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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뱀 머리냐, 용꼬리냐 / 박영화

부흐고비 2021. 8. 30. 09:05

“치의학을 공부하고 싶어요.”

대학 전공 선택을 앞둔 큰딸이 미래에 대한 속내를 풀어냈다. ‘의대를 지원하겠다니, 그것도 치대를.’ 그야말로 시애틀 한복판에서 디스코를 출 일이었다. 부모로서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맨 처음 미국으로 이주를 고민했을 때, 중학교 1학년인 큰딸에게 먼저 의견을 물었다. 갖은 경우의 수를 저울질하며 망설이다 결심한 건 그때 힘겨워했던 딸애 때문이었다. 중간고사 일정이 나온 후부터, 아이는 엄마가 참견하지 않아도 책상 앞에 붙여놓은 계획표대로 움직였다. 기껏해야 서너 시간 잠을 자면서도 눈꺼풀을 조절하지 못하는 자신을 탓하기도 했다.

“엄마, 나는 왜 이렇게 잠이 많아? 밤새워야 하는데 자꾸 졸리기만 하고.”

몇 날을 잠을 설치더니 급기야 시커먼 코피가 흘러내렸고 수업 중 기절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나는 왜 이렇게 무리하냐고 물었다.

“왜 그런지 나도 모르겠어요. 점수가 잘 나오지 않을까 무섭고 잠을 잘 수가 없어요. 밤이라도 세워야 할 것 같아서.”

당시 나는 직장을 옮겨서 새 업무 때문에 아이들의 일거수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어느 날 마주한 딸애는 스트레스가 극에 달해있었다. 고작 열세 살 아이가 점수에 치어 쪼그라들어가는 모습이라니. 사회가 만들어 놓은 잣대 아래서 우월한 인간이 되기 위해 발버둥 치는 이 현실이 편치 않았다. 나는 우리 가족에게 특별한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남편의 사업이 주춤하던 차에 미국으로 항로를 정한 것이다.

그날부터 입대 날짜를 받은 훈련병처럼 ‘go to Seattle’ 계획이 가동되었다. 먼저 어느 지역에 정착할지를 정해야 했다. 도와줄 지인조차 없었기에 모든 정보는 인터넷 검색으로 얻고 판단해야 했다. 워싱턴주는 북서부, 태평양 연안에 있는 자연경관이 우수한 곳이었다. 경제, 문화, 교육 등 주요 산업이 대도시인 시애틀 중심으로 발달하였다. 시애틀을 기준으로 주변 도시를 파악하기 시작했다. 교육의 평준화를 기대했던 나의 착각이 깨지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마우스를 클릭할수록 불편한 진실이 하나씩 드러났다. 각 학교에 대한 자료는 차라리 몰라도 좋았을 부분까지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대학입학 순위, 인종분포, 가정의 소득수준 등. 이민 정보를 알려주는 홈페이지에는 자녀 교육에 치맛단, 바짓단을 걷어 올린 한인들은 물론 그에 못지않은 중국인들의 열성이 대단했다. 반갑지 않은 강남 8학군은 그곳에도 있었다. 실제로 입소문 난 학교 주변은 현지 부유층과 한인, 중국인들이 모여 거대 공룡의 집단 서식처를 이루었다. 나는 점점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어디로, 어느 곳에서 시작해야 하나......’

몇 날을 고민한 끝에 시애틀 북쪽에 ‘린우드’라는 도시로 마음을 정했다.

“그 곳은 백인보다 유색인종이 많습니다. 그런 학교는 분위기도 좋지 않고 수준이 떨어지죠.”

게시판에는 내가 가고자 하는 지역에 대한 부정적인 글이 많았다. 소득이 낮은 타인종이 많고 한국인 중에서도 생계형 이주자들이 모여드는 동네라는 것이다. 나는 마음 한편 불안했지만 스스로의 결정을 믿고 따라야 했다.

사실, 새 삶의 터전이 될 지역을 선택하는 내 기준은 단순했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지나친 경쟁 구도에 갇히는 것을 원치 않았다. 탑클래스 행 기차표를 사기 위해 평생을 허기진 배를 움켜쥐어야 한다면 그것이 과연 성공일까. 기차 밖으로 던져질 것 같은 불안감을 앉고 사는 것이 진정한 행복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용 무리 속에서 치이는 것보다 소박한 성취를 경험하며 자신감을 쌓아가는 것. 비록 남들이 알아주는 최고가 아닐지라도 스스로 만족하면 되는 것 아닌가. 두 딸이 인생의 가장 청초한 시절을 그들답게 기꺼이 누리기를 바라는 마음, 그것이 엄마로서의 소망이었다.

의학도가 되겠다며 부모를 춤추게 했던 큰딸은 전공 수업의 장벽을 넘지 못하고 한 학기 만에 백기를 들었다. 주춤하는 딸에게 나는 ‘영문학’을 권유했다.

큰딸이 졸업 후 가족은 한국으로 돌아왔고 딸애는 외국계 회사에서 두 해를 버티더니 사표를 냈다. 또다시 미래에 대한 두려움 앞에 서 있다. 이공계 출신의 친구들을 부러워하며 스펙을 좀 더 쌓아야 할지 고민하는 딸에게 나는 연봉이나 세상의 평가에 매이지 말라고 조언했다. 하지만 좋은 학군에서 시작했더라면, 의대나 이공계 쪽으로 밀어붙였더라면 어땠을까 후회하기도 한다.

결과적으로 자식 교육에 대한 나의 고집이 틀리지도 딱 들어맞지도 않았다. 젊음의 방황은 현재 진행형이니 그들의 날개가 어디로 향할지 어찌 알까. 온몸으로 세상과 마주해야 할 지친 청춘에게 꼰대의 어설픈 충고가 무슨 소용이 있을까. 그저 지켜볼 뿐이다. 두 딸은 엎어지고 깨지고 후회하고 체념하며 진화할 것이다. 용 무리든 뱀 소굴이든 본인들의 날갯짓에 달려 있다. 좀 느리면 어떠한가. 나는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속도가 있다는 그 말을 믿고 기다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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