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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써니 / 천복자

부흐고비 2021. 10. 28. 09:17

한때는 다섯 마리의 잉꼬들이 들어있어 복잡하던 새장에, 이제 혼자 남은 써니 Sunny의 점심 식사가 한창이다. 모이통에 담긴 그냥 조 알갱이는 별로 즐기지 않는 그녀가 열심히 쪼아 먹고 있는 것은, 막대기에 조와 꿀, 비타민제를 버무려 부쳐놓은 과자 같은 모이다. 점심 식사를 마친 써니는 횟대에 잠시 올라앉았다가, 거울이 달린 곳으로 가서 거울 속의 자신을 보며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 열심히 지저귀기 시작한다. 친구들이 모두 세상을 떠난 이후, 남편과 아이가 친구를 대신하라고 사다 걸어놓은, 자기와 똑같이 생긴 플라스틱 새에게 써니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는다. 이제 벌써 8살이 된 써니가 얼마나 더 우리 곁에 머물지는 알 수 없지만 (수의과 의사는 잉꼬가 10년을 살면 많이 사는 것이라고 했다), 우리는 그녀의 말년이 건강하고 편안하도록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

잉꼬들이 우리 집에서 살게 된 역사는 벌써 12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그 때 아직 유치원에 다니던 다섯 살의 아이가, 매일 개를 사달라고 (아이는 내게 개를 사주던지, 아니면 동생을 낳아달라고 요구했다) 청을 하던 어느 날, 이웃에 살던 갓 연금생활자가 된 부부가 이사 가면서 잉꼬 두 마리를 한별이에게 선물하고 갔다. 새로 이사 갈 집이 좁아서 큰 개와 잉꼬를 함께 기를 자리가 없다는 것이었다. 두 개의 모이통과 기둥 모양의 물통이 하나, 올라앉을 횟대가 두 개, 둥근 공 모양의 플라스틱 방울 장난감과 사면에 거울이 붙은 장난감이 매달려 있는, 지붕이 아치형으로 생긴 하얀 새장 속에서 잠시 지저귐을 멈춘 주지와 푹키를 들고 오는 내 옆에서, 아이는 연신 새장을 쓰다듬으며 좋아했다. 이렇게 해서 주지(Susi)와 푹키(Pucki)는 우리 가족이 되었다.

푹키는 잉꼬들에게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가슴과 배는 초록색에 검은색과 회색이 뒤섞인 깃털을 하고, 주지는 하늘색 바탕에 검은색과 흰색이 엇갈린 깃털을 하고 있는데, 앞머리 부분은 하얀색이 가슴의 하늘색과 어울리며 더욱 흰빛을 낸다. 당연히 한 쌍일 것이라는 처음의 추측과는 달리, 이들은 둘 다 암놈들이었다. 아이와 남편은 신이 나서. 잉꼬에 관한 책을 사다 읽으며, 잉꼬용의 모이 외에도 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가지에 달린 천연 조를 사다주고, 상춧잎이나 사과 조각, 삶은 감자 조각을 주는 것 외에도, 조류상점에 갈 때마다 신기한 장난감이나 줄사다리, 부리를 깎는데 쓰는 하얀 돌조각이나 비타민제, 잉꼬용 케잌을 사다 날랐다.

아침이면 잉꼬들이 지저귀는 소리에 잠이 깨고, 유치원을 다녀오는 아이와 직장을 다녀오는 남편이 집을 들어서면, 잉꼬들의 안부를 먼저 살피며 이야기를 나누는 행복한 날들이 1년이 지나고, 아이가 초등학교에 갓 입학했을 때, 우리 가족은 남편의 직장을 따라 부다페스트로 이사를 가며 우리 잉꼬들과 작별을 하게 되었다. 마침 한별이의 친구인 데니스의 할아버지가 잉꼬를 여러 마리 키우고 있어서, 주지와 푹키는 그 잉꼬들의 무리에 함께 섞여서 살게 되었다.

1년여의 헝가리 생활을 끝내고, 우리는 남편의 새 직장을 따라 발틱 해변의 로스톡으로 이사를 했다. 바다가 있다는 사실 하나에 반해서, 우리는 그곳에 우리들의 집을 장만했다. 그동안 콘테이너에 들어있던 짐을 가져와 정리를 한 후, 우리가 한 가장 첫 번째 일은 주지와 푹키를 되찾아 오는 것이었다. 왕복 1400 Km의 길을 자동차로 달려서, 우리는 주지와 푹키를 집으로 데려왔다. 하루 종일이 걸려서 차를 타고 돌아오는 동안, 새들이 불안해하지 않도록 저녁에 잠을 잘 때 씌우는 군청색 면 보자기로 새장을 덮었지만, 그래도 불안한지 새들은 한마디도 지저귀지 않았다.

아이가 근처의 초등학교로 전학을 하고, 친구들을 사귀고, 축구와 정구를 배우기 시작하고 풀륫을 배우며 일상에 적응해 가는 동안, 주지와 푹키도 그들의 새로운 일상에 적응해 갔다. 남향에 4개의 큰 유리문을 가진 거실에 자리를 잡은 이들은, 낮에는 거실의 나무에 올라앉아 부리로 돋아나는 나뭇잎을 갈아 내리거나 커텐 봉 위에 올라앉아 놀다가 어두워지면 스스로 새장으로 들어가, 새장 안에 매달린 두 개의 그네 위에 앉아 잠을 잤다.

이듬해 봄의 어느 날, 새장의 문이 열린 것을 잊어버리고 내가 잠시 유리문을 열고는 청소를 시작하는 사이 일이 벌어졌다. 갑작스런 청소기의 소음에 놀란 푹키가 열린 문틈으로 날아가 버린 것이었다! 급하게 문을 닫았지만, 새는 앞마당을 건너 이웃집들의 지붕들 사이를 날아 사라져 가는 새의 뒷모습이 절망하는 내 눈을 채웠다.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는 하루종일 울며 "엄마는 바보야! Mama ist doof!"를 외치며 푹키를 찾았고, 친구들의 집마다 전화를 걸어서 푹키를 보았는지 물었다. 잠시간의 나의 부주의가 불러온 이 참사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머릿속이 하얗게 빈 듯이 아무런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잉꼬는 집 안에서 자라 방향 감각이 잘 없어 집을 찾기가 어려울 것이라며, 무서운 솔개에게 잡아먹히거나 이제 여름이 지나 겨울이 닥치면 먹이를 얻지 못해 굶어 죽을 것이라며, 아이는 자꾸만 울었다.

다음 날 남편이 얼른 조류상에서 태어난 지 5주가 되었다는 아기 잉꼬를 한 마리 사 왔다. 오로지 푹키만을 외치며 다른 어떤 다른 새도 받아들일 것 같지 않던 아이가, 머리는 흰색이고 하늘색 털이 주조를 이루는 아기 잉꼬를 보자, 눈물 자국 사이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아이는 아기 잉꼬의 이름을 율리라고 지었다. 다음 날 우리는 푹키를 찾는 전단을 만들어서, 사람들의 발길이 잦은 수퍼마켓, 버스정류장 등지에다 붙였다.

집을 나간 잉꼬를 찾습니다!
머리는 노란색, 깃털은 푸른색이고 앞가슴은 노란색으로
이런 잉꼬를 보신 분은 연락바랍니다.

정말 푹키를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보다는, 그냥 손을 놓고 앉아서 아이의 슬픔이 가라앉기를 기다릴 수만은 없어서 전단을 만들어 붙여본 것인데, 다음 날 이런 색깔의 잉꼬가 정원에 날아든 것을 잡아두었다는 전화가 왔다! 남편과 아이는 신이 나서 커다란 쵸콜렛을 한 상자 사 들고 푹키를 찾으러 갔다.

"엄마! 푹키가 돌아왔어! 이것 봐. 푹키 맞지, 그지?"

아이는 좋아서 어쩔 줄을 몰라했지만, 내가 본 그 새는 푹키가 아니었다. 색깔은 똑같으나, 이 새는 몸집이 훨씬 더 크고 잘 생겼다. 주지와 푹키는 서로의 꽁지를 물어뜯는 나쁜 버릇이 있어, 둘 다 꼬리의 털이 가지런하지 못하고 굽어 있는데, 이 새는 전체의 깃털에서 윤기가 자르르 흐르며 정말 아름다워, 잉꼬의 왕이 있다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리고 결정적인 차이점은 콧날이 파란색인 것이 푹키와는 달리 수놈인 것이 분명했다. 얼마가 지나자 아이도 이 새가 푹키가 아니라는 것을 인정한 듯, 룩키(Lucki)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룩키와 함께 우리 집 잉꼬들의 삶에 새로운 변화가 왔다. 아직 겨울이 채 가지 않았는데, 어느 날 아이가 내게 말했다. "엄마, 룩키가 주지랑 교배를 해", 라고. 아이의 말을 듣고 눈여겨보니, 이들은 햇볕이 잘 드는 남향 유리문의 커텐 봉에 올라앉아 하루 종일 기분 좋은 소리를 내며 지저귀다가 정말로 서로 사랑을 나누는 것이었다! 그것도 아주 자주.

새들이 자유로 날아다니며 자기가 오르고 싶은 곳에 앉아 하루종일 노래를 불러대니, 이들이 날아 앉기를 좋아하는 우리 집 거실에 놓인 장의 윗부분은 상처투성이이다. 이들은 그냥 앉아있는 것이 아니라, 노래를 부르는 만큼이나 열심히 늘 부리를 갈아대기 때문이다. 나무를 쪼아 망가트리지 못하도록 헌책이나 종이상자들을 접어서 얹어보았지만, 먼지가 날리도록 종이를 잘게 찢어대는 통에 언젠가는 포기하고 그냥 나무로 된 장을 쪼아대도록 내버려 두었다. 한번은 슈피겔지를 얹어두었더니, 슈피겔지를 열심히 쪼아대던 주지가, 마치 잡지를 읽는 양 책장을 넘기는 장면이 하도 재미있어서 사진을 찍어두었다. "우리 잉꼬들은 당신들 잡지의 열렬한 독자랍니다!"라는 글과 함께 슈피겔지에 보내면 엄청 기뻐할 것이란 생각을 하면서.

어느 날 새들을 살피느라 거실의 찬장 위를 올려다보던 키가 큰 남편이 "주지가 알을 낳았어!"하고 소리쳤다. 의자를 딛고 올라서 보니, 정말 대여섯 개의 알들이 찬장 위에 뒹굴고 있었다. 우리는 얼른 새들이 알을 품는 상자를 사다가 아래 부분에 솜처럼 생긴 부드러운 깔개를 하고 알을 넣어주었다. 그런데 이 새는 알을 품지는 않고, 자꾸만 새로운 알을 낳기만 했다. 어느 주말에 바닷가에 산책갔다가 거실로 들어선 우리 가족은 깜짝 놀랐다. 횟대에 앉아있는 주지의 엉덩이에 무언가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기 때문이다. 알을 너무 많이 낳으며 힘을 주다 보니, 알집이 밖으로 빠져나온 모양이었다! 동물병원에 달려가 아래 부분을 꿰매고 영양제를 먹이고 하였지만 힘이 다한 듯, 이틀 후 주지는 세상을 떠났다. 우리는 주지를 부엌휴지로 싼 다음 깨끗한 신발 상자 속에 담았다. 아이는 자신이 아주 아끼는 자동차, 그림들, 포케몬 골드 카드, 작은 공...의 장난감들을 하나씩 넣어 통을 가득 채웠다. 정원의 양지바른 곳에 주지를 묻고, 십자가를 만들어서 자리를 표시했다. 아이는 이렇게 우리 집에 처음으로 왔던 푹키, 주지와 이별을 했다.

주지가 떠나고 나자, 그 사이 1살이 넘은 율리가 룩키와 머리털을 긁어주며 쌍을 이루더니, 교배를 하고 알을 낳기 시작했다. 율리는 주지와는 달리 둥근 구멍이 하나만 뚫린 컴컴한 알을 품는 상자에 들어앉아 열심히 알을 품었다. 알을 품는 동안 청소를 할 수 없는 상자 안에는 아주 작은 꽈리 모양을 닮은 율리의 똥이 쌓여갔다. 마침 겨울 방학이라 일주일 동안 여행을 갔다 집을 들어선 우리는 기쁨의 함성을 질렀다. 우리가 없는 그 사이에 새끼들이 부화를 한 것이었다! 율리가 품었던 여섯 개의 알 중에서 세 개가 부화해 있었다. 아직 깃털이 나지 않아 발가벗은 것처럼 보이는 이 작은 동물들은 마치 털이 다 뽑힌 닭처럼 보인다. 그러나 점차 부드러운 회색의 털이 자라나 온몸을 덮기 시작하면서 엄마 옆에서 고개를 박고 있는 모습이 그렇게 예쁠 수가 없다. 이들이 점점 자라자 몸을 덮은 털의 색깔이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둘은 룩키를 닮은 녹색이 주조를 이루고, 하나는 율리의 하늘색도, 룩키의 녹색도 아닌, 온몸이 노란 털로 덮힌 소위 '햇님잉꼬 Sonnensittich'인 것으로 드러났다! 가슴과 양쪽 어깨에 약간의 회색을 두르기는 했지만, 전체가 병아리처럼 노란 햇님잉꼬가 태어나다니! 그래서 우리는 그녀는 '써니 Sunny', 그녀의 오빠들은 '발루'와 '발토'로 이름을 지어주었다. 착한 아빠 룩키는 써니가 날아 내리는 것을 옆에서 지켜주고, 우리가 거실 바닥에 모이를 뿌려주면 써니를 데리고 다니며 모이를 챙겨주곤 했다. 그 사이 초등학교 3학년이 된 아이는, 집에서 태어난 잉꼬들을 구경하러 오는 친구들의 방문을 받느라 분주한 나날을 보냈다.

이제 다섯으로 식구가 늘어난 잉꼬들은 아침부터 잠자리에 들 때까지 쉬지 않고 노래하고, 먹고 간간이 고개를 한쪽으로 꼬고 낮잠을 즐기며 부산한 하루를 보낸다. 작은 동물들이지만 각자의 성격도 아주 특이해, 룩키는 아주 마음 씀씀이가 착하고 너그럽고 발루와 발토는 별 모난 데가 없는데 반해, 써니는 성질이 좀 사납다. 항상 좋은 먹이를 우선해서 먹고, 다른 새가 좋은 자리에 앉아있으면 쫓아내고 그 자리를 차지하고 앉는다. 잠자리에 드는 저녁 시간이 되면, 두 개의 횟대와 두 개의 그네를 두고 자리싸움이 벌어지는데, 이때는 서로의 꽁지를 물어뜯기도 한다. 새들의 숙면을 위해 밤새 새장을 덮어주는 보자기를 아침에 걷어내면, 항상 그네를 차지하고 앉은 이들은 엄마 율리와 딸 써니였다.

그로부터 4~5년의 세월이 흐르자 새들이 하나, 둘 우리 곁을 떠나갔다. 새가 기운이 없고 아파 보이면 처음에는 얼른 동물 의사에게 달려갔다. 늙어서 기운이 없다는 설명과 함께 영양제 주사를 맞고 돌아오면, 병원에서의 검사과정이 더 스트레스였는지 새는 며칠을 가지 못하고 죽었다. 나중에는 새들이 책상에 얹힌 (새들은 높은 곳에 올라앉는 것을 좋아하고 바로 머리 위에서 무슨 소리가 나거나 뭔가가 움직이는 것을 아주 싫어한다) 새장에를 힘이 없어 날아오르지 못하고, 그렇게 보이는 시간이 오면, 이제는 병원으로 달려가는 대신 추위를 타는 새에게 적외선램프를 켜주고 남은 시간을 집에서 가족들과 편히 보내도록 신경 써 주었다. 건강하던 발루와 발토까지 8년의 세월이 흐르자 세상을 떠났는데, 함께 태어난 써니는 여전히 건강하게 이리저리 날아 다니고, 나의 책장을 부리로 부지런히 갈아대며 하루종일 지치지도 않고 열심히 혼자서 논다. 그러다 책상 앞에 앉은 나의 머리 위를 아슬아슬하게 휙, 날아서 새장으로 들어가기도 하며.

혼자 남은 써니를 두고,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 것인지 우리 가족은 의견이 분분했다. 그 사이 김나지움 11학년이 된 아이는 써니를 다른 잉꼬들과 함께 살 수 있도록 동물원에 보내자는 의견을 내었지만, 우리는 써니가 이제까지 살던 환경에서 그녀의 여생을 보낼 수 있도록 끝까지 돌보아주자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처음에는 미칠 듯이 갖고 싶어 하며 부모를 졸라서 애완동물을 샀다가, 얼마 지나 애정이 식으면 찬밥대우를 하다가 종내에는 동물원으로 주어버리는 아이들이 많지 않은가. 써니는 건강해서, 코의 뼈가 계속 자라서 콧구멍을 막아 숨을 쉬기 힘들어해서 코뼈 윗부분을 잘라낸 수술을 제외하면, 이제껏 병원 신세 한번 안 지고 살고 있다. 아침에 창밖에서 새들이 지저귀면 써니도 부지런히 지저귀어 대답을 하며 우리를 깨운다. 남편이 가끔씩 컴퓨터로 다른 잉꼬들의 동영상을 보여주어 컴퓨터 속의 새들이 지저귀면, 써니는 친구들이 찾아온 줄 생각하는지, 지저귀며 이들과 대화를 나눈다. 남편이 책상에 앉아 글을 쓰면 써니는 남편의 등받이 의자에 올라앉아 열심히 지저귀며 등받이의 가죽을 쪼아댄다. 열린 방문으로 보이는 이 기이한 쌍은 서로의 일에 열중해 바쁜데, 조화를 이루며 아름다워 보는 이로 하여금 저절로 미소를 짓게 한다. 써니가 건강하게 우리 곁에 오래 머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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