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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통싯돌 / 주인석

부흐고비 2021. 9. 4. 02:12

수필가 주인석의 실험수필 1


나는 바람기 많은 남선비요. 나는 대문을 지키는 신이고, 내 조강지처는 정짓간을 다스리는 ‘조왕각시’올시다. 나는 여자 욕심이 많아 첩실을 두었는데 그녀를 ‘측신각시’라 부른다오. 시샘이 많은 그녀는 자주 정짓간 자리를 탐냈으나 나는 그녀에게 뒷간 자리를 내주었소. 기가 센 두 여자가 날마다 다투니 내 머리가 복잡해졌소. 하는 수 없이 나는 뒷간을 정짓간과 가장 먼 곳으로 옮겼소.

멀리 떨어진 두 각시는 서로 헐뜯는 일이 작아지더니 마침내 서로 관심을 두지 않았소. 두 곳을 오가며 내가 정치를 잘한 덕인지 줄곧 평화가 이어졌소. 그런 까닭으로 나는 두 여자를 두고도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거나 후회하는 일은 거의 없어졌소.

두 각시 사이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는데 어느 날부터 남들이 문제가 되기 시작했소. 조왕각시는 정짓간을 혼자 차지하고 앉아 떵떵거리며 잘 지냈소. 그런데 뒷간에 있는 측신각시의 얼굴을 보니 연일 심기가 불편해 보였소. 이유를 물어보니 하루에도 사람이 수 없이 들락거리니 조용할 시간이 없는데다가 불쑥불쑥 문을 열고 들어와서 심장이 떨어지겠다고 하소연을 하였소. 그러다보니 측신각시는 심보가 점점 더 사나워졌소.

측신각시는 원래 애교가 많고 사랑스러웠소. 아기자기하게 꾸미는 것을 즐기고, 긴 머리를 늘어뜨리고 땋으며 몸 가꾸기를 좋아했소. 이 일을 하고 있을 때, 사람들이 노크 없이 들어와 굵은 똥을 툭툭 떨어뜨리거나 물똥을 뿌지직 싸대거나 무언가를 빠뜨리면 측신각시는 깜짝 놀라서 무척 화를 낸다오.

측신각시의 노여움은 극에 달했소. 하루는 어린 아이가 뒷간에 빠졌는데 측신각시는 땋아 내린 머리카락으로 아이를 둘둘 말아 버렸소. 사람들은 아이를 건져내 깨끗이 씻겼지만 아이의 온몸에는 똥독이 퍼진 상태였소. 2,3일이 지나고 아이는 결국 죽었소. 처음에 나긋나긋했던 측신각시는 점점 심술을 부렸소. 하루에도 몇 사람이 뒷간에 빠졌고 변을 당했소.

측신각시의 심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나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주의를 부탁했소. 그리고 뒷간에 빠졌을 때는 빨리 길일을 택해 뒷간 앞에 음식을 차려놓고 측신각시한테 빌어야 한다고 알려 주었소. 그리고 뒷간문 앞에다 ‘헛기침’이라고 써 붙여 놓았소. 측신각시를 놀라지 않게 하려면 뒷간에 들어가기 전과 후에 ‘헛기침’으로 측신각시에게 알리면 되오.

이를 잘 알고 지키는 사람은 뒷간에 들어가기 전에는 헛기침을 하거나 문을 톡톡 두드리더이다. 측신각시는 헛기침 소리를 듣고 누가 오는가보다 하여 기다리고 있다가 ‘통괘하고 시원하게’ 볼일을 보고 갈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소. 그때부터 뒷간을 ‘통시’라 부르는 사람이 생겼고 ‘통시’라는 말의 뿌리가 되었소.

아아, 사람의 감정이라는 것이 이렇게 기복이 심할 수 있단 말이오? 뒷간 앞에서 헛기침한 번만으로도 이와 같이 화를 면할 수도 있고 불러일으킬 수도 있으니 하물며 사람의 모든 일이야 말해 무엇 하겠소? 소소한 일로 타인을 놀라게 하거나 화가 나게 한 일이 없는 사람이 있다고 말할 수 있소?

부모가 자식의 방을 들어갈 때, 자식이 부모의 방을 들어갈 때에도 서로 예를 지켜야 할 것이요, 승강기를 타고 내릴 때도 벨이 울리고 난 뒤, 약간 비켜서서 기다리면 불쑥 나타난 도적 같은 남자나 귀신같은 여자를 보고 놀라 심장을 쓸어내리는 일은 줄어들 것이오.

어디 그뿐이겠소. 나는 얼마 전에 목욕탕에 갔다가 낭패를 보았소. 화장실에 앉아 똥을 누고 있는데 산적 같은 놈이 갑자기 문을 여는 것이었소. 목욕탕에서는 모두가 다 벗고 있는 상황이라 할지라도 화장실 문을 불쑥 열면 훌렁 벗은 상방이 놀라기는 마찬가지요. 자신이 당하기 전까지는 남의 일이라 여기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것이오. 대부분 사람은 타인을 나무라기만 할 뿐 자신을 돌아보려 하지 않는다오. 그러니 이런 일을 두고 어찌 미혹된 일이 아니라 할 수 있겠소?

뉴스를 보면 심히 걱정이오. 자신의 영역에 조금이라도 침범한다 싶으면 측신각시 같이 살생도 불사하는 세상이니 말이오. 우리 조상들은 이런 상황을 미리 예견이라도 하셨는지 그때, ‘헛기침’이라는 것을 했소. 지금 헛기침으로 자신을 알리는 사람은 없지만 ‘똑똑’이라는 최소한의 노크는 타인의 영역을 인정해주는 배려가 될 것이오. 작은 배려는 하늘 끝까지 올랐던 나쁜 감정을 땅으로 떨어지게 할 수 있는 좋은 방법 중에 하나가 될 것이오.

‘측신각시도 어지간히 독이 올랐으면 그랬을까’라며 각시를 두둔했다가 각시 편드는 오줄없는 놈에, 제 각시도 처신 못하는 놈이라고 나는 뭇사람들에게 돌팔매를 맞았소. 하기야, 각시 하나 얻기도 어렵다는 세상에 내가 각시를 둘이나 두고 사회에 민폐를 끼쳤으니 돌팔매를 맞아도 싸다오. 그런 이유인지 모르나 우리 집 마당에는 돌이 무더기로 날아들었소. 내로라하는 고관대작들부터 무지렁이들까지 던지는 돌에 죽도록 맞았소. 그러고 보니 사람들의 눈은 모두 남을 보기에만 급급한 모양이더이다. 눈알이 앞을 향하고 있고 360도 회전이 안 되니 무어라 말할 수도 없는 당연한 이치일지 모르겠소이다만.

“알게 모르게 오래도록 남의 흉만 보아왔으니 하루아침에 자신을 들여다보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오.”

나는 마당에 쌓인 돌로 측신각시가 사는 뒷간, 그러니까 통시의 담을 높이 쌓았소. 훤한 낮에는 헛기침을 하고 통시 안으로 들어와 얌전히 똥오줌을 눴으나 밤이 되니 통시 밖의 돌무더기에 그것들을 사정없이 갈기고 도망을 가는 이들도 많이 있더이다. 밝고 어두움의 차이는 무섭소. 세상의 빛이 어디 하늘에만 있더이까?

이 돌무더기가 통싯돌의 유래가 되어 바닷가에 배가 입출항 하는 곳에는 거의 대부분 있소. 울산의 진하항에는 고기잡이를 나갈 때, 선장이나 선원이 통싯돌에 오줌을 누어 표시하는데 이는 바다로 들어간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오. 또, 되돌아 올 때도 똑같이 하는데 이는 무사히 돌아왔다는 것을 항구에 알리는 것이오. 알리는 방법이 참으로 웃을 만하지 않소?

내가 두 여자를 거느리고 살면서 느껴지는 바가 있어 통싯돌 이야기로 그 뜻을 부연해 보았소.


실험수필을 쓰면서 / 주인석

 
수필에다 구전되어 오는 이야기를 접목시키고, 가전체 소설 형식을 빌려 스토리텔링화한 수필입니다. 다시 말하면, 수필+구전된 이야기+가전체 소설 +스토리텔링 = 실험수필입니다. 저는 신춘문예 등단 이후, 수필에다 구전된 이야기를 입혀 스토리텔링 책을 4권 출간했습니다. <울산사랑길><감포깍지길><울산어울길><간절곶소망길> 외에 수필집으로는 <낀>이 있습니다.
 
수필의 형식을 약간 벗어나 실험적 수필을 쓴 것은 지금까지 수필이 너무나 형식적이고, 비슷한 내용이 많아 지루하고, 사적인 이야기에 치우쳐 있음을 탈피하자는데 큰 목적을 두었습니다. 그리고 구전된 이야기가 지상에서 사라지기 전에 수필 형식으로 꼭 풀어보겠다는 제 의지는 스토리텔링기법이었습니다.
 
가전체 문학에서 차용한 의인화 기법은 남녀노소 누구나 재미있게 읽으며 교훈을 얻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우리 할머니세대가 사라지면 구전되어 오던 이야기도 함께 소멸할지 모릅니다. 그래서 저는 할머니들의 이야기라면 아무리 바빠도 끝까지 듣고 맞장구쳐주며 모으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그냥 녹취록 기록하듯이 옮겨 적기만 하면 문학작품이라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수필과 접목시켜 문학작품으로 승화시켰습니다.
 
지금까지 어떤 식으로든 문학의 전환점에는 시끄러운 말들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수필이니, 수필이 아니니 왈가왈부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내가 꼭 하고 싶은 말은 수필은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한, 교시의 문학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알기에 구전된 이야기에 저의 체험을 덧붙여 주제문을 확실히 살렸습니다. 그러니 구전된 문학을 접목시켰다하여 수필이 아니라고 말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이상으로 구전된 이야기를 스토리텔링화하여 가전체 소설을 접목시켜 실험수필로 쓰게 된 배경과 목적을 밝히는 바입니다.
 
이에 덧붙여 실험수필에 선구자로 나서주신 많은 원로작가님들, 정말 고맙습니다. 특히, 실험수필들을 모아 한 권의 책으로 엮으신 윤재천선생님과 오차숙선생님은 우리 시대 실험수필의 큰 기둥이 되어주셨고, 새내기 수필가인 저는 서까래 몇 개를 보태지만 집 한 채를 짓는 것만큼 기쁩니다. 실험수필이 널리 알려져서 수필이 문학의 변두리로 내몰리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어설픈 작품 세 편을 보탭니다. 변변찮은 사람의 작품을 실어주심에 고맙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많이 부끄럽습니다.

 
                                                                                                                              2013년 9월 19일 가을
 
                                                                                                                                       수필가 주인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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