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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전염병이 유행하는 상황 속에서 사회적 거리두기를 지키며 아버지 제사를 지냈다. 전통인 제사의 풍습까지 변하게 한 코로나가 언제나 물러갈 것인가.

아버지는 오산 미군 부대에 근무하시다가 철도청 공무원으로 제2의 직업을 가졌다. 미군 부대에 계속 근무하셨으면 나도 어깨 너머로 영어를 배워 실력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지방 역에 근무할 때 교육받으러 서울 오면 딸의 얼굴을 보고 싶어 연락하셨다. 아버지와 함께 좋아하는 술을 마시면서 세상살이 이야기와 함께 직장생활의 대선배로서 원칙을 알려 주셨다. 1980년대 초 민주화를 요구하는 집회가 무척 많았다. 공직자는 정치에 관여하면 안 된다는 말씀이 이해가 안 되었다.

그렇지만 해가 거듭될수록 아버지의 가르침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되었다. 또 일터에서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열정 ‧ 노력 ‧ 건강 ‧ 성실 ‧ 신뢰의 5가지 각오라고 가르쳐 주셨다. 삶의 원칙을 스스로 실천하면서 공직 생활을 마무리하셨다. 정년퇴직 5년 후인 66세에 암으로 돌아가셨다. 하늘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효도도 하고 싶고 많은 추억을 만들고 싶었다.

나는 아버지의 5가지 원칙을 마음에 새기면서 서민들 주거 안정을 위한 주택건설 공기업에서 38년간의 공직 생활을 마쳤다. 오랜 공직 생활에서 명예롭게 퇴직할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의 가르침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버지의 제사가 다가오면서 고민이 되었다. 코로나19 전염병으로 사회적 거리두기 방침에 따라 5명 이상이 모이는 것을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평소에는 사촌들까지 참가하여 북적거렸다. 하는 수 없이 남동생 부부와 막내 여동생, 나 4명만으로 제사를 지내기로 했다.우리 집은 큰 집이라 제사가 많았다. 윗대의 제사는 시제 때 한꺼번에 지내고, 두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합치고,아버지 어머니의 제사만을 지내고 있다. 외아들에게 시집온 올케가 늘 제사상을 차리느라고 수고가 많다. 이번에는 혼자서 제사상 차리기가 힘들 것 같아 다른 해 보다 일찍 남동생 집에 도착하였다. 전통이라고는 하지만 제사 음식은 복잡하고 조심스러워 며느리의 고충이 큰 것 같다. 상품화되어 쉽게 살 수 있는 음식도 손수 만든다. 제사 음식을 정성껏 만드는 것을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늘 고마울 따름이다. 옛말에 조상을 잘 섬기면 잘된다는 말처럼 모든 일이 복 받을 것이라고 믿는다. 밖에 나간 남동생이 귀가가 늦으면서 올케가 남자들의 전유물이었던 지방과 축문을 쓴다. 나는 한 번도 써본 적이 없다. 올케가 기특하기도 하고 부럽기까지 했다. 제사상 차림을 도와주기는 했지만, 주도적으로 하는 것은 처음이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 우왕좌왕하는데 남동생이 들어왔다. 불안했던 마음이 놓였다. 준비한 음식을 제기에 담아 놓으면, 남동생이 격식에 맞게 제사상을 차렸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매년 해오던 경험에서 인지 능숙한 손놀림이 믿음직스러웠고, 아버지에 대한 정성을 다한 동생 부부가 고마웠다.

제사 풍경이 변했다. 남자 1명, 여자 3명이 지내다 보니 그동안 남자들이 읽었던 축문을 읽을 사람이 없었다. 내가 읽기로 했다. 처음으로 읽어 본다. “이번에는 아들이 아닌 딸이 아버지께 아룁니다. 제삿날에 아버지를 생각하니 술잔을 기울이며 나누었던 대화, 기차 삯이 무료라 기차 타고 다녔던 여행이 주마등처럼 지나갑니다. 끊임없이 베풀어주신 은혜에 보답할 길이 없는 것은 여전합니다. 삼가 술과 제수를 올리오니 흠향하시옵소서.” 설레는 마음으로 처음은 읽을 때 떨렸지만 조금 지나 안정을 찾고 천천히 실수 없이 잘 마무리했다.

축원의 글을 읽으면서 아버님이 앞에 계신 것 같은 착각이 들면서 너무도 보고 싶었다. 여자가 축문을 읽다니... 출세했다고 동생들이 놀렸다. 코로나19 전염병 덕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4명만 술잔을 올리니 제사가 일찍 끝났다. 전보다 적은 인원으로 조용히 음복하니 씁쓸했다. “아버지 속상해하지 마세요. 코로나19 때문이니 이해해주세요.”라고 말씀을 드렸지만, “천상에서 아버지는 어떻게 생각하실까”에 마음이 짠하였다.

코로나19 전염병은 세상을 많이 바꿔 놓았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4명만 참여하여 아버지 제사를 지내게 됐고, 남자의 전유물이었던 축문을 쓰고 읽음을 남녀 구별이 없도록 했다. 그뿐인가. 결혼식, 장례식, 제사 등 여러 가지 삶의 방식을 바꾸어 놓았으니 말이다. 비대면 세상이 만들어낸 좋은 방식은 일시적으로 흘러가는 현상이 아니라 새로운 전통으로 자리를 잡아 더욱 알찬 삶의 활력소가 되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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