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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고향의 추억 / 김순일

부흐고비 2021. 10. 12. 09:01

고향이 사라졌다. 개발에 밀려 옛 모습을 볼 수 없다. 어린 시절의 아련한 추억이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경기도 오산 고향 집은 100여 호가 모여 사는 산골이다. 예전의 시골집이 그랬듯이 초가집으로 안채와 사랑채, 장독대, 우물, 창고가 있었다.

뒤뜰에 감나무가 있어 가을이 되면 감이 주렁주렁 열렸다. 잘 익은 연시는 간식으로 그만이었다. 쌀독에 넣어서 만들어진 홍시의 맛은 지금 어디에 가서 맛볼 수 있을까? 감나무 꼭대기에 까치 먹이로 남겨놓은 몇 안 되는 것마저 탐을 내었다. 꼭대기 우듬지로 올라갔다가 나무가 부러져 초가지붕 위로 떨어지는 사고가 있었다. 삭은 지붕은 작은 몸피도 버티지 못하고 땅으로 떨어졌다. 쿵 하는 소리가 너무 커서 놀란 부모님이 달려와 주저앉으셨다. 그때의 상처가 아직도 이마에 남아있다. 극성맞았던 그 사고의 훈장이 되어 지금도 아련하다.

사랑채에는 황소를 추억하게 한다. 새벽에 아버지는 출근하기 전에 소죽을 끊이셨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소죽을 맛있게 먹고, 그것도 모자라 온종일 되새김질하는 황소의 모습은 신기하면서도 멋있었다. 그뿐인가 무심한 표정으로 우직하게 일하는 소의 모습은 다정하고 믿음직스러웠다. 나는 소의 심성을 닮아서인가 중요한 결정을 할 때는 소가 되새김질하듯 되풀이 생각하고 심사숙고하게 된다. 소죽 끊이고 난 후 불에다 구운 군고구마의 맛은 또 어떤가. 어머니께서 감나무 밑에 심은 딸기 또한 잊을 수 없는 어린 시절의 먹거리였다.

맛있는 간식이 가득한 할머니 방은 외양간 옆, 사랑방이었다. 그 방은 아이들의 놀이터였다. 자상한 할머니가 우리를 따스하게 보듬어 주시던 사랑이 가득한 방이었다.

한편 동네 친구들은 같은 해에 태어난 여자 7명, 남자 10명이었다. 우리들은 땔감 나무를 하러 혹은 나물을 캐러 산으로 들로 뛰어다니며 놀았다. 여름이면 수박과 참외 서리를 하다가 들켜 부모님이 값을 치러주셨고 많이 혼도 났다. 다시는 안 하겠다고 약속은 했지만, 서리의 짜릿함은 우리를 유혹해 계속 서리꾼이 되기도 했다. 이와 같은 예쁜 추억들은 꿈 많든 시절의 쓰고 단 감초가 되어 고향을 그리게 하였다.

초등학교 가는 10리 길은 기찻길과 산과 들을 지나는 오솔길이 있었다. 부모님이 원하시는 대로 여러 명이 재잘거리며 기찻길로 같이 학교에 갔다. 기차가 오는지 레일에 귀를 대보고 울림이 있으면 기차를 피하였다. 터널에서 뱀이 허물을 벗고 다가오는 듯한 기차를 보았을 때 모두 놀라서 죽을힘을 다해 피했던 아찔한 기억이 스쳐 간다. 나이가 들고 보니 위험한 기찻길로 학교 가라고 하신 부모님이 이해되지 않아 어머니께 물었더니 지름길이라 학교 지각하지 말라고 그랬다고 하셨다. 부모님의 깊은 생각을 이해하지 못한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가끔 하굣길에 같이 다니던 남학생들이 갑자기 없어져 여학생들이 무서워 울면서 뛰었다. 그네들이 장난치려고 묶어 놓은 덫에 걸려 넘어져 정신이 없을 때 신이 나서 웃으며 나타나곤 했다. 어리둥절은 잠시이고 남학생들의 출현이 반갑고 고맙기까지 한 것은 무서움을 타는 여학생들의 여린 마음 탓이리라.... 이런 코흘리개 친구들이 세월이 유수처럼 흘러 환갑이 넘었다. 고향이 무엇인지. 오늘날도 삶이 힘들고 어려울 때면 고향은 생각만으로도 따뜻한 삶의 힘을 주는 곳이다.

지금은 고향을 돌아와도 그리던 부모 형제, 친구들은 간데없고 높은 하늘만 푸르다. 세월이 흐르고 환경이 변해도 내 가슴속엔 언제나 어릴 때 모습이 일렁거린다. 비록 고향은 형체도 없이 사라졌지만, 추억은 삶의 향기를 깊게 피워 열심히 살라며 위안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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