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수필 읽기

별에게 / 구자분

부흐고비 2021. 10. 1. 08:32

그리움이리. 애마른 그리움이리. 한 생애 기다림만으로 살아도 회한 없을 사무치는 애모의 념(念). 그 호젓함과 은밀한 그리움이 그래도 은총이라 여겨진다.

까마득 멀리 있어 더욱 아쉽고 결코 손닿을 수 없어 더더욱 안타까운 그대. 무릇 모든 것과의 첫 만남은 설렘이었다. 그러나 실없는 말 한마디, 언뜻 스치는 눈길만으로 멀어지는 이름이 얼마던가. 특별한 뜻 새김 없이 잊혀지는 인연은 또 얼마던가.

그대를 처음 마주하던 날을 기억한다. 그것은 어쩌면 불가사의한 운명과의 조우였다. 눈부신 그 순간 이후 밤하늘이 의미 없는 어둠일 수 없었고 그대 또한 하고 많은 반짝임 중의 하나일 수 없었다. 한점 부끄러움 없는 투명해 정갈하고 순결한 그리움 품게 하는 그대이기에 이리도 맑은 빛일 수 있었나보다.

그대는 내게 있어 차라리 떨리는 두려움이었으며 동시에 아득한 선망이었다. 아니 번뇌이며 갈등이며 애증이 교차하는 고통이었다. 아 아, 그보다는 내 전체를 던져 몰입하고 싶은 아름다운 우주였다. 내 일찍이 이리도 가슴 들뜨는 벅찬 동요를 느껴보았던가.

그것은 단 한번의 몰아적인 탐닉이었다. 맹렬히 타오르는 불같은 열정이었다. 그대 여윈 서러움으로는 나 정녕 존재할 수 없음인데. 그리워하리. 죽도록 그리워하리. 그대 향한 그리움은 뜨거운 목마름이었다. 눈물보다 더 아린 아픔이었다. 오로지 나만이 보듬을 수 없는 그대는 못내 채워지지 않을 갈증이었다.

핏빛 진한 갈망 숨죽여 잠재우고 짐짓 잊은 듯 사노라면 고요한 시각 푸른 빛 되어 내 창가를 서성이는 그대. 그렇게 그대는 때때로 내게 왔다. 고요히 아주 고요히 봄 들녘 적시는 안개비로, 슬며시 나뭇가지에 얹히는 바람으로, 너른 창천 무심히 흐르는 구름으로. 하지만 가까이 다가서면 아득히 멀어지는 그대. 부여잡으려 해도 옷깃 미끄러워 하늘 끝으로 스며드는 그대.

잊혀질 길 없는 그림자 하나 어둠의 벽에 문신으로 새기고 빛으로 여울지는 그대. 홀연 왔다가 홀연 떠나는 발길은 은하의 강물이 되는가. 마음끼리 한 올의 명주실로 이어져 말없음표만으로도 수신을 주고받는가.

어쩌면 그대는 정월 하늘에 띄워보낸 지연(紙鳶)의 영혼이리. 상사 깊어 이운 넋의 한줌 비원(悲願), 종당엔 소지(燒紙)올려 사르는 절절함이리. 그대는 계면조 가락으로 잦아드는 한의 빛인 채 저 먼 곳에서 정정히 빛나고 있다.

떠나 있어도 영겁토록 떠날 수 없는 그리움의 영상으로 곱게 남아 있는 그대. 그대 생각 떠오를 적마다 가슴 한켠에 지펴지는 모닥불의 열기. 그리고 격렬한 박동소리. 숨기지 못할 기쁨의 무늬 어룽져 그만 멀미마저 앓는다.

그대는 내게 향기로 다가오는가. 빛으로 다가오는가. 정녕 눈물겹도록 어여쁘고도 예쁜 그대. 그대는 언제나 떨리는 그리움이며 도무지 절제될 줄 모르는 그리움. 그리고 금방 목 잠기는 슬픔이다. 이리도 크게 파문 지는 물살 쉬 잠재울 길 없건만 오히려 나는 그 설레임 매어두고 오래오래 거기 머물고 싶다. 아니 그대 비추인 호수엔 익사해도 좋으리.

죽음조차 두려움 모를 그 광기로 하여 이미 먼 눈 닫힌 귀. 주저 없이 나는 몸 전체로 해벽에 생가슴 내던지는 파도이고자 했지. 산산이 부서진 뒤 허무의 포말로 스러진다 해도 전혀 안타까워하지 않으리라 했지. 그러나 그대는 너무나 멀리 있음인데. 아무리 까치발 딛어도 모둠발로 뛰어도 닿을 수 없이 저 먼 곳에 있는 그대. 그리운 그대. 좀더 정직하게는 매양 보고지운 그대. 밤낮없이 보고지운 그대.

애오라지 오직 하나로 용해되고 싶은 순일한 정념을 어쩔 것인가. 원한다하여 가질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아 포기하고 체념하는데 이미 길들어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갖고 싶은 그대는 또 그 무엇보다 가질 수 없는 지고의 신성(神聖)으로 높이 있으니. 그저 아스라한 동경으로, 먼빛으로 지켜보는 것으로, 가슴속 뜨겁게 그대 품은 것으로 만족해야 함을 안다. 그대는 그 누구도 액자 안에 가두지 못하는 풍경인 것을. 영원한 자유인인 것을. 그렇지만 유념하고 있다는 것, 관심의 끈이 맞닿아 있다는 것, 더해서 마음을 나눈다는 것은 그윽한 설렘이자 황홀한 행복.

오, 그대는 내게 있어 무엇이기에 이리도 마음 통째로 흔드는가. 우주인가. 목숨인가. 운명인가. 아니면 그대는 내 생의 근원 물인가 바람인가. 나는 그대 향해 숨 멈추는 날까지 지치지 않고 그리움 혹은 열망의 꽃잎 하나씩 띄우리. 그대는 애초의 그 모습으로 언제나 그 자리에서 푸른 빛 반짝임만으로 족한 것을.

이 밤, 무수한 야생화로 피어난 그대를 맞고자 창을 연다. 야청빛 별밭에서 문득 방울처럼 영롱하게 울려 올 내 어린왕자의 웃음소리를 만나기 위하여.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