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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아스클레피우스 / 오길순

부흐고비 2021. 8. 31. 08:41

2020년, 의료진의 숱한 인류애를 보았다. 날마다 훈장을 올리고 싶은 마음 조촐한 시로 적어보았다. 훗날 그들의 이타심이 역사의 거울에 영롱한 별처럼 비추일 것이다.

아들은 본디 책임감이 강했다. 이방인 가장에게 역병은 얼마나 무거웠을까? 기댈 곳 없는 어깨가 얼마나 황당할지 어미는 애만 태웠다. 지혜로운 며느리와 돌돌 뭉쳐 살아낸 지난 날, 아름다워 보이다가도 때로 눈물겨운 날도 있었다.

몇 년 전, 며느리와 아기가 귀국했었다. 제 남편 학업에 방해될까, 갓 태어난 아기를 데리고 피난 온 셈이다. 돌아가던 날, 공항에서 겪었을 일은 늘 마음 아리다. 짐까지 늘어난 귀가 길에서 제 남편이 공항에 없을 때의 당황이란. 마중을 나오던 아들이 고속도로에서 자동차 고장으로 긴급사태가 되었나 보았다.

텅 빈 공항에서 낯선 이들이 흘낏거려도 옴짝할 수 없었을 일고여덟 시간. 젊은 여성이 갓난아기와 견뎠을 어둔 밤이 너무도 길었을 것이다. 그 새벽 지인의 차로 달려온 아들을 본 며느리. 빙하의 강에 이사한 오리부부가 두 발이 얼까봐 발싸심하듯 예측하기 어려운 돌발 상황이 더러 있었다.

다행히도 아들네는 두 아이를 두었다. 코비드 19로 학교와 놀이터에서 격리되었어도 형제는 외로움을 모르고 지냈나 보았다. 터울 큰 형이 보호자처럼 놀아주니 아우는 베짱이처럼 노래를 불렀나 보았다. 랄라!랄라! 스타카토까지 넣어 부른 가족합창곡은 아비까지 재택근무 중이니 더욱 신이 났을 것이다.

해외의 삶은 애국의 길과도 같았다. 고국의 분위기에 따라 희로애락도 비례되었다. 모국에서 국제사회를 향해 끊임없이 노력을 할 때, 해외 거주민의 애국심도 높아질 것 같았다. 특히 외국인들과의 인간관계를 늘 고심하며 살아가는 그들이 훌륭한 민간외교관처럼 여겨졌다.

영국인들은 평소 의연해 보였다. 유모차에 비가 내려도 그냥 비를 맞으며 걸었다. 눈이 오면 눈이 오는 대로, 자연에 순응하는 것이 육아법인가 보았다. 혹은 하루에도 여러 번 내리기도 하는 가랑비가 일상을 의연하게 했나 싶었다. 웬만한 거리는 배낭을 메고 우의를 입고는 자전거로 출퇴근을 하는 게, 비 오는 날의 풍경이었다.

그래서일까? 그들은 마스크를 잘 쓰지 않는다고 했다. 의연함이 지나친 것 같았다. 지난 몇 달 동안 코비드19로 수많은 희생을 치렀다. 그제야 마스크 쓰는 것을 법으로 정했다니 자유의 대가는 큰 희생이 기다리고 있었나 싶었다.

십여 년 전 아들이 떠날 때, 곧 돌아올 줄 알았다. 군 복무 후 복학했을 때 아이엠에프의 후유증이 폭탄처럼 기다릴 줄은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그 많던 일자리는 다 어디로 갔는가. 수십 장 원서지원 끝에 얻은 일자리에서 정규직으로 전환하고도 문득 떠나겠다고 말했다.

결혼한 가장이 작은 적금통장 하나 들고 떠나는 뒷모습에 어미는 휘청거렸다. 공항에서 돌아올 때면 마음이 가라앉지 않았다. 며느리의 친정어머니와 얼싸안고는 말없는 눈물로 기원했다. 어려운 시대 자식을 대양으로 내보내는 게 죄인처럼 여겨졌다.

아직은 갈 길이 멀 것이다. 그래도 아들의 성심을 믿고 있다. 그동안 보건경제학 분야의 논문을 국제학회에 다수 발표했다. 그래서일까? 지금 옥스퍼드 대학교의 연구교수로 소임을 다하고 있다. 코비드 19에 대한 자료까지 연구한다니 인류를 향한 한 줄기 빛인 듯 아들을 향한 기도가 간절하다. 우환 중에도 며느리는 박물관 번역서<<편견과 싸우는 박물관>>(리처드 샌델 지음. 고현수, 박정언 옮김. 연암서가, 2020,6,20)를 상재했다. ‘사회적 정의를 이루는 박물관’에 공헌해 온 원작자의 뜻을 살려 박물관학계의 필수이론서로 정착되리라 기대를 해 본다.

코비드19 확산 소식이 아직도 들려온다. 그래도 ‘하느님은 우리의 피난처이시고 방패이시다.’를 외우면 의연해지곤 한다.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집 모퉁이 머릿돌이 되었나니, 시편118:22까지 암송하면 세상 평화가 가까워지는 것만 같다. 랄라! 랄라! 하하하하! 아기와 함께 합창을 하다 보면 단풍나무 숲을 넘나는 새들처럼 가족들도 상쾌해질 것이다. 저 찬란한 태양이 우리들 머리를 비추는 한, 너와 내가 즐겁게 마주했던 그 옛날이 꼭 돌아오리라 믿는다.


오길순 프로필 : 길림신문 주최 세계문학수필 대상, 사임당 백일장 장원, 설송문학상, 일붕문학상, GS문학상, 서울문예상, 한국문협작가상, 수필집 : 목동은 그후 어찌 살았을까, 내 마음의 외양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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