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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사람이 되는 방법 / 권재술

부흐고비 2021. 11. 4. 08:20

정년을 맞이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내가 치는 테니스 라켓의 줄이 끊어졌다. 총장 할 때였다면 비서에게 부탁하면(요즈음은 그것도 갑질이라고 비난의 대상이 되겠지만) 그냥 해결되었을 터였다. 어디에서 매는지 값이 얼마인지 물어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내가 해결해야 한다.

우선 가까운 체육사를 찾아갔다. 체육사면 으레 그런 것은 다 하는 줄 알았는데 그 체육사는 라켓 줄은 매지 않는단다. 어디에 가면 되느냐고 물었더니 자기도 모른단다. 그래서 차를 몰고 가면서 체육관 근처를 두리번거리는데 배드민턴 가게가 있어서 들어갔다. 배드민턴이나 테니스나 비슷하니 같이 취급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테니스 라켓은 취급하지 않는단다. 마음씨 좋은 주인아저씨가 테니스 줄 매는 가게를 알려 주어서 찾아갔다. 알고 보니 첫 번 찾아갔던 그 체육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 있었다. 그 첫 번째 가게 주인이 좀 야속하게 생각되었으나, 정말로 몰라서 가르쳐 주지 못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으로 마음을 달랬다.

가게에 들어서니 70도 넘어 보이는 할머니(그래도 나는 아주머니라고 불렀다.) 한 분이 계셨다. 라켓 줄을 매느냐고 했더니 맨다고 했다. 할머니가 어떻게 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어 얼마나 걸리느냐고 물었더니 30분 정도 걸린다고 했다. 점심시간이 좀 지나긴 했지만 기다리기로 마음먹었다.

할머니는 만 원짜리로 할건지 만오천 원짜리로 할 건지를 물었고 나는 만오천 원짜리로 하고 줄의 세기를 42로 해 달라고 말했다. 할머니는 만오천 원짜리 줄을 한 참 찼다가 나에게 “얼마짜리를 해 달라고 했죠?”하고 물으셨다. “만오천 원짜리입니다.” 그리고 한 참이 지났는데 다시 “얼마짜리를 하라고 했지요?”고 재차 물으셨다. 다시 만오천 원이라고 대답하고 속으로 치매까지는 아니더라도 기억력이 좋지 않구나 생각했다. 나도 기억력이라면 둘째가기 서러울 정도로 기억맹이여서 나 자신을 보는 것 같기도 하여 그럴 수도 있겠다 하며 기다렸다. 그런데 한 참 줄을 롤에서 풀면서 “세기를 얼마로 하면 되지요?” 하고 물었다. “42로 해주세요.” 그런데 줄을 다 풀고 이제 막 매려고 하면서 다시 “줄 세기를 얼마라고 했지요?” 하고 물었다. 나는 다시 “42에요.”라고 대답하면서 할머니가 정말 치매 근처에 온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고 줄을 제대로 매기나 할까 걱정도 되었다. 그래도 나는 그러는 할머니를 관찰하는 것이 걱정보다 재미있기도 하고 나의 미래를 보는 것 같기도 하여 기분이 그렇게 나쁘지는 않았다.

30분이라던 시간이 1시간 반이나 지나가고 있었다. 그런데 줄을 다 매고 계산을 하는데 카드기를 작동하면서 할머니는 다시 “얼마짜리였지요?” 하고 묻는다. 참 어처구니가 없기는 하였지만 아무 내색하지 않고 “만오천 원짜리였습니다.”하면서 돈을 내고는 라켓을 가지고 가게를 나왔다. 가게를 나오면서 그 할머니의 여운이 오래 남았다. 지금은 계시지도 않은 내 어머니를 만난 듯도 하고, 모든 인간이 직면하게 될 노년을 보는 듯도 했다. 더구나 사람 냄새를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줄을 매듯이 시간을 다 매고 나니 점심시간은 한 참 멀리 밀려나 있었다. 배가 너무 고팠지만, 돈 주고 사 먹지 말고 집에 가서 찾아 먹으라는 마누라의 추상같은 명령(?)을 무시할 수 없어서 고픈 배를 이끌고 집에 와서 냉장고를 뒤지고 식은 국을 데워서 혼자(아내는 아직도 작은 가게 일을 하고 있다.) 점심을 먹었다. 맛이 있었다. 참 오랜만에 느껴보는 맛이다.

정년퇴직하기 전에 잠시 대학 총장직을 맡았을 때다. 돌이켜보면 총장은 사람이 아니었다. 총장이라는 직이 나의 주인이었고, 나는 그의 종일 뿐이었다. 그때의 식사는 밥을 먹는 일이 아니었다. 장관이나 국회의원, 아니면 나라의 곡간 열쇠를 쥐고 있는 공무원을 만나 식사하는 자리는 더욱 그랬다. 겸손 떠는 인사, 아니면 상대방을 분에 넘치게 치켜세우는 말이 오가고, 날씨 얘기를 서론으로 깔고 본론은 아무것도 아닌 양 감춰 놓는다. 감춰 놓은 본론이 가슴에 차 있어서 음식이 목구멍으로 들어가는지 나오는지 모른다. 내가 그럴 때도 있고 내가 그렇지 않으면 나를 찾아온 상대방이 그랬으리라. 그러니 음식의 맛을 제대로 느낄 틈이 있었을 리가 없다. 그야말로 식사란 장식품이나 액세서리에 불과할 뿐이었다.

그런데 오늘 먹은 점심 식사는 내가 주인이고 밥이 주인이어서 진정으로 ‘식사’를 한 것 같았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지금은 아내가 만들어 놓은 것을 찾아 먹지만 앞으로는 나 스스로 음식 만드는 법을 배워 볼 오기까지 생겨났다. 내가 만든 음식을 만들어 아내에게도 먹이고, 친구도 초청하고, 그런 상상을 해 본다.

그때 가서야 내가 정말로 사람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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