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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학교 앞에 삼계탕 식당이 생겼다. 찹쌀이 듬뿍 들어간 삼계탕은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다. 그런데, 닭죽이라는 이름의 상품이 있어서 어떤 내용인지 물어보았다. 삼계탕에 들어가는 닭을 모두 잘게 뜯어서 풀어 만든 것이라고 한다. 혹시나 싶어서 시켰는데 기대했던 바대로였다. 맛있었다. 닭죽은 나에게 추억을 되살려 주었다.

우리 집은 대가족이었다. 할아버지, 할머니에 아버지 어머니 5남매 9명이 기본가족이었다. 복날 근처에는 몸보신을 해야 한다고 하면서 여름에 두 차례 세 차례씩 꼭 닭죽을 해먹었다. 어머니는 영해시장에 가셔서 생닭을 한 마리 사 오신다. 물을 팔팔 끓여서 닭을 물에 담그면, 닭의 털이 쉽게 떨어진다. 나신이 된 닭을 삶은 다음 살코기를 잘게 만든다. 쌀에 닭고기를 넣어서 죽을 만든다. 특별히 죽으로 하는 이유는 대식구가 먹기에 양을 많이 만들 수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우리 남매들은 그 과정을 너무 재미있어했다. 할머니와 어머니가 닭을 해체하는 작업부터 신기하게 지켜본다. 닭의 배를 가를 때가 가장 긴장되고 호기심이 발동할 때이다. 그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궁금했다. 달걀로 되기 전 단계의 작은 알갱이도 들어있는데 여러 개가 있다. 이번에는 몇 개가 들어있을까 궁금하다. 어머니는 이것들도 죽에 넣는다. 우리 남매들은 신기한 이것을 서로 먹으려고 경쟁을 한다. 죽이 준비가 되었다고 모이라는 소리가 들리면 큰 상 주위로 우리 5남매는 기대감에 모여든다. 첫 숟가락에 그 담백함이란 일품이다. 우리집 음식중 최고가는 맛이다. 부드럽게 퍼진 쌀 알갱이의 식감, 따뜻하고 담백한 국물 맛, 그리고 적당히 탄력 있는 닭고기가 한입에 어우러진다. 금방 한 그릇을 먹고 어머니에게 다시 한 그릇을 요청한다. 어머니는 기다렸다는 듯이 다시 한 그릇을 더 담아주신다. 아버지도 형도 또 한 그릇을 요청한다. 어머니는 식구들이 모두 식사를 마칠 때까지 지켜보기만 하시고 빙긋이 웃으신다. 할머니도 그렇게 하시기는 마찬가지이다.

도시로 나오면서 이런 닭죽을 먹고 싶었지만, 서울에서는 삼계탕이 주류이다. 닭의 몸안에 찹쌀을 많이 넣고 끓인 삼계탕도 참 맛있다. 너무 진하게 국물이 있는 집보다 나는 담백한 맛이 있는 집이 좋다. 처음에는 유명한 토속촌이라는 곳에 가서 삼계탕을 먹었다. 그런데, 우연히 광화문 변호사 회관 지하의 한방삼계탕을 먹어보고 그 맛에 반했다. 우선 국물이 담백하다. 더구나 찹쌀을 많이 넣어 준다. 찰기가 있는 찹쌀을 국물과 같이 먹는 것은 언제나 기쁨이다. 경제적인 반계탕까지 있어서 소비자에게 선택의 기쁨까지 주니 고맙다.

이런 삼계탕을 먹어도 어머니와 할머니가 해주시던 닭죽만큼 못하다. 어머니에게 슬쩍 말씀을 드려도 이제는 모른다고 하신다. 아예 기억이 없으신 듯하다. 연로하신 어머니께 자꾸 조를 수도 없다. 집사람은 도시 출신이라서 닭죽을 알지 못한다. 어머니로부터 음식 전수가 되지 않았으니 아쉽다.

목포해양대에 재직할 때 학교 근처에 촌닭이라는 음식점이 있었다. 촌닭은 호남지방의 닭요리 세트를 말하는 명사로 사용되는 듯하다. 학생들 5-6명과 같이 식당에 가면 인심 좋은 아주머니가 교수님 촌닭 시키시냐고 묻는다. 예라고 답하면 세 가지가 연이어서 나온다. 첫 번째는 닭 불고기이다. 회처럼 닭고기를 쓸어서 불판에 구워 먹는다. 소주를 한두잔 하여 알딸딸해질 때쯤이면 제2단계로 닭백숙이 나온다. 삶은 닭이 푸짐하게 나와서 우리 일행의 손을 바쁘게 한다. 한 30분을 이렇게 먹고 나면 배가 무척 부르다. 마지막으로 닭죽이 나온다. 양은 그다지 많지 않다. 작은 그릇에 나오니까. 그냥 닭을 삶은 물에 쌀과 채소를 넣어서 끓인 것이다. 맛이 있다. 그런데, 잘게 해체한 닭고기가 들어있지 않은 점이 고향의 닭죽과 다르다.

이래저래 목포에서 먹은 것이나 서울에서 먹은 것이나 어머니의 손맛을 따라올 수 없었다. 어머니가 해주시는 영덕산 닭죽이 여전히 그립다. 그나마 최근 학교 앞에서 발견한 닭죽이 옛날 먹었던 우리 집의 닭죽과 가장 가깝다. 할머니는 작고하셨고 어머니도 연로하시니 닭죽을 더 이상 먹을 수가 없다. 생닭을 사오는 일부터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다행히 어머니가 만들어 주던 닭죽과 가장 가까운 형태의 닭죽을 이제 발견했다. 엎어지면 코가 닿을 학교 앞에 있다. 앞으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식당과 음식이 될 것 같은 예감이다. 몇 시간을 준비한 강의를 만족스럽게 마치고 나면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포만감을 느끼고 싶을 때가 있다. 이제 가까운 곳에서 고향의 정을 느끼면서 맛있는 음식을 먹게 되었으니 남은 학교생활이 더 즐거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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