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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운명은 동사다 / 류창희

부흐고비 2021. 9. 7. 08:16

운명, 운명을 거부한다. 아니 거부하고 싶다.

하나 딸은 엄마 팔자를 닮는다는 속설이 겁났다. 어미는 밥 먹고 숭늉 마시듯, 습관적인 ‘박복’ 타령을 했다. “부모 복 없는 X은 서방 복도 없고…”, 그다음은 자식 복이 나올 차례다. 대물림을 피하느라 어미 앞에서 절절매며 어미의 엄마가 되었다.

갑을 병정 무기 경신 임계. 자축 인묘 진사 오미 신유 술해. 사람은 천간天干 지지地支의 육십갑자 순환으로 연월일시, 사주四柱가 정해진다. 제아무리 지혜롭고 총명해도 가난할 수가 있고, 어리석고 고질병을 지녔어도 부자일 수 있으니, 숙명처럼 운명도 받아들이라는 유교적 운명론이다.

아이들이 춥다고 하면 이불을 쌓아놓고 널뛰기를 시켰다. 나는 뜨거운 옥수수 차로 몸을 데웠다. 그 꼴을 보신 시어머니께서, 아끼고 아끼면 “죽 거리가 밥거리는 된다.” 큰 부자는 하늘이 낸다셨다. 순명順命의 밥거리 교훈이다.

나는 하필이면 병신년에 태어났다. 벚꽃놀이하는 봄날이었으면 좀 좋았을까. 한여름 삼복중 유월 스무나흗날, 저녁 먹고 설거지할 무렵이다. 잔재주로 애碍가 많다는 잔나비띠다. 말 한마디라도 따듯하게 베풀어야 근근이 살 수 있다는 사주다. 원숭이는 나무에서 떨어져야 박수를 받는다. 주기적으로 겸손을 알리는 경종이다. 운명은 찾아 나서야 길섶에서 네 잎 클로버가 보인다.

내 팔자를 바꿔 줄 행운아를 만났다. 같은 해, 동짓달 스무나흗날 태어난 남학생과 결혼했다. 둘 다 병신 생이니 오죽이나 죽이 잘 맞을까. 남편이 초임 직장을 택할 때, 시어머님은 나를 데리고 용하다는 철학관에 가셨다. 신랑 사주를 넣었는데, 사주쟁이가 엉뚱하게 나를 바라보며 “이 며느리는 ‘학운’이 있다고.” 말한다. 그 당시, 나는 어른들 곁에서 걸레와 행주를 들고, 개밥이나 끓이는 새댁이었다. 교직은 남편이 택하는데, ‘학學’이라는 글자는 나에게 터무니없다. 돌팔이 사이비라며 마구마구 비웃었다.

어느 해 봄날, 총명한 오월의 신부가 마이크를 들고 “우리의 만남은, 운명”이라며 “의리”를 지키겠다고 당차게 말한다. “그대는 나의 꿈, 그대는 나의 운명, 그대가 있기에 나도 있어요♬” 「명성황후」 OST 곡 노랫말이다. 젊은 날 내달리는 속도는 접촉사고를 낸다. 천둥벌거숭이 같은 무모한 사랑이다. 희망은 희망 사항일 뿐, 의리도 부질없다. 적어도 하늘의 명을 받아들이는 '지명知命'의 세월 정도는 버텨내야 한다. 산전수전 다 겪고 난 뒤에, 덤으로 주어지는 자신만의 믿음이 ‘운명’이 아닐까.

빠바바빰! 빠바바빰♬ 베토벤의 「운명교향곡」을 듣는다. 격정적이다. 춘하추동 장단 고저가 장엄하다. 집 마당 들 시냇가 자갈길을 걷는다. 동산이다. 개울이다. 물살이 세다. 소용돌이치는 폭포 아래에서 허우적거린다. 꽁꽁 얼어도 봄은 온다. 아지랑이 피어오르고, 바람에 꽃이 진다. 장글장글 여름이 무성하다. 젊은 날 떫기만 했던 땡감이 달콤한 홍시 영감이 되었으니, 가을이 감사하다. 서로 나목에 의지한다. 누가 손을 잡아 줄까. 몸은 갈수록 어둔해지는데 세월은 쏜살같다. 다가올 날들이 벼랑 끝처럼 겁도 난다. 뒷걸음치다 가속도 붙여 점프, 착지. 새끼 떠난 둥지의 불빛이 안온하다. 나의 운명 그대, 그동안 고생하셨다.

인생의 좋은 때란, 회상 속에만 있다. 내 현실은 언제나 버겁다. 비로소 추억을 회상할 수 있는 나이, 회갑을 지나니 안도의 숨을 쉰다. 이제, 나 자신을 믿고 성장할 때다. 올해 탁상용 달력에 ‘천천히, 나직하게’라고 적었다. 저녁마다 빗금을 긋는다. 인생은 뛸 때가 있고, 걸을 때가 있고, 볕 좋은 날 벤치에 앉아 풍경을 바라볼 때가 있다. 언제나 서 있는 자리에서 행보를 조절한다.

유년 시절, 어미 아비의 애정전선에서 평화유지군이 되었다. 나만의 비무장지대를 만들어 다독이던 마음 밭에 개망초 꽃만 속절없이 피었다가 맥없이 졌다. 왕년에 껌 좀 씹어봤다는 말이 있다. 소녀 가장이 되어 주경야독했고, 파릇파릇 이팔청춘에 피를 토하며 아파도 보았다. 고초당초 매운 시집의 울타리 밑에 쪼그려 앉아 눈물도 닦았다. 칡뿌리를 씹어본 덕분에 씁쓸한 맛도 호학好學이라는 보약으로 달인다. 보약의 효능은 문학이다. 감히, 이백처럼 타고난 시선詩仙이 될 재주는 없어도, 비분강개를 원고지에 담아내는 두보의 시성詩聖은 꼭 닮고 싶다.

나이 서른에 오십을 꿈꾸던 여자. 속마음을 꼭꼭 여미며, 유미주의로 화양연화 시절을 누렸다. 봇물 터지듯 쏟아낼 아픔도 슬픔도 가라앉았다. 해 질 녘, 드물게 드물게 희한한 기쁨이 있다는 고희古稀를 꿈꿔본다. 꿈의 릴레이가 나의 일상이다.

청소년 시절, 피구가 무서웠다. 공의 속도에 지레 겁먹어 빨리 죽고 싶었다. 차라리 숙명처럼 뒤에서 날아오는 돌멩이라면 깔끔하게 맞아 죽었을 것이다. 그러나 운명이란 포기할 수가 없다. 이리저리 공을 피하며 순응했을 뿐이다. 운명은 동사다.

성격이 팔자다. 나는 편안함에 안주하지 못한다. 남들 보다 종종걸음쳐도 소득은 별로 없다. 불우가 자산이요, 박복이 에너지였다. 가진 것 갖춰진 것 없이도 꼿꼿한 자존감이 무기다. 묵객墨客이 되어 신변을 갈고 또 갈았다. 이즈음 철학관 돌팔이 선생이 그립다. 그는 족집게 도사가 틀림없다. 뒤늦게 ‘학운’을 믿는다. 나의 연창硯窓에 청복淸福이 조촐하다. 아니 조촐해지고 싶다.

나의 꿈 나의 결핍, 결핍을 디자인하는 것이 나의 운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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