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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 느낌

최남선 시인(2-1)

부흐고비 2021. 10. 11. 00:35

해(海)에게서 소년에게 / 최남선
처……ㄹ썩, 처……ㄹ썩, 척, 쏴……아./ 때린다 부순다 무너 버린다./ 태산 같은 높은 뫼, 집채 같은 바윗돌이나,/ 요것이 무어야, 요게 무어야./ 나의 큰 힘 아느냐 모르느냐, 호통까지 하면서,/ 때린다 부순다 무너 버린다./ 처……ㄹ썩, 처……ㄹ썩, 척, 튜르릉, 꽉./ 처……ㄹ썩, 처……ㄹ썩, 척, 쏴……아.// 내게는 아무 것 두려움 없어,/ 육상(陸上)에서, 아무런 힘과 권(權)을 부리던 자라도,/ 내 앞에 와서는 꼼짝 못하고,/ 아무리 큰 물건도 내게는 행세하지 못하네./ 내게는 내게는 나의 앞에는/ 처……ㄹ썩, 처……ㄹ썩, 척, 튜르릉, 꽉.// 처……ㄹ썩, 처……ㄹ썩, 척, 쏴……아./ 나에게 절하지 아니한 자가,/ 지금까지 있거든 통기(通寄)하고 나서 보아라./ 진시황(秦始皇), 나파륜[1], 너희들이냐./ 누구 누구 누구냐 너희 역시 내게는 굽히도다./ 나하고 겨룰 이 있건 오너라./ 처……ㄹ썩, 처……ㄹ썩, 척, 튜르릉, 꽉.// 처……ㄹ썩, 처……ㄹ썩, 척, 쏴……아./ 조그만 산모를 의지하거나,/ 좁쌀 같은 작은 섬, 손뼉만한 땅을 가지고,/ 고 속에 있어서 영악한 체를,/ 부리면서, 나 혼자 거룩하다 하는 자,/ 이리 좀 오너라, 나를 보아라./ 처……ㄹ썩, 처……ㄹ썩, 척, 튜르릉, 꽉.// 처……ㄹ썩, 처……ㄹ썩, 척, 쏴……아./ 나의 짝 될 이는 하나 있도다./ 크고 길고 넓게 뒤덮은 바 저 푸른 하늘./ 저것은 우리와 틀림이 없어,/ 작은 시비, 작은 쌈, 온갖 모든 더러운 것 없도다./ 조따위 세상에 조 사람처럼./ 처……ㄹ썩, 처……ㄹ썩, 척, 튜르릉, 꽉.// 처……ㄹ썩, 처……ㄹ썩, 척, 쏴……아./ 저 세상 저 사람 모두 미우나,/ 그 중에서 똑 하나 사랑하는 일이 있으니,/ 담 크고 순진한 소년배(少年輩)들이,/ 재롱처럼 귀엽게 나의 품에 와서 안김이로다./ 오너라 소년배 입 맞춰 주마./ 처……ㄹ썩, 처……ㄹ썩, 척, 튜르릉, 꽉.//
* 1.拿破崙: '나폴레옹(Napoléon)’의 음역어.
* 새 시대를 열 소년에 대한 기대와 문명개화 실현의 의지를 노래한 최초의 신체시이다.

경부 철도 노래 / 최남선
1. 우렁차게 토하는 기적소리에 남대문을 등지고 떠나가서/ 빨리 부는 바람의 형세같으니 날개 가진 새라도 못 따르겠네// 2. 늙은이와 젊은이 섞어 앉았고 우리네와 외국인 같이 탔으나/ 내외친소 다같이 익혀 지내니 조그마한 딴 세상 절로 이뤘네// 3. 관왕묘와 연화봉 둘러보는 중 어느 덧에 용산역 다달았도다/ 새로 이룬 저자는 모두 일본집 이천여 명 일인이 여기 산다네// 4. 서관가는 경의선 예서 갈려서 일산수색 지나서 내려간다오/ 옆에 보는 푸른 물 용산나루니 경상 강원 웃물배 뫼는 곳일세// 5. 독서당의 폐한터 적상하면서 강에 빗긴 쇠다리 건너나오니/ 노량진역 지나서 게서부터는 한성지경 다하고 과천땅이다.// 6. 조조양양 흐르는 한강물소리 아직까지 귀속에 쳐져있거늘/ 어느 틈에 영등포 이르러서는 인천차와 부산차 서로 갈리네// 7. 예서부터 인천이 오십여 리니 오류 소사 부평역 지나간다네/ 이 마음에 틈을 타 다시 갈차로 이번에는 직로로 부산가려네// 8. 관악산의 개인경 우러러보고 영랑성의 묵은 터 바라보면서/ 잠시동안 시흥역 거쳐 가지고 날개 있어 나는 듯 안양이르러// 9. 실과 같은 안양을 옆에 끼고서 다달으니 수원역 여기로구나/ 예전에는 유수도 지금 관찰부 경기도의 관찰사 있는 곳이라// 10. 경개이름 다 좋고 서호항미정 그 옆에는 농학교 농사시험장/ 마음으로 화영전 담배한후에 대성인의 큰효성 감읍하도다//
11. 달 바라는 라각은 어찌되었나 물 구경 터 화홍문 변이 없는지/ 운담풍경 때맞춰 방화수유정 등어상연 겸하는 만석거로다// 12. 광교산을 옆하고 떠나나가서 잠시간에 병점역 이르렀도다/ 북에 뵈는 솔밭은 융능뫼신도 이름높은 대황교 거기 있다오// 13. 이다음에 정차장 오산역이니 온갖곡식 모이는 큰 장거리오/ 그 다음에 정차장 진위역이니 물새사냥 하기에 좋은 터이라// 14. 서정리를 지나서 평택이르니 들은 늦고 산낮아 들만 넓도다/ 묘한경치좋은 토산 비록 없으나 쌀 소출은 다른데 당하리로다// 15. 게서 떠나 성환역 다달아서는 해가 벌써 아침때 훨씬 겨웠네/ 오십년전 일청전 생각해보니 여기 오매 옛일이 더욱 새로워// 16. 일본사람 저희들 지저귀면서 그 때 일이 쾌하다 서로 일컬어/ 얼굴마다 기쁜 빛 가득하여서 일본남자 대화혼 자랑하는데// 17. 그 중에도 한로파 눈물 씻으며 그 때통에 외아들 잃어 버리고/ 늙은 신세 표영해 이꼴이라고 떨어지는 눈물을 금치못하니// 18. 말말마다 한이오 설움이어서 외국사람 나까지 감동되거늘/ 쓸데없는 남의공 자랑하기에 저의 동포 참상을 위로도 없네// 19. 척수루의 빈터는 볼 수 있으나 월봉산의 싸움터 자취 없도다/ 안성천의 다리를 얼른 건너서 순식간에 직산역 와서 닿았네// 20. 백제국의 첫도읍 위례성터는 성암산에 있으니 예서삼십리/ 천오동에 놓았던 구리 기둥은 돌 주초인 두개가 남았다더라//
21. 이편저편 보는 중 모르는 틈에 어느 덧에 천안역 다달았도다/ 온양온천 여기서 삼십리이니 목욕하러 가는 이 많이 나리네// 22. 인력차와 교자가 준비해있어 가고 옴에 조금도 어려움 없고/ 청결하게 꾸며논 여관있으나 이는 대개 일본인 영업이라니// 23. 이런 일은 아무리 적다하여도 동포생업 쇠함을 가히 알리라/ 그네들이 얼마나 잘하였으면 이것 하나 보전치 못하게되오// 24. 백제 때에 이지명 탕정이라니 그 때부터 안 것이 분명하도다/ 수천년간 전하던 이러한 것을 남을 주고 객되니 아프지 않소// 25. 소정리와 전의역 차례로 지나 갈거리를 거쳐서 조치원오니/ 낙영산의 그림자 멀리 바라고 화양서원 옛일을 생각하도다// 26. 내판역을 지나서 미호천건너/ 몇십분이 안되어 부강역이니/ 충청일도 윤내는 금강가이라/ 쌀 소금의 장터로 유명한데오// 27. 사십리를 격조한 공주고을은/ 충청남도 관찰사 있는 곳이니/ 내포일관 너른 뜰 끼고 앉아서/ 이근처의 상업상 중심점이오// 28. 계룡산의 높은봉 하늘에 다니/ 아태조 집 지으신 고적있으며/ 금강루의 좋인경 물에 비치니/ 옛 선비의 지은 글 많이전하네// 29. 마미신탄 지나서 대전이르니/ 목포가는 곧은길 예가 시초라/ 오십오척 돌미륵 은진에있어/ 지나가는 행인의 눈을 놀래오// 30. 증약지나 옥천역 다달아서는/ 해가 벌써 공중에 당도하였네/ 마니산성 남은 터 바라보는중/ 그 동안에 이원역 이르렀도다//
31. 속리사가 여기서 삼십리라니/ 한번 가서 티끌마음 씻을 것이오/ 운연죽던 양산이 육십리라니/ 쾌남아의 매운혼 적상하리라// 32. 고당포를 바라며 심천이르니/ 크지 않은 폭포나 눈에 띠우고/ 그 다음에 영동역 다달아서는/ 경부사이 절반을 온세음이라// 33. 삼십사번 화신풍 불어올 때에/ 때 좋다고 꽃피는 금성산인데/ 정든손을 나누기 어렵다하여/ 꽃다운 혼 스러진 낙화대로다// 34. 미근[1] 황간 두역을 바삐 지나서/ 추풍령의 이마에 올라타도다/ 경부선중 최고지 이고개인데/ 예서부터 남쪽은 영남이라오// 35. 얼마 안가 김천역 다달아보니/ 이전부터 유명한 큰장거리가/ 사통하고 원달한 좋은덴고로/ 이근처에 짝 없이 굉장하다네// 36. 그 다음의 정차장 금오산이니/ 이름 있는 도선굴 있는 곳이라/ 산아래에 지었던 길재사당은/ 지낸 세월 오래라 저리되었네// 37. 김오산성 너른 곳 지금 어떠뇨/ 재연못과 한시내 그저 있는지/ 무릉도원 깊은데 역사피하듯/ 이전부터 그근처 피난곳이라// 38. 약수역을 지나면 왜관역이니/ 낙동강의 배편이 예가 한이요/ 삼백년전 당하던 임진왜란에/ 일본군사 수천명 머무던 데라// 39. 왜관지나 신동에 신동지니면/ 영남천지 제일큰 대구군이라/ 경상북도 모든골 적고 큰일을/ 총할하늘 관찰사 여기 있으니// 40. 부하인구 도총합 사만오천에/ 이천이백 일본인 산다하더라/ 산 이름은 연구나 거북 못보고/ 집 이름은 영귀나 관원있도다//
41. 년년마다 춘추로 열리는 장은/ 우리나라 셋째의 큰교역이니/ 대소없이 안 나는 물건이없고/ 원근없이 안 오는 사람이었네// 42. 누구누구 가르쳐 팔공산인지/ 일곱 고을 너른 터 타고 있으되/ 수도동의 폭포는 눈이 부시고/ 동화사의 쇠북은 귀가 맑도다// 43. 달성산의 그윽한 운취 끼고서/ 경산군을 지나서 청도이르니/ 청덕루의 부던적 소리가 없고/ 소이서국 끼친체 영자도없네// 44. 성현터널 빠져서 유천다달아/ 용각산을 등지고 밀양이르니/ 장신동의 기와집 즐비한 것 / 시골촌에 희한한 경광이러라// 45. 밀양군은 령서의 두서너째니/ 예전에서 도저부 두었던 데라/ 상업상에 조그만 중심이되어/ 상원들의 래왕이 끊이지 않네// 46. 객관 동변 영남루 좋은 경개는/ 노는 사람 지팽이 절로 멈추고/ 만어산에 나는 돌 쇠북과같이/ 두드리면 쟁쟁히 소리난다네// 47. 그다음에 있는역 삼랑진이니/ 마산포로 갈리는 분기점이라/ 예서부터 마산도 만리동안에/ 여섯 군데 정차장 지나간다네// 48. 원동역을 지나서 물금에오니/ 작원관을 찾으며 낙동강끼고/ 머지않은 임경대 눈앞에있어/ 천하재자 고운을 생각하도다// 49. 통도사가 여기서 육십리인데/ 석가여래 이마뼈 묻어있어서/ 우리나라 모든 절 으뜸이 되니/ 천이백칠십년 전 이룩한 바라// 50. 물금역을 지나면 그 다음에는/ 해육운수 연하는 구포역이라/ 낙동강의 어귀에 바로 있어서/ 상업 번성 하기로 유명한데라//
51. 수십분을 지난후 다시 떠나서/ 한참 가니 부산진 거기로구나/ 우리나라 수군이 있을 때에는/ 초선두어 요해처 방비하더니// 52. 해외 도적 엿봄이 끊이었는지/ 남의 힘을 빌어서 방비하는지/ 해방함 한척 없이 버려 두었고/ 있는 것은 외국기 날린 배로다// 53. 수백년전 예부터 일인사던곳/ 풍신수길 군사가 들어올 때에/ 부산으로 파견한 소서행장의/ 혈전하던 옛전장 여기 있더라// 54. 범어사 대찰이 예서 오십리/ 신라 흥덕왕시에 왜관 십만을/ 의상이란 승장이 물리치므로/ 그 정성을 갚으려 세움이라네// 55. 삼십리를 떨어진 동래온정은/ 신라부터 전하는 옛 우물이라/ 수 있으면 도상의 피곤한 것을/ 한 번 가서 씻어서 뉘기리로다// 56. 영가대의 달구경 겨를 못하나/ 충장단의 경배야 어찌 잊으리/ 초량역을 지나선 부산항이니/ 이철도의 마지막 여기라 하네// 57. 부산항은 인천의 다음 연대니/ 한일사이 무역이 주장이 되고/ 항구안이 너르고 물이 깊어서/ 아무리 큰배라도 족히 닿이네// 58. 수입수출 통액이 일천여만원/ 입항출항 선박이 일백여만둔/ 행정사무 처리는 부이이하고/ 화물출입 감독은 해관이하네// 59. 일본사람 거류민 이만인이니/ 얼른 보면 일본과 다름이 없고/ 조그마한 종선도 일인이부려/ 우리나라 사람은 얼른 못하네// 60. 한성남산 신령이 없기전부터/ 윤산신령 없은 지 벌써 오래니/ 오늘날에 이르러 새삼스럽게/ 강개함도 도리어 어리석도다//
61. 검숭하게 보이는 저기 절영도/ 부산항의 목쟁이 쥐고 있으니/ 아무데로 보아도 요해혈지라/ 이충무의 사당을 거기 모셨네// 62. 인천까지 여기서 가는 동안이/ 육십시간 걸려야 닿는다는데/ 일본마관까지는 불과 일시에/ 지체없이 이름을 얻는다하네// 63. 슬프도다 동래는 동남제일현/ 부산항은 아국중 둘째큰 항구/ 우리나라 땅같이 아니 보이게/ 저렇 듯한 심한양 분통하도다// 64. 우리들도 어느 때 새 기운 나서/ 곳곳마다 잃은 것 찾아 들이여/ 우리장사 우리가 주장해보고/ 내나라 땅 내 것과 같이 보일가// 65. 오늘 오는 천 리에 눈에 띄는 것/ 터진 언덕 붉은산 우리같은 집/ 어느 때나 내 살림 넉넉하여서/ 보기 좋게 집 짓고 잘살아보며// 66. 식전부터 밤까지 타고온 기차/ 내 것같이 앉아도 실상 남의 것/ 어느 때나 우리 힘 굳세게되어/ 내 팔뚝을 가지고 굴려볼거나// 67. 이런 생각 저생각 하려고 보면/ 한이없이 뒤대에 연적나오니// 천리길을 하루에 다달은 것만/ 기이하게 생각되 그만둡시다//
* 개화 문명에 대한 동경과 예찬(근대 문명의 이기(利器)인 경부철도의 개통 찬양)을 노래한 최초의 창가.

北漢山城[북한산성] / 최남선
其一[기 일]// 山[산]마다 城[성]있으되/ 지킨 城[성]이 몇곳인가// 이 人力[인력] 이 物資[물자]를/ 이리 浪費[낭비]한다 하고// 城[성]가퀴 한번 돌면서/ 열번 한숨 쉬거라.// 其二[기 이]// 東將臺[동장대] 그 큰집도/ 쑥대밭이 되단말가// 구름이 알로 돌고/ 바다멀리 탁터져서// 才童[재동]의 當年[당년]글귀만/ 그때그냥 이오녀.// 其三[기 삼]// 太古庵[태고암] 쇠북소리/ 언제부터 귀먹은고// 行宮[행궁]터 감나무밭/ 불구슬이 조롱조롱// 歲月[세월]은 山中[산중]에서도/ 큰발자국 내도다.//
* 미발표

佛誕日[불탄일] / 최남선
사람이 空氣[공기]알며 고기가 물깨닷든가/ 十方[십방]이 다덥히고 有情無情[유정무정] 다싸시니/ 부처님 크신사랑을 누가따로 알리오.// 無量壽[무량수] 無量光[무량광]이 本是自在[본시자재] 하시거늘/ 룸비니 夏四月[하사월]에 어느부처 또나셔서/ 無盡燈[무진등] 무슨기름을 새로붓다 하는고.// 悉達多[실달다] 새아기의 으아하신 우름소리/ 出世[출세]의 大本懷[대본회]를 분명나타 내셧거늘/ 衆生[중생]이 못아라드러 일이만하 지도다.//
* 미발표

눈물의 세 英雄[영웅] / 최남선
崔瑩[최영]// 大高麗[대고려] 十萬豼貅[십만비휴]/ 흘겨보는 遼水燕山[료수연산]// 威化島[위화도] 눈먼 바람/ 이 旗[기]ㅅ대를 꺾단말가// 지금에 鴨綠江[압록강]물이/ 울며울며 예느니.// 諸葛亮[제갈량]// 五丈原[오장원] 하루밤에/ 漢室興復[한실흥복] 꿈되었네// 出廬[출려]는 어이하고/ 出師[출사]무삼 뜻이던가// 宇宙[우주]에 그득한 大名[대명]/ 나는 슬퍼하노라.// 한니발// 「알프」의 높은 峰[봉]도/ 얼른 넘는 그 발길로// 運命[운명]의 얄미운 낯/ 컫어차지 못하고서// 地中海[지중해] 다 헤맨끝에/ 藥[약]사발을 들다니.//
* 미발표

크리스마스 / 최남선
四千年[사천년] 기다려온 「메시아」가 나타날제/ 구차한 시골집의 구유위에 누우심을/ 東方[동방]의 三[삼]박사네가 먼저 놀랐으려니.// 세대륙 사복점에 복받은땅 「가난」이여/ 「레바논」산이높고 「요르단」강 물맑은데/ 부활의 영원한빛이 이사이에 나도다.// 하늘엔 榮光[영광]있고 땅에서는 平和[평화]롭자/ 거룩한 이선언이 엄숙하게 외쳐질제/ 세계는 기쁨에차고 「사탄」떨며 우니라.//
* 미발표

우이동사시(牛耳洞四時) / 최남선
춘(春)// 늦어서 피는 벚꽃/ 붉은 구름 덩덩이// 꽃 아래 춤추기는/ 문안 사람 맡겨 두고// 벼농사 어찌될 것이/ 그네 걱정이러나// 하(夏)// 오늘은 무념인가/ 심은 솔은 내일이지// 징 장구 시나브로/ 패패 모여드는 무리// 반반한 탁족(濯足) 자리는/ 한가한 날 없어라// 추(秋)// 올벼를 베고 나면/ 밤 따기가 바빠지네// 서둘지 않다가는/ 아림 죄다 앗긴다고// 장대가 여기저기서/ 번쩍 투닥하여라// 동(冬)// 삼각산(三角山) 눈에 덮여/ 나뭇길이 끊어지면// 갈이를 미리한 이/ 입이 벙긋 벌어지네// 미아리 시장(柴場) 금새가/ 점점 올라 가올새//
* 미발표

피난(避亂) 유월이십육일(六月二十六日) / 최남선
1// 삼각산 어이 품이/ 따사하고 너그러워// 천만 인 놀란 혼이/ 다 안겨서 편안할사// 아랫녘 무서운 불빛/ 구태 눈을 뜨리오// 2// 대포도 입 다물고/ 기관총도 자나 보다// 천지가 괴괴하고/ 풀이슬이 촉촉한데// 만경대(萬景臺) 베개를 하고/ 새벽 달을 보괘라// 4// 피난들 오는 길로/ 피난한다 마주 가네// 인생의 바른 길은/ 끝내 찾기 어려운지// 죽고 살 대목에서도/ 갈팡질팡하여라// 7// 자네도 일 없는가/ 나도 이냥 돌아왔네// 손 한번 못 붙들고/ 본체만체 등을 질세// 살아서 다시 만나기/ 기약했다 하리오// 9// `하얗면 미국이요/ 검숭하면 호주'하며// 비행기 소리 듣고/ 뛰 나오는 마을 색시// `아니군 마크를 보니/ 유엔이군'하더라// 10// 밭두둑 앉은 아이/ 손가락을 펴 들고서// `나는 열 또 하나야/ 너는 얼마 얻었냐'고// 주머니 속 탄알 수효가/ 서로 자랑이러라// 13// 고사포 산포(山砲) 야포(野砲)/ 연달아서 투당퉁탕// 못듣던 `리슴'이라/ 귀에 익지 않을망정// 이 장단 장쾌하고나/ 팔을 한번 벌릴까// 21// 길 다리 끊어지고/ 학교 공장 타는고나// 오래도 모은 근사/ 속절없이 사라지네// 새 건설 내일이거냐/ 우선 애석한지고// 30// 사탕물 대신으로/ 간장 찍어 먹는 애기// 그것도 아깝다 해/ 어머니가 나무라며// 그다지 입이 구쁘건/ 소금 핥아 보라네// 36// 꽁보리밥 한 그릇/ 어쩌다가 차례 오니// 눈물만 떨어지고/ 술이 얼른 가지 않네// 이번에 먹어 없애면/ 언제 다시 만나리// 41// 거울을 당겨 보니/ 여위기도 하였을사// 살찌고 윤택한 이/ 어쩌다가 만나 보면// 조선도 저런 이 있나/ 외인(外人)이지 하여라.//
* 미발표

모르네 나는 / 최남선
밥만먹으면 배가부름을// 모르네나는/ 물만마시면 목이튝음을// 모르네나는/ 해만번하면 세상인듈을// 모르네나는/ 돈만만흐면 근심업난듈// 모르네나는/ 벼슬만하면 몸이귀함을// 모르네나는/ 디식만흐면 마음맑음을// 모르네나는/ 우리구함과 우리턋난 것/ 이뿐아닐세/ 여러가디다 모다긴하고/ 둉요로우나/ 갑뎔더한것 또잇난듈을// 아나모르나/ 밥과마실것 돈과벼슬은// 엇디못해도/ 과영화와 몸과목숨은// 이러바려도/ 의댜유는 보뎐할디며// 탸댜올디니/ 댜유한아만 댜유한아만// 갓디못하면/ 그의세상은 아모것업고// 캄캄하리라/ 하날우에서 나려다뵈는// 모든영화를/ 다듈디라도 아니밧구네// 나의댜유와/ 따뜻한댜유 잇난곳에만// 성물이살고/ 해가뚀이고 별이돌아서// 목뎍일우네/ 댜유이댜유 발길끈어서// 볼수업스면/ 두려움댱막 근심휘댱이// 내몸을덥고/ 가시손가딘 모딘마귀가// 내등을미러/ 딜거움에서 걱뎡속으로// 댭아가두고/ 편한안에서 곤한밧그로// 미러내티네/ 그럴때에는/ 밥은헤디고/ 물은마르고/ 해가빗업고/ 돈이힘업고/ 낙이감퇴고/ 영화살아뎌/ 디식이설어/ 소래디르며/ 탄식하리라/ 통곡하리라/ 발광하리라//
* 1908. 2월 대한학회월보 제1호

가는 배 / 최남선
나는 간다 나 간다고 슬퍼 말아라/ 너 사랑는 나의 정(情)은 더욱 간절해/ 나는 용(龍)이 언제던지 지중물(池中物)이랴/ 자유대양(自由大洋) 훤칠한 데 나가 보겠다// 돛 짜르고 사공(沙工) 적고 배도 좁으나/ 걱정마라 굳은 마음 순실(純實)하노라/ 예수 앞에 엎드리던 순한 물이니/ 우리 자신(自信) 제가 보면 어찌하리오//
* 1908. 11월 ‘소년’ 제1년 제1권

가을 뜻 / 최남선
쇠(衰)한 버들 말은 풀 맑은 시내에/ 배가 부른 큰 돛 달아 가는 저 배야/ 세상시비(世上是非) 던져 두고 어느 곳으로/ 너 혼자만 무엇 싣고 도망하느냐// 나의 배에 실은 것은 다른 것 없어/ 사면(四面)에서 얻어온 바 새 소식(消息)이니/ 두문동(杜門洞) 속 캄캄한 데 코를 부시는/ 산림학자(山林學者) 양반(兩班)들께 전(傳)하려 하오.//
* 1908. 11월 ‘소년’ 제1년 제1권

벌[蜂] / 최남선
1// 궂은 날 마른 날 가리지 않고/ 높은 데 낮은 데 헤이지 않고/ 머나 가까우나 찾아다니며/ 부지런 바지런 움직이는 건/ 어여쁜 꽃모양 탐(貪)함 아니오/ 복욱(馥郁)한 향(香)내를 구(求)함 아니라/ 애쓰고 힘들여 바라는 것은/ 맛있는 좋은 꿀 얻으렴이라.// 2// 공(功)든 것 드러나 꿀을 얻으면/ 우리는 조금도 관계(關係) 안하고/ 곱다케 모아서 사람을 주어/ 긴(緊)하게 쓰도록 바랄 뿐이니/ 맛 없는 것에는 맛나게 하고/ 맛있는 것에는 더 있게 하야/ 아무나 좋은 건 꿀같다 하게/ 우리가 만든 걸 칭찬(稱讚)케 되다.// 3// 사람아 사람아 게으른 사람/ 귀 숙여 우리말 들어를 보게/ 저즘게 고초(苦楚)를 무릅쓰고서/ 정성(精誠)을 다하야 공(功) 이룬 것이/ 이(利)되나 해(害)되나 생각하건대/ 송영(頌榮)과 칭예(稱譽)의 이(利) 뿐이로다/ 초당(草堂)에 편(便)한 잠 탐(貪)하였더면/ 너 같이 무용건(無用件) 되었겠구려.// 4// 옛사람 말씀은 그른 것 없어/ 한 마디 한 구절(句節)한 땀이라도/ 가로대 쓴 뿌리 단 열매 맺고/ 고(苦)로운 끝에는 락(樂) 온다더니/ 수구한 뒤에는 좋은 갚음이/ 오지를 말래도 억지로 오네/ 사람과 벌레가 무엇 다르랴/ 게으름 부지런 갚음 받을 때.//
* 1908. 12월 ‘소년’

천만(千萬) 길 깊은 바다 / 최남선
천만(千萬) 길 깊은 바다/ 물결은 검으니라/ 그러나 눈빛 같은/ 흔새가 사모(思慕)하야/ 떠나지 못하는 걸/ 보건댄 내심(內心)까지/ 검었지 아니함을/ 미루어 알리로다// 나 혼자 깨끗하고/ 나 혼자 흰 것처럼/ 아래 위 내외(內外) 없이/ 흰옷만 입고 매는/ 동방(東方)의 어느 국민(國民)/ 너희도 그와 같이/ 거죽은 검더라도/ 속을란 희어 보렴//
* 1908. 12월 ‘소년’

밥버레 / 최남선
너의는 개剝匠[박장]은 되야도/ 「밥버레」는 되려하지 마러라/ 너의는 거름장산 되야도/ 「鸚鵡[앵무]쇠」는 되려하지 마러라/ 너에게 밥먹으라 입주신/ 하날꾀서 손과발도 주시되/ 입한아 주시면서 손발은/ 둘식주신理致[이치] 아니모르나/ 먹기도 적게하는 말지/ 만히 하지 아니할 것이로대/ 할수가 잇난대로 손과발/ 놀니기는 쉬지 아니하야서/ 주먹힘 튼튼하게 만커던/ 地球[지구]라도 따려부서바리고/ 발ㅅ길질 뻣뻣하게 잘커던/ 月中桂[월중계]도 보기조케 것어차/ 앗가운 一平生[일평생]을 空然[공연]히/ 옷밥씨름 하난데 쓰지마라/ 그러면 거름장사 개剝匠[박장]/ 되난편이 또한 나흐리로다。//
* 1909. 1월 ‘소년’ 제2년 제1권

소년 대한(少年 大韓) / 최남선
1// 크고도 넓으고도 영원(永遠)한 태극(太極)/ 자유(自由)의 소년대한(少年大韓) 이런 덕(德)으로/ 빛나고 뜨거웁고 강건(剛健)한 태양(太陽)/ 자유(自由)의 대한소년(大韓少年) 이런 힘으로/ 어두운 이 세상에 밝은 광채(光彩)를/ 삐지는 구석 없이 던져 두어서/ 깨끗한 기운으로 탸게 하라신/ 하늘의 부친 직분(職分) 힘써 다하네/ 바위틈 산골 중(中) 나무 끝가지/ 자유(自由)의 큰 소리가 부르짖도록/ 소매 안 주머니 속 가래까지도/ 자유(自由)의 맑은 기운 꼭꼭 차도록// 2// 우리의 발꿈치가 돌리는 곳에/ 우리의 가진 기(旗)발 향(向)하는 곳에/ 아프게 앓는 소리 즉시(卽時) 그치고/ 무겁게 병(病)든 모양 금시소생(今時蘇生)해/ 아무나 아무던지 우리를 보면/ 두 손을 벌리고서 크고 빛난 것/ 청(請)하야 달라도록 만들 것이오/ 청(請)하지 아니해도 얼른 주리라.// 3// 판수야 벙어리야 귀머거리야/ 문등이 절름발이 온갖 병신(病身)아/ 우리게 의심(疑心)말고 나아오너라/ 즐겨서 어루만져 낫게 하리라/ 우리는 너의 위(爲)해 화편(火鞭) 가지고/ 신령(神靈)한 `빱티씀'을 베풀 양으로/ 발감개 짚신으로 일을 해가는/ 하늘의 뽑은 나라 자유대한(自由大韓)의/ 뽑힌 바 소년(少年)임을 생각하여라.//
* 1908. 2월 ‘소년’

신대한소년(新大韓少年) / 최남선
1// 검붉게 글은 저의 얼굴 보아라/ 억세게 덕근 저의 손발 보아라/ 나는 놀고 먹지 아니 한다는/ 표적(標的) 아니냐./ 그들의 힘줄은 툭 불거지고/ 그들의 뼈……대는 떡 벌어졌다/ 나는 힘들이는 일이 있다는/ 유력(有力)한 증거(證據) 아니냐/ 옳다 옳다 과연(果然) 그렇다/ 신대한(新大韓)의 소년(少年)은/ 이러 하니라.// 2// 전부(全部)의 성심(誠心) 다 들여 힘 기르고/ 전부(全部)의 정신(精神) 다 써 지식(知識) 늘여서/ 우리는 장차(將次) 누를 위(爲)해 무슨 일/ 하려 하느냐/ 약(弱)한 놈 어린 놈을 도울 양으로/ 강(强)한 놈 넘어뜨려 `최후승첩(最後勝捷)은/ 정의(正義)로 돌아간다'는 밝은 이치(理致)를/ 보이려 함이 아니냐/ 옳다 옳다 과연(果然) 그렇다/ 신대한(新大韓)의 소년(少年)은/ 이러 하니라.// 3// 그에겐 저의 권속(眷屬)이나 재산(財産)의/ 사유(私有)한 것은 아무것도 다 없이/ 사해팔방(四海八方) 제 몸이 가는 데가/ 저의 집이요/ 일천하(一天下) 억만성(億萬姓)이 모두 형제(兄弟)오/ 땅 위에 생식(生殖)하는 온갖 품물(品物)이/ 저의 재산(財産) 아닌 것이 없는 듯/ 지극(至極)히 공평(公平)하더라/ 옳다 옳다 과연(果然) 그렇다/ 신대한(新大韓)의 소년(少年)은/ 이러 하니라// 4// 앞으로 나갈 용(勇)은 넉넉하야도/ 뒤흐로 물를 힘은 조곰도 없어/ 뻣뻣한 그 다리는 아무 때던지/ 내어 디디었고/ 하늘을 올려 봄엔 그 눈 밝어도/ 내려다보는 것은 아주 어두워/ 밤낮 위로 올라가는 빠른 길/ 힘써 찾을 뿐이러라/ 옳다 옳다 과연(果然) 그렇다/ 신대한(新大韓)의 소년(少年)은/ 이러 하니라.//
* 1909. 1월 ‘소년’ 제2년 제1권

대한소년행(大韓少年行) / 최남선
따듸따닷따! 두당둥당둥!/ 대천세계(大千世界) 덮고 남는 우리 기(氣)운을/ 한번 한(限)껏 못 뿜어서 무궁한(無窮恨)인데/ 수미산(須彌山)을 바로 뚫는 우리 용맹(勇猛)을/ 아직 조금 못 써보아 독자고(獨自苦)로다/ 이런 기(氣)운 이런 용맹(勇猛) 한 데 모아서/ 이 세상(世上)에 도량하는 부정불의(不正不義)를/ 토멸(討滅)코자 의용대(義勇隊)를 굳게 단성(團成)해/ 대한소년(大韓少年) 당당보무(堂堂步武) 나아가노나.// 따듸따닷따! 두당둥당둥!/ 번듯번듯 장공(長空) 덮은 작고 큰 기(旗)엔/ 발발마다 정의자(正義字)가 신면목(新面目)이오/ 번쩍번쩍 일광(日光)가린 길고 짧은 칼/ 끝끝마다 정의신(正義神)이 전승무(戰勝舞)추네/ 말 바르고 이치(理致) 맞고 형세장(形勢壯)하게/ 거침없이 나아가는 우리 군전(軍前)에/ 안 꺾이는 군사(軍士)란 게 누구 있으며/ 안 눌리는 형세(形勢)란 게 어대 있나뇨// 따듸따닷따! 두당둥당둥!/ 조기조기 반짝반짝 보이는 것이/ 무엇인지 너희들이 알아보느냐/ 다만 앞만 보고 가서 얼른 취(取)하라/ 용사(勇士)에게 돌아갈 바 승첩등(勝捷燈)이라/ 급(急)하게나 완(緩)하게나 쉬지만 말고/ 처음 정(定)한 우리 목적(目的) 굳게 지켜서/ 끈기있게 용맹(勇猛)있게 가기만 하면/ 빼앗을 자(者) 다시 없다 우리 것일세,// 따듸따닷따! 두당둥당둥!/ 화락(和樂)에 찬 하늘 풍악(風樂) 즐겁게 울고/ 비둘기의 모양으로 하나님 임(臨)해/ 개가(凱歌) 불러 돌아오는 우리 군인(軍人)을/ 모든 천사(天使) 내달아서 맞아 들여서/ 보좌(寶座)앞에 승전훈장(勝戰勳章) 친(親)히 주실 때/ 우리 영광(榮光) 우리 복락(福樂) 한(限)이 없겠네/ 한 시(時) 한 각(刻) 다투어서 얼른 성공(成功)케/ 훈장(勳章)들고 기다리심 벌써 오래네// 따듸따닷따! 두당둥당둥!/ 나아가세 나아가세 기(氣)껏 나가세/ 대한소년(大韓少年) 의용군인(義勇軍人) 큰 발자취로/ 성큼성큼 건장(健壯)하고 용맹(勇猛)스럽게/ 최후승첩(最後勝捷) 얻기까지 기(氣)껏 나가세/ 허큘쓰의 높은 산(山)도 한번 뛰우고/ 태평양(太平洋)의 넓은 바다 한 번 헤엄해/ 정의도중(正義圖中) 왼 세계(世界)를 집어느라신/ 하늘 명령(命令) 성취(成就)토록 기(氣)껏 나가세//
* 1910. 10월 ‘소년’

구작(舊作) 삼편(三篇) / 최남선
우리는 아무것도 가진 것 없소/ 칼이나 육혈포나―/ 그러나 무서움 없네,/ 철장(鐵杖) 같은 형세(形勢)라도/ 우리는 어찌 못하네./ 우리는 옳은 것 짐을 지고/ 큰 길을 걸어가는 자(者)임일세.// 우리는 아무것도 지닌 것 없소,/ 비수나 화약이나―/ 그러나 두려움 없네,/ 면류관의 힘이라도/ 우리는 어찌 못하네./ 우리는 옳은 것 광이(廣耳)삼아/ 큰 길을 다스리는 자(者)임일세.// 우리는 아무 것도 든 물건 없소,/ 돌이나 몽둥이나―/ 그러나 겁 아니 나네/ 세사(細砂) 같은 재물로도/ 우리는 어찌 못하네./ 우리는 옳은 것 칼 해집고/ 큰 길을 지켜보는 자(者)임일세.//
나는 천품(天稟)이, 시인(詩人)이, 아니리라. 그러나, 시세(時勢)와 및, 나 자신(自身)의 경우(境遇)는, 연(連)해 연방(連方), 소원(素願)아닌, 시인(詩人)을 만들려 하니, 처음에는, 매우 완고(頑固)하게, 또, 강맹(强猛)하게, 저항(抵抗)도 하고, 거절(拒絶)도 하였으나, 필경(畢竟), 그에게 최절한 바 되어, 정미(丁未)의, 조약(條約)이, 체결(締結)되기 전(前) 삼삭(三朔)에, 붓을, 들어, 우연(偶然)히, 생각한 대로, 기록(記錄)한 것을 시초(始初)로 하야, 삼사삭(三四朔) 동안에, 십여편(十餘篇)을, 얻으니, 이, 곳, 내가 붓을, 시(詩)에, 쓰던 시초(始初)요, 아울러, 우리 국어(國語)로, 신시(新詩)의 형식(形式)을, 시험(試驗)하던, 시초(始初)라. 이에 게재(揭載)하는 바, 이것 삼편(三篇)도, 그 중(中)엣, 것을, 적록(摘錄)한 것이라. 이제, 우연(遇然)히. 구작(舊作)을, 보고, 그 시(時), 자기(自己)의 상화(想華)를, 추회(追懷)하니, 또한, 심대(深大)한, 감흥(感興)이, 없지 못하도다.//
한 말 하는 일 조금 틀림없도록/ 몽매(夢寐)에라도 마음 두고 힘 쓰게/ 말이 좋으면 함박꽃과 같으나/ 일은 흉해도 흰 쌀알과 같더라/ 눈 비움도 좋으나/ 배부른 것 더 좋이// 자유(自由)로 제 곳에서 날고 뜀은/ 옳은 이 옳은 일의 거룩한 힘/ 깊고 큰 저 연못에 거침없이/ 넓고 긴 저 공중(空中)에 마음대로/ 그와 같이 다니고/ 뛰노도록 합시다.//
* 1909. 4월 ‘소년’

꽃 두고 / 최남선
나는 꽃을 즐겨 맞노라./ 그러나 그의 아리따운 태도를 보고 눈이 어리어,/ 그의 향기로운 냄새를 맡고 코가 반하여,/ 정신(精神)없이 그를 즐겨 맞음 아니라/ 다만 칼날 같은 북풍(北風)을 더운 기운으로써/ 인정(人情)없는 살기(殺氣)를 깊은 사랑으로써/ 대신(代身)하여 바꾸어/ 뼈가 저린 얼음 밑에 눌리고 피도 얼릴 눈구덩에 파묻혀 있던/ 억만(億萬)목숨을 건지고 집어 내어 다시 살리는/ 봄바람을 표장(表章)함으로/ 나는 그를 즐겨 맞노라.// 나는 꽃을 즐겨 보노라./ 그러나 그의 평화(平和) 기운 머금은 웃는 얼굴 흘리며/ 그의 부귀 기상(富貴氣象) 나타낸 성(盛)한 모양 탐하여/ 저(主著) 없이 그를 즐겨 봄이 아니라/ 다만 겉모양의 고운 것 매양 실상이 적고/ 처음 서슬 장(壯)한 것 대개 뒤끝 없는 중(中)/ 오직 혼자 특별(特別)히// 약간영화(若干榮華) 구안(苟安)치도 아니코 허다마장(許多魔障) 겪으면서 굽히지 않고/ 억만(億萬) 목숨을 만들고 늘여 내어 길이 전(傳)할 바/ 씨열매를 보육(保育)함으로/ 나는 그를 즐겨 보노라.//
* 1909. 5월 ‘소년’ 제2년 제5권

막은 물 / 최남선
밤이나 낮이나 조리졸졸/ 한 시(時)도 한 각(刻)도 쉬지 않고/ 한(恨)없는 바다에 가기까지/ 곤(困)한 줄 모르고 흘러가네/ 가다가 중로(中路)에 사람들이/ 고이게 한다고 조약돌로/ 흐르지 못하게 막았으나/ 제 자유(自由) 조금도 잃지 않네/ 돌틈을 뚫어서 나가던지/ 모래로 스며서 들어가던지/ 볕 발에 끄러서 피우던지/ 어떻게 무슨 법(法) 써서라도/ 가운데 끊임이 연(連)할 때에/ 땅 속에 숨은 물 합(合)할 때에/ 공중(空中)에 각(各) 방울 엉길 때에/ 내 되고 샘 되고 비 되어서/ 전(前)같이 꾸준히 쉬임 없이/ 그대로 바다로 향(向)해 가니/ 만덕이 수고는 헛일되고/ 흐르는 자유(自由)는 상(傷)함 없이/ 영원(永遠)히 마음대로 갈 곳 가네/ 밤에나 낮에나 쉬지 않고//
* 1909. 7월 ‘소년’

우리 님 / 최남선
털 관(冠) 머리에 쓰고/ 몸에 금수(金繡) 옷 입고/ 가슴에는 훈장(勳章) 차/ 이상(異常)하게 점잖은/ 행세(行世)하는 그 사람/ 우리 님이 아니오.// 코에 지혜(智慧)를 걸고/ 입에 아닌 것 발라/ 눈을 팽팽히 뜨고/ 남다르게 높은 체/ 하려 하는 그 사람/ 우리 님이 아니오.// 돈 있기로 유식(有識)코/ 재물(財物)있어 의젓코/ 넉넉으로 푼푼해/ 제가 잘 나 그런 듯/ 하게 아는 그 사람/ 우리 님이 아니오.// 우리 님아 우리 님/ 네 모양은 어떠뇨/ 나는 맨몸 맨머리/ 입고 가린 것 없어/ 약(弱)한 쥐를 놀래려/ 아니 쓰오 괴가죽.// 우리 님아 우리 님/ 네 자랑은 무어뇨/ 나는 근본(根本)을 알고/ 아는 대로 하나니/ 분(紛) 바르고 흰 빛깔/ 자랑하지 아니하오// 우리 님아 우리 님/ 네 가진 것 무어뇨/ 흠(欠)이 없는 내 마음/ 수정(水晶)같이 맑으니/ 여럿의 것 거두어/ 나눌 때에 빛 안 내오.//
* 1909. 8월 ‘소년’

삼면환해국(三面環海國) / 최남선
1// 부글부글 끓는 듯한 동(東)녁 하늘 보아라,/ 상서(祥瑞)기운 농조하야 빽빽히 찬 안에서/ 온갖 세력(勢力) 근원(根源)되신 태양(太陽)이 오르네,/ 하늘은 붉은 빛에 휩싸인 바 되었고/ 바다는 더운 힘에 항복(降服)하야 있도다,/ 어두움에 갇혀 있던 억천만(億千萬)의 사람이/ 눈을 뜨고 살펴보는 자유(自由)였으며/ 몸을 일혀 움직이는 기운(氣運) 생기네,/ 기뻐하고 좋아하는 아침 인사(人事) 소리는/ 어느 말이 태양공덕(太陽功德) 송축(頌祝)함이 아니냐,/ 이러하게 만중(萬衆)이 다 우러보는 태양(太陽)은/ 벽해수(碧海水)를 사이 하야 먼저 우리 비취네,/ 그렇다 우리 나라는/ 동방(東方)도 바다이니라.// 2// 부쩍 부쩍 빗발나는 남(南)녁 하늘 보아라,/ 광명(光明)구름 천정(天井)되어 가로 퍼진 면(面)에는/ 온갖 세력(勢力)이 주재(主宰)이신 태양(太陽)이 떠 있네/ 인축(人畜)은 밝은 빛에 부지런을 다투고,/ 초목(草木)은 붓는 힘에 자라기를 힘쓰네,/ 게으름에 붙들렸던 억천만(億千萬)의 품물(品物)이/ 손발 놀려 일을 하는 활기(活氣)있으며/ 조화(造化) 빌어 열매 맺는 생의(生意) 보이네,/ 가다듬고 힘써 하는 한나절 일 모양은/ 어느 것이 태양정기(太陽精氣) 표현(表現)함이 아니냐,/ 이러하게 만물(萬物)이 다 힘을 입는 태양(太陽)은/ 영해수(海水)를 사이하야 마주 우리 쪼이네,/ 그렇다 우리 나라는/ 남방(南方)도 바다이니라.// 3// 우걱 우걱 찌는 듯한 남(南)녁 하늘 보아라,/ 채색(彩色)노을 장막(帳幕)이뤄 둘려쳐 논 속으로/ 온갖 세력(勢力) 작성(作成)하신 태양(太陽)이 드시네,/ 산악(山岳)은 남은 빛에 공손(恭遜)하게 목욕(沐浴)코/ 하해(河海)는 걷는 힘에 질서(秩序)있게 밀리네,/ 어려움에 빠져 있는 삼천세계(三千世界) 중생(衆生)이/ 차별(差別) 없이 베풀어진 은광(恩光) 입으며/ 한량(限量) 없이 헤쳐 놓은 덕파(德波) 젖었네/ 즐거움과 편안함의 저녁 때의 광경(光景)이/ 어느것이 태양택화(太陽澤化) 점피(霑被)함이 아니냐,/ 이러하게 만계(萬界)가 다 복(福)을 받는 태양(太陽)은/ 황해수(黃海水)를 사이하여 끝내 우리 쏘시네,/ 그렇다 우리 나라는/ 서방(西方)도 바다이니라.//
* 1909. 9월 ‘소년’

국풍일수(國風一首) / 최남선
바다야 크다마라 대기권 잔 삼아도/ 그속에 딸코 보면 얼마되지 못하리라/ 우주에 큰 행세 못하기는 네나 내나 다 일반//
* 1909. 9월 ‘소년’

태백범(太白虎) / 최남선
갈구리 같은 나의 발톱에 긁혀지지 않는 것이 어대 있으며, 톱 같은 나의 이에 씹혀 지지 않는 것이 어대 있으리오. 그러나 나는 이 톱과 이를 온전히 정의(正義)를 위(爲)하여 쓰노니, 다른 범은 죽이기 위(爲)하야 잡아먹되 나는 살리기 위(爲)하여 잡아먹으며, 다른 범은 저를 위(爲)함이되 나는 남을 위(爲)함이라, 나의 이루려함은 오직 진(眞)이오, 선(善)이오 미(美)뿐이니라// 우리 주(主)의 큰 뜻 붙인 거룩한 세계(世界)/ 어린 아해 좀 장난터된 지 얼마뇨/ 그 경륜(經綸)을 이루어서 천직(天職) 다하게/ 발 내여놓은 너의 모양 숭엄(崇嚴)하도다/ 사천년간(四千年間) 길러 나온 호연(浩然)한 기운/ 시원토록 뿜어보니 우주(宇宙)가 적고/ 대륙(大陸) 모에 움크럿던 웅대(雄大)한 몸이/ 우뚝하게 이러나니 지구(地球)가 좁다// 우뢰같은 큰 소리를 한번 지르면/ 만국(萬國)이 와 엎대리니 네가 왕(王)이오/ 번개같은 맑은 눈을 바로 뜰진댄/ 만악(萬惡)이 다 살아지니 네가 신(神)일세// 즐거움의 좋은 동산 어지린 티끌/ 어진 이가 둘러 박힌 사랑입으로/ 남김 없이 집어 먹어 전(前) 모양될 때/ 하늘 문(門)이 열리리라 너의 발 앞에// * 범은 통골(通骨)이라 고개를 돌리지 못하고 벗을 기운만 가진지라, 위로 뛰기만한다 함은 전(前)부터 이르는 말이어니와, 이는 과연(果然) 그러하니 우리는 오직 진취(進取)만 하도록 또 연방(連方) 향상(向上)만 하도록 천생(天生)이 된지라 진취(進取)와 향상(向上)은 이것이 곳 우리의 전체(全體)이니라. 그러므로 하늘이 품수(稟授)하신 것을 거슬려 앞에 몰려 있는 온갖 날랜 기관(機關)을 게을리 쓰면 뜻밖에 어려움이 이르나니라.//
* 1909. 11월 ‘소년’

태백산(太白山)과 우리 / 최남선
한줄기 뻐친 맥(脈)이 삼천리(三千里)하야/ 살지고 아름다고 튼튼하게 된/ 이러한 꽃 세계(世界)를 이루었으나/ 우리의 목숨 근원(根源) 이것이로다.// 숭고(崇高)타 그의 얼굴 광명(光明)이 돌고/ 헌앙(軒昻)타 그 허위대 위엄(威嚴)도 크다/ 하늘에 올라가는 사다리 모양/ 보지는 못 하야도 그와 같을 듯.// 그 안화(顔華) 볼 때마다 우리 이상(理想)은/ 빛나기 태양(太陽)으로 다투려 하고/ 그 풍신(風神) 대(對)할 때에 우리 전진심(前進心)/ 하늘을 꿰뚫도록 높아지노라.// 억만년(億萬年) 우리 역사(歷史)는 영예(榮譽)뿐이니/ 그의 눈 아래에서 기록(記錄)함이오/ 억만인(億萬人) 우리 동포(同胞)는 원기(元氣) 찼으니/ 그의 힘 내리 받아 생김이로다.// 그리로 솟아나는 신령(神靈)한 물을/ 마시고 난 큰 사람 얼마 많으뇨/ 힘있는 조상(祖上)의 피 길이 전(傳)하야/ 현금(現今)에 우리 혈관(血管) 돌아다니네// 백곡(百穀)이 풍등(豊登)토록 비를 만들어/ 은(恩)으로 도와줄 땐 그가 부모(父母)요/ 만악(萬惡)을 숙살(肅殺)하게 바람을 내여/ 위(威)로써 깨우칠 땐 엄사부(嚴師傅)로다.// 우리는 몸을 바쳐 그를 섬기니/ 따뜻한 그의 품은 항상(恒常) 봄이오/ 정성(精誠)을 기우려서 교훈(敎訓) 받으니/ 타작(打作)의 마당에서 수확(收穫) 많도다.// 육체(肉體)나 정령(精靈)이나 우리의 온갖/ 세력(勢力)의 원동력(原動力)은 게서 옴이니/ 언제든 충실(充實)하고 용장(勇壯)하여서/ 덜하지 아니함이 우연(偶然)함이랴.// 우리의 가슴 속엔 검은 구름이/ 머물러 본 일 없고 우리 머리엔/ 엉킨실 들앉은일 있지 아니해/ `환호(歡呼)'코 `역작(力作)'함도 그 힘이로다.// 어떠한 일을 하면 그의 밑에서/ 생겨나 살아나는 값이 되어서/ 떳떳한 얼굴 들고 그를 대(對)하여/ 마음에 미안(未安)함이 없게 되리오.// 무겁기 그와 같은 거동(擧動)으로써/ 드높기 그와 같은 생각을 쫓아/ 그처럼 항구(恒久)하게 노력(努力)하여서/ 그에게 아름다움 더할 뿐이라.// 일상(日常)에 마음두어 힘쓸지어다/ 모든 것 가운데서 높이 뛰어나/ 남들이 올려보게 만들어 줌이/ 그의 덕(德) 대답(對答)하는 외길시니라.// 이러한 좋은 데를 아무나 가져/ 이 복(福)을 누릴 수가 있음 아니라/ 소리를 크게 하여 우리 다행을/ 다른 곳 사람에게 자랑하리라.//
* 1910. 2월 ‘소년’

태백산(太白山)의 사시(四時) / 최남선
춘(春)// 혼자 우뚝./ 모든 산(山)이 말큼 다 훗훗한 바람에 항복(降服)하야,/ 녹일 것은 녹이고 풀릴 것은 풀리고,/ 아지랑이 분(紛)바른 것을 자랑하도다./ 그만 여전(如前)하도다./ 흰눈의 면류관(冕旒冠)이나, 굳은 얼음의 띠나,/ 어디까지던지 얼마만큼이던지 오직 `나!'/ 나의 눈썹 한 줄, 코딱지 한 덩이라도 남의 손은 못대여! 우러러보니 벽력(霹靂)같이/ 내 귀를 따린다 이 소래!/ 끝없다 진달래 한 포기라도./ `나는 산아희로라'.// 하(夏)// `베니비우쓰'야 한껏 하여라(` '은 이탈리아국 유명한 화산의 이름)/ 네 앞에 있는 누더기와 북데기를 누구다려 쓸라고 하랴./ 지중해(地中海)의 물이 끓어 뒤집혀 찌꺼기[渣滓]가 말큼 갈앉도록은 연방(連方) 그 밑에 통장작(通長斫)을 지펴라./ 우리의 의분(義憤)은 정(正)히 한껏 대목에 오르지 아니하였느냐./ 그가 바야흐로 이 생각을 하고 있는 듯./ 무럭무럭 김이 나고 부걱부걱 거품이 지고 활활활 결이 오르는 뭉텅이 구름이 살그먼 살그먼 혹(或) 피잉피잉 그의 머리로 오고 가고 하는도다/ 요동칠백리(遼東七百里)./ 그의 증왕(曾往)에 살러버린 터로다./ 화산(火傘)같은 여름볕―끝없는 벌판의 복사열(輻射熱)./ 모래는 알알이 타고 풀은 또야기 또야기 찐다./ 서남(西南)으로 오는 인도양(印度洋) 절기풍(節期風)아 왜 그리 더디냐,/ 어서 바삐 네 습기(濕氣) 가져다가 내 이마에 부드져라./ 지체(遲滯) 아니하고 생명(生命)의 비를 만들어 퍼부어 주마./ 의(義)를 위(爲)하는 용(勇)을 아끼는 내가 아니로라./ 희던 것이 검고 성기던 것이 빽빽한 구름./ 배로 허리로 어깨로 금시금시(今時今時)에 왼몸을 휩싸도다./ 수분자(水分子)는 연방(連方) 엉기도다./ 쏟는다. 쏴아……/ 벌써 이 세계(世界)는 그의 것이다 말은대로 둠이나 충충하게 소(沼)를 만듦이나!/ `힘'!/ 방울방울 떨어지는대로 이 소리.// 추(秋)// 하늘은 까…맣고, 훠…언하고, 한 일자(一字)./ 안하(眼下)에 남이 없는듯 엄전(儼全)하게 우뚝./ 끼룩 소리는 사면(四面)에서 나지만,/ 그의 위에는 지나가는 기러기떼가 없다./ 치웁다고 더웁다고 궁둥이를 요리조리하는 기러기./ 아니 넘기나? 못넘나?/ 한 손은 남(南)으로 내밀어 필리핀 군도(群島)의 폭우(暴雨)를 막고, 한 손은 북(北)으로 뻗쳐 시베리아 광야(曠野)의 열풍(烈風)을 가리는 그 용맹(勇猛)스러운 상(相)./ `우리는 대장부(大丈夫)로라'!/ 나리질닌 폭포(瀑布)―우거진 단풍(丹楓)―굳세고―빨갛고./ 우리 과단성(果斷性) 보아라하는 듯한 칼날 같은 바람은,/ 천군만마(千軍萬馬)를 모는 듯하게 무인지경(無人之境)으로 지치랴고 골마다 구렁마다 나와서 한데 합세(合勢)하는도다./ `휘이익! 휘이익! 내가 가는 곳에는 떨고 항복(降服)하지 아니하는 자(者) 없지! 휘이익!'/ 그의 전체(全體)는 언제던지 끄떡 없이 우뚝.// 동(冬)// 하얗게 덮이고 반들하게 피인 눈./ 평균(平均)의 신(神)! 태평(泰平)의 신(神)! 천국(天國)의 표상(表象)이로다!/ 그 속에는 멧 `어흥'이 감취였노?//
* 1910. 2월 ‘소년’

태백산부(太白山賦) / 최남선
지구(地球)의 산(山)―산(山)의 태백(太白)이냐?/ 태백(太白)의 산(山)―산(山)의 지구(地球)냐?// 시인(詩人)아 이를 묻지 말라./ 그것이 긴(緊)하게 찬송(讚頌)할 것 아니다.// 하늘 면(面)은 휘둥그럿코 땅바닥은 펑퍼짐한데,/ 우리 님―태백(太白)이는 우뚝!/ 독립(獨立)―자립(自立)―특립(特立),// 송굿? 화저(火著)? 필통(筆筒)의 붓?/ 영광(榮光)의 첨탑(尖塔)?/ 피뢰침(避雷針)? 기(旗)ㅅ대? 전간목(電桿木)?/ 온갖 아름다운 용(勇)이 한 데로 뭉크가어 된 조선(朝鮮) 남아(男兒)의 지정대순(至精大醇)의 큰 팔뚝!// 천주(天柱)는 부러지고 지축(地軸)은 꺾어져도,/ 까딱 없다 이 첨탑(尖塔)!// 삼손(유대국 용사의 이름)이 쳐도, 항우(項羽)가 달려도―구정(九鼎)을 녹여서 몽치를 만들어가지고 땅땅땅 따려도,/ 까딱 없다 이 팔뚝!// 지구면(地球面)의 물이 다 마르기까지,/ 정의(正義)의 기록(記錄)은 오직 이리라./ 그리하야 어두운 세상(世上)의 등탑(燈塔)이 되야 사람의 자식의 큰 길을 비추어 주리라.// 태양(太陽)이 잿덩어리 되기까지,/ 정의(正義)의 주인(主人)은 반드시 이리라./ 그리하야 어이 닭의 날개가 되어 발발 떠는 병아리를 덮어 주리라.// 아아 세계(世界)의 대주권(大主權)은 영원(永遠)이 첨탑(尖塔)―이 팔뚝에 걸린 노리개로다.// 하늘 면(面)은 휘둥그럿코 땅바닥은 펑퍼짐한데/ 우리 님―태백(太白)이는 우뚝.// 지구(地球)의 산(山)―산(山)의 태백(太白)이냐?/ 태백(太白)의 산(山)―산(山)의 지구(地球)냐?// 시인(詩人)아 이를 묻지 말라./ 그것이 긴(緊)하게 찬송(讚頌)할 것 아니다.//
* 1910. 2월 ‘소년’

태백(太白)의 님을 이별(離別)함 / 최남선
태백(太白)아 우리 님아/ 나간다고 슬퍼마라/ 나는 간다 가기는 간다마는/ 나의 가슴에 품긴 이상(理想)의 광명(光明)은 영겁(永劫) 무궁(無窮)까지도 네가 그의 표상(表象)이로다/ 뜬 구름이 태양(太陽)을 가림은 얻는다 그러나 그 광(光)은 가리지 못하느니라/ 퍼붓난 물이 불어 일어나는 불을 끄기는 한다 그러나 불 그것이야 털끝만치도 건드리기를 어찌해/ 회리바람이 먼지를 일으키면 너의 면목(面目)을 가리지 못함은 아니라/ 사나운 바람이 아침을 어찌 마치며 바람에 불려 일어난 티끌은 진정(鎭靖)될 때가 있나니/ 그럼으로 한때로다/ 대동국면(大東局面)의 감시자(監視者)로 세계평화(世界平和)의 결정(結晶)으로 모든 옳음의 활동력(活動力)의 원천(源泉)으로 너의 면목(面目)은 우흐로 무궁(無窮)에와 같이 아래로 무궁(無窮)에도 오직 빛날 것은 있으나 누가 흠집을 내겠느냐/ 좋은 때에 너를 올려다보니 네가 막대(莫大)한 동정(同情)을 주고 슬픈 때에 너를 치여다보니 네가 지상(至上)의 위로(慰勞)를 주도다/ 너의 앞에 있을 때에는 모든 감정(感情)과 조우(遭遇)가 다 혼연(渾然)히 융화(融和)하야 다만 방촌(方寸)에 희망(希望)의 빛이 반짝거렸을 뿐이었도다/ 그런데 이제 나는 너를 잠시(暫時) 떠나게 되었도다/ `알프'를 오를 때도 있으리라 `럭키'를 넘을 때도 있으리라 `스위스랜드'의 호산(湖山)이 혹(或)/ 나의 오랜 동안 우거(寓居)가 될지도 몰으리라 그러나 아침 저녁 기쁜 때 성난 때에 너를 대(對)하지 못할 것이 걱정이로다/ 우리는 다만 좁은 가슴이라도 큰 님을 용납(容納)할 수 있음으로 이 슬픔을 너그럽게 하리로다/ 나는 이제 가는도다―너를 등지고―너의 컴컴한 중(中)에 파묻힘을 보고/ 감히 즐기는 바가 아님과 같이 너를 그 모양대로 버려둠도 차마 하지 못하는 바로라/ 그러나 너와 나로 떠나게 하는 운수(運數)는 나는 항거(抗拒)치 아니하고 그대로 떠나노라/ 떠나게 한 운수(運數)를 떠나서 합(合)하게 할 운수(運數)임을 믿고―떠나게 한 운수(運數)를 떠나서 합(合)하게 할 운수(運數)들 맞이하기 위(爲)하여/ 잘 있거라 나는 간다/ 봄은 오느니라 제왕(帝王)의 권력(權力)과 재화(財貨)의 세력(勢力) 밖에 있는 동군(東君)은 때만 되면 오느니라/ 무궁화(無窮花) 다시 피건 또 다시나 만나자!//
* 1910. 4월 ‘소년’

뜨거운 피 / 최남선
세상(世上)사람이 말큼 다 나불나불한 입술과 산뜻산뜻한 생각과 귀쳐진 눈과 끝들린 수염(鬚髥)을 가지고 분분하게 되고 못될 것을 말하더라도/ 그는 그오 나는 나다!/ 나는 그런 요량(料量)이 당초(當初)부터 없음을 다행(多幸)으로 아노라./ 우리의 혈관(血管)으로 돌아 다니는 것은 통장작(通長斫)집 흰 가마물보담도 더 뜨거운 피./ 우리의 흉우(胸宇)에 그득한 것은 한(限) 없는 동력(動力)으로 거칠 것 없이 나가는 기차(汽車)와 같은 전진심(前進心)이로다./ 경영(經營)하고 착수(着手)하고 진행(進行)하다가 실패(失敗)?성공(成功)하고 입신(立身)?살신(殺身)하고 이것이 우리의 생애(生涯)를 결락(結絡)한 사실이로다./ 일이라고 있으면 하리라!/ 어여쁜 것 있으면 온 마음을 다 바쳐 상사(相思)하리라. 그가 어여쁘니깐 날로 상사(相思)할 뿐이지, 이루고 못 이룸은 우리의 물을 바도 아니오, 알 바도 아니라./ 잘되면 살고 못되면 죽고, 너를 운명(運命)이라 하더구나,/ 그런 것은 내가 알아둘 소용(所用)없어./ 우리는 다만 생각할 뿐 만들 뿐 할 뿐/ 뜨거운 피와 전진심(前進心)이 있기까지는 그러하지/ 아니하려하여도 아니할 수 없어./ 송곳 같은 바늘이 왼몸을 두루두루 찌를지라도 나는 원망하지 아니하리라./ 가시 있는 것이면 장미(薔薇)로만 알지./ 구린내어니 지린내어니 내면 다 마치 한가지로 알겠다./ 차별(差別)이 있기로 얼마 있어./ 뜨거운 국에 맛 알겠느냐, 뜨거운 피는 온갖 차별(差別)의 날을 무디게, 아니라 아주 없이 한다./ 아무것이고 다 좋아./ 하지./ 피는 선동(煽動), 마음은 조세(助勢), 그리하여 두 팔이 들먹들먹/ 가만히 있을 순 없다./ 대(大)한 세계(世界)는 소(小)한 나를 위(爲)하여 있도다./ 열두 번 죽어도 재(才)주 있난 사람은 아니되여.//
*1910. 3월 ‘소년’ 제3년 제3권

나라를 떠나는 슬픔 / 최남선
운수(運數)는 나로 하여금 나라를 떠나게 하도다/ 버티려 하면 손도 있고 뻗디디려 하면 발도 있으나 우리는 구태여 운수(運數)의 시킴을 항거(抗拒)하려 아니 하노니 그 소용(所用) 없음을 아는 고(故)라/ 오천춘광(五千春光)에 한(限)없이 번화(繁華)하였던 무궁화(無窮花)! 내가 어떻게 사랑하던 것이뇨/ 우리의 활개가 적은 줄을 모름이 아니나 너를 위(爲)하여는 대붕(大鵬)의 날개같이 덮어 주려 하였고/ 나도 사람의 자식(子息)이라 자연(自然)의 맹폭(猛暴)을 제복(制伏)치 못할 줄은 알으나 너를 위(爲)하야는 보기좋게 이 몸을 버려서라도 막을 데까지는 막고자 하지 아님이 아니로라/ 그러나 운수(運數)로다/ 운수(運數)는 기어(期於)코 너를 한번 흔들어 떨어뜨리고야 만다고 하는구나/ 그리하여 나로 하여금 나라를 떠나게 하는도다―젖 떨어진 아해를 만들게 너의 목숨은 이미 너의 자유(自由)에 벗어났도다 그런데 너의 목숨을 자유(自由)로 하는 자(者)는 너의 목에 칼을 얹었도다/ 살기를 영화(榮華)로이 하였으니 지기도 영화(榮華)로이 하여라! 살았을 때에도 사나이였으니 질 때에도 사나이여라!/ 저 천심(天心)에 달린 달을 보니 이즐어질 때에는 조곰도 원통(寃痛)해 하지 아니하고 이즐어지는 대신(代身)에 둥글 때에도 거침 없이 둥글어 지는도다/ 너로 하여금 조락(凋落)하게 한 운수(運數)는 미구(未久)에 번영(繁榮)케할 운수(運數)가 아닌 줄 누가 담보(擔保)한다더냐/ 너의 온갖을 다 뭉치여 모다 `때'의 바퀴에 실려라 서(西)으로 향(向)하였던 것이 곧 동(東)으로 향(向)하게 되리라/ 떨어져라 죽어라 나는 가노라/ 피울 때 살을 때에 다시 오리라 다행(多幸)히 미력(微力)이 남아 있노니 동군(東君)의 수레를 밀기에 쓰리라//
* 1910. 4월 ‘소년’

봄맞이 / 최남선
봄이 한번 돌아 오니 눈에 가득 화기(和氣)로다/ 대동풍설(大冬風雪) 사나울 때 꿈도 꾸지 못한 바이라/ 알괘라 무서운건 `타임'(때)의 힘.// 구십춘광(九十春光) 자랑노라 원림처처(園林處處) 피운 꽃아/ 겉모양만 번영(繁榮)하면 부귀기상(富貴氣像) 있다하랴/ 진실로 날 호리려면 오직 열매.// 나무에 꽃피움은 열매맺기 위(爲)함이라/ 같은 음문(陰門) 같은 자궁(子宮) 동식물(動植物)이 일반(一般)이나/ 사람이 신령(神靈)태도 꽃만 좋다.// 신이화(莘荑花) 피었단 말 어제런듯 들었더니/ 어느덧 만산홍록(滿山紅綠) 금수세계(錦繡世界) 되었도다/ 놀랍다 운기(運氣)에는 무왕불복(無往不復).// 꽃이 한둘 아니어니 고은 것도 많을지오/ 천만(千萬)가지 과실(果實)에는 단 것인들 적으랴마는/ 꽃 좋고 열매 좋긴 도화(桃花)인가.// 부근(斧斤)이 온다해도 겁(怯)낼 내가 아니어든/ 왼아침을 다 못가는 여간 바람 두릴소냐/ 말마다 내 열매는 튼튼무궁(無窮).// 한마음 바라기를 열매맺자 피었으니/ 목적달(目的達)킨 일반(一般)이라 떨어지기 사양(辭讓)하랴/ 어찌타 그 사이에 웃고 울고.//
* 1910. 4월 ‘소년’ 제3년 제4권

화신(花神)을 찬송(贊頌)하노라고 / 최남선
나는 네가 한(限)껏 공평(公平)함을 아노라./ 제왕(帝王)의 정원(庭園)에와 같이 한사(寒士)의 파옥(破屋)에도 너의 고은 모양은 한결같고, 지혜(智慧)로운 사람의 눈에와 같이 준우(蠢愚)한 자(者)의 눈에도 기쁜 뜻은 틀리지 아니하고나./ 공평(公平)함을 아는 그 때에 나는 아울러 미쁨도 알며 참스러움도 알며, 더욱 자아(自我)를 발전(發展)하려는 큰 노력(努力)도 아노라./ 무엇이던지 불어 날리고 꺾어 넘어뜨리지 아니하면 말지 아니하겠단 동풍(東風)이 날로 밤으로 잇대여 불고,/ 어저께 오던 몹슬 비가 오늘에도 오기를 예사(例事)로 하되,/ 그러나 너의 생(生)을 보존(保存)하고 씨를 번식(繁殖)하기에는, 일즉 절망(絶望)한 일도 없고 마음을 게을리한 일도 없도다./ 견인(堅忍) 하는도다, 역배(力排)하는도다. 그리하야 자방(子房)에 알이 익기까지는 격전(激戰)을 사양치도 아니하고 분투(奮鬪)를 즐겨 하도다./ "무정(無情)한 사람아, 잔인(殘忍)한 사람아. 나의 꽃을 딸 터이면 따거라. 가지를 꺾을 터이면 그도 마음 대로 하여라. 아무리하야도 최후(最後)의 결실(結實)에는 어찌하지 못하리라."/ 너의 호어(豪語)를 나는 괴이(怪異)하게 여기지 아니 하리라./ 따가는 열을 알므로, 미리 스물을 준비(準備)하며, 꺾어가는 하나를 알므로 애초에 열을 준비(準備)함을 내가 봄일세라./ 살아야 한다! 늘어야 한다! 어려운 중(中) 고로운 중(中), 이리 하랴면 필요(必要)오 없지 못할 많은 희생(犧牲)을 앗기지 아니하는 너의 용기(勇氣)를 사랑하노라―내 손으로 만든 자식(子息)을 죽임이나 다름없이 하는 간절(懇切)한 앗기는 정(情)도 모름이 아니나―/ 공평(公平)도 좋다, 미쁨도 좋다, 참스럼도 좋다. 가장 귀(貴)하고 높은 도덕적(道德的) 생명(生命)을 우리 손에 거치게 하니, 이것만으로도 우리는 너를 찬송(讚頌)하지 아니치 못할지로다./ 하물며 너는 우리의 몸과 마음이 생활(生活)의 피로(疲勞)와 미혹(迷惑)의 고뇌(苦惱)와 및 자아실현(自我實現)에서 생긴 몸살을 앓을 때에 금강석(金剛石)보다 곱고 라디움보다 귀(貴)한 힘의 교훈(敎訓)을 줌이에리오./ 너는 어여쁘다. 외모(外貌)에와 같이 내심(內心)도 그러하면, 원(願)하건대 너의 공평(公平)으로써 너의 가진 참 힘을 우리 사람에게 골고루 빌려주려무나./ 사람이란 왜 이리 약(弱)하여질 소인(素因)이 있는가? 이를 생각할 때마다 더욱 너희를 부러워하며 기림은 우리의 참정(情)이로다.//
* 1910. 5월 ‘소년’

봄의 앞잡이 / 최남선
버드나무 눈 트라고 가는 비가 오는고야/ 개나리 진달래꽃 어서 피라 오는고야// 보슬보슬 나려와서 초근초근 축여주매/ 질척질척 젖은 흙이 유들유들 기름 돈다// 아침 나절 저녁 나절 나무 기슭 기슭마다/ 참새무리 들래임을 벌써부터 들었으니// 늙은 제비 젊은 제비 긴 날개 번득이며/ 옛집 찾아 오는 꼴도 이 비 뒤엔 보이렸다// 이 비는 방울마다 목숨의 씨 품었나니/ 나무거니 풀이거니 맞는 놈은 싹이 나며// 이 비는 오는 족족 목숨의 샘 부룻나니/ 사람이고 물건이고 더럭더럭 기운나네// 첫 비에 이른 꽃과 둘째 비에 늦은 꽃에/ 차례차례 입 벌리고 못내 기뻐 웃을 적에// 첫 비에 속잎 나고 둘째 비에 겉잎 나온/ 떨기떨기 버드나무 푸른 울을 쌓으렷다// 골에 숨은 꾀꼬리가 목청 자랑 하고 싶어/ 비단 소매 떨트리고 이 속에 와 붙이렸다// 훗훗이 볕 쪼이고 산들산들 바람불 때/ 목을 놓아 꾀꼴거려 기쁨의 봄 읊으렷다// 아지랑이 뜨는 곳에 종달새가 팔죽팔죽/ 햇빛 바로 받는 곳엔 씨암닭이 뒤뚱뒤뚱// 나물 캐는 색시들의 바구니가 드북하고/ 어린 아이 소꼽상이 가지가지 질번질번// 젊은이의 얼굴에는 함박꽃이 피려 하고/ 늙은이의 굽은 허리 조금하면 필 듯하다// 엎드렸던 모든 것이 한꺼번에 일어나며/ 쪼그렸던 모든 것이 길길이 기를 펴네// 오래든 잠 문득 깨어 굳은 얼음 깨뜨리고/ 지저귀며 흐르는 물 소리소리 기쁨이오// 살려는 힘 북바쳐서 땅을 트고 나오는 움/ 한 푼 한 치 커질수록 더욱 똘똘 더욱 씩씩// 사나운 추위 밑에 몹시 눌려 있은 만큼/ 때를 만나 뺏는 힘이 무덕지고 어마어마// 죽다 살게 하는 봄의 앞잡이로 오시오니/ 끔찍해라 거룩해라 고마울사 이 비로다// 이 비의 지난 뒤엔 앓는 소리 사라지며/ 이 비의 가는 곳엔 느긋한 빛 널려지네// 소리 없이 잘게 와서 큰 좋은 일을 하는 그 비/ 자작자작 떨어짐을 얼이 빠져 내가 보네//
* 1917. 4월 ‘청춘’

새봄 / 최남선
지붕에 눈 덮이고 창유리에 성에 겹쳐/ 왔다는 새봄 소식 찾아 볼 길 없을러니/ 책상 위 매화가지 틈 꽃송이가 보여라// 제주서 보내여 온 몇몇 포기 들마늘을/ 바둑돌 사분자(砂盆子)에 고이 길러 꽃이 피니/ 선비집 수선화 호사 부족함이 없도다// 생명의 묵은 신비 너에게 놀래여라/ 허리가 동강난 채 물고 넘어섰을망정/ 움 나고 청이 자라서 꽃도 피지 않는가//
* 1957. 1. 1. 동아일보

바둑이 / 최남선
우리 집 바둑이는 어여쁘지요./ 아침마다 학교에 가는 때 되면/ 문밖에 대령했다 앞장 나서서/ 겅둥둥 동구까지 뛰어나와요.// 우리 집 바둑이는 어여쁘지요./ 왼채에서 올려하면 소리만 나도/ 어느덧 앞에 와서 꼬리를 치며/ 기쁨으로 남 먼저 맞아줍니다.// 야드를한 털이며 날씬한 허리/ 모양도 곱거니와 말도 잘 들어/ 공일마다 데리고 들에 나가서/ 왼 하루 시달려도 싫다 안 해요.// 보는 이는 누구나 어여쁘대요/ 동무들도 부러워 않는 이 없어/ 바둑이는 또 없는 정든 벗이니/ 언제든지 위하고 사랑합니다.//
* 1913. 1월 붉은 저고리 제1년 제2호

붕(鵬) / 최남선
하늘 덮는 날개가 내게 있으니/ 한번 치면 구름이 발 아래로다/ 중생(衆生) 실은 대괴(大塊)가 티끌만 아득/ 왼 태공(太空)이 내 앞에 엎드렸구나// 청천(靑天)은 등에 지고 거침 없스니/ 쌓인 바람 두터워 구만리(九萬里)로다/ 물러갈가 나갈가 뜰가 나릴가/ 억천만성세계(億千萬星世界)도 한참에로다// 한 깃에 해를 싸니 불이 게 있고/ 한 깃에 은하(銀河) 싸니 물 또한 무궁(無窮)/ 두 깃을 한대 펴고 바꾸어침에/ 묵은 무겁 다 타고 타면 꺼지네// 간 데 족족 깨치고 이룩하고서/ 돌아오매 우주(宇宙)가 새 목숨이라/ 쭉지를 오무리고 남명(南溟)에 누니/ 누리의 깨끗함이 아직은 한참//
* 1915. 3월 ‘청춘’

南漢山城[남한산성] / 최남선
南漢山城[남한산성]/ 人心[인심]에 쌓지않고 흙덩이에 쌓은城[성]이/ 일있는 다른날에 얼마緊[긴]히 씌웠던가/ 南漢[남한]의 丁丑年[정축년]만을 悲劇[비극]이라 하리요.// 西將臺[서장대]/ 무엇을 잊지말꼬 남의원수 않이니라/ 내힘이 뫼면살고 갈라지면 넘어짐을/ 또한번 이다락에서 깨히게함 이니라.// 無忘樓[무망루]/ 西將臺[서장대] 넓은眼界[안계] 百萬大兵[백만대병] 기를랐다./ 弘多時[홍다시] 오든길로 風雨[풍우]같이 되드러가/ 보일것 못보였으니 땅도無色[무색] 한지고.//
* 자유신문

추색(秋色) / 최남선
울 머리 늙는 박과 지붕 위에 널린 고추/ 가을 볕 쨍쨍함을 혼자 받아 빛내거늘/ 병아리 오락가락이 덧부치기하여라// 물가의 작은 마을 저녁 내에 잠겼고나/ 부유한 긴 가람이 가믈가믈 잠들더니/ 새하얀 한 새가 날라 꾸려던 꿈 깨져라// 눈같은 센 머리를 혼자 끄덕거리면서/ 땅꺼질 이런 풍년 몇 번 있었던가 하고/ 금물결 구비치는 들 보고 다시 보아라//
* 1954. 9월 ‘새벽’

국화(菊花) / 최남선
찬 선비 졸부(富)되는 추구월(秋九月)이 늦었어라/ 뜰앞의 타타황금(朶朶黃金) 엄청나지 아니하냐/ 이때야 밥 아니 먹다 배곯을 줄 있으리.// 진황화(眞黃花) 위연명(僞淵明)*을 가릴 적도 옛날 일사/ 피거니 말거니를 묻는 이도 없을시고/ 동리(東籬)의 한참 총국(叢菊)도 너무 빛이 없도다.// 천연코 순수하기 황국(黃菊)에서 더울뉘냐/ 취양비(醉楊妃) 오홍설백(烏紅雪白)* 가지가지 빛과 모양/ 시인(市人)의 호사(豪奢)장난야 무엇무엇 하리요.//
* 진황화 위연명(眞黃花 僞淵明): 이목은(李牧隱)의 중양시(重陽詩)의 명구(名句).
* 취양비(醉楊妃)와 오홍(烏紅)과 설백(雪白)은 재배국화(栽培菊花)의 명칭.
* 1954. 12. 13. 자유신문

국화(菊花) / 최남선
저 맵씨 저 향기로 봄빛 속에 섞인대도/ 모자랄 아무 것이 있을 리가 없건마는/ 겸손히 오늘에 와서 홀로 피어 있고녀// 봄바람 여름 장마 차례차례 물리치고/ 가을의 이 영화(英華)가 그 그루에 맺혔거늘/ 지난 날 싸운 자취야 묻는 이가 있던가// 일년의 모든 영화 아낌없이 남 맡기고/ 허술한 울타리 밑 귀통이땅 의탁하되/ 찬서리 집 없는 서슬 눈띄우지 않는가//
* 1956.11.20. 한국일보

李忠武公[이충무공] / 최남선
第四一一回[제사일일회] 誕辰[탄신]// 日本[일본]엔 秀吉[수길]이요 滿洲[만주]에는 누루하티/ 東洋[동양]의 大風雲[대풍운]이 말려일어 나려할 때/ 朝鮮[조선]에 李舜臣[이순신]내신 天意[천의]누가 아던고.// 우리임 精忠大義[정충대의] 무엇아니 感動[감동]한가/ 긴칼을 옆에놓고 한번南海[남해] 흘기시매/ 草木[초목]은 고개숙이고 魚龍[어룡]벌벌 떠도다.// 眼前[안전]의 짙은어둠 주체할수 없는이때/ 일곱해 긴긴밤을 光明[광명]으로 끌어내어/ 겨레의 太陽[태양]이시던 임이새로 그려라.//
* 1956년

仁村追念[인촌추념] / 최남선
눈덮인 하루길이 井邑驛[정읍역]이 분명코나/ 歳[세]밑의 驛頭[역두]까지 그대나오 실줄알리/ 따뜻이 손을잡고서 新作路[신작로]를 걷도다.// 보이는 길을따라 변한거리 더듬으며/ 이렇다 저렇다는 몇마디말 하고나니/ 어느덧 예까지온일 더할말이 없도다.// 어둑한 內藏山[내장산]이 어이저리 鮮明[선명]한가/ 할말도 들을말도 더있을것 같지않아/ 이끌고 주막에드니 잠도수이 오거라.//
* 1957년 2월 19일 동아일보

牛耳川[우이천] / 최남선
其一[기일]// 萬景臺[만경대] 내리는 물/ 龍[용]개울에 조촘하여// 병문안 흘낏 보고/ 머리살짝 돌이키면// 漢江[한강]아 西海[서해]야하고/ 소귓내가 되느니.// 其二[기이]// 밤나무 썩은등걸/ 딴죽걸어 걷어차고// 후미져 성난 물이/ 콸콸소리 지를제면// 바위에 졸던 다람쥐/ 깜짝놀라 숨느니.// 其三[기삼]// 꼬리 편 날피리요/ 세상만난 중태로다// 이개울 넓을세라/ 펄펄뛰고 놀기바빠// 여느데 바다있음을/ 알려고도 않느니.//

아느냐 네가 / 최남선
공작이나 부엉이나 참새나/ 새 생명 가진 것은 같은 줄/ 아느냐 네가// 쇠 끝으로 부싯돌을 탁 치면/ 그새어미 불이 나서 날림을/ 아느냐 네가// 미난 물이 조금조금 밀어도/ 나중에는 원물만큼 느는 줄/ 아느냐 네가// 건장한 이들이 가는 먼 길을/ 다리 성치 못하여도 가는 줄/ 아느냐 네가//

주정으로 지내는 / 최남선
주정으로 지내는 이 세상(世上)에를/ 깬 마음으로 가자고 허덕이는 그/ 청맹관(靑盲官)의 어린 피 급한 흐름에/ 배가 되어 그대로 떠나가도다.// 살 같은 앞걸음에 벼락과 같이/ 때리는 검은 바위에 다닥다려서/ 비로소 맛 알도다 바다 무서움/ 쏟아지는 뜨거운 눈물 방울에.// 많은 모순(矛盾) 못쳐서 터진 그 창자/ 꾀매려도 힘 없는 곤한 그의 손/ 옛모양 되게 할 약 번히 알고서/ 먹으려단 못 먹는 알콜이로다.//

그는 배가 줴뜯어 / 최남선
그는 배가 줴뜯어 약 얻으랴오/ 오장(五腸) 가득 갑갑이 발버둥치오/ 의원(醫員) 있을 듯한 덴 다 가서 보오/ 번번 실망(失望)하면도 또 속으러 가오// 산에 갔단 구름의, 물엔 고기의/ 비웃음만 보았소 침만 받았소/ 어느 때는 풀숲에 메뚜기에게/ `멀겋고 속없다'는 욕(辱)도 당했소.// `힘주시오 힘주어' 소리 지르고/ 나날이 예저기로 미친 개짓하오/ 아직도 사람이란 눈물 동물(動物)로/ 없는 이겐 주고야 마는 줄 아오//

나는 참 안 바라오 / 최남선
나는 참 안 바라오 원수의 자유(自由)/ 구(求)함은 한껏 몹쓸 결박(結縛)이로세/ 내 몸은 풀어졌네 손은 지쳤네/ 그 원수를 쫓기에 얻은 바로세.// 그러나 이렇게는 참 못견디어/ 치고 조여 사게는 마쳐야겠네/ 불 뜨거움 찬 얼음 왼통 모르는/ 늘어진 신경(神經)으론 하루 못 살아// 오소서 우리 주(主)여 살려주소서/ 오색(五色) 당사(唐絲) 칭칭칭 엮은 동아줄/ 위 아래로 왼몸을 감고 탱자(撑子)쳐/ 따끔한 중(中) 새 정신(精神) 나게 하소서//

어디로 가려는지 / 최남선
어디로 가려는지 저도 모르오/ 이마가 맞닿도록 나갈 뿐이오/ 수표교(水標橋)목 와서야 생각이 났오/ 무슨 긴(緊)한 일 있어 누가 찾음을.// 남은 너무 애쓴다 아껴들 주오/ 저도 또한 남다른 수고라 하오/ 해동갑 일어나서 해동갑 들어와/ 얻은 것 생각하곤 스스로 웃소.// 정신(精神)차려 남의 틈 벗어나야 함/ 창(槍)끝같이 때때로 마음 찌르오/ 어젯밤 잠들 때엔 더욱 괴로워/ 굳이 결단(決斷)했건만 또 나선 길요.//

 



최남선(崔南善, 1890~1957) 시인, 사학가
육당 최남선은 문화운동가이며 근대 문학 발전에 기여한 공로가 있는 반면, 이광수와 함께 거론되는 변절한 친일파이다. 대한제국의 국비 유학생으로 일본에 유학을 갔으나 와세다 대학 재학 중 퇴학 처분되어 귀국했다. 이광수와 함께 소년지를 창간했으나 일제의 압력으로 폐간되었고, 《붉은 저고리》, 《아이들 보이》, 《새별》, 《청춘》등의 잡지를 발간하였으나 모두 강제 폐간되었다. 1919년 3.1 만세 운동 당시 민족대표 49인의 한 사람으로 참여했고, 기미독립선언서를 작성, 낭독하였다. 3.1 운동을 사주한 혐의로 투옥되었다가 1921년에 석방되었다. 1927년 조선총독부의 연구비와 생계 지원 유혹으로 조선사편수위원회에 참여하면서 친일 성향으로 전향하여 논란이 되었다. 그러나 그의 친일 행적은 적극적인 친일이 아니라는 반론이 1950년대에 장준하 등에 의해 제기된 바 있다. 이광수, 홍명희와 더불어 조선의 3대 천재로 대표되었다.  자세한 프로필[위키백과]

 

 

"'독립선언서' 쓴 손으로 친일 책 출간하다니...그런 역적은 비록 만 번 죽여도 죄가 남는다"

[특별기획-미리보는 친일인명사전 18] 사학자 육당 최남선

www.ohmynews.com

 

 

 

최남선 "참회는 곤란…행동 전체가 옳진 않았다" | 연합뉴스

(서울=연합뉴스) 백나리 기자 = "나에게는 나의 신조가 있어 행동하였고 그러하기에 근본적으로 인간 최남선이가 참회를 한다는 것은 내 자신으로 ...

www.yna.co.kr

 

 

 

“육당의 꿈은 조선의 세계화, 친일은 오해입니다”

프랑스 유학 준비 당시(1932년)의 육당 최남선 일가. 결국 가진 못했지만 유학을 위해 육당이 머리를 자른 유일한 사진이라고 한다. 뒷줄 왼쪽부터 큰딸 한옥, 삼남 한검, 차남 한웅, 장남 한인. 앞

www.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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