153 / 이성부
나는 기막힌 풍경에 감동하기보다는/ 앞서간 사람의 흔적에 더욱 가슴이 뛴다/ 산으로 가는 것은 풍경에 탐닉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이 산 오르내렸던 사람들/ 시방 나와 함께 땀 흘리며 걷는 사람들/ 앞으로도 이 산 올라가야 할 사람들/ 그 사람들 가슴속 불덩어리 읽어보며/ 걷는 일이다 이것이 나를 키운다/ 온갖 푸나무 꽃 새 바위 아름답지만/ 산에 드는 사람들 사연이 더 나를 울린다/ 사람들이 나뭇가지에 매달아놓은 표지기들/ 울긋불긋 그것들이 나를 멈추게 하고/ 엉뚱한 곳으로 헤매기 일쑤인 내 발길/ 그것들을 찾아 비로소 마음이 놓인다/ "분실물"이라고 쓴 것은 나를 잃어버렸다는 뜻인가/ 되찾았다는 뜻인가/ "아빠와 함께 추억을" 만든다는 것도 보이고/ "널 위해 준비했어"도 나를 뭉클하게 한다/ "유아독존" 부처님도 이 길을 갔을까/ "백두산 가는 길"도 틀리지 않았다/ 흔적 없는 발자국들 쓰러져 흙이 된 젊은이들/ 오늘은 저리 많은 진달래 산천*으로 불타는구나//
* 신동엽(1930~1969)의 시 '진달래 산천'에서 차용.

연칠성령 -내가 걷는 백두대간 154 / 이성부

내 살갗에 파고들어 서울까지 따라온 놈 -내가 걷는 백두대간 155 / 이성부

자병산 안개 -내가 걷는 백두대간 156 / 이성부

안개는 길을 숨길 뿐만 아니라/ 내가 꼭 보고 가야할 것들을 모두 가린다/ 자병산이 어떻게 허물어져가는지/ 어떻게 피를 흘리고 신음하고 찡그리고 아우성치는지/ 어떻게 죽어가는지/ 아무것도 알 수 없게 모두 가려버린다/ (하략)

숨은 골 -내가 걷는 백두대간 157 / 이성부

처음처럼 -내가 걷는 백두대간 158 / 이성부
설악이 제 온몸을 드러낸다/ 온통 하얗게 불타올라 이글거린다/ 설악을 바라보는 것은 내가 아니라/ 점봉의 넉넉한 눈이다 아니/ 내 몸에서 빠져나간 내 영혼의 눈이/ 점봉의 가슴에 박혀 바라보는지도 모른다/ 안산 귀떼기청에서 대청 중청까지/ 하얀 산의 크나큰 동체가 꿈틀거린다/ 몇해 전 겨울이던가/ 대청에서 바라보였던 점봉이 또한 그랬다/ 나는 꿈에서도/ 그 산의 너른 품을 헤어나지 못했다/ 설악과 점봉이 서로 마주보며/ 손짓하는 것이 지금 처음인 것처럼//

죽음의 계곡 -내가 걷는 백두대간 159 / 이성부

오세암 -내가 걷는 백두대간 160 / 이성부

청년 장교 리영희 -내가 걷는 백두대간 161 / 이성부
마등령 가는 길은 언제 어디서나/ 처음부터 가파르고 험하고 멀다/ 팔십 년대에 읽는 책에서 그를 만났었다/ 가슴 벌렁거려 밤새도록 몸을 뒤척였다/ 집에서도 사무실에서도 술집에서도 시도 때도 없이/ 슬픔이 떼로 몰려오던 시절이었다/ 이 길 오르내리기 몇차례인가/ 오색에서 한계령에서 백담사에서/ 혼자 설악동에서/ 겨울철에 오를 적에는 내가 그 사람이 된 것처럼/ 창근이 도강이 허리를 밀어주면서 또는/ 눈밭에 빠진 녀석들 잡아 일으켜주면서 갔다/ 오늘도 오월하고도 맑은 날/ 바람 한 점 없는 길을 천천히 해찰하면서 간다/ 오십 년대 초 육이오 전쟁 때/ 신흥사 판각들을 쪼개 모닥불을 피우던 군인들과/ 이를 말리던 청년 장교와/ 이 골짜기를 졸면서 행군하다 떨어져 죽은 사병과/ 조심스럽게/ 흔적도 없는 그 죽음 천길 벼랑 내려다보고/ 속수무책 돌아서서 발길을 옮겨야 했던/ 그 청년 장교 생각하면서 간다/ 마등령 가는 길은 언제나/ 삶에는 지름길이 없이 오르락내리락의 되풀이/ 값을 치러야 한다는 것을 가르친다//
* 리영희(李泳禧, 1929 ~ ) : 언론인, 전 한양대 교수, “전환시대의 논리”, “우상과 이성”, “8억 인과의 대화”, “분단을 넘어서” 등 명저가 있다. 6. 25전쟁 때 입대하여 청년 장교로서 전쟁을 체험했던 이야기가 선생의 저서에 실려 있다.
* 창근이, 도강이 : 만고산악회 회원인 오창근 씨와 김도강 씨

길이 나를 깨운다 -내가 걷는 백두대간 162 / 이성부
문득 먼데 하늘 바라보다가/ 아무래도 안되겠다 싶어/ 주섬주섬 배낭을 꾸린다/ 허둥거리는 시간을 하나씩 잡아 포개어 넣고/ 끈을 조이고 나면 긴장의 등짐 하나/ 나를 밖으로 떠다민다/ 집을 나서면서부터/ 산에 들면서부터/ 숲이 내 키를 높여주면서부터/ 길들은 눈 크게 떠 손을 내민다/ 초록 옷 입은 길들의 몸을 따라가면/ 가만히 내버려두지 못할 일/ 그대로 두어 잠들게 하고/ 참을 수 없는 사연들/ 저절로 물 흘러 떠내려가느니//

저항령 -내가 걷는 백두대간 163 / 이성부

너덜겅 -내가 걷는 백두대간 164 / 이성부
아름다운 풍경을 보았다고 뽐내지 말거라/ 이기고 나서 떠들거나 으스대지 말거라/ 이마를 쳐들고 콧대를 세워/ 내가 푸른 하늘과 맞닿아 산다고 여기지 말거라/ 혼자서 솟아 외로움을 만들지 말거라// 무너지면 모두 이렇게 팍팍하게 된다/ 허물어져서 모두 마음 맞추기 어려운 사막이 된다/ 아름다움에 승리에 푸른 하늘에/ 사랑이 핥고 가는 부끄러운 떨림에/ 굶주린 검은 아가리가 된다//

발길 돌리 -내가 걷는 백두대간 165 / 이성부



이성부(李盛夫, 1942년 ~ 2012년) 시인
광주에서 출생하였고,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였다. 1962년 《현대문학》 추천 완료로 등단하였으며, 1967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우리들의 양식〉이 당선되었다. 현대문학상, 한국문학작가상, 편운문학상, 가천환경문학상, 공초문학상, 영랑시문학상, 경희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2012년 2월 지병으로 별세했다. 저서로 《이성부 시집》,《우리들의 양식》,《백제행》,《전야》,《빈 산 뒤에 두고》,《야간산행》,《지리산》,《도둑산길》, 《작은 산이 큰 산을 가린다》,《오늘의 양식》 등이 있다.

이성부 시인(가운데). 사진출처:uykim33님의 블로그(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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